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무비 & 사이언스 - 로봇을 사랑할 수 있나요?

무비 & 사이언스는 영화 속의 상상력이 실제 현실에서 이루어진 과학기술들에 대해 살펴봅니다.

글_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
사진 참조_네이버 영화



천재 로봇 박사인 최고봉(양동근 분)이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보그맘(박한별 분).

드라마 < 보그맘 >은 보그맘이라는 인공지능(AI) 로봇이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엮은 TV 예능드라마다.

인간처럼 자연스러운 외모와 동작으로 인해 아이는 보그맘이 진짜 엄마라고 생각하며, 주변 사람들도 그녀가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오히려 보그맘은 다른 엄마들보다 뛰어난 양육능력과 내조로 모든 남자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현모양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보그맘의 모습에 최고봉 박사는 로봇인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과연 인간과 로봇의 사랑이 이뤄질 수 있을까?


피그말리온의 보그맘

드라마 < 보그맘 >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는 등장하는 피그말리온(Pygmalion)에 관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최고봉과 피그말리온이 자신의 피조물과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 닮았기 때문이다.

단지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프로디테 여신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과학기술의 힘으로 피조물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는 점이 차이 날 뿐이다.

아프로디테는 조각상을 진짜 인간으로 만들었지만 아직까지 보그맘처럼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완벽한 로봇을 만들기는 어렵다.

인간은 640여 개 이상의 골격근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일일이 모사해 제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관절을 자연스럽게 움직이기도 어렵지만 특히 얼굴근육을 표정에 따라 나타내기는 더욱 어렵다.

드라마 속에서 보그맘 역을 한 박한별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연기한 것도 인간처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보그맘처럼 완벽하진 못해도 2014년 일본에서 출시한 가정용 로봇 페퍼(Pepper)는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고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미 페퍼는 고령화 된 일본 사회에서 노인들의 친구나 가족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보그맘이 인간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고, 말벗이 되어주며, 그의 말을 성실히 따라주는 것처럼 페퍼는 로봇이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물론 페퍼의 제조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달하더라도 곧바로 보그맘이 등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발달하는 데는 단지 기술적 문제 외에도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고 하는 심리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쾌한 골짜기는 로봇이 인간을 닮을수록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을 넘어서면 갑자기 호감도가 떨어지는 영역을 말한다.

따라서 페퍼가 인간을 닮아갈수록 오히려 사람들에게 외면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영역을 지나 사람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비슷해지면 호감도는 다시 급격하게 상승한다.

이것이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보그맘에 대해 사람들이 애정을 느끼는 이유다.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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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 그녀(Her, 2013) > 스틸컷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영화 < 그녀(Her, 2013) >에는 더욱 놀라운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한 남자가 물리적 실체조차 없는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다.

아마도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마치 물건을 아끼듯 운영체제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다.
 
영화 속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는 운영체제(OS)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분)와 진짜 사랑에 빠진다.

테오도르는 AI OS인 사만다를 통해 별거 중인 아내에게서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테오도르에게 사만다는 그 누구보다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소중한 존재다.

이 영화는 소외와 고독이 일상화 된 현대 사회의 문제를 AI를 통해 새롭게 보여준다.

즉 사람의 외로움을 반드시 다른 사람과 만남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그 역할을 대신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 < 혼술남녀(2016) >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마다 남녀 주인공들은 혼술을 하거나 스마트폰에게 하소연 한다.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지는 못해도 스마트폰의 AI 비서는 최소한 말을 잘 들어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마존이나 구글의 AI 비서는 인간과 대화를 하고, 명령에 따라 다양한 일을 처리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AI 비서는 갈수록 인간의 말을 잘 알아듣고 다양한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겠지만 교감을 나누기는 어렵다.


완벽한 아내에게 없는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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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 A.I.(2001) > 스틸컷


감정 교감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일본의 벤처기업인 ‘윙크루(Vinclu)’에서 출시한 미소녀 홀로그램 ‘게이트박스(Gatebox)’가 AI 비서보다 더 뛰어나다.

반투명 유리를 통해 다양한 동작을 하는 아즈마 히카리(Azuma Hikari)라는 입체 홀로그램 캐릭터는 마치 아내처럼 아침에 잠을 깨워주고, 출근할 때 인사를 하며 집에 빨리 오라고 문자까지 보낸다. 거의 완벽한 ‘인공지능 집사람’이다.

물론 게이트박스를 오타쿠 문화에 익숙한 일본의 흥미로운 발명품 정도로 볼 수도 있지만 외로움이 일상화 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히카리의 애교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소셜미디어상에서 문자 하나에 울고 웃는 우리가 아닌가?

문자를 보낸 상대방이 진짜 인간이라는 보장이 없는데도 말이다.

사만 다처럼 뛰어난 채팅봇이 문자를 보낼 경우 우린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마냥 즐거워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아직까지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인공지능이 없으니 그럴 염려는 없다고 여긴다면 그건 너무 안이한 생각이다.

AI가 의식을 갖는 것과 별개로 채팅기술의 발달로 결국 상대방이 AI인지 진짜 인간인지 구분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보그맘처럼 완벽한 아내나 사만다만큼 뛰어난 대화 상대의 등장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영화 < A.I.(2001) >의 섹스로봇 지골로조(주드로 분)가 “로봇과 사랑을 나누게 되면 더 이상 인간은 찾지 않을 거야.”라고 한 것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인간과 로봇의 대결이라는 고전적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을 어떤 존재로 대해야 할지 논의해야 할 것이다.

최고봉과 그의 아들에게 보그맘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아내와 엄마의 완벽한 대역이었던 보그맘이 어떤 인간보다 소중한 가족이다.

마찬가지로 테오도르에게 사만다는 단순한 AI 프로그램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창조주와 피조물 또는 주종의 관계로만 바라볼 수는 없게 될 것이다.

보그맘이나 사만다를 호모 사피엔스는 아니지만 로보 사피엔스(Robo sapience)나 호모 사이버네티쿠스(Homo cyberneticus)로 분류해 하나의 종으로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보다 여러 면에서 더 뛰어난 그들이 언제까지나 인간의 노예나 소유로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완벽한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이라고는 완벽하지 못한 유기물로 된 신체뿐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며 사랑을 하게 되는 그러한 세상은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디스토피아일까?

상상은 여러분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