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중국의 개혁개방 실험과 지방정부의 혁신정책 추진
▲ 김홍원 전문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1980년대 선전시에 경제특구가 설립되고 외지인이 대규모 유입되면서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도시문화가 형성되었고, 경쟁을 추구하고 실패를 용인하며 협력을 도모하는 비즈니스 환경이 조성되었다.
한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역 발전의 한계를 인식한 지방정부는 기술혁신을 지역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 혁신의 대표 도시로 도약할 수 있었다.
1979년 7월 덩샤오핑 주석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직후 중국정부는 중국 남부에 위치한 광둥(广东)성의 선전시, 산터우(山头)시, 주하이(珠海)시, 그리고 푸젠(福建)성의 샤먼(厦门)시 4곳을 경제특구로 지정하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된 이래 사회주의 체제에 봉쇄되어 있던 중국이, 경제특구 설립을 통해 처음으로 대외개방의 창(窓)을 연 것이다.
중국정부는 개혁개방 실험을 선전시에 시행하고 그 성과를 살펴 점차 지역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이른바 ‘점(點)-선(線)-면(面) 전략’을 전개하였으며, 선전 경제특구는 당시 개혁개방의 실험장이자 개방의 창구였다.
선전시는 경제특구로 지정된 이후, 도시의 형상을 갖추어가기 시작하였고, 황무지에서 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특히 홍콩과의 지리적 인접성 때문에 홍콩의 저부가가치 노동집약적 산업이 선전으로 이전하여 가공무역기지가 조성되었다.
시장 개방에 따른 성공의 기회를 찾아 중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당시 선전시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알 수 있는 사례로 중국 최초의 고층 빌딩인 궈마오(国贸) 건설을 들 수 있다.
1985년 중국 내 최고층 높이인 53층 빌딩이 선전시에 완공되었는데, 건설 당시 3일에 한 층씩 쌓아올린 기록은 선전시의 빠른 경제 속도를 상징하는 대표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또한 특구 내 조성된 최초의 가공무역기지인 셔커우(蛇口)공업단지의 구호로 널리 알려진 ‘시간은 금이고, 효율은 생명이다(时间就是金钱,效率就是生命)’는 효율 우선주의, 실리주의를 강조하던 당시 시대상을 대변하며, 현재에도 선전시의 상징적인 도시문화로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1980년대 황무지에 들어선 계획도시 선전시는 오랜 역사를 지닌 베이징, 상하이와 비교해 고등교육기관이 전무하였다.
일찍이 인재 유치의 중요성을 인지한 선전시 정부는 우수인재가 유입될 수 있도록 대학설립과 중국 국내외 연구기관 유치에 힘쓰고, 우수인재의 결집과 연구역량의 축적을 위한 기반을 닦았다.
1983년 선전시 정부는 당시 시 정부 재정의 50%를 들여 선전시 최초의 종합대학인 선전대학(深圳大学)을 설립하였다. 선전대학은 중국 3대 ICT 기업인 텐센트 창립자 마화텅(马化腾)이 졸업한 대학이기도 하다.
이어 1990년대 후반에는 중국 이공계열의 최고 대학인 칭화대,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명문 대학인 홍콩과기대 및 베이징대와 공동으로 각각 ‘칭화대선전연구원(深圳清华大学研究院)’, ‘선전·홍콩 산학연기지(深港产学研基地)’를 건립하였다.
대학뿐만 아니라 중앙 국유기업 및 연구기관과 연합으로 연구원을 설립하여 지역 내 부족한 연구역량을 보완하였다.
계속해서 2011년에는 과학기술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해 광둥성 정부와 공동으로 ‘남방과학기술대학(南方科技大学)’을 설립하였다.
같은 해 해외 유학파 인재를 선제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지방정부 차원에서 별도의 지원 정책을 마련하여, 중앙정부보다 더 높은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다.
선전시의 적극적인 인재 유치 정책 시행은 상주인구의 증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과거 연간 약 8~9만 명에 그치던 유입인구수가 2015년 이후 연간 50~60만 명으로 10배나 증가하였다.
선전시 정부는 2000년대 들어 혁신정책의 기반이 되는 3개의 조례를 제정했는데, 바로 ① ≪선전경제특구 혁신 촉진조례≫01 ② ≪선전경제특구 과학기술 혁신 촉진조례≫02 ③ ≪선전경제특구 경제발전방식 전환 촉진조례≫03이다.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후, 시장 개방이 전면적으로 진행되면서 선전시의 경제특구로서의 위상이 유명무실해지고, 토지를 포함한 생산요소의 가격 상승으로 인해 노동집약적 산업의 경쟁우위가 점차 약화됐다.
여기에 더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광둥성 중에서도 대외무역 의존도가 가장 높았던 선전시는 급격한 수출 감소로 경제성장에 직격탄을 맞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선전시 정부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자구책으로써 혁신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혁신촉진조례≫는 경제, 행정, 사회 문화, 사법 등 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선전시의 의지를 법규화한 것으로, 혁신정책 추진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표 1).
