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권두언 - 중소기업연구원 김동열 원장

법고창신(法古創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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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열 원장 중소기업연구원


작년과 올해는 무엇이 다른가? 2017년? 1년 내내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었다.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해가 언제 있었으랴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2017년만큼이나 사건사고가 많았던 해가 있었을까?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대통령 보궐선거, 인수위도 없이 출발해야 했던 새 정부,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높아만 갔던 한반도의 긴장, ‘이게 나라냐’라고 분노했던 촛불민심과 그에 기반한 새 정부의 ‘적폐청산’ 등 셀 수없이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야말로 2017년은 다사다난 그 자체였다. 무거웠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힘겹게 넘기는 심정이었다.

그런 역사를 딛고 맞이하는 2018년 무술년은 과거 어느 해보다도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 흐름 속에서 머릿속에 떠오른 분이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이었고, 다산의 스테디셀러 ‘목민심서’였다.
 
다산은 유배지였던 전남 강진에서 1818년 목민심서를 마무리했고, 올해는 목민심서 탄생 200주년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가 아닌 바로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는 공직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내용들을 조목조목 잘 정리 놓은 목민심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공염’(公廉)이라는 두 글자다.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들은 공익을 앞세우고 청렴해야 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다산이 살았던 18세기 말, 19세기 초 조선시대의 목민관들이 얼마나 부패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결국 얼마 못 가서 조선은 망했다.

그리고 200년이 지난 21세기 초 대한민국에서 뜨거운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앞에서 언급한 ‘적폐청산’이다.

작년에 국민들의 입과 귀에 자주 올랐던 단어가 ‘적폐청산’이라면 올해 무술년 한 해를 관통하는 4자 성어는 무엇일까?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다산 정약용과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고 실학파로 분류되는 연암 박지원(1737~1805년)의 ‘초정집서’에 나오는 글귀다.
 
‘옛것을 거울삼아 새것을 창조한다’는 뜻이지만, 연암은 부연 설명을 통해 “오래된 것을 토대로 삼으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새것을 창조하면서도 능히 전아함을 잃지 않는다면, 요즘 글이 바로 옛 글”이라고 덧붙였다.

연암이 제자이자 막역한 친구였던 초정 박제가(1750~1805년)의 문집(‘초정집’) 발간을 기념하여 서문을 써줬고, 그 서문에 법고창신이라는 글귀와 그 해설이 들어 있다.

재기 발랄하고 신선한 문체의 ‘열하일기’를 써서 요즘으로 치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연암의 글쓰기 철학이기도 하다.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다고 걱정하는 요즘이야말로 연암이 얘기했던 법고창신의 정신이 필요하다.
 
1970년대에 신발 산업이 한물갔다고 버렸지만, 신상품 ‘나이키 에어’는 15만 원이 넘는 비싼 신발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숙련된 기술로 고부가가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묵은 것’은 한물 간 것이나 낡은 것이 아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천천히 음미해 보면 묵은 것이 더 맛있고, 묵은 도시가 더 아름답다. 묵은 사람이 더 향기롭고, 묵은 음악이 더 감미롭고, 묵은 기업이 더 새롭기도 하다.

이 같은 법고창신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미국 대표기업이 바로 GE(General Electric)다.

GE는 1892년에 에디슨 전기회사와 톰슨-휴스턴 전기회사의 합병으로 설립된 회사다. 전구, 가스 터빈, 가전, 철도, 항공기 엔진 등을 만들던 미국을 대표하는 제조업체였다.

세계 180개국 33만 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시가총액 세계 13위의 거대 기업이다.

그리고 1896년에 처음 시작된 다우지수(DJIA)에 포함된 12개 회사 중 하나였으며, 아직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회사이기도 하다.

지난 120여 년 동안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계속해서 교체되어 온 와중에서도 유일하게 GE만 살아남은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끊임없는 변신이었다. 그런 GE가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이멜트 회장은 디지털, 산업 인터넷, 소프트웨어 분야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했다.

세계 10대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신하고, 이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125년 묵은 거대 기업이 이제 막 창업한 스타트업처럼 행동하고 기업문화를 바꿔나가고 있다.
 
법고창신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2015년에는 금융 부문을 매각했고, 2016년에는 가전 사업부를 중국의 ‘하이얼’에게 팔았다.

거대한 공룡 기업 GE가 핵심 사업부를 매각하는 변신을 통해 또 다른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 오사카에서 1983년 처음 선을 보인 ‘츠타야서점’은 2017년 말 현재 일본 전역에서 1,500여 개의 서점과 22만 개의 T포인트 가맹점, 6천만 명의 T포인트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에서 혁신의 아이콘이 된 츠타야서점의 성공 콘셉트도 법고창신이다.

도쿄 시부야의 오래된 건물을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으로 리모델링하여 ‘단카이’ 세대(일본 베이비붐 세대)의 사랑을 받고 있다.

큐슈에 있는 인구 5만 명의 다케오 시립 도서관을 츠타야서점 콘셉트로 변화시켜 매년 100만 명이 찾아오는 명소로 탈바꿈시켰다.

2018년 한국 경제도 가전, 자동차, 철강, 조선, 반도체 등 과거의 성공신화를 잊어버리고 새롭게 변신해야 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국 경제는 과연 그런 변화와 혁신, 법고창신의 자세가 되어 있는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앞서갈 수 있을까? 법고창신이라는 네 글자 속에 스타트업과 스케일업, 혁신성장, 신성장동력 육성, 일자리 창출의 해법이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