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술경영인인터뷰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에서는 기술경영인과의 대담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기술경영인의 역할과 리더십 등을 알아봅니다.

30년 파고를 넘어 온 선박 엔진 부품 국산화의 선두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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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작성_정원일 교수(경북대학교), 김공숙 전문작가(프리랜서)


우리나라는 유독 가을 하늘이 높고 푸르다. 초가을에 굽이굽이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 방문한 (주)화영(이하 화영)의 본사는 파란 하늘 밑의 고풍스러운 산사가 있을 법한 경치 속에 놓여 있었다.

울창한 나무와 너른정원을 배경으로 정갈하게 보이는 현대식 건물과 주변의 공장 동, 연구소 동이 풍경화처럼 어우러져 있었다.

선박 엔진 부품이라면 왠지 바닷가에 인접해 있는 삭막한 공장지대가 어울리지 않나 하는 선입견 때문일까. 이런 풍광 속에서 오대양을 누비는 대형 선박의 주요 엔진 부품을 만들어 낸다니 좀 색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형 히든 챔피언 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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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에 있는 화영 본사와 공장의 내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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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싱글 PPM 단체 부문 대통령 표창 기념 촬영


화영의 이홍원 대표는 30여 년간 많은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 국가 전방 산업인 조선 산업의 선박 엔진 부품 국산화를 위해 노력해온 기업인이다.
 
1978년 부산의 화영공업사에서 처음 일을 시작해 1990년 밀양으로 본사를 이전한 후 1995년 화영으로 새롭게 바꾸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기계, 설비, 대형 엔진 선박부품, 터빈, 내연기관, 기계장비 제조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으로서 2017년 현재 자본금 9억 원에 매출액 343억 원을 올리고 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모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 중에 < 히든 싱어 >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가수와 모창자가 가림막 뒤에서 한 소절씩 노래를 부르면 방청객이 진짜 가수를 찾아내는 프로그램이다. 화영 또한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지만 혁신을 통해 세계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이다.

히든 챔피언은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숨겨진 1등 기업을 뜻한다. 화영은 2010년 국책 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선정한 한국형 히든 챔피언 육성 대상 기업으로 선정되어 국가의 지원을 받았다.

화영은 선박 운항의 실질적인 성능에 영향을 주는 주요 구성 요소인 ‘연료 및 배기 구동 장치’ 관련 제품을 제조 및 공급하고 있다.
 
그동안 수입에 의존하던 것을 국산화하여 현대중공업, 두산엔진, STX중공업, 바르질라현대 등 국내 엔진 4개사에 공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Hitachi 조선, Kawasaki 중공업, Mitsubishi 중공업, Diesel United, 중국의 QMD, DMD, YMD, HHM, 유럽의 기술사인 Man Diesel & Turbo, Wartsila에 주요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작지만 숨은 강소기업이다.

화영은 국내 선박 엔진 연료공급 장치 개발의 산 역사이자 이 분야 최고의 강자이다. 기계식 연료 및 배기구동 장치(Fuel & Exhaust Gear Assembly)를 30년 이상 제작해 왔다.

2004년에는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따라 전자제어식 연료 및 배기 구동 장치인 연료공급장치(Power Supply Unit)를 개발하여 현재 전 세계에 70%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화영에는 세계일류상품이 많다. 2004년 개발한 연료공급 장치(Supply Unit)는 2008년 지식경제부로부터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되었다.

더불어 연료제어장치(Rail Unit)도 2016년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되었다. 두 제품은 회사 매출의 약 60%를 차지하는 주력제품이다.

그 밖에도 유압생성 장치(HPS, Hydraulic Power Supply)와 유압조절 장치(HCU, Hydraulic Cylinder Unit)를 공급하고 있다.

친환경 선박엔진의 세계화에 맞추어 개발한 ME-GI용 Gas Control Block도 고객사로부터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렇게 화영은 고객들이 매우 필요로 하는 중요한 부품을 공급하고 있어 관련 업계에는 널리 알려져 있는 중소기업이다.


고향 땅에서 배운 지혜

화영의 본사는 경남 밀양시 무안면 무안로에 있다.

제1공장과 제2공장도 밀양시 관내에 위치해 있다. 본사가 자리 잡은 곳은 이홍원 대표의 생가가 있던 곳이다. 큰 뜻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절실한 다른 이유 때문에 이곳에 왔다.

