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술경영인인터뷰

SK바이오랜드(주) 이옥섭 부회장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에서는 기술경영인과의 대담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기술경영인의 역할과 리더십 등을 알아봅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어여쁜 마음의 기술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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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작성_변남석 교수(서강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김공숙 전문작가(프리랜서)


흥미로운 뉴스가 들린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소중한 내 피부를 위한 똑똑한 화장품 사용법’이라는 책자를 중·고등학교는 물론 전국 초등학교에까지 배포했다는 소식이다.

화장품이 성인 여성만의 전유물인 시대는 지났다. 남녀노소 전 연령층이 화장품을 바른다.

동의보감의 나라답게 국내에서 요즘 가장 흔한 화장품 종류는 한방 화장품이다. 한방 화장품을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궁금하다.

주인공은 바로 바이오랜드의 이옥섭 부회장. 한방 화장품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일반명사처럼 되어버린 기능성 화장품인 레티놀 제품의 연구개발도 처음 주도했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에서 37년을 한국의 화장품 제조 기술을 끌어올리는 데 열정을 불살랐다.

오늘날 한류의 큰 축을 담당하는 K-뷰티의 기초에 국내 화장품 연구개발과 기술 경영의 노하우를 축적한 이 부회장의 진한 땀과 노력이 배어 있다.


K-뷰티 전성시대의 발판을 마련한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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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대한민국 10대 신기술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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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독일 슈바르츠 제약과 진통제 신약 기술 공동연구 및 기술 라이선싱 계약을 체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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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정진기언론문화상 과학기술 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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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보건산업기술대전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하였다.


한류 열풍과 함께 대한민국 화장품이 아시아의 맹주로 부상하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 지역에서 큰인기를 얻고 있다. 말 그대로 K-뷰티 전성시대이다.

화장품 산업은 최근 몇 년째 두 자릿수 이상 급성장을 하며 신성장 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화장품 산업은 정밀화학 및 바이오 기술이 결합된 분야로 기술집약적이며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다.
 
그러나 과거 국가로부터의 정책이나 경제적인 지원과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화장품 산업이 한국을 대표하는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는 뛰어난 화장품 기술력 덕분이다.

최근의 한류효과는 수많은 뛰어난 화장품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흘려온 피와 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한국 화장품 연구와 개발사의 산증인답게 이옥섭 부회장의 얼굴에는 영광의 훈장이 새겨져 있다.

화장품을 연구하면서 직접 자신의 얼굴에 발라보곤 하는데 원료 농도가 너무 높아 얼굴 피부가 홀랑 벗겨지는 사고를 당한 흔적이 작은 흉터로 남아 있는 것이다.

“연구개발하는 화장품 원료를 저도 바르고 아내에게도 발라보게 합니다. 흉터가 생긴 것은 1990년대에 아이오페라고 하는 기능성 화장품을 개발할 때의 일이에요. 사고로 인해 피부과를 두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다행히 고생 끝에 만든 신제품이 히트를 쳐서 흉터가 훈장이 되었지요.”

얼굴의 흉터뿐이겠는가. 연구원 시절에는 연구과제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퇴근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고 종점까지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연구에 너무 몰입하다가 어떤 때는 꿈속에서 원료 성분 비율이 떠오르면 새벽에 일어나서 남들이 출근하기 전에 확인하겠다고 부리나케 새벽 출근을 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결과적으로 꿈에서 점지 받은 비방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다.
 
원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한방 화장품 원료를 찾기 위해 전국의 인삼밭을 누비고, 적송(赤松)을 찾기 위해 서해 대청도까지 찾아다닌 열정은 값진 결과를 안겨 주었다. 국내 최초로 한방 원료를 화장품에 접목시켜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이다.

이옥섭 부회장은 화장품 업계에서 유일하게 2010년 광복 60년간의 대한민국의 기술을 대표하는 ‘대한민국 100대 기술과 주역’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

또한 희귀 홍삼 성분인 ‘진세노사이드’를 대량으로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여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제품에 적용한 결과 기능성 화장품 원료의 수입 대체효과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화장품을 명품 브랜드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1996년 국내 최초로 선보인 주름 개선 화장품인 ‘레티놀’도 그의 작품이다. 특허대상, 장영실상 등 수많은 기술상을 받으며 화장품업계에서 뛰어난 연구 성과를 인정받았다. 명실상부한 K-뷰티의 든든한 초석을 마련한 주인공이다.

