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 중국 혁신도시의 미래, 선전시
▲ 김홍원 전문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1970년대 인구 30만 명 남짓의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던 선전(深圳)시는 40년이 흐른 지금, 인구 천만 명이 넘는 첨단기술기업이 즐비한 도시로 성장했다.
선전시는 과거로부터 축적된 탄탄한 ICT 생산 네트워크를 특징으로 하는 지역혁신체계를 구축하여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견주는 전 세계 하드웨어 혁신의 성지(聖地)로 변모하였다.
선전시 경제성장의 주요 요인, 첨단기술산업의 발전
최근 선전시는 경제규모 면에서 명실공히 베이징(北京)시, 상하이(上海)시에 이어 중국 3대 도시 반열에 올라섰다.
2017년 선전시의 1인당 지역 내 총생산(GRDP)은 미화로 환산 시 2만 7천 달러에 달한다.
3만 달러 진입을 눈앞에 두고도 8.8%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여 거침없는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표 1).
선전시의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요인 중 첨단기술 산업의 발전이 두드러진다(그림 1).
선전시의 첨단기술산업은 2000년 후반 급속히 성장하였고, 2014년 처음 공업 부가가치 대비 첨단기술산업 부가가치의 비중이 60%를 초과하였다.
이를 통해 첨단기술산업 중심의 산업 구조로 점차 지역 경제가 재편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7년 선전시 첨단기술산업의 부가가치는 5,302억 위안으로 전체 공업 부가가치의 66%를 차지한다.
특히 첨단기술산업 중에서도 ICT 산업이 가장 큰 비중을 점유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첨단기술산업 발전의 토대가 되는 R&D 투자와 특허권 취득도 높은 수준이다.
2016년 선전시 전체 R&D 투자는 842억 9,700만 위안으로 전체 GRDP의 4.1%(R&D 집약도)에 달한다.
선전시 R&D 집약도는 중국 내에서는 베이징 다음으로 높으며, OECD 국가 중 R&D 집약도가 가장 높은 대한민국, 이스라엘과 유사한 수준이다.
2016년 선전시의 특허 등록 건수는 약 7만 5천 건으로01 2000년 대비 약 30배 증가했다. 특허 침투도를 가늠할 수 있는 인구 만 명당 특허건수는 만 명당 63건으로 약 12배 증가했다.
국제 PCT 출원의 경우 선전시가 중국 전체의 약 50%를 차지하여, 그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지속적인 신생 혁신기업의 등장
선전시의 과거 첨단기술산업 발전과 활발한 R&D 투자는 화웨이(Huawei), ZTE 등 소수 기업에 의해 창출된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중국 3대 인터넷 기업으로 아시아 시가 총액 1위로 성장한 텐센트(Tencent), 전 세계 전기차 1위 기업 BYD에 이어 2000년대 이후에도 새로운 혁신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해 선전시 첨단기술산업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그림 2).
특히 선전시 신생 기업은 과거 축적된 탄탄한 ICT 생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ICT 하드웨어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CES2018 참가기업 중 선전시 기업이 전체 중국기업의 약 1/3인 500여 개에 달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특히 혁신기업 BGI, SuperD, Royole, KuangChi, DJI를 눈여겨볼만하다.
세계적인 유전자 분석 기업 BGI와 3D 기술 관련 중국 최대 특허 보유 기업인 SuperD는 베이징에서 창업 후 2007년 본사를 선전시로 이전하였다.
이들 기업은 선전시의 자유로운 연구환경, 우수한 생산 네트워크,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을 이전 이유로 꼽았다.
한편 Royole, Kuang-Chi, DJI는 각각 스탠 포드대, 듀크대, 홍콩과기대 출신의 우수한 연구개발 능력을 겸비한 인재들이 창업한 기업이다.
과거, 해외 유학파 또는 다국적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고급인재들이 귀국하여 창업하는 곳은 주로 베이징 또는 상하이였다. 그러나 근래 들어 선전시에 창업하는 유학생들이 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글로벌 선도 기업을 추격하기에 바빴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선점하는 기업이 없는 분야에 처음부터 진입해 연구개발에 힘쓰며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례로 2012년 설립된 Royole은 세계 최초로 두께 0.01㎜의 초박형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개발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설립 5년 만에 기업가치 200억 위안을 넘어섰다.
