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소득 주도형 경제화 혁신 활동의 환상적 결합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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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기철 원장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문재인 정부는 지난 7월 ‘사람 중심 경제’를 경제 패러다임의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 방향으로 소득 주도 성장·일자리 중심 경제·공정 경제·혁신 성장 등 네 바퀴 성장론을 제시했습니다.

그 후 몇 개월 동안 소득 주도 성장의 이론적 근거와 타당성을 둘러싼 논객들의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다행스럽게도 4차 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을 통해 대통령께서 혁신 성장을 소득 주도 성장과 함께 새 정부의 핵심 전략으로 삼겠다고 천명함으로써 논란의 불씨는 누그러졌습니다.

이제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결코 다른 문제가 아니며, 경제학에서도 수요와 공급이 대립관계라기보다는 순환적 해법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보완적 해석이 더 중요해지는 시기입니다.

케인즈주의에 방점을 두어 유효수요의 창출을 앞세운 게 소득 주도형 경제의 출발이라면 보다 역동적인 혁신으로 창업을 통해 공급을 확대하는 것은 슘페터적 시각인 셈이지요.

이 상반된 듯 보이는 관점을 통합적으로 해석해야 J노믹스의 논리적 토대가 견고해지는 까닭입니다.

결국 소득 주도와 혁신 주도 성장이 환상적으로 결합되는 접점의 연결고리가 바로 4차 산업혁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세계 경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과 함께하고 있으며 한국 경제도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혁신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경제적인 체질 개선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왜 혁신 성장인가?

이미 저성장 구조로 굳어져 가고 있는 우리 경제를 비관적으로 평가하는 관점에서는 무엇보다 역동성 저하를 꼽습니다.

한국 경제도 뉴노멀의 징후가 뚜렷하여 잠재성장률이 3%까지 내려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차세대 성장엔진의 발굴은 아직 요원한데 증세 논란·최저 임금 인상·북한 리스크 등으로 경영 여건에 간난(艱難)의 우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장의 의미는 기업의 혁신과 활력이 동력으로 작동하여 경쟁력이라는 궤적으로 나타나는 축적의 과정입니다.

그런 점에서 혁신이 출발점이고 그 성과가 소득인 것은 당연합니다.

혁신 활동에는 이념 논란이 끼어들 여지가 없고 오직 실사구시만이 강조될 뿐이기에 혁신 생태계를 결속시키는 요소로서의 가치가 높습니다.

경제 주체가 정부·기업·가계로 구성되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정부가 재정을 풀어 일자리를 만들고 가계의 소득을 보전하더라도 생산성 높은 양질의 지속 가능한 일자리는 기업이 창출한다는 원리는 보편적 사안이지요.

그렇기에 소득 주도 경제 논리가 실물경제에서 성공을 가져오려면 혁신과의 환상적 결합 내지는 보완이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소득증대에서 시작하여 성장에 이르려면 연구개발을 통한 혁신론이 개입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경제 운영의 기조를 수요 확대 측면에서 볼 것인지, 아니면 혁신성과의 공급을 성장의 원천으로 볼 것인지의 관점에 따라 정책의 집행 방식도 달라지는 게 타당하지요.

또한 지속 가능한 미래 소득을 위해서는 혁신 활동과 더불어 교육·직업훈련 등에 대한 투자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공공 부문의 고용 증대도 수요 확대의 전형인데, 미래세대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혁신적이고 생산적 관점에서 일자리 만들기를 고민한다면 수요 주도와 혁신 주도 성장의 결합에서 나오는 시너지가 크게 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혁신 성장 정책의 방향, 건강한 혁신 생태계를 만들자

이런 점을 고려하여 ‘과거 혁파·현재 개선·미래 지향’이란 세 축에서 소득 주도 경제를 보완하는 혁신 경제를 추진한다면 지속 가능한 성장과 소득증대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축은 과거부터 관행이란 이름으로 이어져온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와 규제, 갑질 행태 등을 과감하게 혁파하여 구조개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기업의 자유로운 혁신 활동 성과입니다.

두 번째 축은 소득 보전으로 현재의 내수시장을 활성화함과 동시에 강소기업의 글로벌 시장 개척을 지원하는 방안입니다.

세 번째 축은 미래 준비를 위해 성장동력의 원천인 혁신 활동을 고양시키는 일입니다.

