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혁신 칼럼 - 생각의 스태미나
자기혁신 칼럼은 회원사의 기업인, 이공계 연구원 등에게 자기혁신과 리프레시가 되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자기계발 칼럼입니다.
글_오세웅 작가
최신형 가전제품의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스피드다. 빨래도 빨리 건조시키고.
토스터도 순식간에 빵이 구워져 나와야 한다. 정보대량화 시대에 머릿속에 가득 입력하려면 속독도 필요하다고 한다.
홍채인식처럼 눈 깜짝할 새에 열리고 닫히는 휴대폰이라야 한다.
상사가 기획안을 요구하면 빨리 제출하고, 미팅에서 누가 의견을 물으면 빨리 대답한다. 스피드가 대우를 받는 세상에선 느리거나 더디면 낙오자 취급을 받는다.
빠른 세상은 복합적인 행동을 부추긴다. 식사하면서 휴대폰을 쉴 새 없이 만지작거리고, 달리면서 생각하는 게 현대의 미덕처럼 비춰진다.
주어진 일을 빠르게 처리하거나 말을 잘하거나 임기응변이 뛰어나면 머리가 좋다고 말한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뇌회전이 그만큼 빠르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빠른 결과 속에 생각이라는 재료가 충분히 들어갔을까. 머리가 좋으려면 생각을 잘해야 한다. 테스트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머리가 좋다는 일반적 상식을 되짚어보자.
좋은 성적은 주어진 문제에 일일이 왜(?)라는 의문을 들이대면 효율적인 테스트 준비방식과 멀어진다.
곧장 해답을 보면서 되도록 많은 지식을 빨리 흡수해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굵직한 영향을 준 위인의 대부분은 학교 성적이 신통찮거나 학교를 도중에 그만두거나 아예 학교조차 다니지 않았다.
학교는 학생의 궁금증에 하나씩 성실히 답변해 주는 시스템이 아니다. 정해진 답에 토를 달지 않고 의심없이 빨리 흡수해 주는 모범생을 양산하는 곳이다. 여기에 생각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진짜 머리가 좋은 사람은 생각할 줄 안다.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가령, 교통이 정체되면 슬슬 걱정이 앞선다.
도착하면 사무실까지 뛰어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왼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미리 넥타이를 조금 느슨히 풀어둔다.
뛰는 데 방해되는 묵직한 자료철은 어차피 오후에 쓸 거니까 차안에 놔두자고 ‘생각’한다. 이 생각들은 엄밀히 말해 인식(Recognition)이다.
눈앞에 놓인 상황이 우리 머릿속의 개념과 동일하다고 인식하는 작업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생각의 대부분이다.
‘교통정체=지각’이라는 이미 존재하는 개념에 별도의 언어로 머릿속에 표현(뛰어가야겠다)하면서 '다시(Re)+인지(Cognition)'하는 과정일 뿐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지식에 끼워맞춘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생각하는 데 시간도 걸리지 않을 뿐더러 새로운 착상도 나오기 어렵다.
머릿속에 언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심사숙고’가 되지 않는다.
심사숙고는 기존의 것이라도 새로운 측면을 바라보려고 애쓰는 생각이다. 혹은 미지의 것이라면 그것이 뭔지를 깊게 생각한 끝에 전혀 새로운 개념을 자신의 머릿속에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일상생활 속에 빈번히 이루어지는 생각은 자동시스템으로 간주하면 된다.
주어진 상황에 일정한 답을 이미 알고 있고 그걸 행동으로 옮길 뿐이다. 반면에 심사숙고는 따로 생각하는 별도의 행위다.
심사숙고를 해야 할 이유는 그 가치 때문이다. 알다시피 ‘심사숙고’하면 일이 더뎌진다. 비효율적, 비생산적으로 보인다.
심사숙고의 목적은 꼭 특정한 결과가 아니다. 시간을 들여 심사숙고함으로써 독창적인 발상을 여럿 창출할 수 있다.
그 분야의 프로가 되려면 만 시간 이상 연습하면 된다는 주장이 있다. 여기는 눈치 채지 못하는 함정이 도사린다. 만 시간 연습이 오직 양적인 시간과 노력을 가리킨다면 대단한 오산이다.
