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술경영인인터뷰

삼성엔지니어링(주) 정찬설 부사장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에서는 기술경영인과의 대담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기술경영인의 역할과 리더십 등을 알아봅니다.

마디를 만들며 성장하는 대나무처럼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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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작성_ 윤지환 교수(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기술경영학과), 이정선 전문작가(프리랜서)


“까맣게 불탄 자리에 푸른 싹들이 돋아나는 중입니다.”

강동첨단업무단지에 위치한 삼성엔지니어링(주)(이하 삼성엔지니어링) 본사에서 만난 정찬설 부사장은 삼성엔지니어링에 역사적인 날이 오고 있다는 말로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1970년 설립된 이후 50년 가까이 화공플랜트 부문에 주력해온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 몇 년간 힘든 시기를 보냈다.

2014년 하반기에는 국제유가 급락으로 화공플랜트 발주가 줄어들기 시작해 일감을 확보하는 데 고전했다.

2010년 초반 해외에서 수주한 프로젝트에서 대규모 손실을 보기도 했다.

악화되고 있는 경영 환경을 개선하고 화공플랜트 일감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에서 조직 정비와 핵심 역량 구축 등 고강도 혁신활동을 이어갔다.

그 결과 지난해부터 화공사업에서 괄목할 만한 수주 실적으로 안정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며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5월 부사장 승진 이후 안정적인 프로젝트 수행에 매진하고 있는 정찬설 부사장을 만나 위기를 통해 더욱 단단해 지고 성숙해지는 삶과 경영의 지혜를 배워본다.


실패와 좌절을 딛고 삼성맨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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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IL 온산공장


육상 플랜트 건설로 국가의 기간 산업을 대표하는 삼성엔지니어링은 1970년 창립 이래 화공, 발전, 산업, 환경 설비를 주축으로 전 세계 플랜트 건설과 산업화를 주도해왔다.

국내와 해외를 통틀어 1,00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한 프로젝트에서만 1억 2천만 시간 이상의 무사고 무재해 인시(人時, Man hour)를 달성한 것으로 상징되는 안전 관리의 경험을 축적했다.

또한 풍부한 경험과 축적된 기술력, 우수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사업영역 또한 확대해 나가고 있다.

전통적인 강점 분야인 화공플랜트를 주축으로 산업·환경 플랜트 중심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현재는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가전제품 공장 건설을 맡고 있는 IT/전자 플랜트 부문, 타이어·시멘트·섬유·제지 등 전통 산업 제조공장의 산업 플랜트 부문, 정수·폐수처리·상/하수 처리를 맡고 있는 환경 플랜트 부문, 그리고 바이오 의약품·합성 의약품 등 제약 플랜트 부문 등 산업·환경 분야에서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 성장에 따른 도시화와 원유·가스·전력 등에 대한 에너지 수요 증대, 그리고 친환경 기술에 대한 니즈 부상, 셰일 가스 채굴 기술 발달, 국제 정세 및 협약 등에 따라 지속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86년 삼성엔지니어링에 입사한 정찬설 부사장은 입사 33년 차의 정통 삼성맨으로 회사의 발전과 성장에 이바지해 왔다.

입사 후 공정팀장, Upstream 본부장을 거쳐 현재 ENG’G본부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해 5월에는 기술 전문성 및 관리 역량을 인정받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정찬설 부사장이 기술경영인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다소 의외였다.

1959년생인 그는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국어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시인이자 소아과 의사인 마종기 선생을 동경하는 문학소년이었다.

고3 수험생활을 시작하며 의과대학으로 진학을 꿈꾸었지만 입시에 실패하며 생애 첫 좌절을 경험했다.

“의대 입시에 실패한 후 재도전을 위해 지리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교 동창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한양대학교에 원서를 접수했으니 바로 와서 시험을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4년 후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로 석사 유학을 떠나 컴퓨터 프로그램 시뮬레이션을 주전공했다.

석사를 졸업한 후에는 화학 합성 실험을 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뉴욕 폴리텍 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하지만 박사과정 자격시험 결과 한 과목에서 과락이 나오면서 재정지원이 끊겨 결국 박사학위 취득에 실패하고 말았다.

“박사학위 취득이 좌절되고 한참을 방황했습니다. 뉴욕 5번가에 있는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 계단에 앉아서 막막한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불안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고민 끝에 유학생활은 더 이상 내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곧바로 귀국하여 삼성엔지니어링에 취직했습니다.”

