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 우리 기업의 선전시 혁신인프라 활용 사례
▲ 이준희 대표이사
더알파랩스
HW 스타트업에게 프로토타입은 무엇보다 중요한 무기이다.
그러나 개발비라는 높은 허들을 넘어서야만 한다. 때문에 전 세계 수많은 HW 스타트업들이 이 허들의 높이를 낮추기 위해 중국 선전을 주목하고 있다.
더알파랩스는 어떻게 이 시기를 선전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는지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더알파랩스는 2014년 대한민국에서 창업한 하드웨어(HW) 기술 스타트업으로 2016년 2월부터 약 4개월간 중국 선전에 머물며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HAX)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
비록 2년의 시간이 지난 이야기지만 당시의 경험을 통해 한국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이 중국에서 어떻게 제품을 개발하고 비즈니스를 발전시켜 갔는지 또 그 과정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공유하고자 한다.
더알파랩스의 창업과정
더알파랩스는 증강현실(AR) 스마트글래스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으로 초기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HW를 개발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샘플 제작에만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들어가는 광학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때문에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기까지의 허들이 높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처음에는 어디에서 개발자금을 마련하고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시작은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그렇듯 온갖 대회와 정부지원 사업을 통해 비용이 마련될 때마다 부품을 하나씩 개발해 나갔고, 스타트업이라는 작은 울타리 내에서도 더 작은 하드웨어라는 그룹에 있다보니 참여하는 행사마다 낯익은 얼굴이 늘어갔다.
그렇게 생긴 작은 네트워크를 통해 운 좋게도 네이버에서 초기 투자를 받아 본격적인 시제품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
중국 선전과 액셀러레이터
2015년 겨울, 네이버에서 받은 투자금으로는 기술의 콘셉트 정도만 보여줄 수 있는 수준의 시제품을 만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일반인에게 시연이 가능하고 투자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품 형태에 가까운 시제품에 대해 고민이 깊어갈 때쯤 다시 한번 운이 따랐다.
12월 크리스마스 연휴 즈음 ‘타이드 인스티튜트’의 고산 대표님에게서 HAX에 한번 신청해보라는 연락이 왔다.
HAX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 SOSV가 운영하는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 중 하나로 전 세계에서 모집한 HW 스타트업을 중국 선전의 인프라를 활용하여 육성하는 미국의 Techstar와 더불어 세계적인 HW 전문 액셀러레이터 중 하나이다.
그렇게 몇 번의 인터뷰를 거쳐 2016년 2월 설날, 중국 선전으로 향하며 선전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선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단연 속도였다.
HAX가 위치한 화창베이(华强北)역은 그야말로 IC 소자의 천국이었다.
사무실에서 5분만 걸어가면 갈 수 있는 전자상가에서 온갖 IC 소자 및 부품들을 편의점에서 과자 사듯이 쉽게 살 수 있고 조금 더 난이도 있는 것들은 Aliexpress와 Alibaba를 통해서 하루 이틀 만에 받아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이러한 서플라이 체인과 더불어 하드웨어 프로토타이핑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목업과 PCB 작업이다. 선전 곳곳에는 이러한 작업들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곳들이 많이 있다.
당시 안경프레임 목업을 SLA 방식의 3D 프린팅으로 제작하는 데 있어 국내 기준으로 30만 원가량의 견적이 나오는 작업을 10분의 1 가격에 추가로 도색까지 할 수 있었고 사무실까지 직접 직원이 배달을 해주는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었다.
PCB의 경우 조금 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업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Seeed Studio를 예로 들 수 있다.
Seeed Studio는 전자부품 판매 및 PCB샘플링 작업을 해주는 곳으로 인터넷으로 Schematic만 보내주면 아트워크과 어셈블리까지 작업 수준에 맞춰 단계별로 제작을 도와주는 업체 중 하나이다.
HAX에서도 이와 비슷한 전자부품 및 회로작업 전문업체를 컨설턴트로 두고 회로작업의 기초 강의부터 직접적인 피드백까지 매우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중국 선전의 HW 인프라의 속도와 가격경쟁력은 시간과 비용이 너무나 소중한 스타트업에겐 정말로 필요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경우에 따라 설계에서부터 부품 구입, 회로, 목업과 같은 HW 프로토타이핑의 전과정을 일주일 안에 끝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선전의 속도감을 더욱 가속시켜 주었던 것이 바로 현지 매니저들이었다.
중국 선전의 인프라가 좋다 한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선전에 온다면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알리 만무하다. 더군다나 중국어라는 커다란 언어장벽 또한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중국 선전에서 몇 년간 네트워크를 쌓고 샤오미, 화웨이 등에서 풍부한 엔지니어링 경험을 가진 매니저들은 그들만이 가진 네트워크부터 주요 행사들, 선전 내 일상생활정보까지 타지에서 온 스타트업이 선전에 빠르게 녹아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앞에서 말한 3D 프린팅 작업을 맡긴 업체도 중국인 친구의 친구의 소개를 받은 곳으로 어쩌면 선전 인프라의 알짜배기는 이러한 간판도 존재하지 않는, 인터넷에서는 검색할 수 없는 숨어 있는 업체들이라 할 수 있다.
추가로 기관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간혹 생길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라는 국가의 특수성으로 인해 외국인으로서 당황할 수 있는 여러 이슈들이 발생할 수 있고 이에 대응해줄 수 있는 중국인 매니저들은 대사관보다 더 큰 의지가 된다.
실제로 HAX의 한 매니저는 홍콩에서 출퇴근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출입국이 금지되고 구류되는 일이 있었는데 중국인 매니저가 가서 ‘구출’해온 경우도 있었다.
