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현장스케치 02 - MWJ 2018 참관과 혁신기업 탐방을 통해 배운 일본의 저력

글_ 김기혁 대표(에이치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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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지난 6월 20일부터 23일까지 산기협의 “일본 첨단제조산업박람회 참관 및 혁신기업 방문” 프로그램에 참가하였다.

38명의 우리 참관단은 ‘MWJ(Manu-facturing World Japan) 2018’ 관람과 도쿄대 생산기술연구소 방문 및 특별강연, 일본의 대표적인 혁신기업 현장 방문 등을 진행하였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어떤 해외 탐방 프로그램보다 알찬 일정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인정하기 싫은 일이지만 우리나라 경제는 1960년대 이후 일본을 모방하며 급격하게 성장해 왔다.

일본이 지난 20여 년간 장기침체를 겪고, 삼성전자가 일본의 소니를 제치면서 마치 우리나라의 산업경쟁력이 일본을 앞지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장기침체를 버티고 다시 일어나고 있는 일본의 진정한 경쟁력은 장인정신으로 대표되는 제조업의 탄탄한 기술력과 기업문화, 그리고 혁신을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이번 탐방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MWJ 2018(일본 첨단제조산업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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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첨단제조산업박람회는 일본 최대의 국제종합전시장인 도쿄 빅사이트에서 개최되었다.

빅사이트는 오다이바에 위치하고 있으며, 건축면적이 23만㎡에 달한다.

박람회에는 2,400여 개 업체가 출품하였고, 10만여 명에 이르는 관람객이 참가했다고 한다.

대규모 박람회임에도 불구하고 전시관 구성을 기계요소 기술, 가상현실, 제조솔루션, 의료기기 등 첨단제조업 분야를 위한 4개의 전시관으로 나누고 각 전시관마다 카테고리별 Zone을 만들어 운영했기 때문에 원하는 기술 분야의 전시관을 관람하고 상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4개의 전시관 중 기계요소부품 분야의 전시관이 가장 큰 규모로 이루어져 있었다.

혁신적인 정밀 기술 및 로봇 기술 등을 보면서 일본이 왜 제조업의 왕국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전시회에 참가한 기업의 대부분이 일본기업이었고 한국, 중국, 베트남, 태국 등의 국가별 부스가 배정되어 운영되었는데 한국관에는 10여 개 업체가 박람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일본 이외의 전시부스에는 관람객이 상대적으로 적어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박람회를 참관하며 각자의 기술력으로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 있는 일본 제조 산업의 경쟁력에 놀라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었다.

많은 우리 기업들이 이런 선진기술 박람회에 참관하여 자극받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를 권한다.


도쿄대 생산기술연구소 – 김범준 교수 특강 ‘일본 제조업의 영혼! 나노 과학부터 나노 기술까지’

둘째 날 오후에 방문한 도쿄대 생산기술연구소는 일본 최대 규모의 대학 부설연구소로 항공, 우주 분야를 제외한 생산 기술과 관련하여 공학 전반의 연구 및 대학원 중심의 교육활동을 실시하고 있었다.

도쿄대 생산기술연구소의 CIRMM(마이크로 나노기술 연구센터) 연구실 김범준 교수를 모시고 연구개발 중인 나노 기술의 소개와 일본의 기업문화 등에 대해 강의를 듣고, 한·일 간의 경제협력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범준 교수는 MEMS(초소형 정밀기계 기술) 분야를 연구하고 응용하여 발전시킨 나노테크놀로지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연구하고 있는 Micro Needles 기술은 피부에 상처 없이 직접 침투할 수 있는 기술로 주름 개선 및 피부노화 방지 등 화장품 분야에 적용 가능하다.

일본과 한국에서 제품화에 성공하였으며, 나아가 의료용 센서 등의 상용화를 위한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김 교수는 그동안 바이오메디컬 분야 발전의 병목현상이 센서에서 발생했으며, 나노 기술을 활용한 센서 기술개발은 향후 생명공학 분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범준 교수는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달리 일본은 대기업의 시가총액이 전체 시가총액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며, 부품·소재 분야 중소기업 중 약 70%의 기업이 해당품목에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진 ‘Only One 기업’이라고 설명하면서, 탄탄한 중소·중견기업의 존재가 일본을 지탱하고 있는 저력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는 일본의 뿌리 깊은 장인정신에 의한 것으로 한 가지 분야에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개발에 임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대학, 연구기관, 기업을 막론하고 자기분야에서 한 우물만 팔 수 있는 장인문화와 환경이 독보적인 기초기술을 보유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김범준 교수는 설명했다.

또한, 기초기술에 강한 일본과 응용 기술에 강한 한국이 활발한 경제협력을 통해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중국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혁신기업 방문 1 – 닛산자동차 요코하마 공장

셋째 날은 참관단 규모 관계로 두 개 조로 나누어 혁신기업 방문을 진행하였다.
 
그중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도쿄에서 1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요코하마에 위치한 닛산자동차 엔진공장이다.

1933년 닛산자동차 설립과 함께 문을 연 요코하마 공장에는 엔진을 생산하는 공장라인과 역사적인 상징성을 살린 게스트 홀이 있다.

요코하마 공장은 약 537,000㎡의 부지에 약 3,000여 명의 직원들이 엔진유닛(VK, VR, MR, ZD), 모터유닛(EM57, HM34, RM31), 서스펜션 등을 생산하고 있다.

그중 MR용 엔진조립 라인을 처음부터 끝까지 견학했다.