“군 제대 후 부산에서 화영공업사를 하고 있는 형님회사에 취직을 했어요. 20대 중, 후반부를 부산에서 보내면서 형님은 영업을 담당하고 저는 제조를 담당했는데 정해진 독자적인 일을 하면 되는 거라 심적인 부담은 적었습니다.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공작하는 행위가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대기업 고객의 무리한 요구로 형님이 힘들었습니다. 회사가 우리 자체의 제품을 생산하지 않고는 안 될 상황이 되었는데 공장을 지을 부지도 없고 모든 것이 부족했습니다. 공장을 짓기 위해 여러 고민을 하다가 결국 가장 친숙한 고향 밀양으로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업을 함께한 둘째 형님이 몸을 다쳐 회사 일에 손을 뗀 후 직접 영업을 맡아서 해오던 이홍원은 막상 고향에 간다고 하니 뭔가 어려움이 있어서 오는 게 아닌가하는 주변의 시선들을 느꼈다. 사실 그 말이 맞았다.

원대한 뜻이 있어 귀향한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생가 터의 자산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부족한 자금으로 공장을 지을 수 있는 곳이 고향 밖에는 없었다.

고육지책이었지만 매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 결과는 보상으로 돌아왔다. 그때 그곳은 지금의 본사 거점이 되었고 잘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크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밀양의 첫 공장 부지는 현재 제2공장이 있는 곳이다. 밀양 시내에서 5분 거리, 공업단지가 형성되어 있던 곳이었는데 당시 탈곡기 제조업을 하다 폐업한 회사를 처음 인수했다.

“탈곡기 제조업체 부지였어요. 그곳은 기업하는 저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주었습니다. 당시에 정부가 산업합리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해당업체는 그때에 가장 잘 팔리던 탈곡기를 주력 제품으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진주에 있는 대동기계 같은 회사는 경운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때 만약 해당업체가 탈곡기가 아닌 경운기와 트랙터를 하겠다고 결정했으면 지금 밀양의 기계 산업은 더욱 성장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를 통해서 경영자는 앞을 보는 안목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늘 상기합니다.”


어머니 운정 댁으로부터 배운 낙관(樂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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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V4 FOPs 생산에 대한 FTPA 승인 기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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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영은 2012년 'KB국민은행 Hidden Star 500'으로 선정되었다.


화영 본사 주변에는 마치 어머니의 품 같은 정겨운 운정천(雲汀川)이 흐르고 있다. 운정은 이홍원 대표 어머니의 택호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운정 댁으로 불렸다.

집안에서 다섯째인 소년 홍원의 외가에는 수학과 과학을 매우 잘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물의 6각형 구조를 밝혀낸 이론 화학자 전무식 박사의 집안이다.
 
자식들 공부에 열성적인 분들이 많은 집안의 맏딸이었던 홍원의 어머니는 여러 명의 소작인을 둔 부농 집안의 홍원의 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다.
 
공직에 있던 아버지는 타 도시로 이동이 잦았기에 운정리 집안의 재산 관리는 전적으로 어머니 운정 댁의 몫이었다.

어머니는 너그러우면서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일을 이끌어가서 많은 이들이 믿고 잘 따랐다고 한다. 그런데 홍원이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빚보증으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망해도 그렇게 폭삭 망할 수가 없었습니다. 1970년, 제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였는데 먹고살기 위해서 농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야 했습니다. 당시에 큰형님이 경북대학교에 들어갔고 나머지 형님들은 한꺼번에 군대를 갔어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한 입이라도 줄이려고요. 저는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고등학교도 못 가고 농사를 지어야 했습니다. 한 해를 쉬어야 했는데 교육열이 높았던 어머니는 자신이 굶는 한이 있어도 학교를 보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다음 해에 밀양의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힘든 시절이었는데 오히려 당시에는 먹고사는 생계 문제 해결이 너무도 시급해서 괴롭다, 힘들다 생각할 틈도 없었어요.”

견디는 자가 이기는 자이다. 이홍원 대표는 지금도 힘들 때가 있지만 쿨하고 낙관적으로 보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이것은 과거 자신이 어머니와 함께 힘든 시절을 지내면서 체득한 습관인 것 같다고 말한다.

여든여덟 살을 일기로 타계한 어머니는 늘 존경의 대상이자 배움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아내는 시어머니를 그리워한다고 한다.

이 대표에게 화영의 본사가 위치한 밀양시 무안리는 너그러움과 합리성, 긍정의 마인드를 갖춘 어머니의 정신을 항상 잊지 않도록 해주는 곳이다.


