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문화는 과학과 인문, 사회, 문화, 예술 등을 접목, 세상을 변화시키는 과학기술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느 가수의 콘서트에 갔다고 상상해 보자.
우렁찬 피날레가 끝나면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가수는 관객들의 환호에 답하며 허리 굽혀 인사하고 퇴장한다.
그러면 더 큰 박스가 터져 나오고 가수는 다시 무대 위로 등장한다.
박수 소리는 더욱 거세진다.
공연장에서는 매번 반복되는 풍경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공연에서는 약간 기이한 현상이 목격된다.
박수 소리가 점점 커지던 어느 순간부터 박자가 만들어진다.
모든 관객이 같은 속도로 손뼉을 친다.
미리 연습을 한 것도 아닌데 짝, 짝, 짝 하고 일정한 리듬을 유지한다.
소리에 맞춰 “앵콜! 앵콜!” 하거나 “한! 번! 더!”를 외치기도 한다.
그러다 박자가 점점 빨라지고 속도가 높아지다가 결국 붕괴되어 뒤섞인다.
결국에는 통일된 박자가 사라지고 처음처럼 제각각 박수를 치는 상태로 되돌아간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보다는 단체생활에 익숙한 유럽에서 이러한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그런데 관객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박수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일까.
사전에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 지휘를 하거나 명령을 내리지도 않는데 어떻게 일관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일까.
이렇게 주변의 움직임에 맞춰 자신의 움직임까지 바꾸는 조절 현상을 ‘동조(同調)’라 한다.
풀어서 말하면 동일한 속도가 되도록 보조를 맞춘다는 뜻이다.
관객의 박수도 동조 현상에 속한다.
다들 박수 치는 속도가 빨라지면 자신도 거기에 맞춰 점점 박수를 빠르게 치는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같은 빠르기를 유지해도 되는데 왜 굳이 속도를 높이는 것일까.
맨 먼저 속도를 높인 사람은 무슨 의도가 있었을까.
주변 사람들이 그에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주변의 박수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맞추는 것일까.
동조는 사람 수준의 지능을 가진 존재들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일까.
동조 현상은 자연과 우주 어디에서나 흔하게 관측된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에도 일반적으로 나타나며, 원자보다 작은 양자의 세계에서도 예외 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동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최근에서야 시작되었다.
유사한 현상을 관측한 사례는 많지만 이것을 동조라는 용어로 부르고 인정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시작은 ‘반딧불이’가 열었다.
개똥벌레라고도 불리는 반딧불이는 딱정벌레목에 속하는 곤충이다.
몸통은 딱딱하고 검은데 꼬리 끝부분에 흔히 야광색이라고 부르는 노르스름한 색깔의 밝은 부위가 붙어 있다.
밤이면 여기서 느리게 깜빡이는 빛이 생겨나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띈다.
반딧불이가 빛을 내는 것은 본질적으로 짝짓기를 위한 개인적 행동이지만, 이따금 우리의 눈을 의심할 만한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숲 전체에 사는 반딧불이 모두가 동일한 속도로 불빛을 깜빡이는 것이다.
몇 킬로미터에 달하는 군집이 마치 누군가 스위치를 껐다 켜는 듯 속도를 맞추는 장관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이 현상이 처음 기록된 것은 1727년이었다.
그러나 300년이 지난 1917년에 과학학술지 < 사이언스 >에도 동일한 현상이 보고되었을 때도 과학자들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야 ‘진동자’라는 개념이 제시되었다.
진동자(Oscillator)는 시계처럼 일정한 반복적 움직임을 보이는 현상을 뭉뚱그려서 가리킨다.
진동자는 독립적인 기관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세포의 작용 그 자체이다.
의식적인 노력이 없어도 발생하기 때문에 몸의 어느 한 부분을 없앤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능이 사람에 못 미치는 존재들도 얼마든지 동조 현상을 보일 수 있다.
물론 관객의 박수는 더 큰 소리를 내서 호감을 전달하려는 의도에 의해 서로 협력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러나 이마저도 누군가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또 집단적으로 갑자기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수학 공식으로는 풀어낼 수 없다.
해답을 준 것은 아서 윈프리(Arthur Winfree)라는 물리학도였다.
1965년, 대학생이었던 윈프리는 진동자라는 가상의 존재가 보이는 특성을 ‘비선형’이라는 개념으로 규명해 냈다.
물의 온도를 높이면 내내 액체 형태였다가 어느 순간 기체가 되며, 반대로 온도를 낮추면 갑자기 고체로 형태를 바꾼다.
이것이 비선형적 움직임이다.
1975년에는 구라모토 요시키(Kuramoto Yoshiki)라는 일본의 물리학자가 비선형 현상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모델을 완성했다.
동조 현상이 본격적으로 과학의 영역에 포함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모든 생물은 체내 어딘가에 다양한 형태의 진동자를 가지고 있으며 서로 보조를 맞추는 동조 현상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슷한 존재들은 되먹임(Feedback)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서로 박자를 맞추는 것이다.
동조는 사람과 동물, 생물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일반적으로 발생한다.
함께 생활하는 두 여성은 생리주기가 점점 비슷해지고, 수만 마리의 반딧불이는 불빛의 깜빡임 속도가 동일해지며, 난자를 향해 부지런히 헤엄치는 수많은 정자들은 꼬리의 움직임을 일치시킨다.
달의 움직임에 의해 발생한 밀물과 썰물의 차이는 되먹임 작용을 통해 결국 달의 자전과 공전 주기를 변화시켜 우리가 한쪽 면만 볼 수 있게 해놓았다.
레이저 광선은 수조 개에 달하는 원자들이 동조를 통해 동일한 주파수의 광자를 내뿜기 때문에 균일한 빛이 된다.
동조(Sync)가 자연 속의 일반적인 현상이라면, 동기화(Synchro-nization)는 인간이 의도적으로 동작을 맞추어 단체행동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데 쓰인다.
케이팝 가수들이 ‘칼군무’라 불리는 일치된 춤 동작으로 탄성을 자아내거나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에서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거대한 매스게임(Mass game)을 완성하는 것은 긴 연습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동조하려 노력한 결과다.
북한은 10만여 명을 동원해 집단체조 ‘아리랑’을 선보이고, 중국은 9월 3일 전승절마다 대규모 군사 병력을 행진시켜 절도 있게 일치된 동작을 뽐낸다.
서울과 부산에서 열리는 불꽃축제에서도 첨단 소프트웨어와 전자장치를 이용해 여러 발사장치를 동일한 시간에 작동시킴으로써 화려한 불꽃놀이를 완성시킨다.
그러나 동조는 때로 공명(Resonance) 작용을 통해 위협적인 힘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1831년 영국 맨체스터 인근에서는 500여 명의 군인들이 발을 맞추어 브로턴 현수교를 지나다가 흔들림이 커져 붕괴해 큰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2000년 런던에 개통된 밀레니엄 브리지도 행인들이 자기도 모르게 발을 맞추다가 공명이 커져 한때 폐쇄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에어로빅 회원들의 집단적 발동작 때문에 서울 테크노마트 건물의 진동이 커져 사람들이 대피하기도 했다.
아직도 인간은 동조라는 자연 현상에 대해 배워야 할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