선전시 정부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조례 제정을 통해 산하 지자체에서 중장기 및 연간 개혁 혁신 사업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개혁 혁신 성과를 각 기관의 중점 평가 대상에 포함시켰다.
또한 사안에 따라 사회적 영향이 큰 혁신과제의 경우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법률에 규정되지 않은 영역에 속한 사업일지라도 한시적으로 허용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먼저 정부 조직에서 실패한 개혁 책임자에 대한 면책규정을 명문화하여 민간 기업에 이르기까지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혁신을 장려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최근 선전시에 유입된 스타트업들은 기업 설립 배경으로 선전시의 이러한 우호적인 기업 경영 환경을 꼽고 있다.
2008년 선전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국가급 ‘혁신형도시(创新型城市)’ 건설 시범지역으로 지정되었고, 같은해 선전시 정부는 혁신형 도시 건설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기술 혁신촉진조례≫를 제정하였다.
이후 선전시 5개년 지역발전계획(国民经济和社会发展规划)에 과학기술 혁신, 첨단기술산업의 발전, 과학기술 기초 인프라 건설 등을 중점 정책과제로 포함시켰다.
2010년 공표한 ≪경제발전 방식 전환 촉진 조례≫는 기술개발 투자와 기술개발을 수행할 수 있는 인재유치 및 양성을 핵심과제로 내세웠다.
또한 기술사업화를 통한 첨단기술산업 육성을 궁극적인 목표로 제시하였다. 이와 더불어 기술개발 관련 재정지출의 증가율이 반드시 경상수입의 증가율보다 상회하도록 재정 지원을 원칙적으로 보장하였다.
실제로 2010년 선전시의 GR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2010년 3.5%에서 2016년 4.1%로 상승하여 대한민국, 이스라엘과 유사한 수준에 이르렀다.
2016년 3월에도 ≪과학기술혁신 촉진 조치≫ 및 ≪인재 우선발전 촉진조치≫를 발표하여 기존 정책의 문제점을 보완하며 정책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두 조치는 △ 정부 지원 사업 관리 제도의 개선 △ 연구기관 및 외부 우수인재 확충 △ 정부 지원사업의 대상 확대 △ 산학연 기술 연맹 강화 및 인재양성 △ 연구 실패의 제도적 수용을 골자로 한다(표 2).
특히 중국의 국내외 저명한 과학자, 해외 우수인재(연구팀)의 위시 하에 설립한 연구기관을 대상으로 최대 1억 위안을 지원하고, 우수인재 예산 규모를 2배로 대폭 증대하였다.
또한 연구결과물 평가제도를 개선하여 연구실패를 제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했다.
선전시 정부는 앞으로도 지역 경제 성장동력으로 기술혁신을 강조하며, 첨단기술 제품의 제조기업 육성에서 더 나아가 지식 재산권을 수익모델로 하는 기업을 육성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지금의 선전시 발전성과를 정책 요인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으며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된 결과이다.
정책적인 측면에서 우선 중앙정부에서 탑다운(Top-down)으로 선전시를 경제특구로 지정한 것이 발전의 시초가 되었다.
지금도 선전 시민들은 덩샤오핑을 선전시의 아버지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중앙정부의 정책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당시 경제특구는 선전시 외 3개 지역이 더 있었으나, 4개 지역 중 선전시만이 지금과 같은 발전을 이루어냈다.
경제특구 지정 이후 중국 국내에서 시도되지 않은 다양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선전시 정부는 이를 적극 활용했다.
그리고 선전시 정부는 지역경제성장의 한계에 대응하여 과학기술혁신을 통한 지역 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지난 20년간 점진적으로 추진해왔다.
선전시는 개혁개방 과정에서 시도한 다양한 경험들을 혁신정책을 추진하는 데도 적용시켰다. 그리하여 과거 가공무역 제조기지에서 현재 중국의 혁신을 선도하는 대표 도시로 도약하였다.
마지막으로 국가발전개혁위원회(国家发展改革委员会)의 첨단산업기술사(高技术产业司) 사장(司长) 출신으로 2008~2017년 약 10년간 선전시 부시장 및 시장으로 재직한 쉬친(许勤)이 중국 언론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선전시는 토지공급이 제한적이고, 수자원, 가스, 석유 등 주요 자원의 대부분을 외부에서 공급받으며, 무역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이러한 선전시가 경제성장의 질적 개선과 안정적인 성장을 실현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하여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혁신, 혁신, 또 혁신이다. 혁신으로 생산요소 측면의 제약을 극복하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04."
01 深圳经济特区改革创新促进条例(2006년)
02 深圳经济特区科技创新促进条例(2008년)
03 深圳经济特区加快经济发展方式转变促进条例(2010년)
04 「毅力“跑将”许勤急调河北:为什么是他?」(2017. 4. 5), 온라인 기사(검색일: 2018.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