이옥섭 부회장이 화학자의 꿈을 꾸게 된 것은 다소 교과서적이다. 어린 시절 읽은 퀴리 부인의 전기에 크게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린 이옥섭은 알코올램프를 구해 불을 붙였다가 끄기도 하면서 가난과 추위 속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마리아 스클로도프스카(퀴리부인의 본명)’를 마음에 새겼다.

결국 서울대학교에 진학해 응용화학을 전공하고 1976년 (주)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 연구소에 입사하면서 화장품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지금까지 화장품 분야의 연구개발에 매진하며 수많은 히트 제품과 기술개발을 선도해 한국 화장품 업계의 성장을 일구었다.

아모레퍼시픽에서는 기초제품연구실장, 화장품 생활용품연구소장을 거쳐 2000년에는 기술연구원의 원장에 올랐다. 그는 아모레퍼시픽의 글로벌 성장뿐 아니라 한국의 화장품 기술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3년에는 오래 몸담아온 아모레퍼시픽을 떠나 화장품, 의약품, 기능성 식품의 ‘원료’에 주력하는 SK 계열의 바이오랜드의 부회장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고객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으로 42년

화장품은 아름다움을 만드는 상품이다. 이옥섭 부회장이 생각하는 화장품 연구는 고객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애틋함으로 가련히 여기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아름다움은 ‘어여쁘다’는 뜻입니다. 화장품을 연구하는 자세란 사람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화장품을 사용했을 때 얼마나 아름다워질까를 생각하며 고객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 없이 연구하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없습니다.”

요즘 어떤 원료를 넣었다고 좋은 화장품이라고 자랑하는 광고들을 간혹 보게 된다. 줄기세포로 만들었다, 유기농 성분이 얼마 들어 있다 하는 선전들이다. 이런 광고에 대해서 화장품 전문가로서 어떤 답을 할지 궁금했다.

“연구원이라면 좋은 원료를 많이 넣었다고 해서 좋은 화장품이라는 얘기를 할 수 없습니다. 화장품은 각각의 성분들의 ‘조화’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품이 어떤 성분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좋다고 하는 것은 마치 음식에서 설탕이 많이 들어가 달콤함이 뛰어나 맛있다고 하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도 사용하는 원료 자체가 마치 곧 화장품인 것처럼 광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효과 있는 좋은 성분을 개발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음식에서 신선한 재료와 소금, 설탕 등 맛을 내는 성분이 적절히 조화를 이뤘을 때 훌륭한 요리가 되는 것이지 결코 단맛, 짠맛 등이 요리의 본질이 아닌 것처럼 화장품도 사용되는 성분 자체는 중요하지만 결코 성분이 제품자체는 아닙니다.”

특정 성분이 들어가 좋다고 하는 광고는 허위, 과장광고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이다. 진정한 명품은 특정 원료가 들어갔다고 하여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옥섭 부회장이 개발한 대표적인 명품 화장품이 있다. 여성들이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한다는 설화수 윤조 에센스라는 제품이다.

단일 품목으로 1조 원 이상을 판매했으며 1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최고의 히트 상품이다. 이 제품은 지극히 평범한 액상 제품이다.

요즘 화장품 업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유기농 화장품도 발효 화장품도 식물성 화장품도 아니고 줄기세포를 사용한 것도 아니다.
 
흔히 말하는 상처 치유, 미백효과, 항염 효과 등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파라벤 프리(Paraben-free) 같은 문구도 없다. 그저 지극히 평범하게도 ‘피부에 촉촉함을 주며 윤기를 줍니다’라는 소박한 카피뿐이다.
 
에센스로서 상식적 효과밖에는 나타내지 않고 있고 성분도 한약 성분 몇 종류의 추출물을 사용했다는 것 밖에는 없다.

가격도 결코 싸지 않다. 요란하게 광고나 홍보를 하는 것도 아니다. '1+1'같은 세일도 없다. 그런데 매년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왜 이 제품을 계속 찾을까.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 제품의 성공 비결은 뭘까.

“제품을 연구하고 개발할 때 소비자의 피부를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연구자의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개발자의 ‘정말 좋은 제품이 되었으면’ 하는 고민이 제품 속에 녹아들어 가 수많은 실험을 통하여 개발자 스스로 감동하는 진짜 잘 만들어진 제품이 개발되었고, 그것이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되고 그래서 끊임없이 이 제품을 찾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본질에 치중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매년 새로운 화장품이 수없이 개발되지만 진짜 명품이 되는 제품은 극히 소수이다.

