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술경영인인터뷰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에서는 기술경영인과의 대담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기술경영인의 역할과 리더십 등을 알아봅니다.

한국 의료기기, 개발을 넘어 수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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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작성_조원일 교수(한양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김공숙 전문작가(프리랜서)


치과용 근관충전재 부문 세계 1위 기업

충치가 생겨 치과에 가면 충치 부분을 긁어내고 구멍 난 곳에 충전재를 채워 넣는다. 치과용 충전재는 충치의 확산을 막아주는 의료소재로 치과 치료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재료이다.

치과용 근관충전재 부문 세계 1위, 세계 시장 점유율 20%에 달하는 기업이 우리나라에 있다.

충북 청주시 오송 생명과학단지에 있는 (주)메타바이오메드(이하 메타바이오메드)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1등 제품을 만드는 작지만 큰 기업이다.

국내 의료 부품과 소재 및 진단 치료기기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시대에 메타바이오메드는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생산 그리고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를 망라하며 생명공학 분야의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메타바이오메드의 수장인 오석송 회장은 1990년 창업해 치과치료 재료 및 기기, 수술 후 체내에서 분해되는 생분해성 봉합원사, 인공뼈 등 생체재료를 개발하고 근래에는 영상 진단기기의 연구개발 등 신사업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우수한 의료 제품을 개발·생산해 연 매출의 95%를 미국, 유럽 등 해외 100개국 250여 영업망을 통해 거둬들이는 글로벌 강소기업 메타바이오메드의 오석송 회장을 만났다.


빨간 넥타이와 파란 셔츠의 사나이

오석송 회장은 항상 빨간 넥타이와 'META'가 새겨진 파란 셔츠를 입는다. 동대문 시장에서 큰 감을 구입해 한 번에 24장을 맞추고 그동안 400장의 같은 셔츠를 입었다고 한다.

덕분에 해외 의료 관련 바이어들은 멀리서도 이 차림만 보면 메타바이오메드의 오석송 회장이라고 알아챈다. 골프하는 필드 위에서는 ‘빨간 옷의 사나이’로 통한다.
 
모자부터 티셔츠, 바지, 벨트, 장갑, 골프화까지 온통 빨간색으로 입는다. 심지어 골프 백까지도 빨간색이라 모두의 이목을 끈다.

초록잔디와 보색 대비인 빨간 차림의 오석송 회장을 상상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의 빨간색 차림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빨간 옷은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멘탈 스포츠인 골프에서 자신감을 잃으면 머릿속으로 그린 스윙이 그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빨간 넥타이를 매기 시작한 것은 중국에 제품을 알리려고 종횡무진으로 다닐 때에 중국인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서였지만 이제는 오석송 회장의 상징이 되었다. 그가 자신감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업을 일구며 죽음 직전까지 갔던 커다란 실패를 겪었기 때문이다.


두 번의 사업 실패를 딛고 일어선 ‘오뚝이 경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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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회장은 충남 서천군 장항읍 출신이다. 주산을 잘해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주산대회에서 우승하고 선린상고에 특채로 입학했다. 지금도 10만 단위까지는 거뜬히 암산이 가능하다.

그는 금융권으로 간 동창들과 달리 일반 기업을 선택했다. 이유는 나중에 직접 사업을 하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인 첫직장에서 재무회계 분야의 일을 시작했는데 계산기가 없던 시절 뛰어난 주산 실력과 근성을 인정받아 경리부장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러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찾은 이태원에서 우연히 한 미국인과 만나 친구가 되었고 그의 제안으로 1985년 치과 충진재 재료를 임가공하는 미국계 회사의 한국법인 관리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가 의료산업과 맺은 첫 인연이다.

당시는 노사분규가 극심하던 때였다. 입사 3년 만에 미국 본사는 노사분규 해결이 어렵자 한국법인의 문을 닫기로 결정했고 미국인 대표는 사업을 포기하고 떠나버렸다.
 
그는 노조를 설득하는 동시에 미국 경영진과 협상을 벌여 집을 팔고 은행 빚까지 얻어서 회사를 인수하고 사장이 되었다.

그러나 노조의 요구는 갈수록 거세졌고 그도 결국 회사를 포기하고 만다. 인수 3개월 만의 일이었다.

당시 노조는 집까지 찾아와 꽹과리를 치며 미국의 앞잡이라고 비난했고 두 딸이 학교에서 따돌림까지 당할 정도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오 회장은 좌절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관계를 유지해온 충전재 글로벌 인맥이 있으니 제품만 만들면 어떻게든 판매할 자신이 있었다.

그는 치과 충전재의 사업 시장이 성공할 거라고 믿고 1990년 메타바이오메드를 설립한다. 이번에는 친척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사업비를 모으고 인건비가 싼 인도네시아로 가서 현지인과 합자 회사를 세워 공장 가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충분한 사전 준비 없이 시작한 결과는 곧 드러났다.

