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무비 & 사이언스는 영화 속의 상상력이 실제 현실에서 이루어진 과학기술들에 대해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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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프랑켄슈타인 >에는 생명 창조, 영화 < 스파이더맨2 >에는 꿈의 에너지인 핵융합에 도전하는 과학자가 등장한다.

두 사람의 실험이 처음에는 성공한 듯 보였지만 이내 참담한 실패로 끝나버리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문제는 이러한 실험이 단지 소설이나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연구가 성공적으로 끝날 때도 있지만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하거나 참담한 실패로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과학기술에 의한 연구 결과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을 과학자 사회의 전유물로 남겨둘 수는 없으며, 이제 우리 모두의 일이 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의 꿈

프랑켄푸드(Franken food)라는 말처럼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이 탄생시킨 괴물의 전형으로 통한다.

하지만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괴물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이다.

소설 속 사실만 따져보면 프랑켄슈타인은 생명 창조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했을 뿐이며, 모든 비극의 시작도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무책임하게 버림으로써 발생했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며, 괴물도 날 때부터 괴물은 아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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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프랑켄슈타인의 실험은 비윤리적이며 불법 거래한 사체를 사용한 위법 행위이다.

프랑켄슈타인의 실험이 비극을 초래한 이유도 규정과 법을 무시했기에 발생한 것이며, 신의 영역에 도전한 인간의 오만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소설 속에서는 실험 결과가 비극으로 끝났지만 과학자들은 프랑켄슈타인의 연구를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을 통해 재현하려 하고 있다.

물론 합성생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프랑켄슈타인처럼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2010년에 셀레라의 크리이그 벤터 박사가 합성한 M. 마이코이데스(Mycoplasma mycoides)처럼 주로 미생물을 합성한다.

합성생물학이 유전자공학과 다른 점은 기존 생물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게 아닌 공학 관점에서 아예 새로운 생물을 합성해 낸다는 점이다.

이미 ‘21세기의 생물학’이라 부를 만큼 합성생물학은 많은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벤터 박사의 인공 생물 창조를 두고 프랑켄슈타인을 거론하는 이도 있다.

그래서 벤터 박사의 업적을 두고 종교적 논란이 일기도 했던 것이다.

합성생물학이나 인공지능과 같은 몇몇 분야는 단순히 과학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기에는 너무 영향력이 커졌다.


보이지 않는 위험

프랑켄슈타인이 의도하진 않았지만 결국 그의 실험에선 괴물이 탄생했다.

영화 <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1) >에서는 실험실에서 괴물이 탄생하지도 않았지만 인류가 멸종할 만큼 위기에 처한다.

실험용 동물이었던 침팬지와 보이지 않는 위험인 바이러스가 실험실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바이오해저드가 발생한 것이다.

이 영화처럼 바이러스 하나로 인해 인간과 침팬지의 지위가 바뀔 가능성은 없지만 새로운 과학기술은 보이지 않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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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다시 회자되고 있는 DDT도 그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874년 독일의 자이들러는 DDT를 합성했다.

하지만 DDT가 살충제로서 우수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스위스의 화학자인 뮐러가 알아냈고, 뮐러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DDT는 말라리아를 전염시키는 모기를 퇴치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물질이었다.

‘기적의 살충제’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DDT가 문제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레이첼 카슨이 1962년에 < 침묵의 봄(Silent Spring) >을 통해 환경 재앙을 경고해도 귀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결국 카슨의 주장처럼 DDT는 먹이사슬을 통해 포식자의 몸에 축적되어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사용이 금지되었다.

탈리도마이드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동물 실험 결과 안전한 수면제로 여기며 임산부에게 마구 처방된 탈리도마이드로 인해 사지 없는 아이들이 출생하기 전까지는 그 약의 위험성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었다(안전성에 대한 근거가 부족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새로운 희망

DDT나 탈리도마이드 사고는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를 만들어냈고, 사람들은 공장에서 만들어 낸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사고도 문제였지만 과학들이 사전에 그것에 대한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뉴턴 역학을 바탕으로 한 기계론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모든 것을 밝혀내고 유토피아를 건설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산업혁명과 근대 산업사회를 지나면서 환경오염과 인간성 상실 등 과학기술로 인한 문제가 대두되면서 희망은 실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결국 < 터미네이터 >와 같이 과학기술로 인해 인류는 디스토피아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가지게 되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인류의 미래를 암울하게 바라본 것은 아니다.

영화 < 철완 아톰(鉄腕アトム, 1952) >에 등장하는 아톰(ATOM)은 폭력과는 거리가 먼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원자폭탄으로 패망한 일본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원자력 로봇인 아톰을 보고 새로운 희망을 품었다.

그러한 희망은 오늘날 일본의 로봇 산업에 밑거름이 되어 일본이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선두를 달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 스파이더맨2 >의 닥터 옥터퍼스는 태양의 힘을 지상에서 실현해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비록 공개 실험 도중 발생한 불의의 사고로 핵융합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그는 괴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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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장면이 태양의 힘을 함부로 지상에서 재현하려 한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일까?

아니다. 옥터퍼스는 과학의 진보를 위해 노력하다 희생된 비운의 과학자일 뿐이다.

과학기술이 항상 성공적인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의 이기는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끊임없이 도전했던 이들의 결과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후손들이 살게 될 미래는 지금 우리가 품고 있는 꿈이 실현된, 오늘보다 더 좋은 그런 세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