이것은 매년 수많은 책이 출판되지만 그중 많은 사람들이 찾는 책은 극히 소수이고, 수많은 음악이 작곡되지만 널리 퍼지는 음악은 몇 곡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마음을 움직이는 책은 수백 년이 지나도 고전으로 읽히고 클래식 음악은 지금도 수없이 연주된다. 결국 작가나 작곡가의 생각과 감동이 시간이 지나도 우리의 가슴에 와 닿고 있기 때문이다. 화장품도 마찬가지이다.
 
명품을 만들고 싶다면 화장품의 본질을 잊지 않고 고객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으로 많이 연구하고 만들어 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만든 사람이 스스로 감동할 만한 제품이 되었을 때 소비자도 감동하고 그 감동이 널리 전파되어 저절로 명품이 되는 것이다.

“명품(名品)의 품(品) 자를 보면 세 개의 입(口)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품(品)이라는 글자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 개의 입을 말하는 소리라고 본다면 하나는 만든 사람의 소리, 하나는 전달자의 소리, 마지막 하나는 사용자의 소리입니다. 세 가지 소리가 합쳐져 균형을 이루고 그 크기가 커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는 것이 곧 명품이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셋의 균형이 깨져 만든 사람의 소리만 커지면 아전인수 격으로 정말 좋은 제품인데 왜 판매가 되지 않을까하는 불평이 나올 것이고, 전달자의 소리만 크면 과대광고가 되어 결국 시장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사용자의 소리는 대개 불만의 소리일 가능성이 많지만 다행히 좋은 소리가 크게 나면 입소문을 타고 판매가 늘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만든 사람, 전달자, 사용자의 소리(口)가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글자(品)가 되듯이 명품도 그렇게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의 명품론을 듣다보니 화장품 연구자이자 기술경영인으로서 살아온 이 부회장의 삶의 철학과 깊이가 느껴졌다.

그는 ‘어떤 것의 가치는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한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가지고 싶어 하는 명품은 만든 사람의 정신과 땀이 그 속에 녹아 있는 것이지 실수나 우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화장품도 수많은 실험과 정성이 제품 속에 녹아든 것이 좋은 화장품이다. 이옥섭 부회장은 명품과 생명체의 특징 간에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명품은 생명을 갖는 상품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생명은 세포가 막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어떤 경계를 가지고 분리되어 있으며, 엔트로피(질서의 척도)를 감소시키고, 핵산(DNA)의 재결합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명품 또한 생명체의 특징인 차별성, 단순성, 창조성을 갖고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명품이 되려면 첫째, 기본적 기능과 효용에 충실해야 하며 둘째, 핵심요소가 쉽고 단순하여 쉽게 기억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제조자의 정성이 소비자의 마음에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과학과 지식에 대한 겸허

이옥섭 부회장이 오래 몸담았던 아모레퍼시픽이 원료 혼합 기술을 쓰는 곳이었다면 현재의 바이오랜드는 원료를 분리하는 기술이 위주라고 한다.

혼합에서 분리분야로 이동하고 보니 혼합보다는 분리가 어렵다고 느끼고 있다.
 
이 부회장이 화학 연구자이자 기술경영인으로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깨닫게 되는 한 가지는 과학과 지식, 앎에 대해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하여 기술의 변화와 발전이 눈부신 것 같지만 정작 인간의 DNA와 몸은 크게 변한 것이 없어요. 우리가 생명과 자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매우 적습니다. 우주의 거시적인 규모에서 뿐만 아니라 생명, 세포, 단백질 등 미시적 측면에서도 인간의 지식은 매우 미미합니다. 피부에 대해서도 겉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만 조금 알 뿐이에요. 일례로 생명체는 단백질을 순식간에 수천 가지 이상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사람이 연구하면 한 가지를 만드는 데 한 달씩이 걸립니다. 평생 화장품을 연구했지만 저도 이제 겨우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1%도 안 되는데 거기에 0.01%를 더할 수 있을까? 그 정도예요. 사실 그것조차도 잘 모르겠습니다.”

첨단과학 기술의 시대에 한국 화장품 업계 최고의 기술경영인이 생명과 자연의 준엄함과 불가사의에 대해 경외심을 표하는 것을 들으니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부회장은 연구원 재직 중에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한화장품학회장을 지낸 학계에서도 저명한 학자이다.

화장품 및 원료 등에서 특허 57건을 가지고 있고 논문도 국내외 30여 편을 발표하며 학습과 연구를 지속해 왔다.