공단 지역이 있는 정글 주변에서 온 인력들은 생산성이 낮았고 제품은 인도네시아 산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판매가 어려웠다. 이번에도 결국 실패했다. 그는 3년 만에 빈털터리가 되어 귀국했다.

신용불량자가 된 그는 인맥마저 잃고 희망도 사라졌다. 1993년 무더위가 일찍 찾아온 어느 날 갈 곳 없던 그는 소주 몇 병과 신경안정제 30알을 들고 선친이 묻힌 산소에 홀로 찾아갔다. 선친 묘지 옆에서 삶을 끝낼 작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죽으려고 하니까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소주를 퍼마시며 통곡하다 잠이 들어 새벽에 눈을 떴는데 ‘추워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위도 못 견디면서 죽음을 쉽게 생각한나 자신이 우스웠습니다. 산을 내려오면서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어요.”

물러날 곳이 더 이상 없다는 생각으로 다짐을 했는데 그 순간이 삶의 끝이 아닌 시작을 알리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댄 언덕은 고등학교 동창들이었다.

그의 딱한 소식을 들은 친구 일곱 명이 연대 보증을 서준 덕에 5,000만 원을 대출받아 충북 청주에 약 200㎡ 크기의 지하공장을 임대해 다시 일어섰다.

역시 치과용 재료 임가공 공장이었고 아주머니 12명이 손으로 충전재를 만들면 그가 직접 차에 싣고 물건을 팔러 다녔다. 사장·경리·운전기사·작업반장·영업사원 역할까지 1인 5역을 담당했다.

다행히 예전 미국 바이어에게 물품을 넘길 수 있게 되면서 회사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1995년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근관치료용 제품 등록에 성공했다.
 
매출이 점차 늘자 바로 신제품 개발에 눈을 돌렸고 꾸준히 제품을 개선한 덕에 2000년 3월 근관충전재 개발에 성공했다.

충전재는 미국 FDA의 승인과 EU의 제품안전인증인 CE 마크까지 획득했다. 이어 국산 치과용 충전재 개발에 성공했다. 이제 재기의 발판이 충분했고 이 제품으로 메타바이오메드는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하게 된다.


생분해성 봉합원사의 연구개발과 제품 생산

메타바이오메드의 특징은 의료용 소재의 연구개발, 생산, 마케팅 전 부문을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국내 유일의 전문기업이라는 사실이다.

중소기업이 마케팅까지 직접 담당하는 경우가 없다. 의료용 소재 제품시장은 특성상 유명 제품, 오래된 제품을 선호하는 등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타바이오메드가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중소기업이 가지기 어려운 기술력과 영업력에 있다.

“의료기기 업체에서 연구개발(R&D)은 숨을 쉬는것처럼 생존에 직결된 것입니다. 생존하려면 연구개발과 도전 정신으로 제품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오 회장은 1997년 우연한 기회에 생분해성 봉합원사라는 새로운 사업을 발굴했다. 전북대 섬유공학과 학생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담당 교수가 오 회장의 사업실패 경험과 극복 의지에 감명을 받았다면서 몸속에서 녹는 수술용 실을 만들어보라고 제안한 것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인체에 흡수되는 수술용 실인 생분해성 봉합사는 환자의 몸 안에서 그대로 녹아 사라지기 때문에 나일론, 실크와 달리 수술후 실을 제거하는 2차 수술을 안 해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처음 듣는 분야였지만 사업 성장에 대한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1999년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생분해성 봉합원사 개발에 들어갔다. 하지만 창업투자회사는 시장 진입이 어렵다는 이유로 번번이 자금지원을 거절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생분해성 봉합원사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은 이유는 의료 선진국의 메이저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분해성 봉합원사 기술력을 가진 기업은 세계에서 에티콘, 타이코 헬스케어 등 6곳뿐이었고 한국에서는 삼양사만이 유일했어요. 그만큼 고난이도의 기술력과 축적된 노하우가 필요한 부문이라 웬만한 대기업들도 진출을 꺼려할 정도로 진입장벽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메타바이오메드는 갖은 노력 끝에 2002년 결실을 맺는다. 치주 질환용 생체분해성 유도 조직 재생막과 그 제조 방법에 대해서 특허를 출원하고 생산을 시작해 다음 해 생분해성 봉합원사를 개발했다. 이것이 지금의 메타바이오메드를 있게 한 효자 제품이 되었다.

이 생분해성 봉합원사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개발해 상품화된 높은 기술집약적 제품이다. 특히 박테리아의 감염 위험이 낮은 ‘단사’ 생분해성 봉합원사의 개발은 세계에서 두 번째이다.

이미 독일과 일본의 대기업들이 원천 기술과 시장을 모두 장악한 상황에서 거둔 쾌거이기에 더욱 뜻깊다.

메타바이오메드 이후로 현재까지 생분해성 봉합사를 개발한 기업이 없다. 오 회장은 생분해성 봉합원사의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산학협력으로 신제품 아이디어, 기술 노하우, 연구개발의 협업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쉼 없는 연구와 제품 개발로 경쟁력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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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치로 치아에 구멍이 나면 치아 한가운데 있는 대롱모양의 빈 부분인 ‘치근관’을 충전재로 메워야 한다.