2015년 양산체제 구축을 시작해 2018년 연내,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선전시 지역혁신체제의 구축
이러한 혁신기업의 지속적인 등장과 이로 인한 산업구조의 변화는 지역의 내재된 제도적 환경, 거버넌스, 연구기관, 기업들 간에 혁신을 촉진시키는 이른바 지역혁신체계 구축을 반증한다(그림 3).
특히 선전시 가장 큰 경쟁우위인 생산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정부 주도 하에 자문 기구, 대학 및 연구기관, 지역 네트워크, 기업 간에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선전시 내 규모의 생산공장은 일찍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여 없으나, 전자부품 시장인 화치앙베이(华强北)가 주변 도시와 연계된 생산 네트워크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1980년대 전자제품 가공수출기지에 불과했던 화치앙베이 일대에 1990년대 주변 제조공장에 부품을 공급하기 위한 마켓이 형성되었다.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산자이(짝퉁) 유통으로 이름난 곳이 바로 선전이다. 그러나 현재 주변 도시의 IT 부품 생산업체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전자부품 생산과 조달의 허브가 되었다.
화치앙베이가 현재와 같은 생산 네트워크를 형성한 데에는 글로벌 다국적 기업의 하청 생산을 통한 기술 축적, 유연한 외주 생산체제와 기업문화, 정부의 규제완화 등 복합적인 요인이 결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선전시 정부는 일찍이 1996년 연구자와 기업가를 중심으로 과학기술 전문가 위원회를 창설하여 정책수립 및 사업 추진과 관련하여 전문성과 실효성을 높였다.
또한 2012년, 과학기술과 경제 무역을 1개 부문에서 관장하던 기존의 체제를 개편하여 과학기술 및 첨단기술산업을 전담하는 과학기술혁신위원회(科技创新委员会)를 발족하였다.
이는 중국 국내 첫 과학기술혁신 주관 부서로, 선전시는 여타 지역보다 정책 추진 측면에서 앞선 행보를 보였다.
현재 과학기술혁신위원회는 IT, 바이오 및 생명과학, 소재 및 에너지 등 첨단기술산업 부서별 조직을 운영하고 있으며, 분야별 발전 정책 수립, 첨단기술기업 인증, 연구개발 지원업무를 주관하고 있다.
이외에도 2012년 과학기술혁신위원회 산하기관인 과학 금융 서비스센터(科技金融服务中心)의 주도로 과학기술금융연맹이 창설되었다.
이 연맹에는 은행, 증권사, 벤처투자사 등 200여 개의 금융기관이 속해있고, 과학기술 투자에 필요한 자본을 결집시켜 정부 정책에 조력하고 있다.
선전시 정부는 과학계열 중국 최고의 국책연구기관인 중국과학원(中国科学院), 이공계열 최고 명문대인 칭화대(清华大学) 등과 공동으로 연구기관을 설립하여 지역 내 부족한 연구역량을 확충했다.
선전시의 연구기관은 특히 연구기관 또는 대학의 성격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한 운영체제를 도입해 기술사업화에 특화된 프로젝트를 중점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신생 혁신기업, 연구기관, 창업 지원 기관 간에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협력 관계도 형성되고 있다.
일례로 2013년 SuperD가 주축이 되어 칭화대학선전연구원(清华大学深圳研究院), CSOT 등 연구기관 및 기업으로 구성된 3D 디스플레이 산업연맹이 출범되었다.
또한 SuperD는 지자체 산하의 창업 지원 기관 등과 함께 3D 디스플레이 표준 연맹을 조직하여 일련의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해외의 여러 미디어에서 선전시를 중국의 실리콘밸리에 비유하고 있는 만큼, 선진시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그간 우리 기업들은 주로 중국을 생산기지로 혹은 거대한 소비시장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중국은 나날이 급변하고 있으며,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전환되어야 할 때이다.
선전시의 경험과 사례를 적극 검토하고 우리나라에 적용할만한 것이 무엇인지, 선전시의 혁신 인프라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혁신정책, 기업문화, 창업 생태계 구축 등 다방면에 걸친 동향 파악과 심도 있는 분석이 요구된다.
이번 특별기획을 통해 선전시의 변화를 목도하고 우리나라의 혁신성장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01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