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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과학탐구 - 태양에서 발견된 원소로 극저온을 만들다

생활 속 과학탐구는 일상생활 속 물리학, 첨단과학, 과학일반에 대해 살펴봅니다.

글_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헬륨 풍선 1개의 가격은 얼마가 적당할까?

시중에서 판매하는 파티용 헬륨 풍선은 개당 1,500~2,000원에 판매된다.

풍선 50개를 불 수 있는 헬륨가스가 3만 원가량이니, 직접 넣는다 해도 풍선 1개에 600원 꼴이다.

헬륨 풍선의 능력은 혼자 허공에 둥실 떠 있는 게 전부다.

게다가 한 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바람이 빠져 풀썩 주저앉아 버린다. 너무 비싸지 않은가?

그런데 헬륨 가격이 지금보다 1만 배 더 비싸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액화헬륨은 지금도 1리터에 4만 원이나 하는데, 그보다 1만 배는 비싸야 한다니 무슨 근거일까?

주장의 근원은 미국의 물리학자로 199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리처드슨(Robert C. Richardson, 1937~2013)이다.

헬륨은 천연가스에서 추출해 쓰고 있지만 30년 뒤엔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지난 2016년 탄자니아에서 매장량 540억 ft3의 헬륨 가스전이 발견되어 유예기간이 늘어났다. 그러나 사용량도 함께 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만일 지상에서 헬륨을 구할 수 없다면 공기 중에 고작 0.0005% 뿐인 헬륨을 채집해서 사용해야 하는데 그 비용을 따져보면 적정 가격은 지금의 1만 배라는 것이다.

헬륨 고갈이 예상되니 파티용 헬륨 풍선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든가 쉽게 쓸 수 없도록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목소리를 변조하고, 풍선 부는 데나 쓰이는 줄 알았던 헬륨이 그토록 귀한 몸이라니.

대체 어디에 쓰이기에 그럴까?

헬륨(Helium)은 지구가 아닌 태양에서 발견된 원소다.

1868년 프랑스의 천문학자 피에르 장센이 개기일식 때 태양의 분광 스펙트럼에서 새로운 노란 선을 발견하였다.

영국 천문학자 조지프 노먼 로키어도 같은 사실을 확인했고, 여기에 헬륨이란 이름을 붙였다.

헬륨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태양을 뜻하는 헬리오스(Helios)에서 따왔다.

태양의 원소인 헬륨이 지구상에서 확인된 것은 그로부터 27년 뒤인 1895년에 이르러서다.

스코틀랜드 화학자 윌리엄 램지가 우라늄 광석에서 소량의 헬륨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빅뱅 이후 우주에서 가장 먼저 생긴 원소가 수소, 그 다음이 헬륨이다.

빅뱅 이후 38만 년에서 5억 5,000만 년 사이 우주에는 오직 수소와 헬륨만이 존재했다.

수소와 헬륨은 여전히 우주 질량의 99%를 차지한다.

헬륨은 우주에서 수소 다음으로 많으며 대략 24%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를 비추는 태양은 수소와 헬륨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우주 전체로 봤을 때 헬륨은 그리 귀한 원소가 아니다. 그러나 지구에는 드물다.

특히 대기 중에는 0.0005%에 불과하다.

행성이 생성되던 시기에는 지구에 지금보다 헬륨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 상태의 헬륨은 지구 중력에 묶이지 않고 훌훌 날아 우주로 돌아가 버렸다.

풍선이 헬륨을 가둬두지 못하는 것처럼 지구 중력과 대기는 헬륨을 잡아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헬륨은 가볍다. 수소보다는 무겁지만 공기의 주성분인 질소와 산소보다 가벼워 헬륨을 채운 풍선이나 열기구, 비행선을 공중에 띄운다.

또 헬륨은 알려진 모든 원소들 중에서 가장 반응성이 적다. 좀처럼 다른 원소와 섞이지 않는다. 때문에 수소처럼 폭발할 위험도 없다.

값은 비싸도 열기구와 비행선에 수소 대신 헬륨을 채우는 이유다.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헬륨을 사용하지만 심해로 내려가기 위해서도 헬륨을 쓴다.

심해 잠수부들이 사용하는 산소통에 질소를 대체하여 헬륨이 쓰인다. 헬륨은 질소보다 혈액에 대한 용해도가 낮아서 잠수병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1기압 상태의 절대온도 0K(절대온도 단위는 K, -273.15℃)에서 액체로 존재하며, 끓는점이 4.2K(-268.95℃)로 가장 낮은 원소이다.

이 원소는 기체, 액체, 고체가 공존하는 3중점이 없는 유일한 원소이기도 하다.

헬륨은 용접할 때 산소의 접근을 막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된다.

