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석인 선임연구위원 산업연구원
최근 4차 산업혁명의 전개와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새로운 정책 기조와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는 기존 개인의 대응 방식과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기존의 정부 정책과 사회제도가 이제 그 유효성이 크게 약화되었을 뿐 아니라 향후 누가 먼저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접근 방식과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만들고 이를 먼저 활용하느냐에 따라 개인과 기업, 더 나아가 산업과 국가의 지속성장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경제에 있어 기존 주력산업의 재도약과 신산업 및 성장동력 육성을 위한 정부의 개입인 산업정책과 기술정책도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정책의 구상과 치밀한 디자인이 요구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인구구조 변화, 글로벌 위기 이후 급격한 무역구조 변화와 반글로벌화, 그리고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국정운영 기조와 경제 패러다임 변화가 종합적으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다름 아닌 대전환(Great transformation)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전환에 따른 불확실성과 위험이 일상화된 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책 환경 변화에 따라 정책 기조와 정책 목표, 정책 대상과 정책 수단, 추진체계를 새로운 시대의 맞추어 제대로 설정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목적지를 잘못 설정한 실패한 항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목적지를 잘못 설정한 배는 아무리 빠른 속도로 항해하더라도 이미 실패한 항해일 수밖에 없다.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1980년대 중반 이후 30여 년간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시장경제가 대부분의 문제를 잘 해결해준다’는 전제하에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국가와 기업이 부강해지면 그 번영의 성과를 모두가 다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소위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s)에 대한 기대로 산업정책과 기술정책을 추진하고 그러한 낙수효과를 보다 빨리 가져다줄 수 있는 기업과 조직을 대상으로 정책과 제도를 디자인하고 운영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지난 30여 년간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기초한 시장 우선주의의 다양한 정책과 제도 운영의 결과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개도국과 주요국들의 고도성장을 가능케 했으며, 괄목한 만한 성과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 자체와 그 이후 최근까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저성장과 소득 불평등의 심화와 양극화, 청년실업 등의 구조적 문제는 바로 그 시장 우선주의적 정책과 낙수효과를 기대한 정부의 정책과 제도가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아래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우리 사회와 경제가 지닌 구조적 문제에 대해 기존과는 다른 진단과 함께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국정운영 기조와 경제발전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의하면 새 정부는 ‘역대 정부 가 취한 물적 자본투자 중심 성장전략이 고용, 교육, 복지 등 사람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부족하여, 가계와 기업 간 소득과 역량의 불균형을 야기’한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또한 새 정부는 ‘양적 성과 중시적 성장전략으로 제조업, 수출, 대기업 위주의 정책적 지원을 집중함으로써 대-중소기업 격차 확대, 내수-수출의 불균형을 야기한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러한 진단을 기반으로 새 정부가 제시한 국정운영 기조의 골자는 과거 국가와 기업, 특권층 중심의 시대에서 국민의 시대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국정운영 대상의 전례 없는 획기적 전환이다.
과거 성장 우선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국정운영에 있어서 가장 우선시 된 것은 국가와 기업이었다.
국가와 기업의 발전이 선행되어야 국민의 발전이 보장된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제시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서도 기존 방식과는 다른 또는 정반대의 접근과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저성장과 양극화를 동시에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람(국민)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이 필요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요 측면에서 소득 주도 성장과 일자리 중심 경제, 공급 측면에서 혁신성장과 공정경제 정책으로 성장 과실(果實)이 경제 전반에 고루 확산되고 분배와 성장이 선순환 되는 경제 발전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간의 성장-분배의 순환에서 분배-성장의 선순환으로 가도 경제 발전을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 정부의 새로운 국정운영 기조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하에서 산업정책과 기술정책은 어떻게 방향을 잡고, 정책 목표를 설정해야 할 것인가?
