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조황희 원장

디지털 전환 시대, 중소기업 R&D 역량 강화
 

1.png

▲ 조황희 원장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기술 변화와 성장 방식이 변화하는 시대

오늘날 기술 변화의 속도, 경제의 불확실성, 사회의 복잡성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혁신적이고 와해적인 기술혁신 축적 때문이다.

특히, 로보틱스, 유전자공학, 인공지능, IoT 센서,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머신러닝 등과 같은 요소 기술들이 이런 변화의 중심에 있다.

기술의 변화가 생산요소나 생산방식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적층제조기술(3D 프린팅)은 제조 단계의 절삭·연삭 공정의 원가를 영(0)에 수렴하도록 하고, 맞춤형 생산기술은 이종 제품에 따른 공정 전환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가치사슬을 변화시킨다.

이로 인해 제조업의 부가가치가 생산자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이동한다.

ICT 기술 발전과 글로벌화가 기업들에게 노동과 지대, 원재료 등과 같은 전통적인 투입 요소 비중은 줄어들게 하였지만, 새로운 투입 요소인 지식에 대한 의존성과 중요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글로벌화에 따른 경쟁 심화, 경기 불확실성 증대, 유연생산 방식 도입에

따른 조직 내에서 규모의 경제효과가 적어졌다는 점에서 대기업이 누리던 장점이 해소되고 있다.

연구개발 집약도가 높은 산업의 경우,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연구개발 생산성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있기 때문에 와해적인 혁신에 중소기업이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다.


정부 재원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의 연구개발과
와해적인 혁신 부족


우리나라 총 연구개발비 69조 4,055억 원 가운데 기업체가 사용한 연구개발비 비중은 약 78%로 연구개발 수행 주체로 볼 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 10년간 기업의 연구개발비는 꾸준히 성장해 왔으며, 중소기업의 연구개발비도 최근 10년간 2배가 넘게 성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중소기업 스스로의 연구개발 투자활동은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그 근거로서 우선, 중소기업의 연구개발비 총 규모가 삼성전자 한 기업의 연구개발비와 맞먹는다.

2016년 영리법인 627천 개 가운데 중소기업 비중은 99.0%이다.01 반면 총 연구개발비에서 중소기업의 비중은 23.9%이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비 구조는 연구개발비 집중도 기준 상위 10대 기업이 전체 연구개발비의 44.3%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연구개발비는 대기업의 투자규모에 집중되어 있다.

둘째, 중소기업 연구개발비에서 정부 및 공공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낙후성 극복을 위해 R&D 직접 지원을 통한 기업 성장을 지원해왔다.

중소벤처기업부(구 중소기업청) 개청(1996년) 당시 R&D 지원 규모는 70억 원으로 2016년 9,563억 원까지 급격히 성장하였으며, 범부처 중소기업 R&D지원에 대한 제도화(KOSBIR)를 통해 2016년 2조 703억 원을 지원했다.

한국은 250명 미만의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연구개발비 지원이 56.8%로 미국 11.4%, 일본 14.5%, 프랑스 24.8%, 영국 25.2%와 비교하여 상당히 높다.

셋째, 기업의 연구개발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고는 하지만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시도 대비 제품화 성공이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한다는 점이다.

기술개발 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중소기업기술통계조사에 따르면 중소제조업의 제품화 성공률(기술개발 시도 건수 대비 제품화 성공 건수의 비중)이 2016년 31.3%까지 하락하였다.

또한 한국의 기업혁신조사상에서도 지난 3년간 중소제조업의 기술혁신 수행기업 비중은 39% 수준에 불과하다.

앞서 와해적 혁신에 중소기업이 경쟁우위를 갖는다는 이론은 한국경제에서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중소기업 연구개발 수행 방식과 정부의 지원이
지향해야 할 방향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이 오히려 시장의 역동성(Dynamics)을 저해한다는 의견과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만병통치약(One-size-fits-all)과 같은 정책은 없을지라도 현 단계에서 정부의 중소기업의 연구개발 지원 방향은 다음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첫째, 산학연 간 협력 생태계를 강화해야 한다. 시장 와해적인 기술혁신이 자유경쟁에서만 파생된 것이 아니라 공공(대학과 연구소)이 직접 모험 자금을 투자해서 파생된 사례를 주목해 본다면, 기업 자체의 연구개발도 중요하지만 대학, 연구기관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한다.

둘째, 사업화 전환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식이 상업적으로 가치 있고, 니즈에 기반한 성과로 전환되도록 사업화하는 것이 혁신과 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기술사업화 능력은 스타트업이나 대기업을 막론하고 어려운 과제이다.

연구 성과가 사업화 기회, 나아가 경제적 성장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기술을 상업화 기회로 전환하는 능력을 지닌 인재의 양성이 필요하며, 과학자들을 창업자, 회사와 지속적으로 접촉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정부가 혁신 제품의 적극적 소비자로 나서야 한다. 정부는 혁신적인 기업의 신제품에 대해 선도적인 소비자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시장을 형성하고, 시장 내 신규진입 기업에 대한 유인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조달 금액의 일정 비율을 혁신 제품에 할당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는데 보다 더 적극적인 소비자 역할이 필요하다.

넷째, 혁신경제 역시 성장의 혜택이 일부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이를 확산시키는 것 또한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이다.

R&D를 한 번도 수행한 경험이 없는 기존 기업, 자본이 부족한 창업가 개인 등 국가연구개발 프로그램에 참여가 어려운 기업과 인재가 혁신역량을 갖출 수 있는 지원 역시도 정부의 역할이다.
 


01 2016년 영리법인 기업(627천 개)의 규모별 비중(통계청, 2016년 영리법인 기업체 행정통계): 소기업 89.2%, 중기업 9.8%, 중견기업 0.6%, 상호출자기업 0.2%, 기타 대기업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