다만 이와 같은 속도가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춘절’은 잘 알려진 중국 최대의 명절로 정상적인 업무가 4주간 불가능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바로 인터넷이다. 중국에서는 구글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
때문에 검색을 포함한 모든 구글의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선 VPN과 같은 우회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하고 가뜩이나 느린 인터넷이 더욱 느려지게 된다.
가격경쟁력
중국 진출을 노리는 HW 제조 스타트업이라면 가격경쟁력에 많은 기대를 할 것이다.
우리가 경험한 바로는 분명히 존재했고 그중에서도 제품의 부피가 커질수록 비교적 그 효과는 증대했다.
HAX는 그 명성답게 작게는 이어폰부터 실내용 플랜트, 재난구조용 로봇까지 다양한 크기의 HW 제품을 개발하는 팀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재난구조용 로봇을 만들던 팀과는 유난히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는데 비용에 대해선 놀라운 수준이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당시 프로토타입을 제작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고민거리는 금형이었다. 정확히는 광학제품의 금형이었다.
국내에서는 최소 5천만 원부터 시작하여 보통 7천만 원의 견적이 필요한 작업이었기에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중국에선 믿기 어렵게도 같은 작업을 10분의 1 정도의 가격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금형을 포함한 전체 개발비는 한국과 비교하여 대략 10분의 1 정도로 진행할 수 있었다.
한계들
하지만 모든 점에서 완벽할 수 없듯이 이러한 장점들 속에서도 한계점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첫 번째로는 퀄리티이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중국에서 제작한 몇몇 부품들은 기대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광학 소자들은 퀄리티가 곧 성능이었기 때문에 치명적 문제들이었다. 만일 우리의 경우와 같이 매우 정밀한 작업이 필요하거나 혹은 새로운, 보편적이지 않은 기술을 요하는 것들은 퀄리티를 보장받기란 쉽지 않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커뮤니케이션의 한계이다. 당시 HAX Batch8에는 유일하게 중국인으로 구성된 팀이 있었는데 완전히 처음부터 프로토타입을 제작해야 하는 팀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팀은 중국어를 활용한 활동 범위와 정보력으로 다른 팀들과는 1~2단계 앞선 속도로 개발을 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론 가장 먼저 프로토타입을 완성하고 프로그램 기간 동안 가장 완성도 높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만큼 언어로 인한 한계가 굉장히 컸다. 매우 적은 수의 업체만이 영어로 소통이 가능했고 그중에서도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는 업체를 찾기란 매우 어려웠다.
만일 중국어를 할 수가 없다면 중국 선전의 10%도 활용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프로토타입 그 이후
약 3개월간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의 피날레는 중국 선전에서의 데모데이로 이루어졌다.
당시 대략 100여 명의 관계자들이 방문했었는데 흥미로운 점은 중국 본토에서 온 관계자는 절반도 채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홍콩, 대만, 싱가포르, 일본, 한국 등 주변 아시아 국가 및 북미권에서 방문했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지리적인 위치뿐만 아니라 당시 HAX batch8에서는 중국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팀이 한 팀도 없었다.
모두 유럽, 북미 혹은 자신들의 자국 시장 그리고 킥스타터로 첫 시장 진출을 도모하고 있었고 선전은 헤드쿼터라기보다는 일종의 작업실 같은 곳이었다.
당시 우리도 중국 시장 진출을 우선 과제로 두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장 진출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킥스타터와 같은 플랫폼도 없었고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없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중국 업체와의 비즈니스가 아니면 시도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HAX에서도 어떻게 중국 선전의 인프라를 활용할지에 중점을 두었지 중국 시장의 진출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데모데이 일정 이후로 약 2개월가량을 더 머물며 프로토타입 개발을 마무리지었고 2016년 8월경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당시에는 중국 시장으로의 진출보다 킥스타터 캠페인을 통한 북미 소비자 시장 진출이 우선적이었다. 하지만 약 2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중국으로 가려고 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개발하는 AR 스마트글래스 시장은 중국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AR/VR 컨퍼런스 중 하나인 AWE(Augmented Reality World Expo)는 매년 그 규모가 배로 성장하고 있고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중국 베이징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를 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실리콘밸리에서 열리는 행사에서는 매년 HW 업체의 수가 줄고 거의 정착되었지만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AWE Asia에선 매년 새로운 HW 팀과 기발한 제품들이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AR 시장은 스마트폰과 더불어 HW 시장의 성장과 기술발전이 반드시 밑받침이 되어야 하는 대표적인 CPND 시장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중국의 AR HW시장에 기회가 있다고 판단했다. 중국 내 AR HW 제품을 보면 분명 양적으로는 많아졌지만 기존 기술과 제품의 카피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신제품은 많아졌지만 신기술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와 같은 핵심 기술의 차별점을 가진 스타트업들에게 중국 내 업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고 우리 기업들은 그것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 선전을 고려하는 스타트업에게
지난 몇 개월간의 중국 선전에서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과 수준 높은 퀄리티를 보장하는 곳도 있는 반면 울며 겨자 먹기로 제품을 받아봐야 하는 곳도 있었다.
보편적인 수준의 HW 제품을 보다 싸고 빠르게 개발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인 반면에 만약 새롭거나 도전적인 기술, 정밀도와 신뢰성이 필요한 제품이라면 다시 한번 고민이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만일 선전을 개발의 전초기지뿐만 아니라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염두에 둔다면 신제품의 속도와 우리 기업이 가진 신기술의 상대적인 속도를 고려한다면 충분한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