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생존기
▲ 김영인 한국전략이사 Noom Inc.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은 혁신가능성이 크다는 점으로 인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빠른 성장 속도를 필요로 하는 벤처나 스타트업 입장에서 헬스케어 분야는 쉽지 않은 시장이다.
이처럼 명암이 명확한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 살아남는 전략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세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지 약 4~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디지털 헬스케어의 ‘유니콘’ 반열에 오를 만한 기업이 얼마나 있을까?
혜성 같이 등장한 테라노스(Theranos)는 사기극으로 밝혀졌고, 글로벌 시장에서 이름을 떨치던 조본(Jawbone)이나 페블(Pebble) 같은 회사들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23앤드미(23andMe), 핏비트(Fitbit), 텔라닥(Teladoc)과 같은 회사들을 유니콘의 후보에 올릴 수 있겠지만, 아직 이 회사들도 비즈니스 모델 차원에서 입증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동안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새로 생겨났지만, 상당수가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넘지 못하고 사라져 갔고, 일부 기업들만 그 계곡의 끝자락을 맞이하고 있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분야든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가 등장했을 때 초반의 폭발적인 성장 이후 죽음의 계곡을 지나 안정기로 접어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특히 헬스케어 분야는 이 속도가 다른 분야에 비해 더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속해 있는 헬스케어 분야는 개인, 보험자, 의료공급자, 정부, 제약사, 의료기기 제조사 등 여러 주체의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의 역학 관계도 복잡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좋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상품이 몇 년을 걸쳐 규제를 뚫고 효과성을 입증하여 시장에 출시되어도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지 못해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빠른 성장속도를 필요로 하는 벤처나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헬스케어가 쉽지 않은 시장인 점은 확실하다.
어려운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이유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이 기존 헬스케어 산업을 혁신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보험사, 제약사와 같이 헬스케어 분야에서 비용 지불자(Payer) 역할을 하는 주체들이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투자를 늘리고 있고 스타트업들을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태세를 취하고 있다.
기존 헬스케어 시장에서 해결하지 못하던 문제들을 최신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처럼 명암이 명확한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 살아남는 전략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핏비트는 걸음걸이 및 심박수를 체크할 수 있는 기기로서, 전 세계 웨어러블 광풍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2015년 뉴욕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면서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가 열렸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3년이 지난 2018년 현재 핏비트의 주가는 공모가를 한참 밑돌고 있으며 실적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이다.
이와 더불어 여러 웨어러블 회사들이 잇달아 문을 닫거나 헐값에 매각하기 시작하면서 웨어러블 시장에 침체기가 왔고 전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핏비트의 초반 성공 요인은 소비자 시장(B2C, Busi-ness to Consumer)에 있었다.
그동안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하던 걸음걸이나 심박수를 좀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하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급격하게 수요가 늘어났다.
한창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던 시점에 스마트하게 건강을 관리한다는 개념과 간결하고 미래적인 제품의 디자인이 주는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가치가 접목되어 일반인들에게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B2C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하기에 유리한 시장이지만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장이다 보니 안정성은 떨어진다.
핏비트도 상장 이후 이러한 부분을 인지하여 기업 간 거래 시장(B2B, Business to Business) 시장으로의 확장 전략을 고심했다.
하지만 B2B시장으로 안정적으로 넘어가기 전에 B2C 시장에서의 불길한 징후들이 나타나면서 성장에 적신호가 켜졌다.
사용자들이 제품을 사용하는 유지율이 떨어지고 후속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소비자들이 웨어러블을 착용하면 건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구매를 했다가 막상 데이터를 측정하는 것만으로는 건강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하다 보니 후속 제품에 대한 구매 의욕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이는 물론 매출에도 영향을 주면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아직 핏비트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기에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해 웨어러블 시장에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핏비트와 비슷한 시점에 뉴욕 증시에 상장하여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있다.
바로 미국을 대표하는 원격진료 회사인 텔라닥이다.
텔라닥의 경우 핏비트와 달리 상장 이후 꾸준히 주가가 상승하고 있으며 사업을 안정적으로 잘 성장시키고 있다.
최근 텔라닥은 미국의 대형 약국-편의점 체인인 CVS와 협업을 통한 B2C 시장의 진출을 선언한 바다.
기존에 보험사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던 B2B 사업을 기반으로 B2C 영역까지 진출하게 된 것이다.
텔라닥은 애트나(Aetna)와 같은 미국의 대형 보험사의 의료보험에 가입한 고객들에게 원격진료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일부 원격진료 기업이 일반인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 반면 텔라닥은 꾸준히 B2B 형태로만 서비스를 제한해 왔다.
B2C로 원격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면 환자로부터만 비용을 받을 수 있어 서비스 비용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
아무리 디지털 기술을 도입했지만, 의사의 인건비가 줄어들지는 않으므로 수익 구조를 만드는 것에 한계가 발생하는 것이다.
