INTRO - 의료의 미래, 디지털 헬스케어
▲ 최윤섭 소장
디지털헬스케어연구소
의료는 현재 변혁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변혁의 규모와 속도뿐만 아니라,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도 과거와는 다르다.
또한, 그러한 변화가 우리 삶에 미칠 파급효과도 근본적으로 작용한다.
과거의 의료혁신이 전통적인 의학 주변부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지금 의료가 겪고 있는 파괴적인 변혁은 의학 시스템 외부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변혁의 진원지는 바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태동
기하급수적인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급기야 의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전자의무기록(EMR, Electronic Medical Record), 유전체 분석 등 의료 시스템 내의 변화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웨어러블 디바이스, 스마트폰, 클라우드 컴퓨팅, 3D프린터 등 기존 의료 시스템 밖 디지털 기술이 의료 분야에 빠르고 광범위하게 접목되고 있다.
이로 인해 때로는 공상과학 영화 수준의 의료 기술까지도 구현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의료의 경계는 점점 더 허물어지고 있으며, 갈수록 이 두 분야를 명확하게 구분 짓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첨단 디지털 기술의 대표적이고 최우선적인 활용 분야는 이미 의료 분야이며, 디지털 기술을 빼놓고는 미래의 의료를 설명하기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의학의 긴 역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근본적이고 파괴적일 수 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료의 개념 자체를 뒤집어엎을 정도로 말이다.
‘의료의 개념 자체가 바뀐다’는 말이 지나치다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면 다른 분야에서는 이런 변화가 이미 폭넓게 일어나고 있다.
분야를 막론하는 변화 속에서 결코 의료만 예외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미래에도 과연 의사라는 직업이 필요할 것이며 의사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지금과 같을까.
현재 누구나 굳건히 믿고 있는 진료, 진단, 처방 및 연구 등의 개념은 10년, 20년 뒤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의사와 환자의 역할과 관계는 어떠할까.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사실 의료는 이러한 변화의 예외는커녕 오히려 정면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래에 맞이하게 될 의료의 모습은 지금과는 크게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기술의 진화 속도를 고려해 본다면 현재의 시점에서 아무리 과감하게 미래의 의료상을 예측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러한 예견조차도 너무 보수적이었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현재 우리는 의료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흥분되는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변화가 달갑게 느껴질 수는 없을 것이지만,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이러한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대전제를 받아들이고 변화해야 할 때이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지향점
디지털 기술혁신이 의료 기술과 융합되어 변화되고 새롭게 태동하는 의료 분야를 디지털 헬스케어(Digital Healthcare)라고 부른다.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분야가 미래 의료계의 모습을 전부 대변하지는 못하겠지만, 상당 부분을 포괄할 것임은 분명하다.
의료가 추구하는 미래의 궁극적인 이상향이 바로 이 디지털 의료의 구현으로 달성될 수 있다.
의료계 종사자라면 소위 ‘4P 의학(4P medicine)’이라는 용어에 익숙할 것이다.
시스템 생물학의 선구자인 리로이 후드(Leroy Hood) 박사 등이 2000년대 중반에 처음 소개한 이 개념은 P로 시작하는 4가지 의료혁신의 목표를 의미한다.
예측 의료(Predictive Medicine), 맞춤 의료(Personalized Medicine), 예방 의료(Preventive Medicine), 참여 의료(Participatory Medicine)가 이에 속한다.
질병을 예측하고 예방하며, 개별 환자에 특화된 맞춤형 의료를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환자의 역할이 커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조금 달라졌다.
단순히 막연한 구호에 그치던 4P 의료를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생겼기 때문이다.
4P 의료가 우리가 언젠가는 당도하려고 하는 목적지라면, 이제 그곳에 이르기 위한 꽤 구체적인 지도와 이동 수단까지 갖추게 되었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그 중의 하나이다.
데이터, 데이터, 데이터!
디지털 헬스케어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요소만을 꼽으라면 무엇을 골라야 할까?
필자는 다름 아닌 ‘데이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헬스케어에서 데이터는 새로운 재화이자, 새로운 권력이며, 새로운 경쟁우위 요소가 될 것이다.
또한, 데이터를 누가 소유하고, 접근권을 가지며, 어디에 저장하며,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것이다.
재무 분야의 오랜 격언 중에 ‘현금이 왕이다(Cash is king)’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 빗대어 필자는 디지털 의료에서는 ‘데이터가 왕이다(Data is king)’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다소 거친 표현이지만, 우리 인간은 그 자체로 데이터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데이터를 생산해 내는 과정이다.
우리가 숨 쉬고, 먹고, 마시고, 심장이 뛰고, 혈액이 흐르고, 걷고, 뛰고, 땀을 흘리고, 잠을 자고, 느끼고, 말하는 모든 것이 데이터를 만들어 낸다.
나아가 우리는 태어나면서 고유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DNA 염기서열에 담겨 있는 유전 정보가 대표적이며, 유전 정보를 조절하고, 유전 정보에서부터 시작되는 많은 생명 현상이 모두 데이터다.
IBM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크게 세 가지 종류의 데이터를 만들어 낸다.
의료 데이터, 유전체 데이터, 그리고 그 밖의 외부적인 데이터이다.
이러한 각 종류별로 인간이 평생 만들어 내는 데이터의 크기를 보면 의료 데이터는 0.4테라바이트, 유전체 데이터는 6테라바이트에 그치는 반면 그 외의 외부적인 데이터는 무려 1,100테라바이트나 된다.
