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플러스 - 흠집나면 ‘셀프 치료’··· 각양각색 미래 新물질의 출사표
과학기술 플러스는 최근 이슈가 되는 과학 기술 및 연구, 과학발전사 등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글_ 류준영 기자(머니투데이 정보미디어과학부)
4차 산업혁명, 건강·안전추구, 지구온난화 등 미래 환경 변화에 맞춰 한계극복을 위한 기술로서 나노급 물질(소재) 기술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국내는 주로 저전력 소모 소자, 고용량 이차전지, 부착형 센서 등을 중심으로 관련 연구가 한창이다. 최근 공개된 국가대표급 신(新)물질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통제 불능’ 수소 가두는 ‘엄한 물질’
근래 TV 광고에서 가장 자주 듣는 원소 기호 하나가 있다. 바로 '수소(H)'이다.
국내 H사가 밀고 있는 미래 친환경 자동차는 수소연료전지차(수소차)다. 엔진 구동 방식은 간단하다.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바퀴를 회전시킬 전기를 생산한다.
보통의 휘발유·경유차는 시동을 걸면 탁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연상되는데 수소차는 배기가스 없이 물만 배출하므로 시쳇말로 ‘무공해 에너지원’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수소차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수소를 응용해 쓴다면 지구온난화를 지금보단 늦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로점이 있다. 이 수소를 가둬놓기가 쉽지 않아 사용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수소는 영하 253℃부터는 기체가 된다. 또 어떤 원소보다 가벼워서 어떤 소재로 탱크를 만들어도 다 빠져나간다.
종합하면 ‘통제 불가능’이다. 이를 막으려면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채우듯 다른 물질을 써 수소를 붙잡아둬야 한다.
최근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백종범 교수팀이 ‘초미세 유기구조체(3D-CON)’를 개발, 수소를 효과적으로 저장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이 물질이 ‘수소 흡착 능력’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자평했다.
초미세 유기구조체를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미세한 기공이 잔뜩 나 있다. 이런 형태는 수소나 메탄, 이산화탄소 등의 기체를 흡착하는 성능이 탁월하다.
무엇보다 기존 3차원 유기구조체와 달리 분자들이 육각형 사다리 모양으로 결합돼 구조적으로도 안정돼 있다.
백 교수는 “신물질이 600℃ 고온에서도 견디기 때문에 상용화 가능성도 높다”며 “수소차는 물론 가스센서 등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상처 복원하는 ‘자가치료 물질’
흔히 말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AI) 서비스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서 일을 하고, 자율주행자동차, 드론(무인기) 등이 사람이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이도록 만들려면 수백 수천 수억 개의 센서를 각각의 장소에 설치·운영할 필요가 있다.
오는 2025년 전 세계에 깔린 스마트센서가 1조 개를 넘어서는 ‘트릴리온(Trillion)센서 시대’가 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런 센서가 고장 나 제대로 된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후 서비스(AS)를 해야 할텐데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어떤 센서가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일일이 찾아 꺼내 들여다보고 수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신소재 분야에선 흠집·절단 등 외부 스트레스가 발생해도 시간이 지나면 원상태로 돌아가는 자가치유 능력을 가진 신물질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 성과 중 가장 대표적으로 한국화학연구원(이하 화학연) 바이오화학연구센터가 개발한 ‘엘라스토머’(탄성중합체)를 들수 있다.
엘라스토머는 외력을 가해 잡아당기면 늘어나고 외력을 제거하면 본래 길이로 돌아가는 고무와 같은 성질을 지닌 고분자 물질이다.
통상적으로 자가치유 기능을 지닌 소재 대부분은 자체 강도가 낮아서 상용화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 내부 고분자가 쉽게 이동하는 원리로 치유 기능을 부여하는데, 이 경우 높은 강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화학연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강도가 센 열가소성 폴리우레탄에 황화합물을 첨가하는 방식을 썼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렇게 제작한 엘라스토머는 2시간 만에 원래 기계적 강도를 80% 이상 회복했고, 6시간 후 5㎏의 아령을 들어 올릴 정도로 완전히 회복했다.
이를 센서에 적용하면 스크래치가 나도 30분 안에 자동 복구된다.
연구진은 “이번에 개발한 신물질은 4차 산업용 센서 소재로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마켓앤드마켓은 자가치유 소재의 세계시장 규모가 2021년까지 24억 4,700만 달러(약 2조 6,212억 원)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양전지·車배터리 가격 낮춘 ‘착한 물질’
여름·겨울에는 관리비 걱정이 한시름을 더한다. 여름엔 에이컨, 겨울엔 난방장치를 돌리다 보면 전 달과 비교한 전기세 그래프가 명세서 밖으로 치솟는 경우가 많다.
태양전지를 보다 값싸게 공급할 수 있다면 이런 부담을 아마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차세대 에너지원 중 하나인 ‘태양전지’는 전지효율을 높이는 것만큼 ROI(투자 대비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대면적·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할 소재 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태양전지 전극 사이에서 빛을 흡수, 전기를 생산하는 ‘광활성층’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고분자 소재를 개발했다.
이는 기존 태양전지용 소재보다 유기용매에 잘 녹고, 기판 위에 코팅한 뒤에도 뭉치는 현상이 적다.
연구진은 새 고분자 소재를 투명 전극 위에 350㎚(나노미터·1㎚=10억분의 1m) 두께로 프린팅한 후 1㎠ 면적의 유기 태양전지를 제작했다.
이 태양전지의 광변환 효율은 9.45% 정도로 유사 소재로 만든 태양전지 효율(7.35%)보다 높게 나타났다.
자율주행자동차 구동의 핵심은 배터리다. 배터리 소재야 말로 신소재 개발 격전장에서 가장 ‘핫’한 분야일 것이다. ‘전기차 산업의 주도권을 쥘 열쇠’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현재 리튬이온전지 용량을 2배 늘리고 제조단가는 기존 제품의 절반으로 낮출 신소재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하 에너지연)은 리튬이온전지의 음극재를 기존 흑연 대신 산화규소(SiOx) 나노입자로 만드는 기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산화규소 나노분말 제조단가는 ㎏당 30달러(약 3만 원) 수준이다. 같은 음극재로 만든 리튬이온전지를 유일하게 상용화한 일본기업보다 30~50% 저렴하다.
개발을 책임진 에너지연 장보윤 박사는 “산화규소 나노분말이 전기차용 배터리에 적용되면 배터리 가격을 낮추고 한 번 충전으로 500㎞ 이상 주행거리를 확보해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