가족적 경영 마인드가 지속 발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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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원 대표는 2012년부터 현재까지 밀양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청년 이홍원은 부산대학교 졸업 후 군대에 가기 전까지도 먹고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고 제대 후에는 형님이 잠시 일을 해보라고 하여 화영공업사와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뭔지도 모르고 일을 배웠는데 해보니 만들고 고치는 제품 생산의 현장이 적성과 잘 맞았다.

“달달 외어야 하는 역사는 재미없지만 논리가 정연한 과학과 기술은 재미가 있었어요. 어렸을 때 습관처럼, 부지런히 일하고 생산 현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일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그동안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 셋을 낳아 부산에서 7~8년을 살다가 1989년 말에 돌이 채 되지 않은 막내를 업고 고향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당시 여직원까지 포함해 40여 명의 전 직원이 부산에서 밀양으로 이사했다. 덕분에 1990년대 초 밀양시내에 최초로 15층짜리 아파트가 들어섰다.

직원들을 위한 아파트였고 미혼인 여직원들을 위해 아파트를 구입하여 기숙사로 사용하도록 했다. 여직원은 아파트에 머무르고 남자 직원들은 사내 기숙사에 거주하도록 하고 출근시간도 조정해 주었다.

“당시에 여러 가지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법도 한데 대다수가 이사를 결심해 주고 따라와 준 것이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회사가 이사는 왔지만 거래 선은 울산이나 창원, 거제도 쪽이 대다수였다. 수요업체와 공급업체가 서로 교류하면서 기술을 전수받고 전수해야 하는데 본사를 이전하고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조그마한 부품이라도 맡기려면 타 지역을 왕래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비포장도로가 많아 요동으로 인해 제품의 불량이 발생하기 쉬웠다. 때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위상변압기를 공장에 별도로 설치하기도 했다.

“지금은 가지산 터널이 있어서 울산 쪽으로 빨리 갈 수 있지만 당시에는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사람도 거의 다니지 않는 위험한 길이라 납품하는 차량 운전자들에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가스총을 휴대하고 다니라고 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품의 불량률이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지속적인 분임조 활동과 2008년에는 싱글 PPM 혁신활동을 도입하여 노력한 결과 2010년 싱글 PPM 단체 부문 대통령 표창을 받는 성과를 올렸다. 이 대표는 임직원에게 공을 돌린다.

“회사가 이만큼 큰 것이 어디 제 힘만으로 되겠습니까. 모두 직원들 덕분이고 그래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처음에 68명으로 시작한 규모가 지금은 98명이 되었다. 화영에는 직원의 40% 이상이 10년 이상 근무한 장기근속자이다.
 
인터뷰 자리에 배석한 조성근 상무도 1988년도에 총각으로 입사해 함께 밀양으로 이사를 와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 일가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는 장기근속 근로자들이 화영과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이유는 이홍원 대표의 가족적인 경영마인드 덕분이라고 말한다.

“딱딱한 제조공장이지만 회사를 공원처럼 조성하고 사나래(思裸來, Idea Zero Point Again: 업무를 벗어나 제로베이스에서 생각을 가다듬고 돌아오는 곳) 연수원, 사나래 수련원, 제주도 휴양소를 만들어서 임직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어요. 임직원 자녀 학자금 지원, 사내 동아리 활동 예산 지원 등 복지제도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예전에 연수원이나 수련원을 만들기 전에는 캠핑카를 구입해서 주말에 사원들이 이용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캠핑카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시절, 호기심을 가진 임직원 가족들의 이용률은 주말마다 높았다고 한다.

“뿐만이 아니라 지역 문화예술 단체 지원을 통해서 회사를 널리 알리고 임직원 가족을 초청해 연극과 무용 공연을 함께 관람해요. 이렇게 하니까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애사심이 더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업종상 화영은 밀양에서 어떤 물건을 판매하거나 사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홍원 대표는 지역의 장학재단을 지원하고 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지역 일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또한 근로자들이 주말에 여가활동을 할 수 있도록 머물 곳을 만들고 밀양의 문화예술단체와 교류하면서 회사 내 근무 환경을 보다 윤택하게 하기 위해 신경 쓰고 있다. 이를 임직원들도 잘 알고 있다.

“이홍원 대표님의 리더십은 인간적 유대를 통해 건강한 관계를 만들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다양한 노력을 통해서 직원들과 신뢰를 구축한 것이 장기근속으로 이어졌고 또 회사가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고 성장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라고 봅니다.”

임직원의 신뢰를 받는 기업인, 임직원을 가족처럼 여기는 경영방침이 화영이 오랫동안 지속 발전해 온 힘이다.


