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 성공사례

기술혁신 성공사례 - 현대자동차(주) 박성훈 파트장

기술혁신 성공사례는 기업의 연구책임자 인터뷰를 통해 성공프로젝트를 기술혁신 측면에서 살펴봅니다.

세계 자동변속기 시장을 선도할 ‘전륜 8단 자동변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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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작성_ 남태영 대표(SBI Consulting Korea), 이정선 전문작가(프리랜서)


자동변속기의 개발로 인류의 왼발과 오른손은 자동차 운전으로부터 해방됐다.

오른손이 변속기에서 운전대로 오면서 안전성은 더 높아져, 단순히 운전이 편안해진 것 이상의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단수가 높을수록 가속과 연비가 좋아져 다단화는 자동차 제조사들의 기술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하지만 자동변속기를 직접 만드는 자동차 기업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는 곧 자체 개발·생산한 변속기를 사용한다는 것만으로도 뛰어난 기술력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완성차업계 사상 최초로 최첨단 기술인 전륜 8속 자동변속기 양산 및 개발에 성공하며, 글로벌기업의 위상을 공고히 한 현대자동차의 기술혁신 성공사례를 소개한다.


진화하는 자동변속기

자동차 변속기는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엔진과 더불어 구동계의 핵심 요소다.

변속기는 주행 성능은 물론 승차감 및 연비와 직결되기 때문에, 차를 고르는 소비자에게 중요한 기준이 된다.

변속기는 엔진 동력을 차의 속도에 맞는 회전력으로 바꿔서 바퀴에 전달한다.

동력 전달효율이나 내구성, 제작 용이성은 수동변속기가 월등하게 뛰어나지만 편리함에서 앞선 자동변속기가 시장을 휩쓸고 있다.

1939년 GM에서 처음으로 2단 자동변속기를 개발한 후 수많은 진화를 거듭한 끝에 1980~1990년대 4단 자동변속기가 보편화됐고, 2000년대부터 5단 자동변속기를 거쳐 6단까지 단수가 높아졌다.

예전의 4단 자동변속기와 지금의 자동변속기를 비교해보면 엔진 RPM(Revolutions per Minute·자동차의 분당 엔진 회전수)이 많이 낮아진 것을 알 수 있다.

RPM이 낮다는 것은 엔진이 그만큼 덜 움직인다는 뜻이다.

따라서 연료 사용량이 줄어들고 공해를 덜 배출하며, 엔진 소음이 줄고 수명은 더 길어진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오래전부터 많은 돈을 쏟아 부으며 자동변속기 다단화 개발 경쟁에 박차를 가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연비와 출력이 높은 좋은 엔진을 개발해도, 엔진만으로는 높은 연료효율을 완성할 수 없다.

엔진을 컨트롤하는 변속기도 그에 따라 발전을 거듭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엔진이라도 변속기 성능이 떨어지면 그 엔진은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배기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연료 소비량이 많아진다.

하지만 자동변속기는 주행 조건에 맞춰 엔진 회전수를 더 다양하고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많은 자동차 브랜드들이 자동변속기 다단화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개발비용이 많이 들어가, 자동차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또 다단화에 따라 변속기의 무게도 더 늘어나고, 복잡해진 엔지니어링 때문에 고장이라도 날 경우엔 고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다행히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단점들이 점점 없어지게 됐고, 다단화는 자동차 생산업체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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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의 변속기 단수 경쟁

자동변속기 개발은 1900년대 초반 독일이 시작했지만, 상용화는 1940년대 초 GM이 앞섰다. 초기엔 2단이다가 4단이 주류가 됐다.

1990년대 초 일본과 독일업체가 5단을 개발하면서 경쟁이 시작됐고, 2000년 초 다시 6단이 출시되면서 다단화 경쟁에 불이 붙었다.

그러다 메르세데스-벤츠가 2003년 7단을 최고급 차종에 적용하면서 고급브랜드의 혁신적인 기술로 인식됐다.

기술 및 소재의 발전으로 자동변속기 단수는 계속 올라가 현재 전·후륜 모두 9단 변속기까지 나와 있다.

자동변속기 다단화의 선두주자는 창립 100년을 훌쩍 넘긴 독일의 변속기 전문 제조사 ZF이다.

이 회사는 2013년부터 전륜 9단 자동변속기를 생산해 랜드로버와 지프 체로키, 크라이슬러 등의 자동차 회사에 공급하고 있다.

