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2

02 - 스마트 제조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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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민 교수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경영공학과


지속 가능한 스마트 제조를 위해서는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되었던 자동화와 스마트 제조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물음에서 시작하여 스마트 제조와 사람과의 관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제조시스템에 대한 스마트화의 대상 범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며, 각 범위에서 사람과 기계 간의 상호보완적 스마트 제조 구현은 어떤 접근이 필요할지에 대하여 논한다.

또한 스마트 제조에서 중요한 데이터 활용이 사람의 관점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본다.



자동화? 스마트화?

1980년대 미국 자동차 산업은 품질과 가격경쟁력으로 무장한 일본 자동차 기업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당시 세계 최대 자동차기업인 GM의 최고경영자 로저 스미스(Roger Smith)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첨단 자동화 전략을 추진하였다.

생산성 향상을 통해 미국 제조 산업의 부흥과 경쟁력 강화가 절실했던 것이다.

그들은 소수의 작업자가 산업용 로봇과 컴퓨터를 제어하여 운영되는 무인공장 개념의 "Light-out factory" 비전을 제시하였다.

이를 위해 GM은 일본 Fujitsu-Fanuc과 공동으로 GMF를 설립하고 최대 로봇 생산 기업으로 등극하였다. 이후 약 10년 동안 그들은 무려 900억 달러, 한화로 약 90조 원을 투자하였다.

무인공장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꾀하려던 GM은 1990년 로저 스미스 퇴임시 최대 비용 생산 기업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들이 투자했던 90조는 당시 도요타, 닛산, 혼다의 일본 자동차 기업 3개사를 인수하고도 남을 만한 금액이었다.

이때 자동화의 열풍이 미국을 휩쓸 당시 “스마트 기계”, “정보화 공장”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였다. 마치 현재의 스마트팩토리를 연상케 한다.

과거 미국의 자동화에 대한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기대하던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사례에서의 교훈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사람을 배제한 자동화는 결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동화의 성과는 물리적 작업의 개선이 아니라 제조데이터의 활용이라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이런 두 가지 관점에서 스마트 제조와 사람이라는 주제에 대해 논하기로 한다.


제조 시스템과 사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직간접적으로 소비하거나 이용하는 거의 모든 재화가 대부분 제조 단계를 거쳐 우리 손에 이르게 된다.

생산방식의 변화에 따라 산업의 구조와 방식이 달라져 왔고, 현재 산업구조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스마트 제조가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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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은 수공업 형태의 생산방식에서부터 현재 대두되고 있는 개인화 맞춤형 생산방식으로의 변화과정과 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제조 기술들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생산방식은 소비자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변해 왔고, 이를 운영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들이 개발되어 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바로 “고객 중심”이라는 개념이 제조 기술 개발과 적용의 주요한 동력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제조자도 “사람”인데 그들에 대한 고려는 어떠했는가? 제조의 가치는 고객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제조자 관점에서도 중요하게 조명되어야 한다.

생산방식의 변화에 따라 제조자의 역할도 많이 변화해 왔다. 수공업 형태의 생산방식에서 제조자들은 전문적인 수작업을 수행하였다.
 
대량생산 체제에서는 비숙련 작업자들의 참여가 이루어졌고,그들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물리적 작업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물리적 작업에 대한 개선 혹은 부분적 지원 기술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자동화이다. 대량생산 체제에 적합한 기술이었던 것이다.

점차 생산방식이 고도화되면서 작업자들은 더 이상 물리적인 작업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낭비요소를 파악하고 공정을 개선하는 인지적 활동을 병행하도록 요구받게 되었다.

제조 시스템에 컴퓨터의 적용 범위가 증가함에 따라 정보기술의 지원을 받게 된 반면, 상황 판단과 의사결정 능력이 더욱더 강조된 것이다.
 
이를 “인지적 작업의 증가”라 할 수 있다. 자동화와 스마트화의 차별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제조자가 물리적 작업자에서 인지적 작업자로 변화하고 있는 새로운 제조 환경에 필요한 것이 바로 스마트 제조다.
 
현재의 스마트 제조가 자동화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는 과거 대량생산 체제에서의 작업자를 대체하는 형태에 머물 수 있다.

