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현장속으로 - (주)대일 홍금석 대표
혁신 현장속으로는 기업의 연구소나 부서 등 혁신현장을 찾아가 그들의 열정과 노력을 소개하는 칼럼입니다.
전통먹거리의 세계화를 향한 의미 있는 한걸음
글_ 정라희(자유기고가)
사진_ 한제훈(라운드테이블 이미지컴퍼니)
한국에서 김치는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서양에서 유래한 요즘 음식에 익숙한 세대도 외국에 나가면 김치를 그리워한다.
그만큼 한국인의 미각 속에 각인된 식품이 바로 김치다. 특유의 매운맛과 냄새를 낯설어 하던 외국인들도 점차 김치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주)대일(이하 대일)은 전통 김치의 맛을 세계에 전파하며 김치 종주국의 위상을 지켜나가고자 한다.
김치 종주국의 자부심을 지키다
홍금석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때는 2009년이다. 식품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던 홍 대표가 창업아이템으로 ‘김치’를 택한 것은 우연이었다.
처음에는 생계를 목적으로 창업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김치를 향한 애착이 깊어졌다. 김치 산업의 동향이나 해외 시장에서 김치의 위상 등을 지켜보며 여러 면에서 아쉬움이 생겨났다.
“한국인에게 김치는 없어서는 안 될 밥상 식품입니다. ‘한식의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본연의 맛과 거리가 먼 김치를 수출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오히려 중국이나 일본 등지에서 만든 김치가 더 잘 팔리는 경우도 많고요. 김치 종주국의 위상을 되찾으려면 결국 해법은 ‘전통 김치’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국산 김치는 저가의 중국산 김치에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다. 내수 시장에서도 김치는 주메뉴가 아닌 보조 메뉴로 인식해 많은 식당이 저렴한 중국산 김치를 선호한다.
소비자들도 김치를 ‘당연히 나오는 반찬’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가인 국산 김치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김치 산업은 크게 개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리테일(Retail) 시장과 단체급식에 공급하는 케이터링(Catering) 시장, 식당에 대규모로 공급하는 유통 시장으로 나뉜다.
홍금석 대표는 “리테일 시장은 사실상 5개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한다.
김치 산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분류됐지만, 이미 시장에 진출한 기업에는 사실상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브랜드 인지도가 없는 중소기업이 리테일 시장에 안착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들다고 한다.
다행히 대일은 유통 시장에서 성과를 내면서 케이터링 시장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좁은 내수 시장을 두고 여러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홍 대표는 그 해결책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생각했다.
2013년부터 해외 진출을 준비한 대일은 2015년 공식 수출의 물꼬를 텄다. 당시만 해도 중국의 김치 시장은 개방되기 전이다.
하지만 홍 대표는 하얼빈,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중국 각 지역을 직접 돌아다니며 판로를 개척했다.
국내산 재료로 만든 김치 양념을 한국에서부터 싸 들고 가서 현지 호텔에서 밤새 배추를 절여 시연하는 열성을 보인 덕분에, 중국 현지 백화점에 진출하는 쾌거를 일구었다.
“어떤 분들은 현지인 입맛에 맞는 퓨전 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퓨전 김치는 현지인들이 오히려 더 잘 만들 수 있어요. 우리는 김치의 전통성을 살린 맛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곧 김치 종주국의 위상을 지켜가는 일이고요.”
2017년, 대일은 강원도농업대상 수출유통 부문 대상을 받았다. 홍금석 대표는 이러한 자부심이 대표 개인의 것만이 아니길 바란다.
그래서 대일은 41명의 직원을 모두 정직원으로 채용했다. 지역 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관내 취약계층 46가정에 매월 5kg의 김치를 후원하고 있으며, 매해 연말에는 원주시에 ‘사랑의 김치’ 500박스를 기부하고 있다.
전통의 맛 그대로 수출하기 위해
현재 대일은 중국과 일본, 대만 등 한국과 근거리에 있는 국가에 주로 김치를 수출하고 있다. 이유가 있다.
발효식품인 김치 본연의 맛 그대로 수출하고 싶어서다. 현지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준비한 캐나다에 첫 수출 당시 있었던 쓰라린 경험이 이런 결정을 확고하게 했다.
원거리 수출을 위해 손쉽게 화학 처리를 할수도 있었지만, 홍 대표는 타협하지 않았다.