후륜 9단은 같은 해 메르세데스-벤츠가 ‘E350 블루텍’에 처음 적용했다.

지난해 국내 출시된 ‘E220 블루텍 아방가르드’와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500’ 등에도 같은 변속기가 장착됐다.

이론적으로는 변속 단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기어비 간격이 좁아져 엔진의 최적 운전영역에 근접한 주행이 가능하다.

분당 회전수(RPM)를 낮게 유지하며 효과적인 구동력을 뽑아내고 차의 특성에 맞게 저단과 고단 범위를 조정해 상품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변속 단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부품 수가 증가하고 변속기의 구조가 복잡해지면, 동력전달 효율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어의 개수가 늘어 변속기 무게와 크기가 증가하면, 한정된 크기의 차체에 넣기도 어려워진다.

전륜의 경우 차 앞에 엔진과 같이 좌우 방향으로 변속기가 배치돼 길이에 제한이 있지만, 후륜 변속기는 전후 방향으로 탑재돼 공간적인 제약이 적기 때문에, 후륜보다 전륜 변속기가 기술적으로 더 어렵다.


세계 완성차업체 최초 전륜 8단 자동변속기 개발의 주역

세계 완성차업체들이 자동변속기 성능을 높이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국내 최대 완성 차업체인 현대자동차의 활약은 단연 돋보인다.

지난 2010년 후륜 8단 자동변속기를 개발해 제네시스 등 고급 차에 장착한 데 이어 2015년 말 세계 완성차업체 최초, 변속기 전문 업체 포함 세 번째로 전륜 8단 자동변속기 독자 개발에 성공했다.

그 뒤로 2016년 1월부터 전륜구동 승용 및 RV 차량에 확대 적용 중으로, 기존 전륜 6속 자동 변속기 대비 가속 성능을 높이고 연비까지 크게 끌어올렸다.

또한 기어 단수 폭이 늘어남으로써 더욱 고급스러운 운전을 구현한다.

전륜 8속의 전달 효율은 동급 최고 수준으로 경쟁사 전륜 8, 9단 변속기 대비 최대 4~5% 높다.

우수한 구조 및 각종 신기술 적용으로 동급 세계 최고의 전달 효율을 달성하며, 2017년 IR52 장영실상을 수상했다.

8단 자동 변속기 개발은 세계 자동변속기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럼 지금부터 전륜 8단 자동변속기의 개발 및 사업화 추진 과정을 살펴보고 기술경영의 관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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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개발 성공 요인

(1) 전사적 목표와 전략 공유

보통의 대기업들이 성과를 이뤄내는 원동력은 기술선점 역량과 충분한 자본이다.

하지만 조직이 크다 보니 공동의 목표와 전략을 설정하고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현대자동차의 기술개발 과정은 다른 대기업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전사 전략’을 그 어느 기업보다 잘 공유하고 운영한다.

많은 기업은 전사 전략을 수립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 ‘공유’와 ‘보안’ 사이에서 갈등하고, 효과적인 전략운영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작성한 전략임에도 이를 활용한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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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중요한 기밀 정보(Top Secret)라 공유할 수가 없다’, ‘기밀은 신중하게 보호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전사적 전략 수립을 위한 목표가 되는 제품 혹은 기술적 성능은 마케팅, 개발, 연구 등 각 부문에서 반드시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수행해야 할 사항들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고, 공유된 방향을 지향하면서 연구개발부터 시장 진출까지 통합된 가치 창출 활동을 수행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앞서 언급된 전략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신기술 개발 시 기업 내 각 부문에 전문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기술의 동향을 파악하고 중장기적 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부문, 수익적 측면에서 사업의 타당성을 타진하는 부문, 기술에 대한 선행 연구를 담당하는 부문 등으로 세분화하여 역할을 분담하고, 정기적인 협의체를 통해 의견을 교환하여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있다.

2010년 독자 개발한 후륜 구동(뒷바퀴 굴림) 방식의 8단 자동변속기를 선보였으며, 단계별 목표로 설정된 전륜 구동(앞바퀴 굴림)방식의 8단 자동변속기 역시 전략방향에 맞추어 부문 간 개발 결과를 공유하여 이루어낸 성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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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륜 변속기는 엔진룸에 가로 배치를 하기 때문에 세로 배치하는 후륜에 비해 공간 제약이 커서 더욱 콤팩트한 구조를 고안하는 게 중요하다.

