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 VUCA 시대, 혁신리더가 이끈다
▲ 백기복 교수
국민대학교 경영대학
정치적 혁명이 많은 사상자를 내듯이, 산업혁명은 수많은 기업들을 몰락시킨다. 4차 산업혁명은 그 “불예측성”과 “폭발성”으로 말미암아 어느 혁명보다도 더 심각한 피해를 가져올 것이다.
혁신하지 않는 기업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 혁신이 기업의 생명이라면, 리더는 혁신의 파일럿(Pilot)이다. 혁신리더가 혁명의 주인공이다.
혁명은 기업의 운명을 결정한다
혁명(Revolution)은 많은 피해자를 낳는다. 프랑스혁명(1789~1802)의 여파로 피살된 사람들만 140만 명에 이른다. 권력자는 몰락하고 부자들 중에는 거지가 된 사람들이 많았다.
존경받던 인사가 죄인이 되어 옥에 갇혔고 잘나가던 사람들이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 나갔다. 1917년 2월에 촉발된 러시아의 볼셰비키(Bolsheviks) 혁명은 더 했다.
역사가들은 이 혁명으로 살해된 사람들이 약 1,000만 명에 이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래가 위가 되고, 안이 밖이 되는 사회적 파괴의 결과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치 혁명만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산업에서의 혁명도 수많은 기업들을 몰락시켰다.
1980년대에 시작된 3차 산업혁명(Charles Schwab), 즉 디지털 혁명은 세계 필름 시장의 약 90%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던 코닥(Kodak)과 휴대폰시장 세계 1위를 하던 노키아(Nokia)를 삼켜 버렸다.
서기 2000년 포춘(Fortune) 500대 기업들 중에서 약50% 이상이 십수 년 만에 디지털 혁명으로 사라졌다.
전 미국을 휩쓸던 비디오 대여업체 블록버스터(Blockbuster)사를 비롯하여 Motorola, Sun Microsystems, Yahoo 등도 이 부류에 포함된다.
대량생산과 생산 자동화로 대변되는 2차 산업혁명이 발아되던 시점에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는 약 3,000개가 넘는 자동차 회사들이 출몰했었다.
세기의 자동차로 평가받는 Ford의 "Model T"가 소개된 1908년에만 해도 100개가 넘는 자동차 회사들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대량생산(Mass-production)이라는 혁명적 시스템 앞에 이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처럼 혁명은 기업의 운명도 결정한다.
4차 산업혁명도 많은 피해를 낳을 것이다. 인공지능, 나노기술, 유전자염기서열분석(Gene sequencing), 재생에너지, 퀀텀 컴퓨팅, 3D 프린팅, 자율운행차 등 무인 운송수단,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 로보틱스, 드론, 생명공학, 사물인터넷 등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산업혁명의 공격성에 대부분의 인류가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아래의 두 사진은 기계로 대표되는 2차 산업혁명과 연결로 표현되는 4차 산업혁명의 성격을 뚜렷이 보여준다.
그림 1-a는 찰리 채플린의 1936년 무성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에 나오는 영상 컷이다. 이 영화는 기계 시대를 대변한다.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이 어떻게 인간소외를 가져오지를 잘 표현했다.
기계와 인간의 거리를 느끼게 한다. 그림 1-b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변하는 이미지이다. 여기에서는 기계와 개인과 개인의 생활수단들이 서로 얽혀 있다.
인간의 생물학적 개체와 개인적 생활영역이 혁명의 대상이며, 기계와 인간과 사회와 기업이 긴밀히 연결되어 변화한다. 그러므로 4차 산업혁명은 사회의 모든 분야, 산업의 모든 업종에서 막대한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
혁신은 기업의 생명이다
슘페터(Schumpeter)의 말처럼, 혁신은 기업의 본질이다. 기업은 때때로 혁신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혁신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혁신하지 않는 기업은 장기적으로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다
. 특히 혁명의 와중에는 혁신이 더욱 절실해진다. VUCA(Velocity, Uncertainty, Complexity, Ambiguity)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불예측성과 폭발성”은 기업의 보다 신속하고 폭넓은 혁신을 필요로 한다.