똑같은 만 시간을 버텼는데도 프로가 되지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다. 심사숙고라는 진지한 과정이 빠졌기 때문이다.
연습하면서 그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고, 아니다 싶으면 심사숙고한 끝에 이렇게 저렇게 방식과 방법을 바꾸어 보면서 다시 연습해 본다. 어제의 연습에 뭐가 잘못되었는지 되돌아본다.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지 심사숙고한다. 새롭게 연습한다. 그래야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나타난다.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잘못된 점을 개선하려면 대단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훼방꾼 탓이다. 스테레오 타입은 본디 인쇄의 복제판을 가리키던 것으로 미국의 언론인 월터 리프먼이 사회학적 용어로 처음 사용했다.
스테레오 타입은 일상생활에서 꽤 편리한 도구다. 이것 아니면 저것에 무작정 구겨넣고 거기서 얻은 결론으로 판단을 내린다. 해외 관광에서 그 경향이 두드러진다.
일본인은 어떻고 프랑스 음식은 어떻고 이탈리아 문화는 어떻다고 쉽게 결론짓는다. 우리는 인터넷과 같은 편리한 도구로 전 세계와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지만 분단된 세계에 꼭꼭숨어 있다는 사실을 잘 잊는다.
일평생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90명, 그 중에서 가치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이는 불과 30명뿐이라는 조사도 있다.
사는 동안 노숙자와 한 번이라도 대화를 나눠보거나,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주장을 직접 들어본 사람은 극히 드물다.
심사숙고는 귀찮을 때가 많다. 누군가 대신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여긴다. 남의 생각만 추종하면 남의 인생을 산다. 자기 인생을 살려면 자기 생각을 가져야 한다.
심사숙고는 무작정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다고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달리기를 잘하고 싶으면 운동장에서 달리는 연습부터 하듯이 심사숙고하는 습관을 들인다.
주어진 문제에 대해 입체적으로 살펴보려면 천천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시간이 걸리니 당연히 늦어진다. 이리 해보고 저리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심사숙고하고 있다는 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
독서는 남의 생각이지만 심사숙고 훈련에 꽤 도움이 된다. 저자의 주장에 무작정 따라가면 독서는 내 생각으로 육화되지 않는다.
이상하다 싶거나, 위화감을 느끼면 가만히 책장을 덮고 나만의 생각을 더해본다.
실마리가 풀리면 다시 책장을 펼친다. 속독은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영화 감상 같은 방식이다.
영화는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기에 심사숙고할 여지조차 없다. 영화에서 전하려는 일방적인 메시지에 우리의 감정이 부응할 뿐이다.
심사숙고할 때는 키보드가 아닌 종이에 쓴다. 도구는 연필이 좋다.
연필은 쓸수록 뭉툭해지고 줄어들기에 생각의 모래시계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알 수 있다. 연필보다 편하게 글씨가 써지는 만년필, 샤프는 오히려 술술 써지기에(빠르기에) 심사숙고에 방해가 된다.
어디까지나 아다지오(침착하고 느리게)를 지향한다. 삶이 바뀌는 순간이 있다. 이거다 싶은 깨달음이 올 때다.
깨달음이 언어화 되었을 때 삶에 변화가 수반된다. 그때 종이와 연필은 훌륭한 조수가 되어 준다.
심사숙고는 독특한 발상으로 이끌어준다. 보통의 아이디어는 덧셈의 법칙이다. 커피에 우유를 더하면 커피 우유가 된다. 덧셈의 법칙은 따지고 보면 무제한이다.
반면에 심사숙고는 본질에 가까이 가려는 뺄셈의 법칙이다. 치장을 걷어내고 그 안의 순수함을 찾아보려는 열정적인 접근이다.
커피에 우유를 더하기 전에 커피 자체에 주목해 훌륭한 커피 만들기에 집중한다. 오리지널(독창성)은 오리진(본질)으로 돌아가는 것.
본질은 창조가 아닌 거기에 본디 있던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생각하는 사람’이다. 태어날 때부터 내재된 특별한 능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