‘영구기체’라 불리던 헬륨은 1908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오네스(Onnes, 1853~1926)에 의해 액체화에 성공했다.

앞서 여러 과학자들의 실패 뒤에 얻은 성과였다. 이 공로로 오네스는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저온에서 기체들은 응축해 액화되는데 헬륨이 액체화되면 산소나 질소, 수소보다 더 낮은 온도에 이를 수 있다.

액체헬륨을 만드는 데 성공함으로써 인간은 우주에서 가장 차가운 물질을 얻게 되었다.

기체를 액체화하는 기술은 오늘날 현대 산업사회를 만들어 낸 동력 중 하나다. 로켓의 연료는 액체산소이고, 천연가스 역시 액체로 만들어야 보관과 운반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든 가장 차가운 물질인 액체헬륨은 어디에 쓰일까?

‘차갑게’ 하는 기술이라면 식품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냉장고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액체헬륨의 차가움은 부엌과는 거리가 있는 곳에서 쓰인다.

액체헬륨은 병원에서 사용하는 진단기기인 MRI와 자기 부상 열차에 사용된다.

이 기기들에 사용되는 강력한 자석들이 낮은 온도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냉각제가 바로 액체헬륨이다(액체헬륨이 없다면 MRI 검사를 받을 수 없다. 기기마다 두 달에 1회 꼴로 액체헬륨을 충전해야 한다.).

화학, 생물학 연구에 쓰이는 고성능 핵자기공명 분광기(NMR, Nuclear Magnetic Resonance Spectroscopy)의 냉각에도 액체헬륨이 사용된다.

스위스 세른(CERN)에 있는 입자가속기(LHC, Large Hadron Collider) 역시 부품들을 냉각시킬 때 액체헬륨을 이용한다.

현대 의학과 과학 연구에 있어서 헬륨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헬륨을 액체로 만드는 일에 과학자들이 몰두한 이유가 뭘까?

액체 상태의 헬륨은 독특한 특성이 있다. 우리는 흔히 고체가 액체보다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한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0도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헬륨은 액체일 때도 고체보다 더 안정적이다. 절대 0도에서 액체 헬륨은 점성이 0인 초유체가 된다.

초유체는 초전도체에서 전류가 값 변화 없이 무한시간 흐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긴 관 속을 흘러도 유속이 변하지 않는다.

헬륨 액체화에 이르러 물리학은 극저온에서 기체들이 독특하게 행동하는 현상을 연구하는 ‘극저온 물리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펼치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MRI와 자기부상 열차를 포함해 오늘날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인공태양 만들기 등의 핵융합 발전은 모두 헬륨이 있어 가능한 연구다.

헬륨의 동위원소인 헬륨-3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이상적인 핵융합 발전의 원료다.

환경 문제가 없는 에너지원을 얻기 위해, 또 우주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에너지원이다.

문제는 헬륨이 지구에서는 찾기 귀하고, 그나마도 수십 년 안에 고갈될 위험에 처해있다는 점이다.

다행인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달에는 태양풍에 실려 날아온 헬륨-3가 수십억 년 동안 차곡차곡 쌓여 있는데, 총 100톤가량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인간이 다시 달에 가야하는 이유 중 하나로 헬륨 채굴이 꼽힌다.

과연 헬륨은 자신들이 지구를 빠져나가 우주로 가듯이 인간들이 지구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줄까?

수년 전부터 각국과 기업, 연구진들이 값비싼 인공위성을 직접 발사하지 않고도 관측용 과학기기와 비행선을 이용해 성층권을 탐사하고 있다.

말하자면 GPS 발신기와 카메라 등의 관측 장비를 실은 커다란 헬륨 풍선을 수십 ㎞ 위 상공으로 띄우는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주에서는 헬륨을 채운 열기구를 타고 상공 32.2㎞까지 올라가 4시간 동안 지구를 감상하는 여행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인간도 헬륨을 이용해 ‘우주 여행’, 정확하게 말하면 ‘성층권 여행’을 하고 있다. 실상 헬륨은 이미 인간을 우주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헬륨은 이글거리는 여름의 태양에서 발견되었으며, 태양을 뜻하는 이름을 가진 원소다.

그 원소에서 우주에서 가장 낮은 온도를 내는 물질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일상 생활 감각으로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273.15℃에서 액체 상태가 유지 된다는 것도 인간의 상식으로는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나 헬륨은 양자물리학 연구와 첨단 과학기기 제작 및 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실험실에서는 헬륨을 사용한 뒤 다시 채집해 재활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 귀한 헬륨이 고갈 위기라니, 과학자들이 가격을 1만 배 올려서 라도 이 원소를 지키려는 마음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