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혁신 칼럼은 회원사의 기업인, 이공계 연구원 등에게 자기혁신과 리프레시가 되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자기계발 칼럼입니다.
글_ 오세웅 작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 같은 대형 미술관에는 일반인 대상의 ‘갤러리 토크’ 프로그램이 있다.
갤러리 토크는 큐레이터가 참가자들과 함께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작품의 미술적 의미, 감상의 핵심적인 요소, 제작에 얽힌 일화를 해설해 주는 교육 프로그램의 일종이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이 아침 일찍 주최하는 갤러리 토크의 참가자들은 이전에는 여행자, 학생이 대부분이었지만, 요 몇 년간 양복 차림에 지적 프로페셔녈 분위기의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바쁜 출근 시간 전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갤러리 토크에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영국의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RCA)는 석·박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전 세계 유일의 미술계 대학원이다. 최근 RCA는 ‘글로벌 기업의 중역을 위한 트레이닝’이라는 의외의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다.
포드 자동차, 비자카드, 글락소 스미스클라인(제약회사) 같은 쟁쟁한 글로벌 기업이 자사의 미래를 맡아줄 것으로 기대되는 중역 후보를 RCA의 프로그램에 참가시키고 있다.
덧붙이자면 내놓는 제품마다 그 독창성에 소비자의 찬탄을 자아내는 다이슨 사의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도 RCA에서 제품 디자인을 배우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해 11월의 기사에서 ‘전통적인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 강의를 듣는 이가 줄어드는 한편 미술대나 미술계 대학의 경영진 대상 트레이닝에 많은 글로벌 기업이 중역 후보를 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모든 풍경은 이상하게 비춰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새로운 붐은 아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The MFA is the new MBA'라는 기사가 게재된 것은 2008년이었다. ‘MFA(Master of fine arts, 미술학 석사)는 새로운 MBA로 떠오르고 있다’의 이 기사는 이제 글로벌 기업은 MBA에서 배우는 분석적, 논리적 기술보다 미술계 대학원에서 배우는 감성적 관점의 스킬을 더 중요시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갈수록 희소성이 적어지는 MBA와 극히 제한된 사람만 입학할 수 있는 MFA와 비교해 그 학위로서의 가치가 역전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 밖에도 스탠포드 대학이 문제해결을 위해 논리적 접근이 아닌 디자인 씽킹의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도 10년 전이다.
나아가 최근 몇 년간 유럽과 미국의 비즈니스 스쿨은 창조성을 커리큘럼 중심에 놓는 이른바 ‘크리에이티브 리더십’을 간판으로 내걸고 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경영 이론의 핵심이었던 MBA식의 논리가 오늘날처럼 변화가 극심하고 불안정한 세상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VUCA라는 말이 글로벌 경영자의 입에서 많이 회자된다. Volatility(불안정), Uncertainty(불확실), Complexity(복잡성), Ambiguity(애매모호)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미국 육군이 세계정세를 나름대로 표현하려고 만든 말이다.
지금까지 유효한 방식으로 널리 인식되었던 논리적 사고방식은 문제가 발생하면 그 요인단순화시켜, 인과 관계를 따져 해결을 모색하는 접근방식이었다.
하지만 문제를 구성하는 원인이 증가하고, 그 관계가 동적으로 복잡해지면 더 이상 똑같은 문제해결 방식은 작동할 수 없다. 즉, MBA식 논리는 똑같은 답을 내는 사람만 양산할 뿐이다. 타인과 똑같은 답을 내놓기에 차별화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경영학자이며 기업경영 전략의 창시자인 이고르 앤소프는 논리적 사고방식에만 치우친 나머지 정작 필요한 의사결정을 못하는 상태를 ‘분석 마비’라는 절묘한 말로 표현하였다.
분석, 논리, 이성, 경험은 심미안, 감성, 미적 감각처럼 추상적이고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의견을 늘 제압한다.
논리적 사고방식이 최고라는 공통환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칸트는 < 순수이성비판 >, < 실천이상비판 >, < 판단력비판 >처럼 난해한 철학서를 썼지만, 크게 보면 그의 주장은 ‘인식의 방향을 이성에만 의존하는 게 위험하다’로 요약할 수 있다. 정확한 판단에는 이성과 더불어 감성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성은 어떤 때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반복해서 재현하기도 어렵다. 즉, 이성에 위반된다. 하지만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300년 전의 바이올린은 지금의 과학기술로도 도무지 재현해 내지 못한다.
일본의 야구선수 이치로는 ‘당신은 천재’라는 기자의 말에 ‘난 천재가 아니다.’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왜 안타를 쳤는지 혹은 못 쳤는지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설명이 가능하면 재현이 가능하지만 천재의 작업은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
논리와 분석이 지배하는 조직은 천재를 허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천재가 있고 없음은 나중에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애플과 구글을 창업한 나라와 그 뒤를 땀 흘리며 부지런히 쫓아가는 나라의 차이를 생각하면 짐작이 갈 것이다.
지금, 글로벌 기업의 경영자들은 컨설턴트 대신 디자이너, 크리에이터를 기용한다. 얼마 전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디자인 회사를 인수한 배경도 똑같은 맥락이다.
논리와 데이터만으로 경영하면 위험해진다. 똑같은 답을 내는 MBA식 사고방식은 반드시 레드 오션에 빠진다.
경영자도 부하직원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물건’으로 취급한다. 실적만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익만 추구한 그 결과, 윤리관이 희미해진다.
미국의 엔론 사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모두 MBA 학위출신이 만들어 낸 비참한 결과다.
엔론은 포브스 잡지가 6년 연속으로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라고 칭송했던 기업이다. 일본의 미쓰비시 자동차도 1977~2000년까지 10종의 차종, 합계 69만 대의 리콜 대상을 숨겼다.
반면, 인공지능을 다루는 딥마인드라는 벤처기업은 구글이 사겠다고 제안했을 때, 사내에 인공지능 윤리위원회(AI ethics board)를 설치해 달라는 조건을 달았다.
구글도 ‘Don’t be Evil, 사악해지지 말라’는 사훈을 내걸고 있다. 세계를 리딩하는 글로벌 기업은 ‘격’이 달라야 한다.
뇌과학에 따르면 우리가 정보를 접할 때는 나름대로의 신체적 반응을 일으킨다고 한다. 이를 '소메틱 마커(Somatic marker)'라고 한다.
소메틱 마커(감정이 개입되는 부분)는 특히 옳은 판단을 내릴 때 현저하게 작용한다. 가령, 이성적으로 판단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도 소메틱 마커가 훼손되면 어찌할 바 몰라 판단을 헤맨다는 것이다.
미시간 주립대학 연구팀은 노벨상 수상자, 로열아카데미 과학자, 내셔널 소사이어티 과학자, 일반 과학자, 일반인 5명을 상대로 예술적 취미를 조사한 적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와 일반인은 2.8배의 차이를 보였다. 노벨 수상자들은 음악, 미술, 글쓰기 같은 예술 분야에 몰두하는 시간이 그만큼 많았다. 반면에 일반 과학자와 일반인은 별 차이가 없었다.
이전에는 선진국에 현저했던 자기실현의 욕구가 지금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고객이 좋아하는 제품이 아닌 고객을 매료시키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심미안은 저절로 키워지지 않는다.
훈련하고 노력해야 몸에 익혀진다. 심미안은 명화 감상, 클래식 음악연주, 혼신의 글쓰기를 통해 이성과 논리 바깥의 감성을 키우는 것이다.
심미안을 키워야 경영인, 리더가 자기실현 욕구라는 거대한 세계 시장에서 후퇴하지 않고 전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