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 재활로봇
▲ 나동욱 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재활의학과
4차 산업혁명의 주요 키워드인 로봇공학의 발전은 특히 재활의학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다른 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기존 재활의료 공급자들은 로봇의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신체 장애로 인하여 활동에 제약이 있고 학교, 직장 등 사회 참여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장애인에게는 로봇 기술이 장애를 극복하게 해줄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선천성 기형, 감염병, 종양 및 신경계, 근골격계의 다양한 질환들, 그리고 교통사고나 추락 등의 외상 등 사람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신체 기능의 저하와 소실을 경험하게 되고 이로 인해 활동에 제약을 받고 사회참여에도 제한을 받는다.
최근 장애인에 대한 인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사실 장애인들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의 복지를 위하여 국가의 의무를 정의한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된 것이 불과 37년 전인 1981년이고, 장애인도 차별없이 건강을 위한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내용을 담은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은 2017년 12월에서야 시행되었다.
이러한 장애인을 치료하고 돕기 위한 재활의학도 의학의 역사에서 볼 때 비교적 최근에 시작된 학문이다.
재활의학은 1920년대에 약물이나 수술로 치료할 수 없는 소아마비 환자와 전상자들의 회복을 돕기 위해 물리요법, 운동요법 등을 적용하면서 시작되었고, 1929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대학병원에 재활의학과가 개설되면서 발전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전쟁 중에 수많은 전상자가 발생하고 열악한 위생상태로 인하여 많은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하면서 이들에 대한 치료대책이 시급하게 되었다.
이를 위한 해외 선교단체들의 지원이 시작되면서 1954년 세브란스 병원에 소아마비 진료소가 개설되었고 사회적으로 사업의 중요성을 인정받게 되어 1959년에 소아재활원이 준공되었다.
또한, 전쟁으로 수족을 잃은 수많은 절단자들의 재활을 위하여 당시 주한미1군단 장병들이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기독교 세계봉사회의 주관으로 1953년 세브란스 병원에 절단자재활클리닉을 설치하고 재활사업을 추진하여 1963년에 절단자재활센터를 신축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나라 재활의학의 역사는 1971년 대한재활의학회가 창립되면서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초기의 재활의학은 기초의학적 지식에 바탕을 둔 직관적 타당성과 의료인의 임상적 경험에 의존하던 의료였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이 현대의학을 대표하는 패러다임으로 떠오르면서 재활의학에서도 질환 및 증상에 따라 다양한 치료의 조합을 적용하고 임상연구를 통해 효과가 입증된 재활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게 인식됐다.
이때부터 재활치료 효과를 증명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임상시험 및 그 결과 보고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객관적 임상시험 결과에 기반한 보다 과학적인 재활의학으로 발전하였다.
21세기에 재활의학 분야에서도 경직치료를 위한 보툴리눔 독소 주사치료의 도입, 줄기세포 치료 연구, 자기장을 이용한 뇌자극 치료 등이 도입되면서 장애인의 소실된 신체기능을 최대한 회복시키기 위한 다양한 치료법이 많이 발전했지만, 이러한 생물학적 의학발전의 수혜를 타 의학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보통신 기술을 기반으로 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발달로 대표되는 4차 산업의 다양한 공학 기술들 중 로봇공학, 3D 프린팅, 사물인터넷(IoT) 등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이를 재활의학 분야에 적용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3D프린팅은 숙련된 기술자의 손에 의존하던 보조기의 제작을 3D 스캐너와 적층가공 기술의 발전을 기반으로 보다 쉽고 정밀하게 개별 장애인의 요구에 맞는 다양한 보조기를 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다양한 착용형 센서가 개발되고 재활치료 장비가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진단 및 치료의 정보를 축적하게 됨으로써 장애인들의 치료 및 생활환경으로부터 유용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려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수집된 빅데이터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분석을 통해 각 개인에게 가장 적절한 질병 예방법과 재활치료방법을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첨단 기술들 중에서도 로봇공학의 발전과 재활에 대한 적용은 재활의학 및 의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로봇 기술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재활 의료에 적용되고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사람 손에 의존하던 재활치료를 로봇이 대신 제공하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신경과학 연구들은 손상된 뇌와 척수기능이 반복된 재활치료를 통해 그 기능을 일정 부분 회복할 수 있음을 증명해 왔다.
이를 위한 기능적 재활훈련은 치료사가 제공하는 적당한 보조와 가이드를 바탕으로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기능을 회복하게 되는데, 대부분 물리치료사와 작업치료사의 손과 경험에 의존하므로 치료의 질적 표준화가 어렵고 치료 제공 시간이 제한되는 문제가 있다.
최근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는 로봇재활치료 장비는 보다 정밀하고 객관화, 표준화된 방법으로 장애인에게 장시간 반복적인 훈련을 제공하여 질병이나 사고 후 기능회복을 최대화해 줄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마비된 사지의 재활치료 효과를 최대화하려면 어렵고 도전적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은(Challenging but, not disappointing) 정도의 난이도로 훈련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마비된 팔다리에 외골격 형태로 로봇을 고정시키고 미리 프로그램된 움직임을 반복적으로 훈련시키고, 환자가 스스로 움직이려는 힘을 정밀하게 측정하여 재활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보조를 제공하는 기능을 가진 로봇재활 장비들이 개발되어 적용되고 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재활치료를 제공하는 로봇은 아니지만 재활치료를 받는 환자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따라다니면서 재활훈련 중에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도록 균형을 잃지 않게 보조해 주는 로봇도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로봇은 환자의 훈련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안전을 담보해 주기 때문에 환자가 보다 도전적인 과제를 시행할 수 있게 해주어 재활치료의 효과를 최대화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로봇재활치료에는 아직 해결해야 할 한계점들이 있다.