비록 박사학위의 꿈은 좌절되었지만 미국에서의 유학생활은 실보다 득이 많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컴퓨터 컨트롤 시스템을 주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해 삼성엔지니어링에 입사할 수 있었으며,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에까지 이르렀으니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

1986년 5월 삼성엔지니어링에 입사한 정찬설 부사장은 자신을 받아준 회사에 감사함을 느끼고 그에 보답하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한다.

“신입사원 시절 열심히 일하고 먹는 밥맛이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배고픈 유학시절과 비교하면 무척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열정과 헌신으로 쌓은 보람과 인정

입사 후 첫 번째 업무는 기술연구소의 신설부서인 기술개발부에서 시작했다.

당시 컴퓨터 CPU 80286의 등장과 관련 장비들이 변경되면서 이들을 구현할 복잡한 프로그램들이 서로 얽혀 고객사가 요구하는 플랜트를 다 짓고 나서도 여러 시설과 장비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빈번히 발생했다.

지금이야 EPC(Engineering, Procurement, and Construction) 업(業)에 컴퓨터 컨트롤 시스템이 보편화 되어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것을 다루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재는 흔치 않았다.

정찬설 부사장은 유학시절 배운 학문을 토대로 컴퓨터 컨트롤 시스템을 구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진했다.

“플랜트 운영 프로그램 최적화를 위해 누구보다 먼저 출근하고 누구보다 늦게 퇴근했습니다. 새벽같이 출근해 밤 10시를 넘어서야 퇴근을 하니 사무실 문을 열고 닫는 게 온전히 저의 임무일 정도로 일에 미쳐 있었죠. 그 결과 그동안 산적한 문제들이 해결되면서 회사의 인정을 받아 특진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그러나 승승장구할 것 같은 그의 회사생활에도 시련이 찾아왔는데, 바로 과장 진급에 고배를 마신 것이다.

당장은 일할 의욕을 상실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음을 깨달았다.

“누구나 그렇듯이 저 역시 고난과 실패로 좌절을 겪은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인생의 힘들고 어려운 경험들은 대나무의 마디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중간중간 마디가 생김으로써 휘지 않고 곧게 위로 자라는 대나무처럼 우리의 인생도 때론 성장을 멈추고 기다리면서 힘을 모으고 그 힘으로 성장하는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만일 제가 실패의 경험 없이 이 자리에 왔다면 좌절과 아픔을 겪는 후배들에게 어떻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넬 수 있겠어요.”

실패도 값진 자산이라는 마음으로 심기일전하여 맡은 바 업무에 매진했다. 그리고 고려대학교 화학공학과 박사과정을 밟으며 주경야독 생활을 시작했다.

“서른 살이 넘은 나이에 회사를 다니며 공부하기란 정말 쉽지 않더군요. 굉장히 열심히 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주말도 없이 학교에 나가 공부했습니다.”

그의 연구 과제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학문적, 산업적인 관심이 컸던 Computer Advanced Control System이었다.

공정을 관리하는 Process Modeling을 넘어 문제가 될 소지를 예측해서 이를 예방하는 프로그램인 Predictive Control 시스템으로 이론을 현장에 접목시키기 위해 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과거 미국 유학에서 좌절한 경험을 잊지 않고 연구에 매진한 결과는 알찬 결실로 나타났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박사과정 자격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고, 3개의 논문이 해외 유명 저널에 소개되는 등 높은 학업적 성과를 보이며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해외 신규 시장 개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로는 업무에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해오던 컨트롤 업무를 그만두고 신규 사업을 수주하는 업무를 맡으며 두각을 드러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삼성엔지니어링은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에 강점을 보이고 있었는데 정유 플랜트 분야로 새롭게 진출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주로 기술 연구소 업무를 담당하던 정 부사장은 차장 시절 삼성엔지니어링 사상 최초의 정유 프로젝트에 리드 엔지니어로 참여하게 됐다. 이때 또 한 번 큰 인생공부를 했다.

“인도 국영회사와 손잡고 인도의 정유 플랜트 건설현장업무를 수행하게 됐는데, 기존 조직에 새 사람이 들어가 신사업을 추진하려니 그 저항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세상 어느 곳에도 내 자리를 마련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조직은 없구나. 그러니 내가 비집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조직에 들어가 새로운 일을 하다 보면 그 조직에 정착하기까지 힘든 시기를 겪기 마련이며, 그럴때일수록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정 부사장은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2년 동안 저녁 9시 이전에는 퇴근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공정 프로세스 디자인과 컴퓨터 컨트롤 프로그램 디자인은 물론 복잡한 파이프라인 설계까지 도맡아 수행했다.

