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역발상 과학세상 - 적조, 역발상 전략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역발상 과학세상은 역발상으로 우리 삶을 유익하게 만드는 과학기술들을 다양한 실례들과 함께 소개합니다.

글_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


‘이이제이(以夷伐夷)’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오랑캐는 오랑캐로 무찌른다는 뜻으로서, 적이 되는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또 다른 세력을 이용한다는 의미다.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조직이 수고를 하고 희생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이이제이’라는 역발상적 전략을 활용하면 수고와 희생 없이도 적을 제거할 수 있다.

이같은 전략은 비단 전쟁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나 일상생활 전반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최근 들어 수산업 분야의 골칫거리인 적조(赤潮)를 이 역발상 전략으로 퇴치하는 기술이 상용화를 앞두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조류의 일종인 적조를 또 다른 조류로 퇴치하는 기술
 

17.png


온도가 올라가며 초여름과 같은 날씨를 보이는 이 맘 때가 되면 양식 어업에 종사하는 어부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하기 마련이다.

여름철의 불청객인 적조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하여 수온이 상승하면서 적조는 매년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이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 어부들의 마음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되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바로 조류(潮類)의 일종인 적조를 또 다른 조류로 퇴치하는 기술이다.

‘과연 조류의 한 종류인 적조를 또 다른 조류로 퇴치하는 것이 가능할까’라고 의문이 든다면, 전염병 예방을 위해 접종하는 백신(Vaccine)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살펴보면 금방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백신은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되는 병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약품으로서, 이제는 어린 아이들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약품의 원료가 바로 같은 바이러스라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 사례로는 과거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던 전염병인 천연두를 꼽을 수 있다.

세계 최초의 백신이기도 한 천연두 백신은 영국의 의학자인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천연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이용하여 만들었다.

적조를 퇴치하는 방법도 천연두 백신을 만드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적조 퇴치 기술을 개발한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의 정해진 교수팀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적조를 유발하는 조류를 다른 조류로 물리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규조류 먹이의 농도를 최적화하는 것이 관건
 

18.png

19.png


적조는 육지와 인접한 바다에 플랑크톤이 풍부해졌을 때 주로 발생한다.

플랑크톤이 많아지게 되면 이들을 먹고 사는 유해성 조류들도 따라서 증가하게 되는데, 이때 갈색을 띤 유해성 조류들이 많아지면서 바닷물이 붉게 보이기 때문에 ‘적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적조 주의보가 발령되면 일반적으로 바다에 황토를 뿌린다. 황토가 조류의 증식을 막는 데 일정 부분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법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강한 햇볕으로 25도 이상의 수온이 일정 기간 동안 유지되면 적조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게 된다.

적조 증가가 문제인 이유는 이들이 발생한 바다가 어패류의 무덤이 된다는 점 때문이다. 편모류 같은 적조를 유발하는 조류들이 어패류의 아가미를 막아버려 질식을 시키므로, 적조가 나타나면 불과 몇 시간 만에 양식 중인 어패류들이 폐사하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조류가 다 어패류를 죽이는 것은 아니다. 적조의 원인이 되는 조류는 크게 ‘무해 조류’와 ‘유해 조류’로 구분되는데, 무해 조류로는 규조류와 남조류 등이 꼽힌다. 이들은 어패류의 먹이가 되는 유익한 조류들이다.

반면에 문제가 되는 유해 조류로는 편모류가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와편모류에 속하는 '코클로디늄(Cochlodinium)'은 강한 독소와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어서 어패류에 가장 심각한 피해를 끼친다.

와편모류가 이처럼 유해성이 강한 조류로 진화한 이유에 대해 해양학자들은 “염색체수가 인간보다 5배 이상 많은 250개고, DNA 염기수도 2,900억 개로서 30억 개인 인간보다 100배가량 더 많다”라고 밝히며 “이 같은 엄청난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다양하게 분화되면서,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불사조’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적조를 유발하는 조류 가운데 와편모류는 독성 물질을 뿜고 물고기의 아가미에 달라붙어 폐사시키는 등 각종 피해를 일으키지만, 규조류의 경우는 무해하며 물고기의 먹이도 될 수 있어 증식해도 문제가 없다는 점이 실험을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따라서 무해 조류를 인위적으로 증식하여 유해 조류를 억제할 수 있다면, 적조 피해를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정 교수와 연구진이 주장하는 역발상 기술의 골자다.

특히 와편모류는 하루에 1~2회 분열하는 데 비해 규조류는 1~4회 분열하는 등 증식 속도가 더 빨라서, 와편모류의 증식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규조류가 증식할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할 수 있다면, 양식장 어류가 대량 폐사되는 사태를 막을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정 교수는 “적조로 인해 어패류가 죽는 가장 큰 이유는 용존 산소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와편모류가 아가미를 막아 호흡을 할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며 “육지생물로 비유하자면 공기 중에 산소가 모자라 죽는 것이 아니라, 코를 막아버려 호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죽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비유했다.

물론 상용화로 가는 데 있어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규조류 증식에 필요한 먹이인 질소나 인 같은 성분들을 어느 정도의 농도까지 높여야 하는지를 설정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규조류가 대량 증식하고 와편모류가 위축될 수 있는 최적의 영양물질 배출 농도를 파악할 수 있다면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처럼 과학자들의 헌신적 노력과 역발상적 전략으로 적조 퇴치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고 자율주행 자동차까지 개발되는 첨단 시대에 인류가 이 조그만 생물을 쫓아내지 못해 쩔쩔맨다는 사실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만큼 자연의 신비로움을 이겨내기에는 아직 과학의 힘이 부족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앞으로 인류의 과학기술이 이 경이로운 대자연과 어떻게 조화를 잘 이루며, 어디까지 발전해 갈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