조립라인은 설치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초창기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자동화율은 약 70%정도로 180여 명의 직원이 하루 최대 400대 정도의 엔진을 생산하고 있었다.

엔진조립 라인을 견학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공장 근로자의 편의를 세세한 부분까지 고려해서 최적화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사람이 직접 조립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로봇 팔이 무거운 엔진부품을 쉽게 들어서 옮길 수 있도록 작업자를 도와주고 있었다.
 
여러 가지 모델의 엔진을 혼류생산하고 있는데, 작업자가 조립하는 부품은 각각의 모델에 맞게 엔진이 이동하면서 실시간으로 제공되고 있었다.

이외에도 공장 내 직원들의 아이디어로 개선한 공정들을 전시하는 ‘아이디어 룸’이 있어,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제시하고 수용하는 조직문화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혁신기업 방문 2 – 후지필름 오픈 이노베이션 허브

도쿄 롯본기 내 미드타운에 위치한 오픈 이노베이션 허브는 후지필름의 혁신기술과 제품을 탄생시킨 산실로 2014년에 개관하였다.

후지필름이 보유한 원천기술로 개발한 혁신제품들을 전시하고, 사내 및 외부 기업인들을 초청하여 서로의 기술과 지식을 공유하고 시너지를 모색하기 위한 장소이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카메라 필름을 생산하는 후지필름이 전혀 다른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이곳에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2000년대 들어 디지털 카메라의 급속한 보급으로 인해 큰 위기를 맞게 된 후지필름은 2004년 제2의 창업을 선언하고 혁신을 시작했다.

후지필름이 설명하는 혁신의 핵심은 무작정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진행한 것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기술의 전면 재평가였다.

경쟁력을 갖고 있는 응용 가능한 유망 사업들과 자사가 보유한 기술을 매칭시켜 신규사업 개척을 진행했다.

독보적인 필름과 필름통 제조기술을 응용하여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 내시경용 극미세 렌즈부터 영화촬영용 대형렌즈까지 고밀도 렌즈를 개발했다.

후지필름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RGB(레드-그린-블루) 색상 중 B에 해당하는 ‘블루 레이저 기술’을 의료용 내시경에 응용하여 촬영된 인체정보를 색상을 구분하여 송출함으로써 암 등의 초기발견에 용이한 의료용 화상정보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가장 놀라운 혁신사례는 화장품 시장 및 의료 시장 진출이었다.

후지필름은 기능성 화장품의 주성분인 콜라겐이 사진필름의 주성분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후지필름이 보유한 독보적인 콜라겐 관련 원천기술 및 항산화 기술을 활용하여 노화방지 및 자외선 차단 등에 뛰어난 기능성 화장품을 개발했고, 화장품 시장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콜라겐 가공 기술을 응용한 의료용 재생피부를 개발하여 화상환자 치료에 상용화했다.

이러한 제2의 창업을 계기로 후지필름은 개방적 오픈 이노베이션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또한, 다른 기업들의 오픈 이노베이션 허브 방문을 통한 아이디어 창출 및 협력활동 성사 시스템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혁신기업 방문 3 – DISCO(주) 기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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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에 설립된 DISCO는 8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반도체 제조용 정밀연삭커팅머신 및 정밀가공기계 장비 전문 제조업체이다.

약 4천여 명의 임직원과 일본 및 미국, 유럽, 중국, 한국 등 15개국에 50여개의 거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전 세계 반도체 절삭장비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Only One 기업’이다.

일본 내에서는 근로자들이 일하기 좋은 기업 순위 5위권 내에 항상 진입하며, 우수한 기업문화와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DISCO는 연구개발 조직과 본사의 직원들이 업무를 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수시로 교류할 수 있도록 본사와 연구소 건물을 연계된 구조로 건축하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연구소 건물의 내진 설계가 훨씬 잘되어 있었는데, 이는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새로운 제품을 고객들에게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DISCO만의 독특한 기업문화를 살펴보면 매출액에 대한 목표가 없고 이익률에 대해서만 목표를 설정한다고 한다.

얼마나 많이 판매하느냐 보다는 얼마만큼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 내느냐,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품질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만큼 기술을 중시하고 또 기술력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1997년부터 'DISCO Values'를 제정하여 사고방식, 행동방식 등에 대한 가치관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전 세계 모든 계열사에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Values의 예로 ‘DISCO는 절삭과 연마기술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핵심 기술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풍요롭고 편안한 생활에 이바지한다.’가 있고, 이외에도 200여 개의 Value를 체계화하여 실제 업무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업무방식에 있어서도 직원이 부서 이동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 가고자 하는 부서에서 수락하면 부서 이동이 가능했다.
 
또한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직원들이 자체 화폐(DISCO Will)를 직접 투자할 수 있는 ‘Investment’ Box라는 제도가 있었으며, 보유한 DISCO Will에 따라 보너스를 차등지급하는 인상 깊은 성과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맺음말

이번 일본 연수프로그램은 박람회 참관을 통해 선진 첨단제조 산업 기술의 정보를 눈으로 확인하고, 강연을 통해 첨단기술 및 전략을 논의하며 기업 현장의 방문을 통해 실제 사례들을 체험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외에도 가와사키중공업 로보스테이지, 도야타 메가웹 방문 등 일본의 대표적인 첨단 기술들을 체험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일본 제조 산업의 저력이 장인정신으로 일컬어지는 한 분야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지속적인 투자에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의 중소기업들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사업 확장에 있어서도 관련 분야로 한정하여 진출하며 전문성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성공적으로 장수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구개발 투자를 통한 차별화된 기술개발과 혁신이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한 한국 산업기술진흥협회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