또한 유학시절 쌓은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수적으로 강세인 인도 엔지니어들과의 미팅도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어떤 난관이라도 뚫고 돌진하는 저돌적이고 끈기 있는 그의 모습에 발주처의 호평이 이어지면서 회사 임원진으로부터 두터운 신임도 얻었다.

“발주처 관계자들이 항상 ‘닥터 정’ 하면서 저만 찾았어요. 그러다 보니 임원들이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고, 상도 주며 인정해 주시더군요.”

이후 원천 기술, 기본설계, 기술개발 기획, LNG 플랜트 등 새로운 사업을 지속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진취적인 모습을 인정받으며 엔지니어링 회사의 꽃이라 불리는 공정팀장이 됐다.

2010년 본부장으로 진급한 후에는 많은 해외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미국, 인도, 태국 법인 등 여러 해외 법인 설립 운영 및 설립에 주도적으로 기여했다.

선두에서 바람막이를 해주며 기차를 끌어주는 기관차에 비유되는 직책에 맞게 사명감을 가지고 매사에 큰 성과를 창출하던 때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미국 법인 발령이 떨어졌던 것이다.

“맡고 있던 조직의 업무가 안정을 찾고 있던 시기라 혈혈단신 미국으로 가자니 상실감이 무척 컸습니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에도 무너지지 않는 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해 나갔다.

미국 법인 바로 옆에 숙소를 구한 후 눈만 뜨면 엑슨 모빌(Exxon Mobil), 쉐브론 필립스(Chevron Phillips) 등 그동안 접근조차 힘들었던 거대 회사들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밤새 준비한 PT자료를 들고 몇 번이고 찾아가 삼성엔지니어링의 고객이 되어 달라고 매달렸다.

그 절실했던 시간들을 보내며 그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사자와 하이에나 같은 글로벌 강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해외 시장에서 우리는 한 마리의 임팔라(솟과의 초식성 포유류)에 불과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국내의 임팔라 무리에서 더 나은 임팔라가 되려고 노력해 왔을 뿐 정글 같은 해외시장에 나가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어떻게 하면 비즈니스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밤낮으로 고민하고 발버둥 쳤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던 그때 정 부사장이 기울인 모든 노력들은 삼성엔지니어링의 오늘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먹거리를 창출하기 위한 발판이 되었다.

미국의 화학기업인 라이온델바젤(Lyondell-Basell) 같은 폴리머 기반의 세계 1위 원천 기술과 설계역량을 가진 회사들과 손잡고 글로벌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 계기가 됐다.

또한 한국과 일본의 많은 경쟁업체들이 언어와 일하는 문화의 차이를 이유로 인도시장과 법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과 달리 미국 등 글로벌 강자들이 인도를 적극 이용하는 데 착안하여 삼성엔지니어링이 인도 법인의 저비용 구조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큰 성공을 이루는 데 일조했다.

“미국 법인에 근무할 당시에는 너무나 힘든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의 경험들이 다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었습니다. 모든 고난과 시련들이 대나무의 마디마디가 되어 제 자신과 회사가 함께 성장하는 소중한 기회가 된 것입니다.”


변화와 혁신을 통해 미래 변화 주도

삼성엔지니어링이 영위하는 EPC 사업은 기술력 기반의 인재들이 상호 소통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비즈니스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재들이 공학 기술을 활용한 설계(Engineering), 조달(Procurement), 시공(Construction) 과정을 통해 구조물과 기기 장치에 대한 유기적인 프로세스를 구성하고 제품 생산 기능을 가진 플랜트를 완성하는 종합 서비스업이다.

EPC 프로젝트들은 경험의 축적이 자산이 되는 경험의 비즈니스이자, 다양한 인재와 기술력이 핵심 경쟁력인 비즈니스, 그리고 국제화 역량과 더불어 현지 고객의 니즈를 반영하는 Glocalization에 집중해야 하는 비즈니스다.

국내 업계의 면면을 살펴보면, 불과 1990년까지만 해도 국내 플랜트 엔지니어링 회사들은 원천 기술과 설계 역량이 부족해 주로 하청을 받아 상세 설계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그동안 축적된 플랜트 건설 경험과 자본을 바탕으로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설계도면에 완벽을 기하는 핵심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플랜트를 짓는 응용 기술과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국내 시장과 일부 동남아 시장에 강한 회사들이었다.

