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1

01 - 미국 혁신 문화의 중심: 2018 실리콘밸리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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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재권 특파원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구글,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넷플릭스 등 실리콘밸리 기술기업들의 시가총액은 미국 상장기업(MSCI)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미 전체 기업의 연구개발(R&D)과 자본 지출 증가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2007년 매출 대비 13%를 R&D에 썼으나 10년 후인 2017년에는 이 비중이 18%로 늘었다.



생태계(Ecosystem). 최근 경제·산업 분야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일 것이다. 생태계를 장악해야 비즈니스의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은 21세기 비즈니스의 금언처럼 느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대기업이나 스타트업 등 기업 규모를 막론하고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말을 쉽게 한다. 하지만 생태계를 구성하겠다는 선언만큼 야심차고 의욕적인 말이 없을 것이다.
 
생태계에는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 등이 존재하고 큰 동물에서부터 작은 잡초까지 다양하게 구성하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그 자체로 ‘생태계’로 평가받고 있다.

대·중소기업, 스타트업 등 다양한 규모의 기업과 벤처 생태계(자본), 우수한 인력(스탠포드대학 및 UC버클리)이 조화를 이루고 공존하고 있으며 경쟁력 있는 기업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실리콘밸리는 흔히 ‘정글’ 또는 ‘열대 우림’으로 비유된다. 실리콘밸리라는 열대우림은 사람들의 창의성, 비즈니스 감각, 투자 자본 등 여러 요소가 섞여서 번창하고 멸망하며 이를 이겨낸 지속 가능한 기업들이 속속 탄생한다.

또한, 실리콘밸리는 열대 우림의 가장 큰 특징처럼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트위터, 우버 등 10%도 안 되는 성공한 신생 기업이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것의 배경엔 야후, 마이스페이스닷컴, 포스퀘어 등 90%의 죽은 기업들이 있었다는 것은 잊기 쉽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전기차 '모델S'와 '모델3'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나 테슬라도 파산 직전에 놓여 있다가 극적으로 살아났다.

애플이 미국기업 최초로 1조 달러 시가 총액을 돌파한 ‘영광’은 조망되지만, 애플도 주가 1달러를 기록한 적이 있으며 사실상 ‘망한 기업’ 취급을 당했다는 사실은 기억하기 쉽지 않다.

구글은 세계 시장을 장악한 검색엔진이자 21세기 가장 성공한 기업으로 꼽히지만 가장 먼저 나온 검색엔진은 아니었다.
 
구글 이전에 알타비스타, 라이코스, 애스크닷컴 등의 검색엔진이 존재했으며 구글은 23번째로 개발된 검색엔진이었다.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설립자이지만 페이스북을 창조한 사람은 아니다.
 
윙클보스 형제는 지난 2008년 마크 저커버그가 자신들이 만든 사이트 커넥트 유(Connect U)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며 2008년 소송을 제기, 일부 승소해 페이스북 주식 일부를 보상금으로 받았다.

‘생태계’ 그 자체로 불릴 만한 실리콘밸리는 2018년, 10년 내 가장 큰 변화에 직면하며 또 한 번의 근본적 변신을 예고하고 있다.

기술 진화와 함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하며 산업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마르지 않는 진짜 경쟁력, 역동성

2007년 애플의 아이폰 등장 이후 10년간 쇼핑, 금융, 건강, 주거, 교통 등 일상 활동을 스마트폰을 통해 해결하면서 디지털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졌다.

이 같은 현상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넷플릭스, 우버 등 실리콘밸리 기업의 무한 성장을 가져왔다. 그 결과 디지털이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실제 구글,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넷플릭스 등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들의 시가 총액은 미국 상장기업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시가 총액은 각사 발행 주식에 주가를 곱한 것으로 회사의 미래기업가치를 반영한다.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이 미국 전체 기업가치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점이 크다.

이들은 미 전체 기업의 연구개발(R&D)과 자본 지출 증가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2007년 매출 대비 13%를 R&D에 썼으나 10년 후인 2017년에는 이 비중이 18%로 늘었다.

이 같은 실리콘밸리의 역동성은 어디에서 나올까?

인공지능, 블록체인, 가상·증강현실 등 시대가 지날때마다 어김없이 나오는 기술적 돌파구와 이를 활용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전망, 창업자들의 비전, 이를 믿는 벤처캐피탈의 모험 자본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실리콘밸리를 오늘날 혁신 수도로 만든 비결은 전세계에서 인재가 계속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각국에서 “세계에 내놓을 만한 인재다”라고 불리면 뉴욕 월스트리트이나 워싱턴DC 정부 단지에서 넥타이를 매고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지금 10~30대 밀레니얼 및 Z세대는 ‘실리콘밸리 기업’에 입사하거나 창업하는 것을 꿈꾼다. 인재의 드레스 코드는 ‘넥타이’에서 ‘후디’로 바뀌고 있다.