아쉽게도 새 정부는 아직까지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성장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대통령의 혁신성장을 위한 부처별 개념 설정과 세부 전략 마련 지시에 따라 부처별 혁신성장 전략과 개념 정립, 실행과제 준비가 급히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국가성장전략 중 4차 산업혁명 대응과 미래성장동력 발굴도 뒤늦게 출범한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통해 마련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만 지난 정부에서부터 추진해 오던 19대 성장동력과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이를 발전적으로 통합 연계하여 추진하되, 연말까지 새로운 성장동력 정책과 실행 안을 마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최근 새로운 성장전략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소득 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에 있어서 향후 산업정책과 기술정책은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인가?
새 정부의 새로운 성장전략인 소득 주도 성장의 이론적 근거인 임금 주도 성장론(UNCTAD 2010, Stockhammer & Onaran, 2012)에 의하면 임금과 소득이 창출하는 내수 및 장기적 유효수요 확대가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고, 이는 결국 장기적으로 공급능력까지 확대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의 소득 주도 성장 논의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주로 임금인상을 통한 유효수요 확대에 치중되어 있다 보니 실제 기업 현장에서 그러한 임금인상이 가능하고, 장기적으로 과연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성장전략으로서의 역할과 가능성을 의심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 뒤늦게 등장한 혁신성장론 역시 소득 주도 성장은 단기 수요 측면의 전략이고, 혁신성장이야말로 장기 공급 측면의 전략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으로만 흐르고 있어 새 정부가 제시한 국가 성장전략으로서의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이 과연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인지 심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임금 주도 성장론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최저임금제 강화나 생산성 임금협약(생산성과 임금 상승의 연계) 등의 정책은 소비 증가를 통한 내수 확대를 위한 정책일 뿐 임금 주도 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공급 측면의 ‘임금 상승에 따른 기업의 생산성 향상 효과’와 ‘고부가가치 부분으로의 산업구조 개선 효과’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표 1).
이러한 기업의 생산성 제고와 고부가가치 부문으로의 산업 재편은 사실상 바로 산업정책과 기술정책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이자 이 두 정책의 핵심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서 제기한 우리의 문제, 즉, 새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에 있어 산업정책과 기술정책의 역할 문제는 여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즉, 향후 산업정책과 기술정책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현재의 제품 및 서비스 경쟁력 제고의 정책으로 추진되기보다는 이제 새롭게 설정된 성장전략이자 목표인 소득 주도 성장을 가능케 하는 생산성 기반의 임금인상이 가능하고, 기업들이 지금보다는 더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사업으로 더 활발히 재편할 수 있도록 기업의 혁신역량을 강화하거나 그러한 비즈니스 여건을 조성하는 방향에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렇게 산업정책과 기술정책이 소득 주도 성장의 공급 측면의 주요 정책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실질적인 혁신성장의 내용을 이룰 경우, 혁신성장 역시 역대 정부에서 추진하던 혁신성장과 차별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산업정책과 기술정책이 제대로 혁신성장과 소득 주도 성장의 연계를 가능케 함으로써 실질적인 노동 소득과 노동 분배의 개선을 통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유효수요를 확대하고, 기업으로 하여금 추가적인 투자와 생산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새 정부가 제시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인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의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새로운 산업정책과 기술정책이 소득 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의 틀 안에서 그 역할을 재정립하고 나면, 구제적인 수단과 추진체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일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산업정책과 기술정책의 수단에 대해서는 세계 어느 국가에도 뒤지지 않는 수많은 정책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책 기조와 목표에 부합되는 수단을 선정해야 할 것이며, 추진체계에서는 부처별 개별 추진보다는 미국과 독일, EU(유럽연합) 등 선진국처럼 부처 간 협력과 민관협력을 기반으로 한 맞춤형 또는 패키지형 지원 방식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불확실하고 위험한 대전환의 시대에는 단독 부처 대응보다는 여러 부처의 공동 대응이 필수적이며 비용 면에서 효과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