지속적인 글로벌 시장확대를 꾀하던 삼성엔지니어링은 국내 시장과 동남아시아 시장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2010년을 전후해 미국, 중동 등의 대형 프로젝트도 수주하기 시작했다.

“국내나 동남아 시장에서의 하면 된다라는 생각과 사람 간의 관계를 토대로 일을 마무리 짓던 관행대로 대형 프로젝트들도 일단 수주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잘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미국이나 중동에서는 법적으로나 시스템적으로 매사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거죠.”

결국 2012년 들어 회사 사정이 급격히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용감하게 개척한 미국과 중동의 고객사들은 납기에 맞춰 완벽에 가까운 설계도면을 공사업체에게 넘길 것을 요구했고, 납기 시점을 조금이라도 넘길 경우에는 파견 나온 많은 업체 직원들의 인건비까지 요구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짧은 기간에 쫓겨 설계도면을 제출하다 보니 설계의 완성도 및 공사의 품질이 떨어져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정 보완하는 재작업(Rework)이 불가피했는데 그때마다 많은 비용이 발생한 것이다.

“정말이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돈을 벌지 못하는 암흑기였죠.”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위기는 기회와 함께 온다’라는 말처럼 설계 역량의 원천기술 확보와 대규모 프로젝트 관리 역량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

“기초 설계에 대한 시스템이 확립되지 못하면 다른 응용기술들이나 현장 맞춤형 관행들은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중동의 사우디아람코(Saudi Aramco) 같은 회사들은 철저하고 꼼꼼하여 기존의 미국이나 일본의 강자들도 함부로 수주 경쟁에 뛰어들지 못하는 발주처들입니다. 영국이나 미국의 플루어(Fluor)나 벡텔(Bechtel) 같은 전통 있는 기존 엔지니어링 강자들의 인재들이 PMC(Project Management Company) 역할을 하며 발주처로의 주문과 공정을 체계적으로 관리만 하는 업체를 운영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설계 역량과 대규모 프로젝트 관리 역량없이 욕심만으로 무리한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법적인 책임, 노하우 부족에서 따른 엄청난 비용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삼성엔지니어링은 이러한 위기의 경험을 새롭게 혁신하는 계기로 삼았다.

미래를 위한 비전을 새롭게 수립하고 설계 역량과 관리 분야의 전문성 확보를 위한 시스템에 투자하는 등 조직을 새롭게 재정비하고 있다.

그 결과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관리 역량을 구축하여 국내 다른 경쟁사들이 관리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꺼리던 인도법인을 적극 이용하기 시작했고, 설계역량 구축에 힘을 쏟아 롯데의 미국 석유화학플랜트 프로젝트를 수주, 순조롭게 진행 중에 있다.

2년 전에는 말레이시아 국영사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해 설계 역량을 바탕으로 안정되고 성공적인 프로젝트 수행을 입증했다.

또, 2017년에는 태국의 국영업체로부터 에틸렌 플랜트 프로젝트를 다수 수주했고, 2018년 들어서는 중동의 오만,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등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해 안정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새싹이 나무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리더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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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찬설 부사장이 서울대학교 명사 초청 특강에서 학생들에게 강연하고 있다(2018).


플랜트 엔지니어링업은 사람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정찬설 부사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학교를 직접 찾아가 학생들에게 회사의 비전을 알리고, 인생을 걸고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단언컨대 지금 엄청난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까맣게 타버린 들판에 새싹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역량 있는 후배들을 큰 나무로 키워 내도록 기다려 주고 응원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자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산업을 일구는 각종 플랜트를 건설하는 EPC사업은 국가 사업이라는 점에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삼성엔지니어링의 고객사들은 주로 여러 국가의 현재와 미래 산업 성장을 담당하는 국영 업체들이다.

“EPC 사업은 나라의 산업 발전은 물론 운명과 궤를 같이하는 사업입니다. 실제 1970년 미국 러머스(Lummus)와 대한민국 정부가 함께 울산 공업단지에 설립한 코리아엔지니어링이 삼성엔지니어링의 전신입니다. 그 후 삼성엔지니어링은 우리나라 산업의 발전과 운명을 같이해 왔죠. 이제는 국내 임팔라에 머물러 있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해외 사자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역량과 의식이 있는 청년들이 우리와 미래를 함께 하기를 희망합니다.”

정찬설 부사장은 경험과 시간이 더해지며 점차 축적되는 설계 역량과 원천 기술, 그리고 대규모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능력의 토대 위에 한국인의 근면 성실함이 더해진다면 세계 최강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회사와 국가의 밝은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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