전 세계에서 온 인재들을 생태계 일원이 되게 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한데 스티브 잡스 같은 이미 전설이 된 인물이나 마크 저커버그 등 살아있는 전설이 존재하는 실리콘밸리는 역사 속에서 누구라도 기꺼이 생태계의 ‘일원’이 되게끔 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또한, 철저한 능력주의(Meritocracy)가 기술이 있고 재능이 있는 인재는 반드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었다.

실패에 관대한 분위기도 실제로 지배한다. 실패는 뼈아프지만, 결정적 실책은 아니다.

실패해도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큰일을 시도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실리콘밸리는 가장 우수한 지역의 자원(자본, 재능, 투자자, 멘토, 스케일링 경험)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자본 투자 측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과를 자랑한다.
 
2018년 들어 발견된 재미있는 사실은 비즈니스 지형을 바꾸고 있는 회사가 반드시 ‘신기술’, ‘새 비즈니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의 구독 모델을 접목한 실내 자전거 ‘펠로톤(Peloton)’과 전자담배 회사 '줄(Juul)'은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안 될 것’이라는 통념이 지배하고 있는 기존 비즈니스를 응용하고 혁신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2,000달러짜리 인터넷 연결 헬스 자전거를 판매하는 펠로톤은 최근 41억 달러(약 4조 5,817억 원)의 가치로 5억 5,000만 달러(약 6,146억 원)의 자금을 투자받아 화제가 됐다.
 
펠로톤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존 폴리는 집에서 피트니스 콘텐츠를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보면서 운동할 수 있는 기기는 없을까 하는 고민 끝에 펠로톤을 개발하게 됐다.

실내 자전거를 구매한 뒤에 월정액을 내면 실내 자전거에 부착된 기기로 4,000여 개 수업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실내 자전거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기존 피트니스센터 멤버십보다 효율적이고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어 100만 명의 가입자를 모았고 연매출 1억 7,000만 달러(약 1,903억 원)를 넘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전자담배 회사 줄은 무려 150억 달러(약 16조 7,535억 원)의 가치로 초기 라운드에 12억 달러(약 1조 3,402억 원)의 투자 유치를 해 화제가 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2015년 사업을 시작한 줄은 지난해에만 매출액이 700% 올라 2억 460만 달러(약 2,425억 원)를 기록했으며, 올해는 이보다 더 큰 매출 증가를 보여 미국 전자담배 시장의 68%를 점유하고 스타트업 가치 순위도 10위권 안에 드는 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역동성은 어디서 나오는가?

좋은 기술과 사람만 있었다면 실리콘밸리가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혁신 수도’의 노릇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보험 자본’은 오늘날 실리콘밸리를 실리콘밸리답게 만드는 피와 같은 존재다. 하지만 이 같은 벤처캐피탈의 지형도 2018년 들어 크게 변하고 있다.

2018년 실리콘밸리 벤처투자 산업의 가장 큰 화두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꼽힌다. 손정의 회장의 비전펀드는 벤처캐피탈뿐만 아니라 글로벌 산업 지형의 변화를 대변한다.
 
지난해 5월 1,000억 달러(약 108조 원) 규모로 조성된 비전펀드는 우버, ARM홀딩스, 엔비디아, 위워크, 플립카트 등 세계 각국에서 모빌리티, 사물인터넷(IoT), 이커머스 등을 이끄는 스타트업에 대규모로 투자하면서 시장을 뒤흔들어 놨다.

스타트업은 거액을 투자받아 인재를 흡수, 시장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상장(IPO)으로 가는 빠른 길을 만들기 때문에 소프트뱅크도 투자금액을 금세 회수하면서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

실제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우버가 2019년 IPO에 성공하게 되면 또 다른 투자 성공 사례를 만들 수 있다.

손 회장의 투자가 주목받는 것은 “기술은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돈(투자금액)이 곧 기술”이라는 명제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벤처캐피탈 등 자본 시장은 소규모 투자를 통해 지분을 획득하고 IPO나 인수·합병으로 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목표였다. 특히 자본과 기술, 비즈니스는 별개로 인식돼 왔다.

손 회장은 자본과 기술, 비즈니스를 하나로 만들고 있다. ‘투자 경영’을 통해 산업을 만들고 기술을 인수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 비전펀드는 우버에 90억 달러를 투자해 최대 주주로 등극했는데, 중국 ‘디디 추싱’, 싱가포르 ‘그랩’, 인도 ‘올라’, 브라질 '99' 등 글로벌 차량호출 서비스 업체에도 투자하면서 차량공유 시장을 사실상 장악했다.

