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1

01 - 이스라엘 기업가정신에 대한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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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대진 대표 코이스라시드 파트너스


이스라엘 기업가정신을 대변하는 단어 ‘후츠파’는 의미상 ‘깡다구’라는 말로 번역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의 ‘깡다구 기업가정신’은 환경과 상황에 맞춰가기보다는 개선하고 도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깡다구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은 매년 5~10조 원 이상의 자금 회수를 하고 있다.

이러한 ‘깡다구 기업가정신’이 한국에도 필요하다.



“박 대표님, 후츠파가 도대체 무슨 뜻이에요? 내가 어느 신문에서 봤는데 이스라엘 창조경제의 핵심이 후츠파라면서요? 후츠파가 정말 혁신, 창조정신 같은 뜻인가요?”

사실 ‘후츠파’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난 깜짝깜짝 놀란다.

이스라엘에서 히브리어로 사용했던 ‘후츠파’와 한국에서 사용되는 ‘후츠파’의 어감과 뜻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만약 한국 기업 임원이 이스라엘 협력사 임원과 친분을 쌓기 위해 ‘후츠파’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박 대표: 요시, 당신은 정말 후츠파(자신감, 용기)가 많은 사람이네요.

요 시: 네? 뭐라고요?

박 대표: (웃으면서) 정말 후츠파가 많은 사람이라고요.

요 시: 난 당신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듯하네요…. 유감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사용되는 후츠파라는 단어를 우리말에서 찾아 한마디로 표현하면 ‘싸가지’라는 뜻이다.

따라서 한국 기업 대표는 이스라엘 파트너에게 “당신 참 싸가지가 많으시네요”라고 말한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기업 대표는 충분히 기분이 나쁠 수 있다.

괜히 점수 따려고 히브리어 한마디 건넸다가 불편한 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후츠파’는 모두가 버스를 타기 위해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데 천연덕스럽게 끼어드는 사람, 도서관 안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며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는 사람 등 파렴치한 사람에게 사용하는 단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기업가정신과 창조정신에 대해 설명할 때, 의미가 왜곡될 수 있는 ‘후츠파’보다는 ‘깡다구’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해 ‘후츠파’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경우에 맞지 않게 사용하기보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이스라엘 기업가정신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인 ‘깡다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면, 과연 이스라엘의 깡다구 기업가정신은 무엇일까?

이스라엘의 기업가정신을 논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창업자들의 특징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 창업자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정당한 논리 성립’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 소신을 굽히려 하지 않으며, 가끔은 정말 황당할 정도로 체계를 무시하기도 한다.

‘이 정도 이야기했으면 알아먹을 법도 한데’라는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그 상대가 직장 상사이건 정부 관계자, 대통령 할아버지이건 상관없다.

자신이 주장하는 논리보다 더 우수한 논리가 성립되기 전까지는 자신들의 의견에 따라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거나 우기지만은 않는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을 자주 사용해서 상대방을 안정시키면서도, 자신의 의견에는 정당한 논리가 성립된다는 것을 계속 주장한다.

단순히 윽박지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다양한 질문을 상대방에게 수없이 던진다.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함과 논리로 무장한 말솜씨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능력이 있다.

넘지 못할 것 같은 산이라도 언제나 방법이 있음을 인지하면서 사업을 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많은 이스라엘 스타트업 기업가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깡다구 기업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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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을 처음 접하거나 막연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원래 유대인들은 똑똑한 민족 아닌가요?”라는 것이다.

이런 유대 우월주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황당하기 그지없다.

사실 유대인들은 2,000년 동안 나라가 없었기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을 어떤 민족보다 빨리 터득하면서 살아가야 했다.

생존을 위한 생존을 거듭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유대인들의 피할 수 없는 민족적 운명이었다.

역설적으로 이런 역사적 환경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전 세계의 변화를 가장 빨리 이해하고 글로벌 시장의 니즈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유대인들은 ‘하푸크 알 하푸크’라는 접근을 많이 시도하며 역사적 상황에서 생존했다.
 
