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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상 과학세상 - 가죽을 동물이 아닌 버섯에서 얻는다?

역발상 과학세상은 역발상으로 우리 삶을 유익하게 만드는 과학기술들을 다양한 실례들과 함께 소개합니다.

글_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있다.

사용하려는 물건이 없거나 문제가 있으면, 그와 비슷한 것으로 대체해서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 중에 꿩 같은 존재를 꼽자면 ‘천연가죽’을 들 수 있다.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질감 때문에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소재지만, 비싼 가격과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동물보호 분위기로 인해 천연 가죽을 사용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천연 가죽인 ‘꿩’을 대신할 수 있는 ‘닭’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가죽보다 더 가죽 같지만, 실제로는 가죽이 아닌 역발상적 개념의 소재가 현재 미국과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선을 보이고 있다.

바로 ‘버섯으로 만든 가죽’이다.


버섯의 균사체를 활용하여 가죽질감 소재 만들어

그동안 천연 가죽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흔히 인조 가죽으로 부르는 합성 피혁이 대표적이다.

부직포와 폴리우레탄을 이용하여 만드는 합성 피혁은 저렴하면서도 손쉽게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합성 피혁은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많은 소재다. 천연 가죽보다 표면 강도가 강하며 부드럽지 않아서 오래 쓰면 표면이 갈라지거나 깨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천연 가죽과는 달리 통풍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서 피부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따라서 소재업계는 천연 가죽의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장점과 합성 피혁의 저렴하면서도 가공이 용이한 장점을 모두 갖춘 새로운 소재를 오랫동안 꿈꿔 왔는데, 최근 개발된 버섯 가죽을 통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버섯 가죽 개발의 선두주자는 미국의 바이오벤처기업인 '볼트스레드(Bolt Threads)'사다.

미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한 댄 위드마이어(Dan Widmaier) 대표가 설립한 이 회사는 거미줄에서 착안한 실크제품인 '마이크로실크(Micro silk);로 유명세를 떨친 벤처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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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가 개발한 버섯 가죽은 마일로(Mylo)라는 브랜드를 가진 소재다.

마일로를 처음 접해본 소비자들은 누군가가 설명해 주지 않으면 버섯으로 만든 가죽이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천연 가죽의 질감과 유연함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만드는 방법을 궁금해 하는 소비자들에게 위드마이어 대표는 “옥수수 줄기를 깔고 그 위에 버섯의 균사체를 배양한 다음, 마무리 공정과 염색 공정을 거치면 천연가죽과 같은 질감을 가진 소재로 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죽처럼 질긴 물성은 온도와 습도를 정확하게 관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데, 균사체가 얽히고설키면서 복잡하게 꼬일수록 가죽의 강도가 증가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균사체(Mycelia)란 백색의 솜털 또는 실오라기처럼 보이는 곰팡이의 몸체를 말한다.

버섯은 곰팡이의 일종이기 때문에 다른 곰팡이들처럼 이런 균사체를 기초로 자라게 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마일로의 제조에 사용되는 균사체는 유전자 조작을 하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동물로 부터 천연 가죽을 얻고자 할 경우 일정 크기로 성장해야 하지만, 균사체는 몇 주만에 성장하게 되므로 천연 가죽보다 생산효율도 더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위드마이어 대표는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목표는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지속가능한 패션(Sustainable Fashion)의 실현’이다.”라고 강조하며 “동물을 죽이지 않고도 가죽처럼 뛰어난 소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균사체를 이용하여 버섯 가죽을 만드는 기업은 독일에도 있다.

뮌헨 소재의 신발제조 기업인 낫투(Nat-2)사와 액세서리 제조업체인 츠벤더(Zvnder)사가 공동으로 개발한 버섯 가죽은 현재 친환경 스니커즈 제작에 활용되고 있다.

친환경의 의미는 스니커즈를 제작하는 데 있어 버섯 가죽 외에 버려진 PET병을 재활용하여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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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가죽은 스니커즈의 외피에만 적용되었고, 버려진 PET병과 코르크, 고무 등을 재활용하여 바닥과 안창을 만들었다는 것이 제조사의 설명이다.

츠벤더의 창립자이자 수석 디자이너인 니나 파버트(Nina Fabert) 대표는 “말굽버섯(Fomes Fomentarius)을 키워 버섯가죽을 만든다.”라고 소개하며, “버섯에서 채취한 균사체를 1년 정도 모아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버섯 가죽은 소가죽처럼 질기고 내구성이 강해 스니커즈 개발에 최적의 소재가 된다.”고 말했다.


버섯의 겉껍질로 천연 가죽과 가장 유사한 질감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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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스레드의 마일로와 낫투·츠벤더의 스니커즈 외피가 버섯 균사체를 바탕으로 한 버섯 가죽으로 만들어졌다면, 이탈리아의 원단업체인 ZGE사가 개발한 버섯 가죽은 버섯의 갓 부분에서 벗겨낸 겉껍질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버섯(Mushroom)과 피부(Skin)의 철자를 조합하여 만든 ‘머스킨(Muskin)’은 이 버섯 가죽의 브랜드다.

소비자들로부터 천연가죽과 가장 유사한 질감을 갖고 있다고 찬사를 받을 정도로 머스킨의 감촉은 천연가죽과 흡사하다.

ZGE의 관계자는 “중국이 원산지인 거인버섯(Giant mushroom)의 갓 부분에서 겉껍질을 추출한 후에 가공하면 마치 코르크 같은 색을 내는 버섯 가죽이 탄생하게 된다.”라고 언급하며 “특히 표면 감촉이 스웨이드(Suede) 가죽 같다는 평가를 많이 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스웨이드 가죽이란 벨벳같이 부드러운 가죽을 의미하는 것으로, 마무리 공정시 가죽의 표면을 긁어서 보풀이 일게 한 부드러운 감촉의 가죽을 가리킨다.

또한 부드러운 촉감 외에도 머스킨은 자연 방수 기능을 갖고 있다. 따라서 방수화 같은 신발을 만드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ZGE의 관계자는 “머스킨은 통기성이 뛰어나며 화학물질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에 무독성인 천연 소재라 할 수 있다.”고 전하며, “신발은 물론 모자나 시계 줄처럼 피부에 직접 접촉하는 패션제품에 사용하면 가장 이상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같이 천연 가죽을 대체할 수 있는 ‘꿩 대신 닭’ 같은 제품이 다양하게 선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일각에서는 아무리 버섯 가죽이 좋아도 천연 가죽만 하겠냐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동물의 생명을 빼앗아야만 만들 수 있는 것이 천연 가죽이라면 아예 근본적으로 대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