비전펀드와 같은 ‘메가 펀드’ 트렌드는 빠르게 정착하고 있다.

중국 국유기업 자오상쥐(招商局)그룹이 150억 달러(약 16조 원) 규모의 ‘중국 신시대 기술 펀드’를 조성했으며 미국 실리콘밸리 최대 벤처투자사 세콰이어캐피탈도 80억 달러 규모 펀드를 목표로 60억 달러(약 6조 7,000억 원) 규모 자금을 조달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8년 상반기는 투자와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이 모두 활황세를 보였다.

상반기에 1억 달러가 넘는 투자가 94건이 이뤄졌고 AI 회사 사운드하운드 등 42개 회사가 새로 유니콘 기업에 등극했다. 2018년 상반기만으로 벌써 5년 전인 2013년 전체 투자액을 넘어섰다.

VC 투자를 받은 회사들의 투자회수(엑시트) 기간은 다소 길어졌다. 자본 투자 액수 규모가 커지면서 그만큼 시장에서 버틸 수 있는 기간도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올해 들어 가장 중요한 투자 동향 중 하나는 ‘엔젤·시드 투자’, 즉 초기 투자 자본이 늘었다는 점이다.

첫 펀딩을 하는 회사들의 금액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의 수도 늘었다. 지난 2분기 115억 달러 상당의 벤처캐피탈 자금이 초기단계 기업에 투자됐다.

2018년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의 또 다른 특징은 ‘중국 자본’의 유입이 이제는 ‘뉴 노멀’로 인식될 정도로 일반화됐다는 점이다.

실제 시장분석회사 로듐그룹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계 벤처캐피탈의 미국투자는 올해 1~5월 23억 달러(약 2조 5,850억 원)로 이미 역대 최대였던 2015년 수준(24억 3,000만 달러)에 육박했다.

연간 기준 올해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할 것이 유력하다. 이 리포트에 따르면 2000년부터 올해까지 진행된 미국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에서 약 1,300건에 중국 자본이 개입했으며 금액으로도 약 110억 달러(약 12조 4,000억 원)로 추산됐다.

이 중 2014년 이후 발생한 투자가 75% 정도 된다. 중국 자본의 실리콘밸리 주요 투자처로는 정보통신기술(ICT), 의료, 제약, 바이오 등 전통 분야뿐만 아니라 3D프린터, 로봇, AI,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으로 다양화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혁신의 숨겨진 비밀은 ‘노동 환경’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등 실리콘밸리 혁신 기업들은 세계 최고 생산성을 자랑한다.

직원은 5,400명(넷플릭스)~12만 3,000명(애플) 수준에 불과하지만, 글로벌 증시에서 시가 총액 상위권을 독차지하고 있으며 매분기 매출과 이익 모두 두 자릿수 성장하는 등 분기마다 최고 실적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생산성이 월등히 높은 이유는 복지 혜택이 많다거나 ‘노동시간’이 적어서가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 인재에게 고액 연봉과 함께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주는 기업 문화와 제도 때문이다.

‘고연봉’은 높은 생산성의 기본 요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공개한 미국 주요 대기업의 중간연봉 패키지 보고서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페이스북 직원의 지난해 중간연봉은 24만 달러(2억 6,000만 원)에 달하고 구글 직원은 19만 7,000달러(2억 1,000만 원)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간연봉은 전체 직원을 연봉순으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해당하는 사람이 받는 연봉을 뜻하는데 (S&P)500지수에 속한 379개 기업 가운데 페이스북의 연봉 순위는 2위, 구글은 4위였다.

실리콘밸리 기업 전체의 평균 연봉도 12만 달러(1억 3,024만 원)에 달한다. 미국 전체 기업의 평균 연봉(5만 1,970달러)에 비해서도 크게 높다. 높은 성과에 따른 주식·스톡옵션도 상당하다.

하지만 고연봉에 따라 임직원에게 부여되는 책임도 상당히 무겁다. 실리콘밸리 기업 임직원들은 회사를 성공시키기 위해 밤낮없이 프로젝트에 매달리는 것이 보통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직원과 체결하는 노동계약서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업무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이를 지키는 회사와 직원은 많지 않다.

프로젝트 성패와 시간에 따라 주당 70시간 이상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노조가 없고 해고가 자유로운 점도 실리콘밸리 생산성의 특징으로 꼽힌다.

넷플릭스는 실리콘밸리에서도 직원에게 최고 연봉을 줄 뿐만 아니라 최소 6주 휴가를 보장하는 등 자유로운 기업 문화로 유명하지만, 이와 별도로 프로젝트 상황에 따라 가차 없이 해고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실리콘밸리는 기술 변화가 빠르다 보니 500~1,000명 수준의 사업부 전체를 해고하는 사례도 많다.