과거의 생산방식을 대상으로 하는 스마트화가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스마트 제조는 단순한 기계적 자동화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 제조화와 사람

스마트 제조의 원동력이 되는 주체와 이에 대한 혜택의 객체는 모두 사람이다.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소비패턴과 기호에 맞는 개인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처럼 제조자도 자신의 역량과 선호도에 부합할 수 있는 제조 시스템을 구현하여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스마트 제조의 대상이 되는 기업에서 작업자, 관리자, 경영자 계층에 따른 역할과 직무 요구사항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역할에 따라 스마트화의 대상과 범위를 설정하고, 그 특성에 따라 스마트 제조의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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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는 제조 시스템에 스마트화를 도입하고자 할 때 고려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개략적인 구분을 보여주고 있다.

제조 시스템에서 사람의 역할은 필수적이지만 만약 그 역할을 기계가 대신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경우에 대해서는 기계로의 대체, 혹은 자동화를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림 2에서 영역 5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즉 사람의 역량이 월등하게 뛰어난 작업은 자동화의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 장기적인 생산 전략의 수립이나, 인력 선발과 같은 정성적인 의사결정을 생각할 수 있다.

그림 2에서 영역 4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스마트 제조는 대부분 영역 1과 3에 해당하는 부분, 즉 사람과 기계의 역량이 유사하거나, 혹은 기계가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작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스마트 제조에서 이러한 작업의 특성과 사람과 기계 간의 역할 분담 및 구분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선행되지 못하고 있다.

즉 사람에 대한 역량 분석보다는 제조 프로세스 관점에서의 공정 자동화에 편중되어 있다.

앞서 지적한 대로 스마트화는 물리적 작업보다는 인지적 작업에 대한 중요도가 높다. 인지적 작업을 고려한 스마트화를 위해서는 사람의 경험이나 직관적 판단과 같은 암묵적 지식과 정보의 분석이 필수적이다.

만약 스마트화의 추진이 사람 관점이 아닌 공정관점에서 이루어진다면 해당 공정과 관련된 작업자, 관리자로부터의 협조를 얻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접근은 스마트 제조 기술의 공급자 측면에서 진행되는 일방적인 자동화, 전산화로 치우쳐 그 지속성 확보의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스마트 제조의 대상과 범위에 대한 사람과 기계 간의 차이와 장단점을 분석한 후에는 스마트화의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스마트 제조 공정에서의 권한과 책임 교환/이양, 혹은 공유에 대한 부분이다.

스마트 제조 프로세스에 대한 주도적인 운영과 제어의 주체를 어떻게 선정해야 하느냐에 따라 스마트 제조의 지속적 운영과 개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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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은 사람을 고려한 스마트 제조 프로세스 운영에 대한 두 가지 접근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과 기계 간의 작업 수행 역량이 유사한 영역에 대한 스마트화에서는 공정 운영 권한에 대한 동적인 교환/이양방식의 체계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즉 사람과 기계가 번갈아 가면서 공정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람과 기계가 동시에 작업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권한 공유 방식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설사 기계의 작업 성능이 사람에 비해 우수한 경우라도 사람과 기계가 공정을 병행 운영하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 구조는 사람과 기계가 서로의 역량과 성능을 상호보완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기계가 작업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사람의 작업 수행을 보완하거나, 반대로 사람의 직관적이고 유연한 작업 수행 방식을 기계나 컴퓨터에 적용하는 두 가지 측면에서의 상호보완적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그동안 인간-기계 혹은 인간-자동화 상호작용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된 주제 중 하나이다.

현재 스마트 제조에서 언급되고 있는 HMI(Human-Machine Interface)는 대부분 공정의 상태 정보를 디스플레이 하는 형태로 각종 가공 장비에 모니터를 장착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를 인간-기계 시스템이 지향하는 진정한 의미의 HMI(Human-Machine Interaction)와는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스마트 제조를 통해 사람의 물리적, 인지적 작업을 지원하고, 인간과 자동화의 두 가지 요소가 통합되어 있는 전체 제조 시스템의 유기적 연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데이터와 사람

스마트 제조에서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를 떼어놓고 이야기하기 힘들 정도로 인공지능의 역할은 스마트제조에서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인공지능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기술은 대부분 데이터 분석과 활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스마트 제조가 전통적인 제조 시스템과 구분되는 부분 중의 또 하나가 바로 데이터의 활용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조 시스템에 대한 자동화는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되어 비약적인 발전을 거두었다.

