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무비 & 사이언스 - 화성에서 먹는 감자

무비 & 사이언스는 영화 속의 상상력이 실제 현실에서 이루어진 과학기술들에 대해 살펴봅니다.

글_ 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
사진 참조_ 네이버 영화



영화 < 마션(The Martian, 2015) >은 탐사도중 사고로 홀로 화성에 남겨진 우주인의 생존기를 다룬 화성판 < 로빈슨 크루소 >다.

이 영화의 매력은 여타 SF와 달리 화성에 실제로 낙오한 우주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듯 현실감 넘치는 설정에 있다.
 
NASA에 자문을 의뢰해 철저히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제작함으로써 가까운 미래에 정말로 이러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데 완벽하게 성공한다.

특히 화성에서 감자를 재배하며 구조대를 기다린다는 이야기는 화성을 마치 지구의 무인도처럼 친근하게 만들어 버렸다.


선원과 군인에게 필요한 것

유럽에서 출항한 군함이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 생존한 병사의 수는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항해 도중 적선과 전투가 벌어지거나 태풍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었다.

15~18세기 신항로 개척 시대 선원들에게 적선이나 태풍보다 더 심각한 피해를 준 것은 바로 괴혈병이었다.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섭취하지 못해 괴혈병에 시달리다가 수많은 선원들이 죽어갔다.

비타민C만 충분하게 공급되면 쉽게 막을 수 있는 괴혈병이 당시 선원들에게는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또한 선원들은 부족한 식량으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져 감염성 질환에도 취약했다. 그래서 당시 선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나 나침판이 아니었다.
 
사실 지도나 나침판이 중요했던 것도 식량 제한으로 인해 주어진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양 항해에서 선원들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양질의 식량공급이었다.

양질의 식량공급이 신항로 개척 시대 선원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19세기 프랑스를 통치하게 된 나폴레옹도 같은 고민에 빠졌다. 대포의 장점을 잘 살린 자신의 전술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병사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던 것이다.

범선을 탄 선원들은 돌처럼 딱딱한 비스킷이나 육포처럼 건조시킨 음식을 먹는 방법 밖에는 식량문제를 해결할 묘책이 없었고, 그들은 괴혈병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달랐다. 프랑스 산업장려협회를 만들어 과학기술을 장려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상금까지 내걸었다.

결국 나폴레옹은 아페르가 발명한 병조림이라는 신기술 덕분에 유럽을 손아귀에 쥘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나폴레옹의 권력은 병조림의 단점을 개선한 영국군의 통조림에 의해 무너졌다는 점이다.

프랑스 병사를 포로로 잡은 영국군은 병조림의 용도에 관해 연구했고, 무겁고 깨지기 쉬운 병조림의 단점을 보완한 주석 깡통으로 만든 통조림을 발명했다.

영국군은 병사들에게 통조림을 보급해 신속하고 효율적인 전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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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 마션(The Martian, 2015) >의 스틸컷


까다로운 우주식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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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들은 신선한 음식, 군인들은 신선함을 유지하면서도 빠르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 보관 기술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해결한 기술이 통조림이었다.

하지만 우주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식량보급의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인간이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여행할 때에도 장거리 여행을 제한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식량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지 과거와 달라진 것은 식량의 종류와 보관기술의 조건뿐이다. 오히려 우주식은 기존의 음식 보관기술보다 훨씬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그래서 우주에서 통조림만으로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주식은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 할까? 일단 우주식은 필요한 영양소를 고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

3대 영양소는 탑승자의 성별과 몸무게에 맞춰 적당한 열량만큼 제공하고, 비타민이나 무기양분도 부족하지 않게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무게와 부피를 최대한 줄이고, 장기간 맛과 상태가 변함없어야 하며 무중력 상태에서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무게가 늘어날수록 발사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우주식은 동결건조시켜 칼로리 밀도를 높이고 부피도 줄인다.

무중력 상태의 밀폐된 공간에서 음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가루 형태의 음식이나 쉽게 부서져 부스러기가 나와서는 안 된다.

가루나 부스러기가 우주선 내부를 떠다니게 되면 우주인의 건강을 해치거나 우주선에 고장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분을 제거한 우주식은 먹기 전에 물을 넣고 잠시 기다리면 원래 형태와 비슷하게 돌아와 지상에서 먹었던 음식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이때 우주선에서 사용하는 물은 영화 속 와트니처럼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얻는다.

그리고 우주식은 방사선 조사하여 음식을 완전히 살균하여 우주인이 먹었을 때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한다.


화성에서 살아남기

1960년대 초창기 우주인들에게 NASA는 튜브 형태의 우주식량을 제공했다.

알루미늄 튜브 속에 유아용 이유식과 비슷한 음식이었으니 맛있을 리가 없었다.

며칠간의 일정을 수행했기 때문에 맛과 상관없는 음식을 제공했던 것이다. 하지만 몇 달간 우주공간에 체류할 경우에는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기 어렵다.

화성에 낙오된 와트니처럼 계속 감자만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인을 배출하고 있는 세계 각국은 자국의 음식을 우주인에게 공급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2008년 이소연 박사를 우주에 보냈을 때 한식을 우주식으로 만들어 공급한 적이 있었고, 지금도 다양한 한식을 우주식으로 공급하기 위한 인증을 획득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튜브에서 시작된 우주식은 1965년 제니미5호에서는 레토르트와 통조림이 추가되었고, 오늘날에는 200여 가지 이상의 다양한 메뉴가 제공 가능하다.

우주인들은 출발 전 자신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선택하고 제공 받는다. 물론 우주인들이라고 우주식만 먹는 건 아니다.

영화 < 미션 투 마스(Mission To Mars, 2000) >에서 화성을 향해 가는 우주선에서 M&M 초콜릿으로 DNA 모형을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 것처럼 초콜릿이나 사탕처럼 지상에서 먹던 음식도 먹는다.

다양한 음식이 제공된다고 하더라도 SF 영화에서 보듯 우주선에 동승한 요리사가 제공하는 식사를 하기는 어렵다.
 
무중력 상태인데다 기압이 낮아 물은 80℃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끓고 불을 사용할 수 없는 등 요리사가 있어도 어차피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화성에서 직접 수확한 농산물로 요리를 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이미 우주정거장에서는 상추를 직접 재배하는 등 실내 광원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실험을 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화성에서 와트니처럼 농작물을 키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화성으로 향하는 개척 우주선에 농부와 요리사가 탑승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화성에 장기 체류하기 위해서는 신선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지속으로 공급할 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에 이미 로봇을 40여 년 전에 보냈음에도 인간을 화성으로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성에서 키운 감자로 만든 요리는 과연 어떤 맛일까? 아마도 지구인 중 선택 받은 몇 사람은 이번 세기가 끝나기 전 그 맛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