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경영 심리학 - 회의의 기술: 인지심리학으로 풀어보는 Do & Dont’s
자기경영 심리학은 리더십, 인간관계, 커뮤니케이션 등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생각의 원리(심리)’를 다양한 실례들과 함께 다룹니다.
글_ 김경일 교수/센터장(아주대학교 심리학과,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
우리는 늘 회의를 한다. 회의를 줄이자는 회의까지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많은 회의를 한다.
하지만 회의의 시작과 진행 그리고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단지 피상적인 기술들을 많이 보고 들었을 뿐 그 기저에서 본질적으로 작용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배워본 적이 거의 없다.
이 글에서는 회의에 관한 심리적 본질들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언제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하는가의 ‘원리’를 이해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고자 한다.
그렇게 많은 회의를 하는데도 만족스럽고 도움이 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이유가 뭘까? 사전 준비 부족, 진행 기법 미숙 등 노력과 기술적인 측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식적인 요인들 말고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점들은 의외로 매우 많다.
그 숨은 요인들을 간파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을 움직이는 두 종류의 욕구를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욕구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음식, 돈, 명예? 이것은 단지 수단일 뿐이다. 이 수단들을 통해 충족시키려 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는 의외로 단 두 종류다.
중요한 건 이 두 욕구는 수단이 동일하더라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간을 움직이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 두 욕구 중 첫 번째는 접근(Approach) 동기다. 접근 동기는 바라거나 소망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를 의미한다.
둘째는 회피(Avoidance) 동기다.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을 막아내거나 피하고자 하는 욕구를 뜻한다.
그러니 같은 목표를 위해 공부를 해도 그 동기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기말고사 평균 90점을 넘기기 위해 영희와 철수 두 사람 모두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영희는 목표를 달성하면 평소에 가지고 싶은 스마트폰을 부모님이 사주신다고 한 반면, 철수는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 정말로 가기 싫은 극기훈련 프로그램에 참석해야 한다.
그런데 이 차이가 왜 중요한 걸까? 인간이 하는 수많은 일들 중에는 영희의 접근 동기 혹은 철수의 회피 동기 중 어느 하나와 잘 어울리고 나머지 다른 하나와는 상극인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왜일까? 그림 1을 보자.
그림 1을 일명 네이본(Navon) 과제라고 한다. 크게 보면 'H' 그리고 작게 보면 's'가 여러 개 늘어서 있는 형태다.
이런 형태를 매우 짧은 시간(예를 들어, 0.1초 정도) 동안만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이렇게 순간적으로만 보게 되면 사람들은 어렴풋한 이미지만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과제를 잘 수행하면 그때마다 토큰(상금)을 드립니다’라는 사전 지시 후 그림 1을 짧게 제시하고 어떤 글자를 봤는지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H'를 봤다라고 응답한다.
하지만 ‘과제를 잘 수행하지 못하면 기존에 줬던 토큰을 빼앗겠다’라는 사전 지시 후 같은 그림을 보여주고 무엇을 봤는지 질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s'를 여러 개 봤다고 답을 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차이가 일어나는 것일까? 바로 접근과 회피 동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각기 다른 측면에 더 주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처럼 접근 동기를 자극 받은 사람들은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을 본다.
하지만 후자처럼 회피 동기가 강해진 사람들은 분석하고 잘게 쪼개어진 미세한 부분을 본다. 자, 그러니 지금해야 되는 회의의 중요한 목적을 한번 생각해 보자.
폭넓게 대안을 탐색하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 회의에서는 접근 동기를, 실수 없이 정밀함이나 꼼꼼함을 요하는 업무를 위한 회의에서는 회피 동기가 반드시 사전에 강조되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이 일이 잘됐을 때 가질 수 있는 좋은 것들(즉 접근 동기)’이 주로 언급된 회의를 마친 사람들은 사내는 물론이고 회사 밖을 두루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들여다보는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관찰된다. 즉 크게 본다.
하지만 다른 회의 내용들은 모두 동일하지만 ‘이 일이 잘되지 않았을 때 입어야 하는 손해나 불이익들(즉 회피 동기)’이 주로 강조된 회의를 마친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로 조용히 돌아가 별다른 움직임 없이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일을 되돌아보면서 재점검한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회의와 연결시켜 보자.
첫째, 회의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 그 일을 왜 하는가에 대한 강조점이 달라져야 한다.
회의의 목적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일이라면 일의 결과에 따라 가질 수 있는 좋은 것을, 그 목적이 실수하면 안되는 정밀함을 지향한다면 일의 결과에 따라 잃을 수 있거나 감수해야 하는 것들을 각각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 반대로 하면 어떻게 될까? 열심히 회의해 봤자 결과가 좋을 리 없다.
둘째, 공간을 고려해야 한다. 공간도 접근 및 회피 동기와 궁합이 맞는 공간이 따로 있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공간 심리학자 조엔 마이어스-레비(Joan Meyers-Levy) 교수에 의하면 높고 넓은 방에서는 사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일을 매우 잘한다.
반면 천장이 낮고 좁은 공간에서는 반대의 효과와 결과가 관찰됐다. 사람들이 세밀함과 꼼꼼함이 필요한 일을 더 잘하더라는 것이다.01
따라서 “브레인스토밍 회의하러 들어 갑시다”라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
브레인스토밍을 왜 하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기 위해 하는 것 아닌가? 따라서 브레인스토밍 회의를 하러 ‘나갑시다’라고 해야 한다.
셋째,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접근 동기가 강하거나 순간적으로 자극받은 사람들은 미래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회피동기를 지닌 사람들은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춘다.
왜 그렇겠는가? 좋은 것을 가지고자 하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변화의 흐름에 눈길을 돌리기 때문이다. 반면 나쁜 것을 피하고자 하는 사람은 새로운 변화보다는 안정된 상태가 무엇인가를 살핀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미래를 예측하고 전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회의에서는 접근 동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예를 들어 실적이나 성과를 분석하는 회의에 앞서서는 회피동기를 한번씩 건드려 주거나 스스로 가져보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 그에 걸맞은 말과 행동을 하기가 더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잘해서 좋은 것을 가져보자’와 ‘제대로 해서 이런 일만큼은 없게 해보자’, 두 말 모두 우리가 회의에서 수없이 많이 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 두 말을 적재적소에 강조해서 썼는지 돌이켜 생각해보자.
이것 하나를 지키지 않아서 열심히 노력하면서도 무언가 막혀 왔던 것은 아닐까.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의 회의를 돌아보고 본 회의의 기술을 적용해 보도록 하자.
01 Meyers-Levy, J. and R. Zhu, The Influence of Ceiling Height: The Effect of Priming on the Type of Processing People Use,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2007, 34(August), 174-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