직역하자면 ‘반대에 대한 반대’라는 뜻으로, 반대 의견이나 상황을 한 번 거꾸로 생각해보자는 뜻이다.

문제들을 다양한 각도로 이리저리 뒤집어 보면서 해결점을 찾아보고, 가장 적절한 상황적 정답을 찾는 방식이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역사적 상황 대처법은 오늘날 이스라엘 창업자들에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랜 기간 축적된 유대인들만의 ‘생존형 깡다구 정신’을 바탕으로 기업가들에게 닥친 위기와 문제들을 하나둘씩 풀어가는 것이 이스라엘 기업가정신의 또 다른 특징이다.

많은 이스라엘 기업가들은 우주의 수많은 행성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아가 매우 강하고 항상 자신감이 넘친다.

역사적으로 대제국을 세웠던 로마, 아랍, 오스만 튀르크, 영국과 다르게 유대 민족은 대제국은커녕 왕국 또는 국가라는 총체적 체제를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다.

안정적인 국가 체제를 유지한 기간이라고 해봤자 성경에 언급된 다윗왕과 솔로몬왕 시대와 70년도 되지 않은 지금의 현대 이스라엘 국가가 전부다. 모두 합산해도 200년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상의 중심은 나’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루살렘 히브루대학에서 사회학과 인류학 교수로 있는 가드야이르(Gad Yair)는 『이스라엘 코드』라는 책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자기중심적 경향은 유대인들의 억압된 역사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나라 없이 다른 민족 사이를 옮겨 다니며 살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피해의식과 방어의식이 자연적으로 생겼다는 것이다.

즉, 급변하는 환경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한 ‘보호본능’이 거만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자신감’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타민족의 억압과 핍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생존하기 위한 방법으로 ‘주변 상황 때문에 신념이 약해지고 타협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라는 신념을 택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개념이 스타트업의 깡다구 기업가 정신과 어떻게 연관되는가?

스타트업이 실패하는 데는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 자금 부족, 방만 경영 등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또 하나의 결정적 이유가 바로 자신감의 결핍이다.

사업 경험이 비교적 부족한 창업자들이 험난하고도 외로운 스타트업의 길을 걷다보면 정신적으로 자주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결국, 초반에 가졌던 불타는 열정이 사라지는 순간, 야생마같이 달릴 것 같았던 스타트업의 질주는 끝난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창업자들은 망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기술이 여전히 세상에 꼭 필요하며 흐름을 주도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버리지 않는다.

‘정말 이런 자신감이 도대체 어떻게 나올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수많은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창업자들 중 자아가 약하거나 신념이 부족해서 망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창업자들은 당당하다.

혹여나 실패할 경우에도 ‘실패 요인을 분석해서 더 나은 솔루션을 만들거나 다른 아이템으로 스타트업을 설립하면 되지 않겠는가’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이스라엘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기업가정신이다.

또한, 실패를 용인하는 이스라엘 사회와 기업 문화 속에서, 사업에 실패했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많은 이스라엘 기업가는 실패할지라도 정신적으로 회복하는 시간이 빠르고, 실패라는 경험을 성공하기 위한 또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비교적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

성공하기 위해서만 기업가정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쓰디쓴 실패를 맛보았을 때 다시 일어서기 위한 건강한 기업가정신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의 깡다구 창업정신은 이스라엘 기업 문화와 정신을 반영하고 있고, 이런 깡다구 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이 매년 5~10조 원 이상의 자금 회수를 한다.

또한, 적어도 다섯 개 이상의 기업이 해외 주식시장에 상장한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스타트업이 태동하고 있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오늘도 밤을 새우는 스타트업들이 많다.

갖은 노력을 다하는 국내 스타트업들이 성공의 짜릿한 맛을 맛보기도 하지만, 평균적으로 10개 중 8~9개는 쓴맛을 본다.

글로벌 스타트업 환경에서 이스라엘과 한국 스타트업의 차이는 깡다구 스타트업이 존재하느냐 하는 근본적인 질문일지도 모른다.

깡다구 정신으로 만들어진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오늘날의 창업국가 이스라엘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지금 한국의 초기 스타트업들에게 필요한 것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깡다구 정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