화학 처리를 하지 않아도 장시간 신선도를 유지해 준다는 멤브레인 필터를 발견하고 이를 포장재에 적용했으나, 멤브레인 필터의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해외 시장 개척 초반에는 미주 시장도 고려했습니다. 그런데 해운으로 물류를 보내는 데 빠르면 15일, 늦으면 45일까지 소요되다 보니 현지에서 유통할 수 있는 기간이 너무 짧았습니다. 중국과 일본, 대만 등지는 길어도 일주일 안에 물류를 보낼 수 있으니 현지에서 생김치 형태로 최소 3주는 판매할 수 있어요. 그렇게 시장 전략을 짜고 해외 시장을 개척해 나갔죠.”
대일의 대표 상품은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치악산 산골김치다. 청정해역으로 알려진 완도와 진도에서 채취한 미역과 다시마를 고아 만든 해초 페이스트를 넣어 생김치 특유의 아삭아삭함이 더욱 오래간다.
총각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섞박지, 백김치 등 고객들의 선택지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김치 레시피를 꾸준히 개발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쉬웠다. 프리미엄 김치로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특화된 김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효 식품으로서 김치의 기능성은 이미 세계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차별화된 제품이 있어야 합니다. 일본 시장에서는 프리미엄 김치에 대한 기대도 크고요.”
특화된 김치 개발을 위한 여정
해법은 우연히 찾아왔다. 2013년 참석한 도쿄 국제식품박람회에서 발효 흑마늘을 주요 생산품으로 하는 경남 남해 소재 이가락흑마늘과 인연이 닿은 것이다.
항암·항산화·원기 강화 등의 효능을 지닌 흑마늘은 프리미엄 제품에 접목하기 적당한 기능성 소재였다.
하지만 이를 김치에 넣었을 때 어떤 맛이 날지는 미지수였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흑마늘이 그리 대중적인 식품은 아니었습니다. 흑마늘 업체 대표와 대화하면서 일본에서는 흑마늘이 대중적인 식품이라는 걸 알게됐습니다. 사실 일본인들이 한국 김치를 선호하면서도 특유의 강한 향을 부담스러워하거든요. 그래서 그 대표에게 부탁해 흑마늘 진액을 받아 테스트를 해봤죠. 그런데 그 결과가 놀라웠습니다. 냉장 보관만 잘하면 3개월이 다 되도록 김치가 부풀지 않더라고요. 맛도 더욱 부드럽고요.”
흑마늘 김치 레시피 개발에 나선 대일은 1년간의 연구 끝에 자신감을 얻고 2014년, 세계 5대 전통시장으로 꼽히는 일본 도쿄 츠키지 수산시장에서 시식회를 열었다.
츠키지 시장에서 판매 중인 한·중·일 3국에서 생산한 김치를 대일의 흑마늘 김치와 나란히 내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다.
“일본인 어린이도 우리 김치를 맛보고 ‘자극적이지 않다’면서 잘 먹더라고요. 그때 가능성을 봤죠.”
그길로 한국에 돌아온 홍 대표는 흑마늘 김치를 특허 출원했다. 한국 특허가 등록되면서 일본에도 특허를 냈다.
10년 전 한 연예인이 흑마늘 김치를 판매한적은 있지만, 흑마늘 김치를 공식적으로 제품화한 것은 대일이 유일하다.
올해 7월에는 흑마늘 김치의 소문을 들은 일본 바이어가 직접 대일을 찾아와 흑마늘 김치의 일본 독점 공급권을 달라고 요청했다. 대일로서는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었다.
흑마늘 김치는 대만 시장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 김치 회사 최초로 대만 TV홈쇼핑에 론칭한 대일은 세 차례의 생방송 중 흑마늘 김치와 총각김치를 완판하는 기록을 세웠다.
덕분에 대만의 홈쇼핑 MD가 먼저 신제품 개발을 제안해 왔다. 대일이 수경재배 중인 새싹인삼을 활용해 인삼 김치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한 것이다.
이에 대일은 상지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있는 발효기업 ‘천지인초’에 의뢰해 새싹인삼을 액상화했다. 더불어 액상화한 새싹인삼의 영양학 분석도 마쳤다.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최종 레시피 개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미 샘플 제품을 대만에 보내 피드백을 받았고요. 특허 출원도 준비 중입니다.”
한국 고유의 맛으로도 얼마든지 세계에 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앞으로도 대일은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특화 김치 개발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