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3

03 - 혁신의 숨은 비결: 다양성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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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성욱 차장
KOTRA 스타트업지원팀


최근 미국 혁신 기업들의 경우 비즈니스 성과 제고를 위해 다양성과 포용력을 당연히 탑재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단계를 넘어, 어떻게 하면 다양성이 회사 전체 비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를 논의 중이다.

그러나 다양성을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 진정한 다양성 존중 문화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최우선적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혁신성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혁신적 아이디어와 제품은 다른 시각에서 생각할 수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혁신 성장이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 다양성을 어떻게 혁신의 원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세계 최고의 기업들을 보유한 미국에서는 혁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을까? 혁신 일번지 미국의 현황과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 정부와 기업에 유의미한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미국에서 논의되는 다양성 관련 이슈와 트렌드

미국 기업에 있어 다양성 논의는 과거 성별, 인종, 연령, 성적 지향 등에 있어서의 차별 금지라는 측면에서 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다양성이 비즈니스를 더욱 확장하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고객들을 상대해야 하는 소매 분야 소비재 기업들에 있어서 다양성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 및 접근은 회사 생존이 달린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잠재된 고객 수요에 대한 인사이트로
시장 점유율을 되살린 사례


미국 클로락스(Clorox)사의 바비큐용 숯 제품 브랜드인 킹스포드(Kingsford) 경우, 과거에는 전체 매출의 10분의 1을 담당했으나, 가스그릴의 대중화로 시장에서 거의 퇴출당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클로락스 대표 Don Knauss는 여러 직원들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던 중, 라틴계 직원으로부터 라틴 사람들의 경우, 가족 중심의 문화가 강하고 외부에서 가스가 아닌 숯을 이용해 바비큐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타깃으로 한 좀 더 집중적이고 세분화된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받게 되었다.

해당 직원의 건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라티노 고객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결과, 클로락스사의 킹스포드 브랜드는 시장 점유율 감소 추세를 다시 6%까지 되돌리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주요 고객으로 떠오르는 소수계와 여성

과거 미국 시장의 주 소비 계층은 백인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아시아인, 라티노, 흑인 및 성소수자로 대변되는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계층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 상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50년까지의 기간 중 늘어나는 인구의 85%는 비(非)백인이 될 것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현재 미국인 3명 중 1명이 비백인이지만, 2050년에는 2명 중 1명이 된다는 전망이다. 라틴계와 아시아계, 그리고 흑인들의 구매력이 증가 추세에 있다는 점은 이미 꽤 알려진 사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잘 모르는 성소수자 그룹인 LGBT계 집단의 경우, 다른 집단에 비해 평균 구매력이 높고, 성소수자 친화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브랜드를 매우 우호적으로 본다는 점이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게이온라인 소비자들의 경우, 그들만을 대상으로 한 별도 마케팅을 펼치는 기업 제품을 사겠다고 답한 비율이 78%로 나타났다.

이미 레드오션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미개척시장이 아닐 수 없다.

여성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상품구매 결정의 85%를 여성이 하고, 미국 소비 지출의 70% 이상을 여성이 차지한다고 한다.

이는 미국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이 같은 경향은 갈수록 심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와 같은 시장 수요 계층의 변화는 특히 소비재 소매시장 기업들에 있어 다양성에 대한 인식 및 대응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고객의 다양화는 직원의 다양화로 이어지고 있다. 구매력이 높아지고 있는 라틴계 및 아시아계 고객을 잡기 위해 신규 상품 및 서비스를 개발하는 비즈니스 개발 및 전략 분야에서 라틴계 및 아시아계 직원 채용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문화적 배경이 상이한 고객군에 보다 원활하게 응대하기 위해 고객과의 접점에서 일하는 고객 서비스 부문에서도 다양한 인종 채용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필자가 주재했던 뉴욕 인근 쇼핑몰인 우드버리 아울렛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고객 10명 중 8명 이상은 중국인이라고 할 정도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중국인 직원을 채용하는 매장이 크게 늘었다.

명품 매장에서 중국 관광객들이 큰 이민가방에 명품백을 모조리 쓸어 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고, 중국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일찍 와야 원하는 아이템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외모상으로 중국인과 유사한 한국인들이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중국어로 인사하며 다가오는 직원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중국인 직원 채용을 통해 영어에 서툰 중국 관광객들이 모국에서 쇼핑하는 것과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쇼핑을 하는 데 있어 궁금한 점을 영어로 이것저것 물어보기 어려웠다면, 지금은 중국어가 되는 직원에게 쉽게 물어볼 수 있어 쇼핑 만족도도 오르고 결과적으로 쇼핑몰 입장에서는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통해 더욱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다양한 직원을 채용하는 이유는 이들이 새로운 혁신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형 소매유통망인 타겟(Target)의 전임 다양성 책임자(Director of Diversity)인 트레이시 버튼은 컨설팅 기업인 딜로이트(Deloitte)와의 “Why diversity ma-tters(왜 다양성이 중요한가)”라는 보고서 인터뷰에서 ‘다양한 직원을 채용하면서 회사가 받은 가장 큰 수혜는 이들이 깊이 있는 토론을 통해 회사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매우 혁신적인 해답을 제공했다’는 점을 든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성이 혁신의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을 갖지만, 그녀는 필드에서 뛰는 사람의 입장에서 ‘Diversity drives Innovation(다양성이 혁신을 만든다)’이라는 명제에 크게 동의한다.

