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사이트

혁신 인사이트에서는 혁신의 트렌드, 전략 및 혁신사례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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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재 팀장/기자
동아일보 경영교육팀/DBR·HBR코리아


알파고가 이세돌을 완파해 세상을 놀라게 하기 19년 전인 1997년, 기계와 컴퓨터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일어났다.

IBM이 만든 슈퍼컴퓨터 딥 블루(Deep Blue)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체스 선수로 꼽힌 게리 카스파로프를 꺾은 것이다. 거듭된 패배에 세계 체스 챔피언도 컴퓨터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세계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인간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지적 사고능력(Intelligence)에 있어서도 이제 인공지능이 더 우월하다는, 그리고 그 차이는 더 벌어질 것이라는,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반응이 많았다.

그 이후에도 컴퓨터의 성능은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히드라(Hydra)와 같은 더 강한 슈퍼컴퓨터가 등장했다.

그로부터 또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새로운 형태의 프리스타일 체스 대회가 열렸다.

인간끼리만 대결하는 대회도, 인간 챔피언과 슈퍼컴퓨터가 대결하는 특별 대회도 아닌, 누구든, 또 어떤 컴퓨터든 참여할 수 있는 그야말로 프리스타일 대회였다.
 
그런데 이 대회의 우승자는 딥 블루보다 더 발전한 슈퍼컴퓨터인 히드라도, 프로 체스 선수도 아니었다.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둔 챔피언은 바로 ‘평범한 노트북 3대를 활용한 두 명의 아마추어 체스 선수들’이었다.


협업(Collaboration)의 힘

아마추어가 프로를, 노트북이 슈퍼컴퓨터를 꺾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협업’과 ‘이종(異種) 결합’에 있었다. 개별적으로는 열등한 기술을 보유한 인력과 자원이었다.

하지만 서로의 장점을 절묘하게 결합하자 큰 힘이 나왔다. 두 명의 인간으로부터 나온 전략과 창의성에, 3대의 노트북이 수행한 분석에 기반한 전술이 합쳐지자 인간 체스 챔피언도, 슈퍼컴퓨터 히드라도 꺾을 수 있는 경쟁력이 나왔다.

10년 전 또 20년 전 당시도,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발전이 일어나고 먼저 변화해야 성공하는 시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혁신 경쟁의 시대는 이미 시작된 현재 진행형이다.

연결과 협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이 나온다는 공통점 역시 그대로다. 많은 리더들은 협업을 강조하고 있다.

팀 간의 경계, 부문 간의 경계를 넘어 유기적으로 협력하기를 바란다. 서로 다른 조직, 다른 기업과의 협업,즉 전략적 제휴도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필요한 역량이나 자원, 지식을 독자적으로 확보하는 것보다, 더 적은 리스크로 더 빨리 원하는 혁신과 시장 진입을 달성하는 현명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기업간 제휴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적과의 동침’이라 불리는 경쟁사 간 협업, 3개 기업 이상 협력하는 다자 간 협업, 외부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결합하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과 같은 대단위 협업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협업으로 성과를 내기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실제 기업 간 협업이 성공할 가능성은 50%에 못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컨설팅회사 PwC는 절반의 기업 간 제휴가 실패한다고 분석했다. KPMG는 실패확률이 60~70%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이는 사실 종종 ‘승자의 저주’에 빠지고 마는 인수합병(M&A)의 성공확률과 비슷한 수치다.

기업 내부의 팀 간, 부문 간 협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최고경영자가 아무리 협업을 강조해도 실제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은 오히려 ‘협업 피로’를 호소하기 십상이다.
 
협업을 기획하고 관리하고 실행하는 데 익숙지 않으면, 자칫 ‘협업 성과’보다 ‘협업 비용’이 더 큰 우를 범하기 쉽다.

게리 하멜, 이브 도즈와 같은 유명한 경영학자들은 경영자들이 협업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제프리 페퍼는 협업을 잘못 적용한다면, 오히려 일의 진척을 더디게 하고 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적의 협업파트너를 구했다고 자동적으로 성과가 나는 게 아니다. 이질적인 조직 문화, 서로 다른 일하는 방식이 협업성과를 내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어떻게 협업할 것인가

2003년 소니는 애플에 반격을 준비했다. 애플이 아이팟으로 소니가 지배해 온 세계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 시장에 균열을 내고 있을 때였다.

소니는 워크맨을 내세운 휴대용 플레이어 시장에서뿐 아니라, 미국의 온라인 및 오프라인 음악 유통 시장에서도 절대 강자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바이오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일본의 PC 부문도 여전히 강했다. 소니의 미국 전자부문은 아이팟에 쓰이는 초소형 배터리도 공급하고 있었다.

이 같은 소니의 4개 부문의 기술과 노하우, 경험만 모아도 아이팟 돌풍을 잠재우는 일은 어렵지 않아보였다. 당시 소니의 매출은 애플의 10배에 달했으니, 소니의 대응이 늦은 건 아니었다.