예컨대 인공지능 수술 로봇이 외과 의사를 대신하리라는 전망이 10년 안에 눈앞에 현실로 다가온다고 합니다.

대신 유능한 의사는 수술 로봇을 교육시키고 인공지능은 머신러닝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됩니다.

창업은 기술이 수단이고 비즈니스 모델이 출발점이 되며 시장은 그 마당이 됩니다.

이같은 혁신 생태계의 선순환을 작동시키는 혈액은 지식과 자본이며, 신경은 신뢰라는 가치일 테지요.

순환을 역류시키는 장벽도 있으니 다름 아닌 규제의 덫입니다.

이렇듯 신산업의 등장과 일자리 창출의 걸림돌은 기술이 아닌 낡은 제도와 법규라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혁신 사이클의 얼개인 ‘아이디어 → 연구개발 → 사업화’라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공간을 혁신 생태계라 일컫는 것이지요.

이어서 시장에서 성공하면 내수 확대와 더불어 글로벌 시장 개척을 통해 얻는 부가 다름 아닌 국민소득의 원천이 되는 것이 선순환 경제 사이클의 핵심입니다.

더욱이 연구개발 성과로부터 사업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혁신은 창업의 근간이 되고 벤처가 설립되는 경로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혁신은 경제라는 엔진의 시동을 거는 출발점이 되고 소득의 원천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논의처럼 ‘연구개발 성과 사업화 → 기업의 신제품 출시 → 기업의 매출증대 → 일자리 창출 → 소득증대 → 소비 확대 → 기업 수익증대 → 연구개발 투자’라는 혁신 중심 선순환 사이클이 이루어진다면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은 분명히 성공을 가져올 것입니다.


혁신 주도 성장의 시작은 글로벌 강소기업 육성부터

그렇다면 혁신 주도 성장 정책의 타깃을 어디에 두는 것이 효과적일까요?

대기업 측면에서는 글로벌 신시장의 무대에서 마음껏 뛸 수 있도록 규제를 풀고 700조 원에 달하는 사내 유보금을 혁신적 R&D에 투입할 수 있도록 R&D 세액 공제 등의 간접적 인센티브 정책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좀 더 직접적인 혁신 주도 정책을 펼친다면 글로벌 강소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데 맞추는 것도 효과적일 것입니다.

우리사회에 ‘99 88’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며 고용의 88%가 중소기업에서 창출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신설은 그동안 중소기업청의 뿌려주기식 혁신 활동에 대한 강한 비판과 반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결국 혁신형 글로벌 강소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R&D 정책과 비R&D 정책의 결합, 그리고 중소벤처기업부만의 정책이 아닌 4차 산업혁명 대응 차원의 범부처적 통합정책이 필요합니다.

글로벌 강소기업 육성정책은 개별 중소기업의 육성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그리고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산업과 기술의 특성을 비롯하여 기업의 특성들이 반영된 다양한 방식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기존의 관점으로는 공통되는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던 가치들의 접점을 찾아내야 하기에 이전의 해법이나 방법론으로는 잘 풀리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복잡계 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성장의 열쇠를 찾기 위해서는 보다 열린 가치관으로 그 접점을 찾아내는 용기 있는 혜안이 절실하며, 성장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와 혁신의 과정을 면밀히 관찰하여 맞춤형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요컨대 지속 가능한 성장의 원천은 혁신임이 분명합니다.

혁신의 성과로 얻은 소득이어야 새로운 성장을 주도하는 동력을 만들어 내는 법입니다.

혁신에서 비롯된 성장이야말로 소득의 진정한 원천이 되고 지속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혁신이 동력이 되어 소득을 증대시키는 성장 메커니즘, J노믹스의 성패는 결국 이 선순환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이것이 다름 아닌 우리를 둘러싼 우울하고 비관적인 전망들을 직시하면서 소득 주도 성장과 혁신 성장이 상호 보완된 정책의 추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그동안 축적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치밀하게 논의해야 할 시기가 아닐는지요.

이제 혁신 활동의 주체인 과학기술계가 정책적 혼선과 갈등보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실행에 나설 때입니다.

어쩌면 혁신 활동 자체보다 사회적 자본인 신뢰 쌓기가 더 중요한 동력이 될지도 모릅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의미가 다시 새로워지는 이 가을, 어느 시대든 미래는 늘 불확실성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밝히는 원천인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