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 디지털 헬스케어와 블록체인
▲ 이은솔 대표 메디블록
블록체인은 의료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블록체인을 통해 개인이 의료 데이터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으며, 데이터의 신뢰성 역시 보장된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장단점이 분명한 기술이다.
따라서 이를 적절히 이용한다면 더욱 편리한 의료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모아 블록을 구성하고, 전 블록을 바탕으로 다음 블록을 구성하는, 일종의 데이터베이스이다.
그리고 이를 불특정 다수 또는 허가 받은 다수가 공유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수의 감시에 의해 기록의 변조를 방지하고, 모두가 동일한 내용을 관리하는 비가역적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구성하게 된다.
이 블록체인의 가장 큰 특징은 누구 하나에 의해 관리되는 데이터베이스가 아닌, 다수의 주체가 동등한 입장에서 참여하는 탈중앙성이다.
네트워크에 접근한 누구든지 블록체인의 내용을 열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투명성은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 된다.
한번 작성되면 되돌릴 수 없으며 모두가 인정하는 시간이 작성시간으로서 기록되는 것도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그러나 블록체인이 가지고 있는 단점 또한 분명하다.
투명성, 비가역성으로 인해 개인정보 등 민감한 내용을 블록체인에 남기기는 어렵다.
원치 않는 참여자가 내용을 열람하려고 하더라도 막기 힘들고, 잘못되거나 민감한 내용이 올라가 삭제가 필요하더라도 그 내용을 지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거래 내역 작성을 위해 수없이 많은 컴퓨터, 네트워크 활용 등을 하다 보니 일반적인 컴퓨터 시스템보다 비효율적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단점 중 하나이다.
이렇듯 블록체인은 장단점이 분명하게 있는 기술이므로 이를 적절하게 잘 이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특징을 잘 알고 기존의 시스템과 잘 결합하기만 하면 시너지를 뽑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블록체인만으로는 달성하기 쉽지 않은 빠른 속도, 대용량을 요구하는 부분은 중앙화 된 컴퓨터 시스템 또는 클라우드를 이용한다. 그리고 투명성, 탈중앙성, 무결성, 비가역성이 필요한 부분은 블록체인을 이용한다.
이를 적절하게 이용하게 되면 이제껏 할 수 없었던, 또는 하기 힘들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의료에서는 블록체인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다양한 레벨의 진료정보교류에서의 무결성 증명, 임상시험에서의 무결성 증명 및 투명성 유지, 약물 유통과 같은 물류 관리 등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알려졌다.
진료정보교류는 크게 두 가지 레벨에서 이루어진다.
의료기관 끼리 환자의 진료 정보를 공유하는 전자건강기록(EHR, Electronic Health Record)과 개인이 자신의 의료 데이터를 스스로 관리함으로써 교류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건강기록(PHR, Personal Health Record) 두 가지이다.
이 두 가지 모두에서 발생 가능한 문제가 데이터에 대한 신뢰 문제이다.
기본적으로 디지털 데이터는 쉽게 편집할 수 있다.
의료기관과 개인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료기록을 변조 후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다.
특히 개인이 관리하는 데이터의 경우는 병원이 관리하는 데이터에 비해 신뢰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의료기관은 허가받은 의료인이 개설해서 운영해야 하지만, 개인은 그러한 담보가 전혀 없는 불특정 다수라는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의 비가역성을 이용하면 이렇게 믿기 어려운 디지털 데이터에도 신뢰를 부여할 수 있다.
이로써 다른 주체에 의해 쉽게 신뢰받을 수 있는 병원이나 기업, 정부가 아닌 개인이 스스로 관리하지만 그 내용에 대한 신뢰를 보장받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PHR이 가능해진다.
EHR도 마찬가지이다. 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책임소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타임스탬프 역할 및 데이터에 대한 해시값 보존 역할을 블록체인이 하게 됨으로써 투명성, 무결성 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임상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신뢰성 확보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데이터가 수집되었는지, 그리고 중간에 조작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이런 모든 것이 임상시험 결과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된다.
만약 연구의 디자인이 끝난 순간부터 임상연구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환자 등록, 참여자 수 등 임상시험의 모든 과정이 블록체인에 투명하게 기록되고 제 3자가 이를 쉽게 검증할 수 있게 되면 어떨까?
또 의료기관에 있는 데이터와 임상시험용 e-CRF(전자증례기록지)에 저장된 데이터가 동일하다고 증명할 수 있다면 어떨까?
결과에 대해 훨씬 더 높은 신뢰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임상시험의 재현 역시 훨씬 쉬워진다.
