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생활 속 과학탐구는 일상생활 속 물리학, 첨단과학, 과학일반에 대해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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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역사상 이처럼 모든 부분에서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화학약품은 없었다.”

자극적 냄새가 없고 안정적인 구조를 지녔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구한 살충제. 그 공로로 194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살충제가 있다. 바로 디클로로디페닐트리콜로로에탄(DDT)이다.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이 1962년 저서 < 침묵의 봄 >에서 새들이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 봄을 만들 주범으로 고발한 바로 그 DDT와 같은 물질이다.
 
DDT는 1970년대 들어 대부분의 국가에서 판매 및 사용이 금지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1979년 판매금지 되었다.

DDT에 노출된 병아리에서 2차 성징이 나타나지 않는 등 동물의 생장에 치명적인데다 내성이 생겨 해충 박멸 효과도 일시적이라는 점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런 DDT도 한때 페니실린에 비견될 기적의 약품으로 칭송받았다. 지금 명명백백한 유해물질도 신통하고 유용한 발명품으로 환영받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현대의 생활은 화학물질로 둘러싸여 있다. 매일 사용하는 주방·세탁용 세제 등 청소용품과 샴푸·치약, 화장품 등은 모두 화학실험의 결과물이다.

생활 속 유해물질에 대한 위험 경고는 늘 있어 왔다. 기저귀, 물티슈, 놀이용 매트, 장난감 등 유아용품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보도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왔다.

그중 최악은 지난 2011년 신고 피해자만 5,800명에 이르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다. 깨끗하게, 더 건강하게 사용하려고 쓴 제품이 사람을 죽음으로 몰았다. 충격은 계속되었다.
 
지난해 9월 치약과 물티슈에서 가습기 살균제 독성 성분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이 검출되었다.
 
문제가 된 제품은 사라져도, 원료인 위험물질로 새로운 제품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7월에는 깨끗한 공기를 위해 쓰는 공기청정기, 차량용 에어컨 항균필터에서 코와 눈, 피부에 손상을 일으키는 물질인 옥틸이소티아졸론(OIT)이 검출되었다.

거기에 살충제 달걀과 E형 간염을 유발하는 유럽산 소시지 파동까지. 생활용품은 물론 식품 전반까지 불안이 번졌다.

지난 5월 화학물질안전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상 용품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1만 8,770종, 이 중 연간 1톤 이상 사용되는 물질만 6,574종이다.

정부는 내년 6월까지 연간 1천 톤 이상 사용하는 물질 510종을 우선 등록하고 2030년까지 1톤 이상 사용물질 7천 종까지 등록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그럼에도 화학제품 전반에 대해 불신하고 꺼리는 ‘케미포비아’는 수그러들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달걀 중에는 DDT 성분이 검출된 것도 있었는데 해당 농장주는 “DDT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40여 년 전 과수원에서 해충박멸용으로 사용한 DDT가 땅에 잔류한 것을 닭이 쪼아 먹었으리라 추정했다.

과연 공기와 땅에 배출된 유해물질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DDT처럼 4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면 안전하게 관리하는 일이 애초에 가능한지 의구심이 든다.

생리대를 둘러싼 불안 역시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지난 3월 여성환경연대와 김만구 강원대 교수가 생리대 검출물질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이 실험결과에 따르면 시판 생리대 10종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질(VOCs, Volatile Organic Compounds)을 포함한 유해물질 22종이 검출됐다.
 
휘발성유기화합물은 대기중에 악취나 오존을 일으키는 탄화수소화합물을 일컫는데 벤젠, 포름알데히드, 톨루엔, 자일렌 등이 포함되며 피부 접촉이나 호흡기 흡입시 신경계에 장애를 일으킨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환경부가 세정제 등에 ‘독성 있음’을 반드시 표기하도록 한 ‘톨루엔’이 4개 제조사 제품에서 검출되었고, 1군 발암물질인 트리클로로에틸렌도 9개 제품에서 나왔다.

일회용 생리대 성분이 문제가 되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666개 시판 생리대 휘발성유기화합물 10종 함량 측정 평가를 실시한
뒤 하루 7.5개씩 한 달에 7일간 평생 써도 안전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내년 10월부터 생리대와 마스크, 물휴지 등과 같은 의약외품은 허가증 및 신고증에 기재된 모든 성분 명칭을 의무적으로 표기하도록 약사법도 개정되었다. 하지만 면생리대는 여전히 품귀 현상이 일 정도이며, 해외 직구도 크게 늘었다.

애초에 생리대에 왜 그런 유해물질이 들어 있을까? 생리대에서 검출된 휘발성유기화합물질은 생리대를 속옷에 고정하는 접착
제에서 나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밖에도 원료로 면을 사용할 경우 목화에 남은 잔류 농약, 표백제 성분, 고분자 흡수제, 향료 등에 유해 성분이 포함될 수 있으리라 본다.

불안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는 생리대가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닌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가임기의 여성이 생애 40여 년 동안 매월 사용하는 물품으로 우리나라의 생리대 시장은 연간 3천 5백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24시간을 연속해 적어도 3일에서 길면 일주일 이상 착용하며 생식기에 밀착해 사용하므로 유해물질이 포함될 경우 그 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여성위생용품 중 질 내에 삽입하는 탐폰의 경우 독성쇼크증후군을 유발해 1968년부터 1980년까지 미국 내에서만 38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일회용 생리대를 이루는 각 원료의 유해성을 알고, 기준치를 엄밀하게 정한다 해도 화학물질에 대한 불안은 끝나지 않는다.

개별 원료의 독성이 기준치 이하라 해도, 여성의 생식기를 통해 화학물질이 체내에 얼마나 흡수되는지,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 연구가 거의 없기 때문에 기준치가 안전하게 정해졌는지 의심해볼 상황이다.

또 성분 각각이 안전하다고 해도 그것들이 서로 결합된 상태 역시 똑같이 안전할까? 40년 동안 흙에 남아 있는 DDT처럼 어떤 유해물질들이 인체에 들어온 뒤 배출되지 않고 남아 있지나 않을까? 아주 미미한 양이라도 몸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재 ‘케미포비아’는 유해물질을 하나씩 하나씩 밝혀내고 있다.

그것은 안전하게 사용할 기준을 만들면 된다고 믿었던 우리들에게 더 큰 문제를 던져준다.

어떤 위험요소가 있는 물질이라도 안전한 기준을 만들어 사용하면 문제없다는 생각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과연 이 편리한 물건들을 계속 사용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말이다.

이미 십여 년 전 태아 상태에서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되면 남성불임을 유발한다는 연구가 있었다.

정자 수 감소 등도 이미 현실화된 문제다. 거기에 최근 불거진 생리대 유해물질 논란은 인간이 만든 기술 문명이 인간의 생식 기능을 위협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숱한 영화에서 인류는 재난을 이기고 외계인 침공을 물리치고, 좀비와 싸워도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인류 앞에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불임이 도래한다면 어떨까? 생리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좀 더 커져야 한다. 거기엔 인간이란 종족의 미래가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