혁신기술이 혁신 제품을 낳고 혁신 제품이 개인의 생활습관을 혁신하며 이것이 다시 새로운 혁신기술을 필요로 하는 혁신 사이클이 가속화될 것이다.
예컨대, 자율주행차가 보편화되는 시대를 예로 들어보자. 자율주행차 시대가 열리면, “차내 사업”이 새롭게 등장하는 등 사업 재편이 일어날 것이다.
개인의 운전면허증이 필요 없어지고 음주운전이라는 개념도 소멸된다. 이에 따라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술 한 잔하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될 수 있다.
대리운전 사업이 쇠퇴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차내 데이트가 활발해지면서 다른 서비스업이 타격을 받을 수도 있고, 차내
공간이 음악, 영화, 학습 등을 소재로 한 멋진 문화공간으로 바뀌게 되어 새로운 사업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자동차보험업도 큰 변화가 예상되며, 택시기사도 사라질지 모른다. “내 차를 보내오니 인터넷 주문 334번을 보내주세요”라는 문자로 슈퍼에 가는 것을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율자동차 하나만 봐도 이렇게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데, 4차 산업혁명의 다른 기술 변화들을 동시에 고려하면 가히 “불예측적, 폭발적”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고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간혹 혁명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사업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기업 경영의 ABC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기업 경영의 핵심은 오늘의 문제를 관리하는 것뿐 아니라 내일에 예상되는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다.
오늘 평온하다고 해서 내일도 영향이 없으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경영이 아니다. 혁명은 “미래변화 예측”을 힘들게 만든다. 그 만큼 오늘의 안정적 사업이 내일에는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봐야한다.
미래예측이 힘들어질 때 기업의 경영자들은 몇 가지 전략적 대안들을 활용한다. 그 첫 번째는 사업의 핵심(Technical core)를 보호하기 위해서 주변조직을 늘려 외부의 충격을 흡수하는 전략을 택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미래 불확실성을 높이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기업들이 ‘미래전략실’, ‘혁신전략팀’, '혁신 TF(Task Force)' 등 전략 관련 조직을 강화하는 것이 예가 될 수 있다.
성희롱 문제가 불거진 한샘이 ‘조직문화실’을 만들고 강성노조가 등장하자 HR에 노사 기능을 강화하는 등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불확실성 증가에 따른 기업의 두 번째 전략적 대응은 사업을 다변화시키거나 유망한 사업에 진출하는 것이다.
사업사이클이 다르거나 종류가 다른 사업들을 세트로 가지고 있으면 한 사업이 크게 영향을 받더라도 다른 사업이 이를 보충해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롯데는 케미컬 사업의 호황으로 유통사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유망사업 진출 사례는 SK하이닉스의 도시바반도체 인수를 들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유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낸드플래시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대응이다.
세 번째의 전략적 대응은 혁신리더의 육성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응할 혁신역량을 가진 리더들을 육성, 확보하여 이들의 지혜와 전문성과 노력으로 외적 충격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혁신이 기업의 생명이라면, 리더는 혁신의 파일럿(Pilot)이다. 리더는 불확실성의 흑암을 뚫고 혁신호(號)를 비행하여 광명의 필드(Field)에 안착시키는 임무를 수행한다.
미래예측이 힘들 때, 사업 핵심을 보호하는 것도, 사업 다변화나 신사업 진출을 성공시키는 것도 혁신리더의 임무이다. 그동안 지리멸렬했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2016년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위한 새로운 혁신전략을 발표했다.
AI와 Cloud 등에 대한 신규 투자를 강화하고 조직을 재편하며 글로벌 조직의 문화를 혁파하여 경영의 템포와 야성을 강화하는 내용이었지만, 역시 핵심은 “새로운 리더”의 확보 즉, "Core Driver"라고 불리는 새로운 리더들이 새로운 가치와 참신한 목적을 가지고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혁신리더는 항상 중심에 선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리더는 상사, 추종자는 부하”라는 등식을 진리처럼 믿어 왔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VUCA 시대에 맞지 않는다. 그림 2-a에서 보듯이 리더는 그림 2-b에서처럼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중심에 있는 사람이다.