약물 유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약의 생산 단계부터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유통과정 전체를 투명하게 블록체인에 기록하면, 약물의 유통과정을 더욱 투명하게 할 수 있고 위약의 유통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여러 분야 중 가장 큰 임팩트를 가져다줄 분야는 역시 PHR일 것이다.
이미 1970년대에 소개된 바 있는 PHR은 수없이 많은 병원과 회사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널리 쓰이는 PHR이란 것을 세상에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PHR은 환자가 자신의 의료데이터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원하는 서비스를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것이 PHR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개인이 가진 데이터에 대한 신뢰성 부족은 PHR이 도입되기 힘든 여러 요인들 중 하나였다.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주체인 정부, 의료기관, 대형 회사 등에 의존하는 방법도 제시되었지만, 개인의 의사에 반하는 데이터 활용, 유출 문제 가능성 이슈를 풀지 못한 것도 또 하나의 원인이었다.
개인이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나 랩톱에 데이터를 저장, 관리하게 하고 이에 대한 무결성 증명은 블록체인을 통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개인은 민감한 자신의 모든 의료 정보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되며, 원하는 주체에만 데이터를 넘겨주고, 그렇지 않은 주체에 대해서는 원천적으로 데이터 전송을 차단할 수 있게 된다.
원하면 자신의 개인 클라우드에 데이터 백업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 의료기관, 보험사, 제약사 등에 데이터를 전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료 서비스, 보험 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아직까지 달성되지 못하였던, 진정한 의미의 PHR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당뇨병 환자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자신의 당뇨 측정기를 통해서 측정한 당 수치뿐만 아니라 의료기관에서 검사한 피검사 결과까지 종합해서 자신의 스마트 폰에 저장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약 용량을 어떻게 조절을 해야 할 지, AI 서비스에 의해 추천을 받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응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응급실에 가는 게 좋다는 의견을 제시받을 수도 있다. 암 생존자도 마찬가지이다.
모바일 플랫폼을 이용하여 암 생존자 건강관리 서비스를 받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환자는 자신의 유전체, 진료기록, 그리고 평소 생활습관에 의한 라이프 로그 등을 바탕으로 암 치료 후 건강관리 계획을 짤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플랜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웨어러블 디바이스, 그리고 환자 스스로 입력하는 라이프 로그 데이터 등을 종합하여 실시간으로 AI가 어떻게 건강관리를 해야 할지에 대해 제시해 준다.
AI로 해결이 어려운 부분은 텔레컨설팅과 같은 방법으로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여행이나 해외파견을 가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에 나의 기록이 모두 안전하게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데이터의 신뢰성은 블록체인이 보장을 해준다.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고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내놓은 지 이제 십년이 넘었고 스마트폰은 어느덧 우리의 일상품이 되었다.
사진 관리와 편집, 쇼핑, 금융 등 과거 오프라인이나 개인용 컴퓨터 등을 통해서 이용이 가능했던 대부분의 서비스가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통해 의료를 이용하는 것은 아직도 불편하다.
의료 기록을 스마트폰으로 받아 저장하는 것은 어려운 실정이고, 병원에 요청하더라도 종이 문서 형태나 CD의 형태로만 건네준다.
여러 병원에서 진료 받은 의료 데이터를 하나로 모아서 관리하거나 웨어러블 디바이스, 가정용 의료기기 등에서 생성된 헬스 로그 정보 등을 통합 관리하는 것은 아직까지 꿈에 불과한 일들이다.
그렇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나의 모든 건강, 의료 정보를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내가 새로 방문하는 병원에도 지금껏 내가 살아오면서 쌓아온 모든 데이터를 전달하여 최적의 맞춤형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스마트폰에 저장된 나의 데이터를 100% 활용할 수 있으려면, 스마트폰에 저장된 의료 데이터에 대한 신뢰성 부여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 일을 블록체인이 해주는 것이다.
블록체인을 통해 스마트폰에 저장된 의료 데이터에 원본대조필이 찍혀 있는 의무기록사본 이상의 신뢰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의료데이터를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관리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에 저장된 건강, 의료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 애플리케이션들이 나올 것이고, 쉽게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애플리케이션 표준화 작업 역시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선순환이 이어지게 되면, 생태계가 확대됨과 동시에 소비자들은 더 편리하게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미래는 늦어도 3~5년 안에 우리 곁에 올 것으로 전망된다.
혹자의 말처럼 블록체인이 만능인 것은 아니다.
탈중앙화 되어 있기에 중앙화 된 시스템에 비해 관리도 어렵고 성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껏 중앙화 된 시스템만으로는 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 주고 있다.
그 끝이 어디까지 뻗어 나가게 될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인터넷에 신뢰를 더할 수 있는 블록체인이 열어줄 세상.
3년 후와 5년 후, 또 10년 후에 어떤 세상이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세상을 미리 상상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