우선 로봇재활치료가 치료사에 의해 시행되는 치료보다 조금 더 효율적으로 또는 조금 더 빨리 환자의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음은 알려져 있지만, 현재 제공되는 로봇재활치료는 사람이 시행하는 치료를 모방하여 로봇이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종적인 치료효과에서는 아직 치료사의 치료를 능가하는 결과까지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현재 사물인터넷(IoT)을 기반으로 각 장비에서 측정되는 환자의 평가 및 치료 정보를 클라우드에 축적시키고 인공지능으로 분석하여, 이를 바탕으로 각 환자의 기능회복에 가장 적합한 재활치료를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향후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사람이 제공할 수 없는 새로운 방법의 치료가 개발되고, 로봇에 의하여 보다 정밀하게 제공될 수 있다면 소실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재활치료의 효과도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아직은 치료장비의 비싼 가격과 복잡하고 까다로운 인허가 과정 등이 로봇재활치료 보급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하지만 매년 기능이 향상된 로봇재활 장비들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출시되고 있으며, 정부에서도 재활로봇 시장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인허가 과정을 재정비하고 있기 때문에 점차 상황이 개선되어 나갈것으로 기대된다.
또 한 가지는 의료제도적인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 의료보험과 모든 의료기관의 의료보험 당연 지정제가 실시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치료도 국가에서 그 행위를 인정해 주고 수가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시행할 수 없다.
또한 의료행위에 대하여 매우 낮은 저수가 체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전문치료사의 높은 인건비를 인정해 주는 다른 선진국들에서는 로봇재활치료가 치료사가 시행하는 재활치료보다 경제성이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저수가에 기인한 낮은 인건비 문제로 오랜 전문교육을 통해 양성된 전문인력인 치료사가 시행하는 재활치료가 로봇재활 치료보다 더 저렴한 모순된 현실이다.
따라서 의료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치료사의 치료보다 상대적으로 값비싼 로봇재활치료에 대하여 의료보험 수가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국내 로봇 기술 수준에도 불구하고 국내 재활로봇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로봇 기술의 적용 분야는 로봇 기술을 바탕으로 신체기능을 보조하여 증진하는 것이다.
첨단 재활치료가 발전함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남은 신체장애로 인한 사회적 기능저하는 필연적이며, 마비로 인한 이동능력의 저하는 이러한 사회적 기능저하의 주요 원인이다.
보고에 따르면 인구의 약 13~14%는 어느정도의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고령으로 인한 근력약화와 이로 인한 이동능력의 저하는 최근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7년에 이미 65세 이상이 인구의 14%를 초과하는 고령사회에 진입한 바 있으며 7~8년 후에는 65세 이상이 인구의 20%를 초과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16년 기준 인구의 1/4 이상이 교통약자이며 고령자가 그 중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고령자들과 중추신경계, 말초신경계, 근육 질환 등으로 인한 장애인들의 보행기능을 향상하기 위해 현재 하지관절에 적용하는 다양한 보조기들과 지팡이, 목발 등 다양한 보행 보조 도구들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보조기들은 소재의 특성과 구조의 수동적 힘을 사용하여 기능을 보조하는 한계 때문에 사용 대상이 한정적이고 착용시 기능향상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여기에 발전된 로봇공학 기술을 적용시켜 능동적 보조를 제공함으로써 장애를 최소화시켜 주는 몸에 착용하는 형태의 로봇 보조기가 개발, 소개되고 있어 장애인들과 노약자들의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재활의학은 초기부터 다학제적 팀 접근법(Multidisciplinary team approach)을 강조해 왔다.
이는 다방면의 전문가들, 즉 재활의학과 의사, 재활전문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심리치료사, 의지보조기사, 사회사업사 등이 잘 조직되고, 상호 조화로운 팀을 이루어 장애인이 가진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해 주어야 함을 의미한다.
앞에서 기술한 로봇 기술의 발전을 포함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공학기술들의 발전을 바탕으로 재활 분야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공학자들이 재활의 다학제적 팀의 핵심 멤버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주 가까운 미래에 재활치료를 위한 로봇장비는 각종 질병, 사고의 초기 발생단계부터 집중적인 재활치료를 제공하고 회복기, 유지기 동안에도 지속적인 재활치료를 제공하게 될 것이며, 치료를 시행하는 동안에 축적되는 각 환자에 대한 객관적이고 방대한 자료는 클라우드를 통해 빅데이터를 이루고 인공지능에 의해 분석되어 개별환자에게 최적의 재활치료 솔루션을 제공하는 정밀재활의학(Precision rehabilitation medicine)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또한 착용형 로봇보조기의 발전은 장애인뿐 아니라 노약자의 이동능력 저하를 개선하고 그들의 사회적 기능을 향상하여 가정, 학교, 직장으로 복귀시키는 데 혁신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