없어서는 안 될 제품을 만드는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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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영은 임직원들의 리프레시를 위해 사나래(思裸來) 수련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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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영 창립 22주년 체육대회 행사


화영의 고객은 대기업 선박회사들이다. 배가 있으면 반드시 엔진이 있다. 엔진은 동력의 힘을 마력으로 표기한다. 1마력은 말 한 마리가 끌 때 내는 힘이다.

가장 큰 엔진은 11만 7천 마력짜리라고 한다. 말 11만 7천 마리가 마차를 끄는 힘을 발휘해야 하니 엔진 크기도 웬만한 3층 높이 아파트 건물과 맞먹는다.

그래서 선박회사에서 엔진 구경을 시켜주고 나면 질문이 “엔진 구경은 언제 시켜 주냐?”고 다시 묻는다는 우스운 이야기도 있다.

엔진 구경을 다 해놓고 그것이 너무 커서 엔진인 줄 모른다는 얘기이다. 그만큼 선박의 엔진은 크다. 이렇게 커다란 엔진의 가격에서 약 5% 정도를 차지하는 비용의 부품을 화영에서 만든다.

현재 화영의 기업연구소에는 연구소장을 비롯해 7명의 연구 인력이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지금껏 15개의 정부사업에 참여하여 모두 성공적으로 개발을 완료하였다.

이들 제품은 회사의 주력 제품으로 자리매김하여 회사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STX중공업에서 제작 중인 45ME-GI Engine에 적용되는 ME-GI Gas Control Block을 세계 최초로 개발, 제작하여 납품 및 성능 검증까지 마친 상태이다.

향후 친환경 연료사용의 의무화로 LNG 연료를 적용하는 엔진이 증가할 것에 대비하여 Gas 관련 제품의 국산화 개발도 진행 중이다.

선박 엔진 시장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몇 번의 굴곡이 있었다. 처음에는 현대중공업이 주요 거래처였고 다음은 한국중공업이었다. 한국중공업은 HSD중공업(한국, 삼성, 대우의 통합법인)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두산엔진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복잡한 과정에서 주거래처의 주주가 바뀌자 화영의 선박 엔진 영업도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시장의 변화 속에서도 화영은 고객이 무시할 수 없는 차별화된 기술 중심의 회사를 만들어 오늘의 자리를 지켜냈다. 화영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선박 관련 제조 기업이 거제도나 울산이 가지는 지리적 이점을 포기하고 밀양의 산골로 들어왔는데도 자신들만의 기술력으로 고객이 스스로 찾아오는 회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고객들은 이곳에 찾아와 화영의 뛰어난 기술력을 확인하고 감동받는다. 어떻게 보면 화영은 역설의 진리를 몸소 실천하고 깨달은 셈이다. 선박 관련 기업이라고 해서 꼭 선박 제조회사 인근에 있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뛰어난 제품이다.

이 대표는 임직원들에게 고객 회사에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라고 주문한다. 리스크가 있다는 것은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성이 높으면서 품질이 좋은 부품이라는 뜻이다.
 
고객 회사의 경우 이렇게 좋은 부품이 바뀌게 되면 자신들의 제품 품질도 영향을 받는다. 이런 부품이 만약 줄거나 없어지게 되면 매우 곤란해진다.

“배가 떠서 다니는 동안에는 엔진은 있을 것이고 엔진의 부품은 마모될 것이고 그러면 해당 부품 중에 견고하고 값이 적정한 제품을 늘 찾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연료 계통 부품을 특화하기로 결심하고 지속적으로 개발의 노력을 해왔습니다. 연료의 변화에 따라 엔진의 구조가 달라진다는 것에 착안해 상황에 맞는 부품들을 개발해온 것입니다.”

이홍원 대표를 포함한 경영진은 어려운 개발 주제를 택하고 지속적으로 개발한 결과 위기를 극복했다.

고객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이 가격이 적합하고 품질이 좋으면 하늘 꼭대기에 있다 하더라고 찾아온다. 그래서 기술 아이템을 개발할 때 리스크가 큰 것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고객과는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25~30여 년이 지나도 고객이 수리를 요청하면 필요한 부품들을 만들어서 공급해 주고 있다.

한마디로 화영이 아니고는 어디에 가도 살 수 없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관건이다. 이렇게 개발된 부품이야말로 작지만 강한기업, 히든 챔피언에 딱 어울리는 제품 모델이다.