특히 소비재 기업의 CEO급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90%가 ‘다양성과 포용력이 회사의 이익과 성과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답한 점은 ‘왜 다양성을 진작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다양성을 혁신으로 승화시킨 사례
: 넥스트점프와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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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다양성을 기반으로 혁신을 이룬 미국 기업 사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무(無) 해고 정책’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회사가 있다. 바로 넥스트점프(Nextjump)다.

이 회사의 설립자인 찰리 김은 우리나라에서도 옥수수 박사로 불리며 노벨상 후보에 5회나 오른 바 있는 김순권 한동대 석좌교수의 아들로, 재미교포 2세다.

찰리 김은 1994년 미국 터프스대학 재학 시절, 대학생을 대상으로 쿠폰북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시작해 현재 기업 구매를 대행하는 전자상거래 업체를 이끌고 있다.
 
미국 포춘지(Fortune) 선정 1,000대 기업 중 70%인 700여 개를 포함해 약 9만 개 기업을 고객으로, 해당 고객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복지 프로그램의 온라인 플랫폼인 종합쇼핑몰을 운영한다.

2000년대 초반 닷컴 붕괴 때는 직원이 4명만 남을 정도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지금은 뉴욕 본사 외에 보스톤, 영국 런던에 지점을 두고 2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로 성장했다.

2008년 이후 유치한 투자금만 4,500만 달러에 이르고 올해 예상 매출은 25억 달러(약 2조 8천억 원)다.

그러나 넥스트점프가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 좋은 인재를 채용하고 해고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2012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시행 중인 ‘무(無) 해고 정책’은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2015년 필자가 근무한 KOTRA 뉴욕무역관에서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개최한 코리안 스타트업 서밋 뉴욕(Korean Startup Summit NYC) 행사의 키노트 스피커로 나선 찰리 김은 ‘무(無) 해고 정책’ 실시 이후 각 부서의 직원 채용이 보다 신중해졌고 직원들의 생산성이 3배나 증가했으며, 회사는 연 평균 60%씩 지속적으로 성장 중이라고 했다.

신입사원 경쟁률 500대 1의 미국에서도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꼽히는 회사가 된 것이다.
 
미국 창업 매거진 INC는 “넥스트점프는 당신이 들어보지 못했지만 가장 성공적인 회사”라고 평가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직원의 역량을 가장 잘 키우는 미국 회사 3곳 중 한 곳으로 넥스트점프를 꼽았고 세계 최대 IT 기업인 구글과 미국 국방부에서 넥스트점프의 채용 프로그램을 배우러 올 정도로 미국 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다.
 
넥스트점프의 사람 중심 경영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를 장려하는 넥스트점프만의 기업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역량이 떨어지는 직원이 있더라도 멘토 직원을 붙여 일정 수준까지 올라오도록 끝까지 이끌어 주는 멘토 제도, 직원들이 팀장을 직접 투표로 선출하는 팀장 투표 선출 제도 등이 퇴사율 제로에 가까운 회사를 만들었다.
 
다양성과 직원의 역량을 진작시키는 사내 분위기가 고속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다양성을 토대로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운용하는 기업으로는 위키피디아(Wikipedia)가 있다.
 
위키피디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일반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만들어가는 온라인 백과사전이다.
 
위키피디아는 뉴욕타임즈보다 높은 성장세를 보이면서도 몇 백 명이 일하는 뉴욕타임즈와 달리 단 한명의 소프트웨어 개발 담당자만이 있다. 유일한 지출은 회선 관리비용으로 드는 5천 달러다.

위키피디아에는 60만 개 이상의 영어 항목이 있고, 200만 가지의 항목들이 여러 언어로 되어 있다. 약 14억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자발적인 일반인 참여자들이 관리하는 모델이다.

위키피디아의 창립자인 지미 웨일즈는 위키피디아의 향후 20년 프로젝트로 모든 종류의 언어로 교과서를 완성하는 ‘위키 책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위키피디아의 혁신성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데 필수적인 다양한 일반인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 있다. 다양성과 포용력을 비즈니스로 성공적으로 녹여낸 모델인 것이다.


다양성을 성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다양성을 현실에서 구현해 내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적지 않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지닌 직원들을 채용하더라도 직원들 간에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노력이 없다면 진정한 융합이 없어 시너지 창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성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경영진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다.
 
월마트의 최고 다양성 책임자(Chief Diversity Officer)인 콜 브라운은 ‘다양성이 왜 중요한지, 다양성을 포용하려는 문화를 회사 내에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어떻게 전개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 없이는 다양성을 성과로 연결시킬 수 없으며, 다양성 프로그램이 회사 비전과 동일한 정도의 중요성을 부여받고 조직원들의 생각을 바꿀 정도로 회사 전체에 녹아들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 기업에 던지는 시사점

다양성과 이를 아우르는 포용력은 우리 기업들에게 있어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해외 조직 관리의 상당부분이 인력의 노무 리스크 관리로 귀결되는 현실을 볼 때, 보다 나은 조직 운영과 성과 창출을 위해서는 다양성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지, 다양한 인재풀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미국 기업들은 다양성이 조직 운영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을 인지하고 보다 나은 융합을 위해 노력 중이다.

우리 기업들도 미국 기업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다양한 문화를 아우르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오는 성과는 부수적 산물일 뿐이라는 것을 인지할 때 진정한 다양성 존중 문화가 회사 내에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