이런방향에서 진행되는 자동화의 고도화와 제조 데이터활용 측면에서의 스마트 제조화가 구분되어야 한다. 사람의 인지적 제조 활동까지 고려하는 스마트 제조를 위한 제조 데이터 형태를 살펴보자.
 
스마트 제조의 대상이 되는 작업수행 방식이 확정적이거나 일정한 경우, 이와 관련된 데이터 역시 정형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CNC 장비를 이용한 절삭 가공이나 로봇을 이용한 물류 이송 작업등이 그 예에 해당된다. 이런 경우에는 기계나 컴퓨터를 이용한 데이터 기반의 스마트화가 적합할 수 있다.

반대로 경영전략 수립이나, 신규 협력기업 선정 등과 같은 복잡한 활동은 그 결과의 예측이 어려울 뿐만아니라, 그 과정 역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런과정에서 축적된 경험 이야말로 값비싼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조 활동에서의 데이터는 매우 복잡하고 표현하기 힘든 비정형적인 형태를 띤다.

이런 경우에는 사람의 역할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때에는 이런 활동과 의사결정을 위한 정보의 가시화에 초점을 맞춘 스마트화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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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 기술적으로 접근 가능한 스마트 제조의 대상을 살펴보면 그림 4와 같다.

현재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스마트 제조화의 대상은 주로 공정분석이나 개선에 집중되어 있다.

데이터를 이용한 스마트 제조가 적용 가능한 공정분석/개선에서는 제조 데이터도 비교적 분석할 수 있을 정도의 적절한 형태를 띠고 있고, 작업의 복잡도 역시 예측 가능한 정도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역에서의 스마트 제조 역시 전통적인 공정 자동화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즉, 공정을 운영하거나 감독하는 작업자와 관리자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관점에서 공정의 스마트화는 단순한 전산화나 제조 소프트웨어의 도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의 스마트 제조에 기반이 되는 제조 데이터는 장비나 설비에서 수집되는 단순한 형태의 데이터뿐만 아니라 각각의 공정 특성과 기업 현실에 맞는 암묵적 지식에 관련된 데이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데이터가 반영되지 않고서는 제조 현장에서 다양한 지식 수준과, 경험, 관심사가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스마트 제조를 수용하는 데 한계가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스마트 제조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재 제조 프로세스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앞으로 어떤 상태로 전개될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이를 인간-제조 시스템 간의 인지적 연결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인지적 연결을 고려한 데이터의 수집, 가시화, 전달에 대한 면밀한 고려가 필요한 이유이다.


결론

삶의 질 향상이라는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고 인간과 기계가 협업할 수 있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전략으로서 스마트 제조는 기업의 생존에 필요한 시대적 요구로 자리잡고 있다.
 
과거 생산방식과 제조 기술이 고객에게만 초점을 맞춘 측면이 있다면 향후에는 기업의 지속성을 위하여 제조자 맞춤형 제조 시스템으로서 스마트 제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의 물리적 작업을 대체하는 자동화와 인지적 활동과 의사결정을 고려한 스마트 제조화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전제되어야 한다.
 
사람을 대체하는 자동화보다 사람과 협력할 수 있는 스마트 제조가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장기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드웨어 중심의 기계적 자동화의 개념을 뛰어넘는 근로자의 인지적 활동에 대한 지원 측면에서의 스마트화를 통한 사람 중심(Human-Centered) 스마트 제조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제조 현장에서 의사결정의 주체들과 각 주체들의 프로세스 개입 범위와 한계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설정이 선행되어 스마트 제조 도입의 수준과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스마트 제조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점은 사람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제조와 제품, 정보와 기술의 객체이자 주체가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과거 GM이 10년간 90조 원의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했음에도 실패했던 무인화 공장인 Light-out factory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