2013년부터 최근까지 클라우드컴퓨팅, AI가 주류 기술로 정착함에 따라 IBM, HP, 오라클, 시스코, 인텔, 야후 등 전통 강자들은 임직원의 대량 해고를 단행해야 했다.

해고를 당하더라도 사회안전망이 없어 이에 따른 결과는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유연근무가 가능한 것은 미국 노동법상 '시간 외 수당 면제직원(Exempt employees)' 규정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법은 주별로 다른데, 캘리포니아에서는 근로자를 ‘시간 외 수당 근로자’와 ‘시간 외 수당 면제직원’으로 구분하고 있다.

계약직과 단순 업무 종사자들은 시간 외 수당 근로자로 구분된다. 이들의 근무시간은 주 40시간으로, 이를 초과해 근무하면 기존 임금의 1.5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초과수당으로 받는다.

초과근로를 포함한 노동시간은 주 72시간을 넘을 수 없다. 반면 실리콘밸리 임원과 전문직, 세일즈 직군은 시간 외 수당 면제직원으로 노동시간에 대한 제약이 없다.
 
노동시간과 무관하게 회사와 직원 간 연봉계약을 맺는다. 실리콘밸리 직원 상당수는 전문직에 해당돼 근무시간과 관계없이 연봉과 성과급(주식·스톡옵션)을 받는다.

해고가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이 없다는 점도 치열한 경쟁을 유발하는 원인이다. 실제 지난해와 올 1분기까지 인텔, 퀄컴, 오라클, 시스코 등이 대규모 해고를 단행했다.

이 같은 노동 환경 때문에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은 포춘지(Fortune)가 최근 발표한 2018년 ‘일하기 좋은 직장’ 순위 100위권에조차 올라가지 못했다.

실리콘밸리는 ‘노동’의 변화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버, 에어비앤비의 본사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긱 노동자(Gig Worker)로 불리는 주문형 노동자는 2017년에 540만 명에 달했으나 올해(2018년)에는 23% 늘어난 680만 명이 우버, 에어비앤비 등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할 것으로 추산된다.

메리 미커 2018 보고서에 따르면 주문형 노동자가 되기 위해 2014년 이후 1,500만 명 이상이 지원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공식 통계 외에도 각 서비스 사업자가 계약한 노동자는 더 많다. 전자상거래 사이트 엣시(Etsy)에는 200만 명의 판매자가 있으며 세계적인 프리랜서 사이트 업워크(Upwork)에는 1,600만 명이 ‘일’을 제공하기 위해 대기 중이다.


실리콘밸리 혁신의 그늘

2018년, 실리콘밸리의 최대 화두는 AI나 블록체인이 아니다. 바로 기술에 대한 반감과 ‘때리기’를 뜻하는 '테크래시(Tech-lash, Technology+Backlash)'였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는 지난 4월 미국 의회 청문회에 나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저커버그가 연일 사과했던 이유는 2015년 데이터 기업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가 페이스북 이용자 7,100만 명의 개인정보를 부적절하게 이용한 사실이 밝혀진 스캔들 때문이다.

우버도 지난 3월 자체 개발한 자율주행차(2017년식 볼보 XC-90)가 미 애리조나주 템페 시내에서 길을 건너던 여성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한 사고를 내 실험을 중단하고 사과해야 했다.

미래 기술의 총아로 불리는 자율주행차가 사망 사고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브레이크가 없던 자율차 개발 경쟁에 경종을 울린 계기가 됐다.

세계 자동차 시장 판도를 뒤흔들면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는 야심차게 내놓은 보급형 전기차 ‘모델3’가 한때 공급을 맞추지 못하고 현금이 고갈되면서 ‘구설의 아이콘’이 될 위기에 빠졌다.
 
‘모델X’가 폭발 사고를 일으키고 볼트 부식 문제로 고급형 세단인 '모델S' 12만 3,000대를 리콜하면서 위기감이 한층 고조되기도 했다.

또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연소득 11만 7,400 달러(약 1억 3,150만 원)인 가구도 저소득층으로 분류된다는 미국 정부 지표가 나왔을 정도로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큰 위기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살인적인 주택 임대료와 물가, 보험료 등 고정비용 때문에 이 정도 연봉으로도 중산층의 삶을 영유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미 주택도시개발부가 발표한 ‘소득한계 지표’는 실리콘밸리(샌프란시스코 및 베이 지역, 마린카운티 포함) 지역에서는 매우 낮은 수준의 저소득층은 연소득 7만 3,300달러(약 8,200만 원), 극빈층은 연 소득 4만 4,000달러(약 4,930만 원)로 한계선이 설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