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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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윤 차장
한전KDN


인도 모디 총리가 적극 추진 중인 ‘인도의 제조업 육성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2008년부터 시작된 ‘인도 전력 현대화 사업’은 29개 주에 자금을 지원하는 10조 규모의 전 국가적 사업이다.

2009년 인도 전력 시장에 진출한 한전KDN의 사업 수행 성공사례를 통해 한국 기업의 인도 진출시 그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RAPDRP가 가고 IPDS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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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기세로 떠오르고 있지만, 인도는 아직 부족한 게 많은 나라다.

모디 정부가 적극 추진 중인 제조업 육성 정책, 'Make In India'는 아직 그 성공을 판단하기에 이르지만, 그 성공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전제돼야 하는 필수적인 인프라조차 이제부터 만들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 중 하나가 전력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안정적인 전력 공급 없이 제조업 육성은 불가능하다.

인도 정부도 진작부터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시작된 정책사업 가운데 하나가 바로 RAPDRP 사업이다.

Restructured Accelerated Power Development and Reforms Programme의 준말인데, 한국말로 해석하자면 ‘구조 개편된 전력 개발 및 개선 가속화 사업’이다.

편의상 이 글에서는 이 사업에 참여했던 한국 업체들이 주로 사용했던 대로 ‘인도 전력 현대화 사업’이라고 칭한다.

인도 전력 현대화 사업은 2008년에 시작됐다. 인도 전력부(MOP, Ministry of Power)가 29개 주에 사업 자금 전액을 지원하는 약 10조 규모의 전 국가적 사업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2002~2003년부터 시행됐던 APDRP 사업의 개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본편이 잘돼서 2탄을 준비했다기보다는 본편의 실패를 만회해 보려고 시도된 사업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사업의 목표는 전력의 손실률(AT&C Loss, Aggregate Technical and Commercial Loss)을 줄이는 것이다.

인도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전기를 생산하고 네 번째로 많은 전기를 소비하는 나라다. 이렇게만 말하면 이미 포화상태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인도의 1인당 전기 소비량은 불과 우리나라의 10분의 1 수준이다. 제조업 육성 정책이 성공하고, 중산층의 소비가 가속화될 경우 전기 소비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발전소를 늘려 생산량 자체를 늘려야겠지만, 송배전망의 효율이 낮으면 구멍 난 항아리에 물 붓기가 될 공산이 크다. 전력 현대화 사업은 이 구멍부터 막아 보자는 것이다.

이 사업에는 두 단계가 있다. 첫 단계는 어디서 얼마만큼의 손실이 발생하는지 분석하는 단계이고, 두번째 단계는 이 분석을 기반으로 송배전 설비를 교체 또는 보강하는 단계이다.

다시 말해 첫 단계가 항아리의 어디에, 얼마나 많은 구멍이 뚫렸는지 확인하는 단계라면 두 번째 단계는 실제로 구멍을 막는 단계다.

이 사업은 성공적으로 끝났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첫 단계만, 그것도 불완전하게 끝난 채로 IPDS(Integrated Power Development Scheme)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말았다.
 
인도 중앙정부는 전력 현대화 사업을 현 상태에서 조속히 마무리하고, 미진했던 사업부분과 일부 새롭게 추가된 사업 영역을 IPDS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포장해서 약 6조가량의 추가 예산과 함께 밀어붙이고 있다.
 
대금 지급 방식 보완 등과 같이 기존 사업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들이 대거 마련됐다. 효과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전력손실률을 줄이겠다는 인도 정부의 의지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한전KDN의 사업 수행 사례

한전KDN이 인도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2009년이다. 경영진의 신규 해외사업 개발에 대한 강한 의지가 때마침 시작된 인도의 전력 현대화사업(RAPDRP)과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면서 적극적인 수주 활동으로 이어졌다.

총 7개 주의 사업 입찰에 참여한 결과 2010년 9월, 케랄라 주 사업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당초 2~3개 사업 수주를 목표로 했던 것에는 못 미치는 결과였지만, 당시 환율 기준으로 약 500억이 넘는 규모의 단일 사업을 수주한 것은 회사 입장에서도 고무적인 결과가 분명했다.

하지만 일은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2010년 9월 최종 수주사로 선정(Letter of Award 수령)된 이후에도 발주사인 케랄라 주 전력청(KSEB, Kerala State Electricity Board)은 납득하기 어려운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실 계약 체결을 미뤘다.

이 가운데 회사는 18개월 내에 사업을 준공해야 한다는 입찰 조건에 쫓겨 10여 명의 팀원과 인도 협력사 인원을 공격적으로 선 투입했다.

정식 계약 체결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작된 셈이다. 그러던 2010년 12월 중순, 케랄라 주 의회는 사업을 중단하고 재입찰을 진행하라는 결정을 내려버렸다. 정확한 이유는 공개되지도 않았다.

이에 불복해서 우리는 케랄라 주 고등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법정 공방에 돌입했다. 그리고 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아내는 데 일년 반의 시간이 걸렸다.
 
인도에서, 외국 기업이, 정부 기관을 상대로, 그것도 일년 반의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법정 다툼에서 승소한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사관을 통한 정치적 접근과 회사 차원에서의 모든 노력이 동원됐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운도 좋았다. 현지에 혼자 남아 소송 업무를 수행해야 했던 필자에겐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2012년 5월 법원으로부터 받은 승소 판결을 바탕으로 약 6개월의 추가 협상을 거쳐 2012년 11월에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실제사업이 시작됐다.

