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과학탐구 - 인간은 개를 만들고, 개는 인간을 길들인다
생활 속 과학탐구는 일상생활 속 물리학, 첨단과학, 과학일반에 대해 살펴봅니다.
글_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2018년 무술년은 개띠 해다. 개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인간과 개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알려준다.
몸무게 38㎏에 달하는 육중한 알래스카말라뮤트와 다 자라도 3㎏이 안 되는 치와와는 모두 개다.
이다지도 크기와 생김이 다른 두 동물이 같은 종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전 세계 개의 품종은 340~350가지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척추동물 중에서 가장 많은 변종을 가졌다. 이들 대부분이 최근 2백년 새 만들어진 품종이다.
인간이 용도와 목적에 따라 인위적으로 품종을 개량한 결과이다.
사냥과 운반, 양치기 등 인간을 돕는 개의 역할은 줄어들었지만, 개는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삶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한국펫사료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반려견의 수는 369만마리에 달한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개의 기원과 개가 인간에게 애착을 느끼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려고 애써왔다.
< 종의 기원 >을 쓴 찰스다윈이 대표적이다.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거북이나 피리새 같이 희귀한 동물을 연구한 걸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상 그가 일생을 들여 가장 오래 관찰하고 관심을 기울였던 동물은 다름 아닌 개였다.
엠마 타운센드는 저서 < 다윈의 개 >에서 “다윈에 관한 기록에는 개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해서 등장한다.”며 다윈이 고대 이집트 시대에 살았던 개에 관한 증거, 4천 년 전의 개 사육과 관련된 자료도 낱낱이 파헤쳤다고 기록한다.
< 종의 기원 >, < 가축화에 따른 동식물의 변이 >, < 인간의 유래 > 등 다윈의 저서 상당 부분은 개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일생을 두고 개를 관찰하고 증거를 수집했지만 그저 가설에 불과하였다.
다윈은 DNA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DNA 분석을 통해 개의 기원을 추적하고 있다.
처음 개의 게놈지도가 만들어진 해는 2003년, 주인공은 섀도라는 푸들이다.
이 개는 최초로 인간 게놈지도를 만든 크레이그벤터의 애완견이었다.
이후 다양한 화석과 표본에서 개과 동물의 DNA 추출이 이뤄졌다.
개는 유라시아 회색늑대에서 분화된 종이라고 추정하지만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정확치 않다.
40만 년전부터 1만 5천 년 전까지 학자마다 추정하는 시기가 크게 차이난다.
지난 2015년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포터스 스코그런드 교수 연구팀은 커런트바이올로지에 시베리아 타이미르에서 발견한 약 3만 5천 년 전 늑대의 갈비뼈 유전체 염기서열을 보고했는데, 연구에 따르면 개와 늑대가 분화된 것은 대략 2만 7천 년~4만 년 전의 일이다.
이러한 추정에 따르면 개는 돼지, 닭 등 다른 가축과는 달리 인간이 농경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함께했던 유일한 동물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사람과 함께하게 되었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 팻 쉽먼 교수는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개를 사냥에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생존했다며,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이유로 ‘개’를 든다.
개를 길들인 시기가 3만년 전이라면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을 설명하기에 그럴 듯한 논리다.
인간과 개는 서로를 도와 사냥을 했을까? 어떻게 의사소통을 했을까? 과학자들은 개와 인간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의사소통을 했으리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지난 2014년 일본 도쿄공업대학 사요코 우에다 교수 등의 공동 연구는 개과 동물들 중 동공보다 홍채가 밝아 눈의 형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회색 늑대, 코요테 등은 눈을 식별하기 어려운 너구리, 리카온 등에 비해 무리 지어 생활하며 협동해서 사냥하며, 시선을 사용해 의사소통을 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사람과 개는 눈알을 싸고 있는 막이 희다. 흰자위가 있다. 때문에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눈만 보고도 알 수 있다.
침팬지 눈에는 이런 흰자위가 없다. 간혹 흰자위가 있는 침팬지가 있지만, 이는 열성 돌연변이다.
침팬지처럼 네안데르탈인에게도 흰자위가 없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현생 인류보다 개와 소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가설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과 개의 관계를 ‘인간이 개를 길들였다’는 말로 요약하기엔 개가 인류의 생존에 기여한 바가 크리라 짐작할 수 있다.
개들은 눈빛을 교환하며 함께 사냥하는 동반자였다.
개는 감정표현에 능하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개가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고 느낀다.
특히 개들은 관심을 끌고 싶을 때 귀를 쫑긋 세우며 눈썹을 올려 눈을 더 크고 슬퍼 보이게 만든다.
다윈이 산책 대신 온실로 갈 때 실망하는 개의 얼굴을 부르던 ‘핫하우스 페이스(Hothouse face)’가 바로 그것이다.
개는 한껏 애처로운 강아지 얼굴을 하고 눈을 맞춘다. 개가 이렇게 인간과 눈을 맞추는 시간은 40초에 이른다.
늑대의 경우는 1초에도 미치기 어렵다.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연구팀은 개의 뇌는 고양이와 크기가 비슷하지만 지능에 영향을 미치는 신경세포는 개가 5억 3천만 개로 고양이 2억 5천만 개의 2배를 넘는다고 밝혔다.
개는 우리 생각보다 더 똑똑하고, 우리를 잘 알기 때문에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 것이다.
또 훈련된 개의 뇌를 MRI로 촬영하면, 웃거나 우는 소리에 뇌가 반응하는 움직임이 인간과 유사하다고 한다.
그러니 나의 슬픔을 개가 알고, 위로해 주는 느낌은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다.
더 이상 사냥을 위해 개가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지만 인간이 개를 곁에 두고 살고 있는 것을 보면 길들여진 쪽은 개가 아니라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개가 인간에게 느끼는 친밀함은 유전자에서 비롯된다는 연구도 있다.
지난 2010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브리지트 폰홀트 교수는 낯선 사람을 봐도 낯을 가리지 않고 사회성이 지나친 장애인 윌리엄스보이렌 증후군과 개가 인간에게 보이는 친밀함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폰홀트 교수는 지난해 새로운 연구를 통해 특정 유전자의 단백질 성분에 변이가 일어나면 사회성에 영향을 미친다며, 개 염색체 6번에서 일어나는 GIF21 단백질의 변이와 인간 염색체 7번에서 일어나는 윌리엄스 보이렌증후군 사이에 연관이 있다고 밝혔다.
개가 농경사회에 적응하면서 유전자에도 변화가 일어났다는 연구가 있다. 개가 탄수화물 소화가 가능한 상태로 진화했다는 연구다.
지난 2013년 스웨덴 웁살라대학 린드블라드토 교수 연구팀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14종의 상이한 개 60마리와 늑대 12마리 유전자를 분석해 개와 늑대의 차이점을 연구한 결과 개의 몸에는 늑대와 달리 탄수화물 소화를 돕고 지방을 분해하는 유전자가 10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연구결과들은 개가 늑대와는 외형 뿐 아니라 유전자부터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개가 인간에게 길들여져서 인간과의 생활에 적응한 결과물인지, 반대로 개가 유전적으로 늑대와는 다르게 진화했기 때문에 인간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인지는 확인해주지 않는다.
개는 유라시아 회색늑대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늑대는 개와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는 점뿐이다.
개의 기원과 진화과정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퍼즐이 아직 많이 숨어 있다.
2018년 무술년 개띠 해를 ‘개는 대체 인간과 어떤 관계일까’를 생각하며 시작해 보자.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 개를 탐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간에 대한 궁금증도 하나씩 풀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