그래도 생명과 자연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기에 연구원들에게는 화장품 연구가 평생 무궁무진하게 연구할 것이 많은 분야이고 즐겁고 행복한 일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람은 자연체입니다. 자연과 같이 가야 하는 것이지요. 화장품의 원료도 결국 자연의 5가지 원료입니다. 새로운 원료로는 좋은 상품이 되기 어렵습니다.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거나 생산성이 너무 낮기 때문입니다. 좋은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수많은 원료 중에서 무엇을 얼마나 선택하여 어떠한 것을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작가가 수많은 언어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여 감동을 주는 시나 소설을 쓰느냐 하는 것과 비슷하고, 또한 작곡가가 음을 선택하여 아름다운 멜로디와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 부회장은 조화가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하며 한 화장품 회사의 예를 든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일본의 ‘가○○’라는 화장품기업에서 새로 개발한 미백성분이 백반 증을 일으켜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미백 제품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생체에서의 조화는 무시하고 단지 미백효과만을 생각하고 더 우수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욕심이 빚어낸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래전 중국의 노자(老子)는 ‘재앙은 심한 욕망 때문에 생기고, 우환은 분수를 모르고 넘치게 얻으려 하기 때문에 생기고, 화는 만족을 모르는 정도가 더없이 크기 때문에 생긴다(知足之爲足 罪莫厚乎甚欲 咎莫僭乎欲得禍莫大乎不知足)’는 말을 남겼는지도 모릅니다.”

이 부회장은 모든 것에는 균형과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적당히’도 때로는 필요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무사안일이 아닌 ‘균형 감각’과 ‘본질의 추구’를 의미하는 차원에서이다.

음악으로 말하면 독주곡이 아니라 교향곡처럼 서로 적당히 어우러져야 아름다움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인재는 뽑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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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아모레 퍼시픽 제2연구동 미지움 준공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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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대한민국 100대 기술과 주역으로 선정되었다.


이옥섭 부회장은 신입 연구원이 들어오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상에 진 빚을 기술로 갚으라고 합니다. 그런 마음만 가지면 혁신적인 기술과 성공적인 결과는 따라오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자신과 소비자에게 떳떳할 수 있는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신제품을 과대 선전하는 것은 첫 번째로 내세우는 금기사항입니다.”

기술경영인으로서 강조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다.

둘째, 무엇을 연구하여 성과를 낼 것인가 하는 연구과제의 관리이다.

셋째, 효율적인 연구가 진행되기 위해 조직과 시스템을 만들고 창조적인 연구 분위기를 확산하는 일이다. 연구개발은 개인만의 노력이나 우연이 아니다.

조직의 시스템으로서 성과를 창출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 부회장이 연구개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어떻게 인재를 육성하여 연구개발의 본질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하느냐는 것이다.

“인재를 채용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재로 키우는 일입니다. 연구 시설과 장비는 돈이 있으면 갖출수 있지만 인재는 그렇게 얻을 수 없습니다.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장점을 살려 연구원이 가지고 있는 핵심 역량을 발휘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연구원이 생각하는 방향, 연구 방법 등을 체득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스스로 연구과제를 기획하고 실험하여 결과를 내도록 격려해 왔습니다.”

이 부회장은 각 연구원을 역량에 맞는 분야에 배치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나아가 순환근무를 실시해 다양한 연구 경험을 쌓고 새로운 업무에서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연구원은 전문 분야를 벗어나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태도가 쌓이면 조직 간에 벽이 생기기도 하고 상위리더의 자질을 개발하는 데 실패하기도 한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연구원뿐 아니라, 팀장, 연구소장의 순환근무를 통해 장벽을 제거하고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부회장은 인재들이 역량을 발휘하려면 연구 이외의 문제로 부담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이 많은 기업들이 최근에야 도입하고 있는 사내 어린이집을 진작부터 운영하여 여성 연구원들의 육아 부담을 선도적으로 해결해준 것이 그 예이다. 이로써 자녀가 있는 연구원들의 직장 만족도가 높아졌고 연구 효율도 상승했다.

연구원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올바른 연구과제를 선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객의 니즈와 트렌드의 변화, 기술의 변화를 알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른 산업의 변화, 경쟁사의 변화, 논문 등을 통한 과학의 발전 방향을 같이 보아야 한다.
 