한전KDN이 인도 케랄라 주에서 수행한 전력 현대화 사업(RAPDRP)은 대단히 포괄적인 사업이다.
 
EA(Energy Audit: 전력 손실률평가 시스템), GIS(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지리 정보 시스템), MDAS(Meter Data Acquisition System: 원격 검침 시스템), WSS(Web Self Service: 온라인 수납 시스템) 등 전력시스템 운영에 필수적인 10여 가지 IT 시스템의 구축과 원격 검침용 계량기 설치 및 GIS 자료조사 등 현장업무를 포함하고 있다.

사업은 계획보다 매우 느리게 진행됐다. 사업의 범위가 넓고, 현장이 지리적으로 넓게 퍼져 있어서 전체적인 통제가 쉽지 않았다.

인도 하도급사들과의 협력도 만만치 않았다. 사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기자 규모가 작은 하도급사들은 사업을 계획대로 진행할 힘을 잃고 우왕좌왕했다.

게다가 무엇보다 큰 문제는 발주사가 사업을 수행할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IT 조직도 갖추지 못한 전력청을 상대로 대규모 IT 프로젝트를 끌고 나가는건 험난한 여정이었다.

필수적인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이미 완료된 작업에 대한 승인과 대가지급은 기약도 없이 미뤄졌다. 결국 18개월로 예정됐던 사업은 2017년 6월, 무려 55개월만에 준공식을 할 수 있었다.

재무적인 차원에서만 손익을 따지자면 이 사업은 실패한 사업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계획보다 3배나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인도 29개 주에서 시행된 전력 현대화 사업 전체를 살펴보면 이는 제일 짧은 기간에 사업을 완료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덕분에 인도 전력부와 주 전력청의 신뢰를 얻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구축한 시스템의 품질도 우수하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연계해서 이루어질 IPDS 사업에 대한 인도 전력부와 주 전력청의 참여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전KDN은 그동안 인도 사업을 수행하는 내내 많은 본사 직원들을 투입했다.
 
그 과정에서 이들 모두가 혹독한 현지 경험을 쌓게 됐고, 덕분에 이후 어느 인도 사업에서든 자기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역량을 갖추게 됐다.
 
또한 긴 사업 기간을 함께했던 인도 현지 하도급사들과의 우호적 관계는 차기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한전KDN은 이제 비로소 인도의 전력 분야 시장에서 도약할 준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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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업체를 위한 제언

IBEF(India Brand Equity Foundation)의 분석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2년까지 7년 사이에 인도의 전력 소비가 약 60%나 급증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 인도에서는 신재생 에너지와 스마트 그리드를 포함한 거의 모든 전력 분야의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급성장하는 분야에 기회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옥석을 가리는 노력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원격 검침(AMR, AMI) 분야와 신재생 에너지 분야는 인도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이미 많은 사업 기회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분야라 할 만하다.

이런 기회 속에서 한국 업체가 그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앞서 살펴본 한전KDN의 사례를 바탕으로 이 부분을 고민해 보자.

첫째,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을 해야 한다.

한전KDN이 고전한 첫 번째 이유는 사업의 불확실성이 컸기 때문이다.

모든 사업이 마찬가지지만, SI 사업은 특히 발주사와 수주사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다. 모든 고객이 하나라도 더 받아내려고 노력하지만 그 고객이 인도라면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무리한 요구를 봉쇄할 수 있는 상호 합의된 기준이 없다면 일은 일대로 하고 대금은 받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
다.
 
그래서 고객 맞춤형 소프트웨어 개발사업 등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대신 패키지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완제품과 같이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적절히 방어할 수 있는 상품이 인도 내에서 사업을 하는데 적합하다.

둘째, 조직의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많은 회사들이 영업 조직과 수행 조직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목표를 가지고 운영된다. 사업 수주가 최우선 과제인 영업 조직에서 어렵게 사업을 수주해 놓고보면 실제 수행 조직에서는 이를 반기지 않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서로 ‘회사를 말아먹을 셈이냐?’는 날 선 공방만 오가기 일쑤다. 최악의 경우 실제 사업을 수행할 팀 구성조차 쉽지 않다.

억지로 등 떠밀어 인도로 보낸 인원이 일을 제대로 할 리 만무하다. 조직 전체에 인도 사업의 당위성이 절실히 공감되지 않으면 성공적인 사업은 불가능하다.

셋째, 현지 조직을 키워야 한다.

해외 사업을 하다 보면 꼭 한국 사람이 해야 하는 업무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초기에는 체계를 다지는 의미에서 많은 일들을 한국 인력이 담당하게 되지만 여기엔 한계가 있다.
 
한국 사람의 경우 기본적으로 비용이 높고, 현지 상황에 대한 적응력이 현지인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꼭 한국 사람이 해야만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더라도 현지 인력이 해당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꾸준히 현지 인력위주로 조직을 개편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비용적인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현지 경쟁력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인도에 진출해 있는 대부분의 대기업들도 현지 인력의 업무 수행 비율이 월등히 높다.

전력 현대화 사업을 위해 인도에 주재한 지 8년째다. 100년이 공존하는 나라라는 인도를 배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이 나라에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국가의 기간 산업인 전력 분야는 이 변화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 커다란 기회가 있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그 기회를 누구나 쉽게 거머쥘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치지 않고 도전하는 열정이 있다면 만만치 않은 인도 시장도 그 문을 열어줄 것이라 믿는다.
 


01 국가별 전력 생산량(List of countries by electricity production):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electricity_production 참조

국가별 전력 소비량(List of countries by electricity consumption):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electricity_consumption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