현대자동차는 그동안 축적된 개발 부문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기존 6단 자동변속기와 비슷한 크기면서 3.5㎏을 경량화한 8단 변속기 개발에 성공했다.

(2) 고유의 공정 & 지식 경영

최근 실제 자원이나 인력을 투입하지 않고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상황을 만들어 결과를 예측하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시뮬레이션이라는 방식을 통해 실제 상황을 가상한 점검활동이 많이 사용되고 있고, 소재 개발이나 화학물질 합성 영역에서도 컴퓨터 상 다양한 설정을 통하여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런 일련의 활동을 현업에 적용하기 위해 한동안 ‘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이라는 형식을 빌려 쓰기도 했었다.

방법이야 어떻든 실제 자원을 투입하는 것을 대신하여 훌륭한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정보와 실행 결과가 축적되어야 한다.

바야흐로 정보의 홍수시대에 노하우(Know-how)보다는 노웨어(Knowwhere)를 강조하고, 빅데이터(Big Data)를 활용할 것을 권하고 있지만, 실제 자신들이 수행한 결과를 축적하고 활용할 수만 있다면 연구개발의 성과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통합적인 기술 경영(Integrated Technology Management)을 통해, 자신들의 업무와 조직에 최적화되어 있는 그동안의 수행 결과들을 집적하고 활용한다면, 그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 될 것이다.

실제로 전륜 8단 변속기 개발 과정에서 현대자동차의 가장 큰 도전 과제는 단수가 늘어나면서 무게와 크기가 증가한 변속기를 한정된 공간의 엔진룸 안에 넣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부품 수를 최소화하고, 기존의 변속기보다 가볍고 작게 만들어야만 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자동차는 자체 레이아웃 분석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변속기의 구조에 대한 집중 연구에 들어갔다.

무려 3,391억 개에 이르는 구조를 검토하고 2,013건에 이르는 타사의 특허를 분석했다.

효율, 성능, 특허, 생산성 등을 고려한 1년간의 집중분석을 통해 목표에 부합하는 최종 1개의 구조를 고안해 냈고 그 결과 기존 6단 자동변속기와 비슷한 크기에 3.5kg의 경량화를 실현했다.

뿐만 아니라 관련 특허 143건(해외 76건)을 출원하며 세계 자동변속기 시장을 선도할 핵심 기술을 확보하였다.

(3) 조직 내, 조직 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

기업의 창의성 발현은 조직의 성과뿐만 아니라 개인의 창의성을 자극하기 때문에, 엄청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창의성 발현의 기본바탕은 조직 내 구성원들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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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며 다양한 자극을 받고, 모두가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8단 자동변속기 개발을 성공으로 이끈 하나의 요인 또한, 구성원들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에 있다.

대기업 연구소의 경우 조직 간·부문 간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8단 자동변속기 개발에 참여한 구성원들은 선행 개발자들의 결과를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다음 단계를 수행하는 팀에 공유함으로써 높은 성과를 이루어 냈다.

‘고유의 분석프로그램’이라고 일컬어지는 지식경영의 산물은 선행 개발자들의 성공 및 오류 사례까지 모두 보관하고 있다.

3천억 개 이상의 기존 구조를 시스템상에서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신규 제안이 가능했던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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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단 변속기 개발 이후 8단 자동변속기 개발로 수많은 특허를 취득했을 뿐만 아니라, 축적된 핵심기술들의 지식재산권을 검토하고 있다.

“조직이 크고 자금력이 우수한 대기업에 불가능은 없겠지”하는 등의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들만의 소통문화를 엿볼 수 있다.


성공의 함정(Success trap)은 경계하고 새로운 혁신으로

엔진과 함께 진화해 온 변속기는 친환경차 시대를 맞아 갈림길에 서 있다.

순수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에서 나온 전기로 모터를 돌려 움직이기 때문에 변속기 없이도 차가 움직일 수 있다.

다만 RPM이 보통 1만 2,000까지 올라가 내구나 소음 개선을 위해 감속기, 혹은 2~3단의 저단 변속만이 필요하다.

전기차의 판매 비중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기존의 전통 방식의 변속기 구조만으로는 자동차 업계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현대자동차는 급변하는 자동차 시장에 대비하여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신개념의 변속기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역동적인 연구개발 활동을 통해 지속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고, 전기차 영역에서도 혁신적인 변신과 성공을 이루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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