반면 텔라닥의 경우 보험사로부터 가입자당 구독료를 추가로 받으며, 고객에게 합리적인 비용을 받아 서비스를 빠르게 보급하면서 원가에 대한 이슈도 해결할 수 있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텔라닥 서비스를 도입해서 단순 질환으로 응급실이나 병원을 방문하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고, 고객의 만족도가 높아 부가서비스로서 가치가 있어 구독료를 지급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보험 가입자 입장에서도 의료비가 비싸고 의료기관 이용이 불편한 미국에서 1년 365일, 24시간 간단한 진료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혜택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기존 보험자와 환자의 니즈를 잘 파악하고 이를 만족하게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지속 가능한 비용구조를 만들어낸 것이 텔라닥이 B2B 분야에서 보험사와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텔라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CVS와의 협력을 통해 B2C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다만, 단독으로 사용자들에게 제품을 판매하지 않고 CVS와 연계하여 소비자들에게 원격진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렇다 보니 정확히 말하면 B2B2C 시장(Business to Business to Consumer)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국내와 달리 미국에서는 약국만 단독으로 있는 경우보다 편의점까지 같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CVS가 대표적인 약국 체인이라고 할 수 있다.
CVS는 건강 관련 플랫폼으로서 확장을 위한 원격진료 서비스 축으로 텔라닥을 선택한 것이다.
텔라닥은 전국에 고르게 분포해 있는 CVS를 통해 더 많은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고, CVS 입장에서는 사용자를 플랫폼에 데려와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텔라닥은 헬스케어 내 여러 주체의 니즈를 본인들의 주력 상품인 모바일 원격진료 서비스와 적절한 비용구조 아래 잘 연계하여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 B2C와 B2B시장 중에 어느 시장을 먼저 진입해야 하는가? 결론적으로 한 가지 방향으로 답을 내리긴 어렵다.
B2C 시장에서 시작하는 경우 빠른 시간에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장의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면 사업의 기반이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어려움이 있다.
반면 B2B 시장에서 시작하는 경우 규제를 넘고 비즈니스를 이끌어 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까지 지속적인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물론 B2B 시장에 먼저 안착하게 되면 B2C 시장에 비해 안정적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해당 디지털 헬스케어 재화가 제공하는 가치의 특성에 따라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장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가 일하는 눔(Noom Inc.)의 경우 B2C 시장의 성장동력을 B2B 시장으로 옮겨가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눔은 미국, 한국, 일본 등 글로벌 시장에서 체중 감량 및 당뇨병 예방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바일 헬스케어 스타트업이다.
2008년에 활동량 측정 앱을 처음 출시한 이후 스마트폰 기반 체중감량 코칭 서비스로 B2C 시장에서 성장해 왔다.
창업 초반 회사의 가치는 앱의 트래픽(Traffic)을 기준으로 평가되었다.
다른 앱 비즈니스처럼 무료 앱 서비스 이후 인앱 결제를 통한 유료 서비스 확장 모델로 매출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B2C 헬스케어 앱 시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었다.
구글플레이 피트니스 분야에서 매출 1위를 3년 이상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매출 규모는 40억 원을 넘지 못했다.
B2C 시장에서 헬스케어 앱에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높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 아래 후속 투자를 유치하면서 전략적으로 B2B 시장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보험사 및 병원과의 협업 사례를 늘려가고 연구논문을 출판하는 쪽으로 인력과 자본을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B2C와 B2B 시장에 대한 전략 방향성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B2B 사업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하다보니 어느 쪽으로 전략을 집중할 것인가에 대한 내부 의견이 분분했다.
결론적으로 눔이 기존에 잘하던 B2C 분야에서 코칭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을 개척하는 것으로 전략 방향을 설정하고 이 분야에 매진하게 되었다.
텔라닥의 사례와 유사하게 눔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력에 대한 인건비가 원가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텔라닥이 보험의 구독료로 이를 해결했다면, 눔의 경우는 기술을 활용하여 코치 1인이 담당할 수 있는 사용자 수를 늘려가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했다.
미국 시장을 기준으로 코치 1인이 담당하는 사용자 수는 약 260명 정도 된다.
인공지능 기술의 도입으로 초반에 코치 1인당 50명을 담당했던 것에 비해 원가를 상당히 큰 폭으로 줄일 수 있었다.
사람이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을 자동화하고 예측 모델을 기반으로 사용자에게 적절한 개입이 일어날 수 있도록 솔루션을 개선하여 확장성을 담보할 수 있었다.
원가가 감소하자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비용으로 B2C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고 아낀 비용을 마케팅 비용으로 추가 투입할 수 있었다.
회사의 역량을 B2C 시장에 집중하면서 모바일 기반의 체중감량 코칭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군이 늘어나 매출 규모가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내면서 B2C 시장에서의 매출 증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B2C에서의 성장 폭을 기반으로 B2B 사업 기회가 열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의 보험사와 제약사들이 눔의 B2C 역량을 높게 평가하여 B2B 사업을 제안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눔은 B2C 시장에서의 성장에 매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헬스케어의 주 비즈니스 모델인 B2B 분야로 진출할 수 있었다.
B2C 시장에서 판매를 늘려가는 과정에서 데이터 기반의 마케팅 기법을 차용하여 건강관리의 니즈가 있는 사람들을 선별해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양적인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적절한 마케팅 메시지를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이는 헬스케어 B2B 시장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내용이라서 B2B 기업들이 사업 파트너로서 눔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으며,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복잡한 헬스케어 시장의 특성상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 내는 제품은 명확한 가치를 지녀야 한다.
이러한 가치를 기존의 헬스케어 시장 주체들의 비용 지불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적절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비용 구조 전략을 이끌어 내야 최종적으로 시장에서 생존할 것으로 본다.
각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이 가진 특성을 고려하여 B2C와 B2B 중 더 유리한 시장으로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 왕도는 없다.
다만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을 통해 끝까지 살아남는 기업이 결국 시장에서 독점적인 우위를 차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