“큰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예전에 해오던 것처럼 반기 단위로 분임조 활동을 하고, 현장에 바로 적용해야 하는 것은 연구소가 붙어서 협업을 한 후에 바로 적용을 합니다. 또한 개발이 종료될 때까지 계속해서 연구소에서 유효성 평가를 하여 기술이 골고루 적용되고 확산되도록 합니다. 직원들의 제안 활동은 1인당 연 4건 정도를 요구하는데 평균 3.5건 정도로 발생하고 있어요. 제안 활동에 대해서는 성과 보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직원들이 늘 현장 중심의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때로 공공으로부터 HRD지원 사업을 받아서 직원들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회사 구성원들 사이에서 기술이 축적되도록 하는 활동이자 이직률을 낮추는 방법이기도 하다.


위기가 기회, 도전을 멈추지 말라

조선 사업은 인건비 문제가 걸린 한계 산업이지만 배의 엔진에 관계된 사업은 한계 사업이 아닐 수 있다. 언제나처럼 화영은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선박용 엔진은 글로벌 환경보호라는 차원에서 벙커C유(콜타르 비슷한 디젤유) 사용에서 Low Sulfur HFO 또는 LNG 연료를 사용 배출가스로 인한 환경오염의 규제강화에 적합한 엔진 오일로 바뀌어 왔습니다. 배에서 엔진은 떠다니는 발전소입니다. 이 발전소는 환경오염의 주범인 녹스(NOx,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소 등에서 발생되는 질소산화물) 문제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엔진 오일이 바뀔 때마다 더 진보된 엔진연료 시스템을 개발하고 그에 필요한 부품들을 장착해야 합니다. 이 단계를 얼마나 빨리 주목하고 따라 잡는가에 따라 회사의 존망이 달려 있습니다. 제가 할 일은 이런 기회를 포착하고 개발해서 사업화로 지속적으로 연결시켜 성공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홍원 대표는 최근 조선 산업은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실정이며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위기’라는 말로 현재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다들 위기상황이라고 하지만 과거에는 더 어려운 시기도 많았다. 그러니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1980년대만 하더라도 국내 조선 산업은 핵심기술을 유럽 및 일본에 의존하고 단순 부품만을 제작, 공급하며 기술의 한계를 절감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속적인 국산화 노력으로 세계 시장에서 당당하게 정면승부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돌이켜 보면 화영의 주력 제품인 Supply Unit을 개발할 때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일본 업체가 선점하여 개발에 착수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우리는 후발업체로 개발을 추진했습니다. 그럼에도 전 임직원이 혼신의 노력을 다한 결과 그들보다 한발 앞서 개발 시제품을 출시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모두가 어려웠던 IMF 때에도 전 직원이 힘을 모아 수출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였다. 이 대표를 포함해 모든 구성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노력하였기에 위기에 잘 대처할 수 있었다.

“최근 불황의 여파 때문인지 임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진 것 같아 경영자로서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과거의 경험에서 현재의 고난을 이겨낼 힘과 미래의 희망을 보잖아요. 이전에도 힘든 시기마다 직원들이 힘을 합쳐 슬기롭게 대처했듯이 이번에도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대표는 자신이 중소기업에 근무했고 창업을 하여 살아나온 선배 기술자로서 중소기업의 초급 간부 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중소기업 직원은 대기업 월급의 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기업에 간 사람들은 실력 있고 선택을 받았기에 대기업에 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중소기업 근무자는 나름대로 핸디캡이 있어요. 하지만 주어진 지금의 현장에서 다른 경쟁자보다 앞서가는 방법이 있어요. 현실을 직시하고 자기계발에 힘써야 합니다.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나오면 좁은 자기 업무밖에는 몰라요. 대기업에서는 회계 부서에 근무하더라도 회계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부분만 알게 됩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달라요. 나무도 보고 숲을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름대로 주어진 환경에서 자기계발을 해나가다 보면 대기업에 취업했던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미래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분들은 오히려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생각을 가지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돈에 연연하기보다 길게 보고 자기계발을 열심히 하다 보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화영은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구성원의 직무역량 강화, 고객만족을 위한 제품 품질의 안정, 임직원과의 신뢰 구축 등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해왔다.
 
그동안 개발한 제품들이 회사 매출 향상에 기여했음은 물론 세계일류상품에도 선정되었다. 그러나 안주하는 대신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신기술의 수요 예측 및 신규개발을 게을리하지 않고 차별화를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도 화영의 제품들이 또 다른 세계일류상품으로 인정받는 것은 물론 회사의 새로운 주력 제품이 되기를 기대한다. 멈추지 않는 변화를 통해 화영이 선박 엔진부품 산업의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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