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무비 & 사이언스 - 화산과 지진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것

무비 & 사이언스는 영화 속의 상상력이 실제 현실에서 이루어진 과학기술들에 대해 살펴봅니다.


글_ 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
사진 참조_ 네이버 영화


화산이 갑자기 휴양도시 하나를 순식간에 집어 삼켰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 이야기는 서기 79년 고대 로마의 휴양도시 폼페이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다.

그리고 이를 소재로 한 영화가 < 폼페이: 최후의 날(Pompeii, 2014) >이다.

마찬가지로 < 볼케이노(Volcano, 1997) >와 < 단테스피크(Dante’s Peak, 1997) >, 지진을 소재로 한 < 샌 안드레아스(San Andreas, 2015) >나 < 대지진(After Shock, 2010) > 등도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소재로 했거나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들이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주인공은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도 벅차다. 그렇다면 화산과 지진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거대한 자연과 나약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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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 폼페이: 최후의 날(Pompeii, 2014) >의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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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 볼케이노(Volcano, 1997) >의 스틸컷


화산이 폭발하자 평온한 도시가 한 순간에 지옥으로 변해 버리고 사람들은 오로지 자기 살기에 바쁘다.

< 폼페이 >에 묘사 된 장면들은 폼페이 유적을 기초로 한 것이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 화산재 속에 갇혀 버린 폼페이는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은 나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하다.

하지만 화산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제사를 지내거나 재물을 바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는 과거와 무엇이 달라졌을까?

물론 첨단과학의 시대라고 한들 슈퍼맨처럼 산의 일부를 잘라 분화구 입구를 막을 능력은 없다.

그렇다고 폼페이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는다.

< 볼케이노 >와 < 단테스피크 >를 보면 화산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은 분명 < 폼페이 >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 볼케이노 >는 대도시 LA에서 용암이 분출했지만 우왕 좌왕 대피하는 데 급급한 인간 군상의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재해대책반 로크 반장(토미 리 존스 분)은 지질학자의 도움을 받아 용암과 싸울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지만 결국 그들은 용암의 흐름을 바꿔 도시를 구한다.

< 단테스피크 >에서도 화산학자들은 화산폭발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영화들에서 인간은 더 이상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과학의 힘으로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진을 예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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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 대지진(After Shock, 2010) >의 스틸컷


< 대지진 >은 20세기 최대 참사라고 불리는 중국의 당산지진을 소재로 한 영화다.

단 한 번의 짧은 진동으로 수십만 명이 매몰된다.

하지만 화산과 달리 지진으로 인해 건물더미에 갇힌 사람들은 신속하게 구조하면 살릴 수 있다.

그래서 절망의 현장에서도 가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구조대의 모습을 지진 현장에서는 볼 수 있다.

< 샌 안드레아스 >에서 구조대원 게인즈(드웨인 존슨 분)는 사상 초유의 거대한 지진 앞에서도 홀로 아내와 딸을 구해내는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다.

구조대의 노력으로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해내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구조하러 갈 것이 아니라 지진이 발생할 것을 미리 알려 줄 수는 없었을까 하는 것이다.

지진예보가 적중한 예로 1975년 중국의 하이청 지진을 꼽을 수 있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 당국에서 사전에 대피명령을 내려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물의 이상행동과 급격한지하수위 변화 등 지진이 발생할 전조 현상을 관찰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고 진짜로 지진이 발생했다.

하지만 1년 후인 1976년 탕산 지진에서는 아무런 대피명령도 내리지 못했고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조현상을 토대로 지진을 예보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사실 성공적으로 예보했다고 알려진 하이청 지진도 정확한 과학적 근거보다는 당국자의 느낌(?) 대로 대피명령을 내린 운 좋은 사례일 뿐이다.

하이청과 대비되는 지진이 2009년 이탈리아 라퀼라에서 발생했다.

이때 과학자와 공무원들이 주민들을 안심시키는 바람에 주민들은 아무런 경고도 받지 못했다.

이 지진으로 인해 309명의 사상자와 12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이탈리아 검찰은 과학자와 공무원들을 기소하였다.

이 재판을 두고 과학계에서는 반발했고, 대법원에서도 과학자들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공무원은 지진의 피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우리를 지켜주는 것들

라퀼라 지진에서 과학자의 책임을 묻지 못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과학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지진을 예보할 기술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지진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언제 발생할지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나무젓가락을 잡고 힘을 조금씩 증가시키면 언젠가는 부러질 것이다.
 
젓가락은 부러지기 전에 휘어지고 조금씩 소리도 나지만 그렇다고 정확하게 언제 부러질지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지진의 전조 현상을 관찰한다고 해서 정확한 예측은 어렵다. 그렇다고 지진 예측을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비선형 과학 분야인 일기예보를 보자.

아직도 일기예보는 비아냥거림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1세기 전에 비하면 놀랄 만큼 정확도를 높였다.

이제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지진 예보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는 < 코어(The Core, 2003) >에서처럼 땅속을 마음대로 뚫고 들어갈 방법을 찾지 못했지만 시추 기술이 향상되면 땅속에서 더 많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화산 폭발이나 지진을 좀 더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현재로서는 인간을 대신해 분화구 가까이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로봇이나 지진 관측소를 더 많이 세워 전조 현상을 빨리 감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수밖에 없다.

즉 라돈가스나 전자기장의 교란, 오존 농도의 상승, 지하수위 변화 등 다양한 예측 지표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화산이나 지진의 예측 정확도를 조금씩 높이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정확도를 향상시켜 나가는 것이 동물이나 예언가의 예지능력을 믿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인 방법이다.

언젠가는 일기예보처럼 화산 폭발이나 지진에 대해서도 예측 불가능한 것을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갖게 될 것이다.

비록 그때까지는 화산 폭발 직전에 경보를 알리고, P파의 발생을 감지해 지진발생을 알리는 경보가 우리를 지켜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