이 세 가지 종류의 데이터가 우리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각각 10%, 30%, 그리고 60% 로 크게 차이가 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들어 내는 이 세 가지 데이터들 중에 우리가 현재 의료에 활용하고 있는 데이터는 병원의 전자의무기록이나 종이 차트에 기록된 전통적인 의료 데이터 정도다.
유전체 데이터의 경우, 최근 유전정보 분석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야 서서히 의료 시스템 속으로 들어오고 있지만 암 치료 등 몇몇 예외적인 질병을 제외하고는 일상적인 의료에서의 활용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그리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그 밖의 외부적인 데이터는 현재의 의료 체계하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애당초 이런 데이터를 측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이야기가 좀 달라질 것이다. 인류 역사 최초로 우리는 인간을 디지털화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즉, 예전에는 의미 없이 버려졌거나, 불완전하게 얻었던 데이터들이 이제는 기술적으로 측정이 가능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웨어러블 센서, 사물인터넷, 스마트폰, 개인 유전정보 분석 등의 발전에 따라 측정 가능한 데이터의 종류, 양과 질 모두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되고 있다.
더 나아가,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 소셜미디어 등의 발전은 디지털 의료 데이터를 공유, 전송, 저장할 수 있게 해주며, 이러한 데이터를 통합하고 분석함으로써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게 해줄 것이다.
누가 디지털 헬스케어를 이끄는가
디지털 헬스케어는 산업적으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특히 필자는 2014~2015년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태동한 원년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부터 이 분야는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 투자회사 락헬스(Rock Health)의 보고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디지털 헬스케어에 투자된 금액을 모두 합한 것보다, 2014년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졌으며, 이후 투자 규모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매년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 2017년도 사상 최대의 투자 규모를 기록하였으며, 2018년 상반기의 투자 규모를 보면 올해도 이 기록이 경신될 것이 유력하다.
이 분야는 기존 의료계, 병원, 제약 회사, 의료 기기 회사 등도 기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변화는 전통적으로 헬스케어 기업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애플,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퀄컴, 샤오미 등의 IT 기업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다.
사실 글로벌 IT 기업 중에서 차세대 신성장동력으로 의료/헬스 케어를 꼽으며, 이 분야에 뛰어들지 않은 곳을 꼽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디지털 기술이 의료에 융합되면서 IT 기업도 헬스케어라는 거대한 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애플은 아이폰 기반의 헬스케어 플랫폼 헬스키트, 임상 의료 연구 플랫폼 리서치키트 및 애플 최초의 스마트 워치인 애플워치를 출시하며 독자적인 의료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헬스키트 생태계에는 900가지 이상의 헬스케어/의료 앱과 대형 전자의무기록 회사들, 메이요 클리닉, 스탠퍼드 대학병원 등 대형 병원들이 협력하고 있다.
구글은 헬스케어 플랫폼 구글 핏을 발표하고, 구글 라이프 사이언스 부서에서 혈당 측정용 스마트 콘택트렌즈 개발, 건강한 사람의 신체 상태를 규명하려는 베이스라인 스터디, 암세포 조기발견을 위한 나노입자 개발 등을 진행해 왔다.
2015년에는 아예 ‘알파벳’이라는 지주회사를 만들고 기존의 구글 라이프 사이언스를 버릴리라는 자회사로 독립시켰다.
버릴리는 현재 의료 인공지능, 로봇 수술 등 다양한 의료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벤처캐피탈 자회사인 구글 벤처스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투자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
IBM은 인공지능 왓슨을 기반으로 메모리얼 슬론-캐터링 암센터, 메이요 클리닉, 클리블랜드 클리닉 등 여러 병원과의 협력을 확대하면서, 암 환자 진료, 신약 임상시험, 암 유전체 분석 등 다양한 의료문제 해결에 도전하고 있다.
2015년 4월에는 왓슨 헬스 부서를 독립시키고 애플, 존슨앤존슨, 메드트로닉, 에픽 시스템즈 등의 회사들과 협력 및 인수를 통해서 의료 생태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디지털 헬스케어 생태계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회사들은 애플, 구글, IBM과 같은 대형 기업이 아니라, 수많은 스타트업 회사들이다.
미국에서는 유전자 분석 스타트업 23앤드미와 같은 유니콘이 나오고 있으며, 웨어러블 스타트업 핏비트, 아이리듬, 원격의료 기업 텔라닥은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며 화제를 모았다.
이외에도 세계적으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스타트업들이 도전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혁신을 꾀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형 기업들은 자체적인 기술개발이나 제품 출시뿐만 아니라, 이러한 스타트업과의 활발한 경쟁과 협력, 또는 인수합병을 통해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맺는말
디지털 헬스케어의 혁신은 이미 시작되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의 영향으로 의료는 미래에 지금과는 크게 바뀌게 될 것이고, 그러한 변화는 이미 다양한 방면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스마트폰, 웨어러블 디바이스, 유전정보 분석 기술 등에 따라서 다양한 헬스케어 빅데이터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측정되며, 헬스케어 플랫폼과 클라우드의 발달로 이러한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저장 및 통합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
이러한 데이터는 기존 의료 시스템 속에서, 혹은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통해서 분석되고, 건강관리 및 질병 치료를 위한 인사이트를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기술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SF 영화에 나올 법한 장면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실제로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들이 많다.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투자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글로벌 IT 기업과 수많은 도전적인 스타트업이 이러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현재 모습보다, 미래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디지털 헬스케어의 모습도 앞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헬스케어의 발전이 장밋빛 미래만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과 산업의 등장에 따라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 역시 우리 앞에 놓이고 있다.
이 이슈들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다면, 디지털 헬스케어의 발전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바꿔놓고 있는 헬스케어의 미래.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이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어떠한 기회를 포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