소니는 이 4개 부분의 협업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드디어 2004년 초 소니의 새로운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가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절대로 이 제품을 사지 말아라’와 같은 날선 비판을 받아야 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었다.

이미 미래형 기술도 보유하고 있었지만 익숙했던 방식, 기존의 주력기술을 채택한 게 문제였다.

아이팟은 하드디스크 기반이었지만, 소니는 구식이 돼버린 미니디스크를 고수했다. 음악 파일의 규격은 MP3가 대세였지만, 소니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별도 기준을 고집했다.

협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정치 논리가 힘을 발휘하자, 기존의 주력 부문, 덩치 큰 부문의 논리가 받아 들여졌다. 서로 다른 부문에서 온 인력들, 특히 문화가 다른 미국 팀과 일본 팀 간의 협업도 쉽지 않았다.

소니의 성공을 이끌었던 본사의 주력 부서는 다른 기업, 다른 부문에서 비롯된 대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NIH(Not-Invented Here) 신드롬’과 같은 ‘협업 장벽’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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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튼 한센은 협업을 가로막는 4가지 장벽을 제시하고(표 1) 이를 극복할 수 있어야 협업의 효과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도록 공감할 수 있는 공동의 목표를 제시하고, 협업에 적합한 리더를 양성하고, 팀워크와 협업을 끊임없이 강조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협업이 조직 문화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센은 또 ‘기민한 네트워크’를 강조했다. 많은 경영학자들이 밝혔듯이, 끈끈한 유대관계로 얽힌 강한 네트워크가 아닌 약한 유대관계로 연결돼 있지만 역량과 경험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가 실제 성과에 더 큰 기여를 한다.

마크 그라노베터는 이를 두고 ‘약한 네트워크(Weak tie)의 역설’이라고 불렀다. 조직 구성원들은 필요한 때 적시에 기민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넓게 구축해야 한다.


경계를 넘는 개방형 혁신

협업으로 혁신과 성장을 거둔 성공사례로 P&G를 꼽을 수 있다. P&G가 보유한 연 매출 1조 원이 넘는 브랜드 20개 중 10여 개가 내부 및 외부 협업에 기반해 성공을 거둔 브랜드라고 한다.
 
유명한 치약 브랜드인 크레스트의 간편 테이프형 치아미백제인 화이스트스립스는 P&G의 건강관리 부문과 섬유·가정용품 부문, 중앙연구소 세 부문의 기술을 결합하는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탄생했다.

감자칩 위에 그림이나 글자를 새긴 ‘프링글스 프린트’는 외부의 기술을 받아들여 개발 시간을 단축하고 매출을 늘린 ‘개방형 혁신’의 대표적 사례다.

2000년 P&G의 CEO로 래플리가 부임할 무렵, 전통 대기업답게 P&G도 서로 다른 부문 간 협업이 어려운 폐쇄적 조직문화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래플리는 5년 안에 50%의 혁신을 외부로부터 가져오겠다는 과감한 목표를 제시했다.

또 내부에서 비롯된 어떤 아이디어도 3년 안에 활용되지 못하면 외부에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8,000명의 직원이 참여하는 20개가 넘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사내 인트라넷에서 우수 아이디어와 사례가 공유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무엇보다 그의 공로는, 프링글스 프린트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협업의 범위를 내부 부문 간 협업을 넘어 외부와의 개방형 혁신으로까지 과감하게 넓혔다는 데 있다.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만들어내는 R&D(Research & Development)는 이제 C&D(Connect & Development)라는 새로운 용어로 대체됐다.

서로 다른 기업, 서로 다른 조직과 협업을 시작할 때는 협력의 절차와 의사결정 구조에 대해 철저하게 협의하는 게 좋다.
 
성공적인 전략적 제휴의 사례를 보면, 사실 지분의 가치를 산정하는 데보다, 협력의 구조를 설정하는 데 더 오랜 시간과 많은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GE와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의 합작법인은 글로벌 자금 조달 및 리스크 관리 능력과 한국의 고객 기반과 영업역량을 절묘하게 결합해 성공을 거둔 사례로 꼽힌다.

그런데 당시 협상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임원에 따르면, 사실 투자와 관련된 협상은 4개월도 걸리지 않아 끝났지만, 그 이후 업무 프로세스와 관련된 협상이 6개월간 이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미리 의사결정 절차를 정해 놓으면 실제 업무를 수행할 때 소모적인 협의 과정을 피하고 빠르게 실행에 옮길 수 있다.

투명한 처리 과정에서 서로 간의 신뢰가 쌓이면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억제하고, 조정 및 통제를 위한 관리 비용을 낮추는 효과도 낸다.

“오늘날 글로벌 경제에서 독자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실수다.”라는 잭 웰치의 말처럼, 이제 협업은 선택보다는 필수라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혁신 경쟁의 시대에 필요한 모든 자원과 역량을 독자적으로 확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협력하느냐’이다. 생각하는 방식과

문화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장을 만들고, 기업의 경계를 넘어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엮어 성과를 내는 데 능숙한 기업이 미래의 승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