그림 2-b의 리더는 “행정적 지원자”를 뜻하지만 그림 2-a의 리더는 아이디어와 지식의 선도자를 의미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탁월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사람이 혁신을 주도하게 된다. 임원이나 팀장은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구성원들의 행정적 지원자요 분위기 메이커일 뿐이다.
남들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할 때 문제를 찾아낼 수 있는 민감성과 경쟁사들이 못 보는 기회를 구성해낼 줄 아는 예지가 혁신리더의 가장 큰 역량이다.
오늘날 구성원들이 상사의 “지적질”에 힘들어 하는 것은 지원 역할을 맡은 상사가 군림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팀장이든 임원이든, 심지어 회사의 대표든 간에 문제 발견과 기회 창출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One of them"이 되어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는 데 있어서는 직급과 직책을 불문하고 모두 동등한 위상을 가져야 한다. 본부장의 아이디어라고 더 중요시하고 과장의 아이디어라고 평가절하 하는 것은 공정한 아이디어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이다.
청바지 제조업체 Levi’s는 직급보다는 구성원들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대표적인 회사이다.
혁신리더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의 조망이 필요하다. 우선 혁신리더가 존재할 수 있는 생태계에 대한 고찰이다.
고등어는 수온이 10°C 이하로 떨어지면 따뜻한 바다를 찾아 남쪽으로 이동한다. 혁신리더들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칠 수 없는 냉랭한 조직문화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 혁신리더를 확보하기에 앞서 생태계부터 진단해 봐야 한다.
둘째는 혁신리더들이 어떻게 성과를 창출하는가에 대한 고찰이다. 한국 기업들은 돌관작업(突貫作業)에 익숙해 있다.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 안에 모든 희생을 감내하며 목표를 달성하는 압박성취의 대명사이다.
태평양전쟁 때, 산호해 해전에서 큰 피해를 입은 미 항공모함 요크타운호의 수리를 돌관작업으로 예상보다 휠씬 빠른 72시간 내에 완료하여 미드웨이해전에 투입함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되었던 사례에서 유래한다. VUCA 시대는 물리적 돌관이 아니라 아이디어 돌관이 더 큰 성과를 가져오는 시대이다.
셋째로는 혁신리더들의 리더십 컴피턴시(Com-petencies)는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혁신리더들이 갖춰야 할 행동, 가치, 태도, 능력 등을 리더십 컴피턴시로 표현한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대로 한 마디씩 할 수 있는 곳이 이 분야이다. 그리스의 플라톤(Plato)도 국가론에서 리더가 갖춰야 하는 역량들을 “결단력, 진취성, 소통 능력, 배려” 등 열 가지가 넘게 제시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역량들이 무엇인가를 가려내는 일이다.
넷째로, 혁신리더는 스스로를 어떻게 발전시켜 가는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정체된 혁신리더는 혁신을 주도할 수 없다.
혁신리더는 자기성찰에 강하고 전문가의 코칭을 꾸준히 받는다. GE의 전임 CEO 잭 웰치는 여러 명의 코치들과 장기 휴가를 함께하면서 다양한 견해를 듣고 전략을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섯째는 기업 입장에서 혁신리더를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세제 등 생활용품을 생산하는 미국의 P&G는 리더 육성을 잘하는 기업(소위 "Leader Feeder Company")으로 정평이 나 있다.
넓은 회장실을 리더십 강의장으로 개조하여 사용하도록 할 정도로 리더십 개발에 열정을 보인다. 이 기업은 훈련뿐 아니라 일을 하는 과정에서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치밀하고 광범위한 리더 육성체계를 갖추고 있다.
혁신리더 육성을 위한 첫걸음은 리더 육성과 리더십 개발에 투자를 대폭 늘리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의 리더 육성에 대한 투자는 미국 기업들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아직도 리더는 “알아서 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영자가 있다면 경영에서 손을 떼는 것이 좋다.
끝으로, 한국적 혁신리더를 고민해야 한다. 좋든 나쁘든 한국인들이 갖는 문화적 가치체계를 무시할 수 없다.
본 특집에서는 이러한 일곱 가지 주제들을 각 주제별 전문가에게 위촉하여 다뤘다. 개인과 기업에 혁신리더를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