이 부회장은 과거 화장품 기업에 있으면서도 전자 기술 등 관련 기술을 지속적으로 살펴 왔다. 기업이 지속성장을 하고자 한다면 균형 있는 연구과제 포트폴리오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변화의 속도가 빠른 화장품 산업에서는 단기 과제로 시장에서 매출과 성장을 이끌어 내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2, 3년간 상당한 연구 투자가 필요하고, 중기적 지속성장을 위해 집중할 전략 연구와 장기간 연구가 필요합니다. 불확실성이 높지만 미래를 위해 필요한 기초 연구과제의 적절한 포트폴리오가 매우 중요합니다.”

시장의 요구, 마케팅의 요구에 의한 과제만이 아니라 연구소 스스로도 미래를 준비하는 자체 과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업 자체 과제의 경우 일부의 전략적인 과제를 제외하고는 많은 부분을 연구원 자신이 결정해서 연구하게 할 필요가 있다.

연구원이 연구과제를 선정할 때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바로 고객의 관점이다.

“연구원 스스로가 ‘나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연구 개발하기 위해 무엇을 연구하고 있다. 무엇을 연구한다는 것은 이러 이러한 이유로 고객이 원하는 것이다’라고 고민해 봐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연구의 최종목표와 연구가 이루어졌을 때의 변화를 예측하여 과제를 선정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술경영인의 입장에서 연구과제의 발굴보다 더 어려운 것은 진행 중인 것 중에 중단할 과제를 결정하는 일이다.
 
특히 새로운 원료를 찾고 많은 성분을 다루는 화장품 기초연구의 경우 수많은 시도를 통해 성과를 만들어 내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중단 과제결정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정리해야 할 과제는 과감한 정리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과제의 시작 시점과는 달리 시장과 사업성이 현저하게 변화한 한 경우, 경쟁업체의 선 출시로 경쟁우위가 없어지는 경우, 기술적인 난관으로 오랫동안 진척이 없는 경우 등이다.

중단 과제를 정리할 때에는 연구원의 사기가 저하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실패도 인정할 수 있는 연구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연구원은 절대 연구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많이 다투기도 하지요. 그러나 과제를 중단할 때 특히 인재 육성의 측면을 고려해야 합니다. 과제 중단의 책임은 철저하게 상사가 지게 하고 연구원은 새로운 분야나 중단 과제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다른 가치 있는 분야로 재배치시켜 도전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것이 리더의 역할입니다.”


도덕경을 마음에 새기는 기술경영인

이옥섭 부회장은 인터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메모지를 요청했다.

평소에 직원들에게 지시를 하거나 보고를 받을 때 구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들은 내용을 요약하고 되물어 제대로 파악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항상 메모하는 습관이 있는데 인터뷰에도 필요할 것 같아서라고 한다.

그는 메모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좋은 글은 꾸준히 필사한다고 한다. 특히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은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꼭 베껴 쓰기를 하는 애독서이다.
 
도덕경의 글귀들을 머리로만이 아니라 손으로, 마음에 새기려는 것일까. 좌우명이 무엇인지 질문하자 마치 해답을 쓰듯이 줄줄 적어 내려간다.

‘자신을 속이지 말자(공자), 고칠 수 없으면 참아라(석가),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예수)’ 공자님 말씀과 불경, 성경이 꽂혀 있을 그의 책장이 상상되었다.

책이 많겠다고 했더니 자신의 책장에는 300여 권이 꽂혀 있다고 답한다. 새로운 책을 사면 반드시 한 권은 빼서 처분을 하여 늘 300여 권이 고정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많은 책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가 정한 원칙이다.
 
전문서적 외에 앞서 말한 애독서들과 < 작은 아씨들 >, < 어린 왕자 >와 같은 동화책부터 고전, 시집 등 다양한 분야의 도서들이 책장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외우고 있는 시도 수십 편이다. 이옥섭 부회장은 가장 좋아하는 시로 유치환의 < 바위 >와 이호우의 < 그저 오늘로 >를 들었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 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는 < 바위 >와 ‘그대 어젯날을 탓하여 어이리오··· 나날이 그저 오늘로 자랑하여 살랴오’라는 < 그저 오늘로 >의 구절이 어쩌면 반대의 서정을 노래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언뜻 상반되어 보이는 두 작품을 애독 시로 꼽은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옥섭 부회장은 한 분야에 끝까지 파고들어 최고의 자리에 오른 ‘바위’와 같은 조용한 강인함이 있다.

그와 더불어 어제와 내일에 연연하지 않고 주어진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여유와 부드러움을 겸비하고 있다.

그가 강조했듯이 서로 다른 것의 치우침 없는 조화는 아름다움을 만드는 제품을 만드는 비결일 뿐 아니라 기술과 경영은 물론 인생길을 아름답게 만드는 모범 답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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