그래야 충치의 확산도 막고 신경 치료도 할 수 있다. 메타바이오메드의 제품은 치근관 충전재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22%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에서 연간 약 6,000여 만 명이 이 제품으로 치료받고 있는 상황이니 인류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회사의 모토가 무색하지 않다.

회사는 치과재료뿐만 아니라 부속 기기의 생산에까지 관심을 두어 2007년에는 세계 최초로 배터리 착탈식 무선 근관충전시스템을 개발했다.

메타바이오메드의 기술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으면서 현재는 치과 중심의 사업 구조를 탈피해 생체 재료와 의료기기 등의 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2008년에는 실리콘이 첨가된 산호 기반 합성골 대체재와 복합 다공성 치밀체 등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인공뼈 역할을 하는 동시에 선천적으로 지니고 나온 뼈와 자가골의 재생을 도와 자연 치유를 촉진시키는 골수복재는 2008년 미국 FDA 승인과 유럽판매 인증 CE 마크를 획득했다.

이것은 줄기세포를 이용한 인공각막 및 피부, 뼈와 뼈 사이 빈 공간을 메워주는 정형외과용 골 시멘트 등으로 사용된다.

또한 다양한 진료에 적용할 수 있는 일회용 초소형 내시경, 초음파 진단기도 개발했다. ‘아이(i)-돌핀’은 척추 디스크 환자들을 시술할 때 사용하는 의료기기로 세계 최초로 광섬유 조명, 초소형 카메라, 워킹 채널 등을 미세한 카테터 관에 탑재한 것이다.

“아이 돌핀은 일회용이기 때문에 감염의 우려가 적고, 기존 제품에 비해 화소가 뛰어나 환자의 치료 부위를 정밀하게 촬영할 수 있습니다. 꼬리뼈 부근을 절개해 내시경을 삽입하는 방식이라 수술에 비해 시술이 간편하고 회복이 빠릅니다. 내시경 검사의 불편함과 감염 걱정을 해소해주어 글로벌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죠.”

최근에는 요실금 치료제와 혈관 문합기를 개발했다. 기존 혈관 문합기는 대개 금속 재질인 반면 메타바이오메드의 제품은 플라스틱 복합재료를 사용한다.
 
이외에도 노령인구의 확대에 따른 새로운 분야도 개발 중이다. 척추수술, 관절수술의 증가에 따라 수술에 주·보조 재료로 사용 가능한 고강도 본 스페이서(Bone Spacer)와 항생제 함유 골 시멘트 등이 그 예이다.

메타바이오메드는 세계 1등 제품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공정개선을 통해 품질 향상을 꾀하고 있다.

연간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집중 투자하고 연구개발 직원만 52명으로 전체 직원의 20%에 달한다.
 
보유한 특허는 77개이고 서울대 등 국내 7개 대학과 한국과학기술원 등 6개 연구소, 충북대병원 등 6개 병원과 공동 연구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글로벌 현장을 중시하는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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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송 회장은 지난해 635억 원의 매출 중에서 해외시장 매출이 95%를 차지할 정도로 회사를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회사 설립 초기부터 해외 시장을 중점적으로 공략했다.

“세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꾸준히 해외 의료기기 전문 전시회에 참가했습니다. 의료 관련 기기나 제품의 경우 매출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해외 전시회가 중요한 역할을 해요. 여기서 1년 매출이 결정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박람회에서 바이어들을 만나 계약을 따내고 기술력을 홍보하기 위해 제품을 가득 담은 가방을 들고 바삐 뛰어다녔다.

경쟁사들과 제품을 비교하고 기술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어떤 일이 있어도 해외 전시회 만큼은 직접 다녔다.

준비하는 자에게는 항상 기회가 온다. 지금의 메타바이오메드를 있게 한 생분해성 봉합원사를 개발했을때 그는 시제품이 나오기 전부터 의료용구 전시회를 다니며 제품을 홍보했다.

그러나 한국의 중소기업 제품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바이어를 열심히 쫓아다니고 전시회를 다니다보니 점점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견고한 세계 시장의 문은 독일의 한 의료 소재 박람회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의료기자재업계 세계 1위인 비브라운은 독일 유일의 생분해성 봉합사 생산기술을 보유한 회사이다.

그런데 관계자가 메타바이오메드의 제품을 살펴보더니 작은 회사지만 품질이 좋다는 피드백을 전해온 것이다.

비브라운은 미군에게 봉합사를 공급해 왔는데,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미군에 부상자가 늘며 수요가 폭증했으나 공급량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었다.

비브라운은 메타바이오메드에 제품 주문서를 보냈고 결국 오 회장은 독일의 비브라운과 첫 수출 계약을 맺었다. 이후 거래처의 인지도 덕분에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오 회장은 서구 시장뿐 아니라 중국 판로를 뚫기 위해 3박 4일 내내 조석으로 독한 술을 마시며 상하이 거래처들을 다니며 직접 영업을 했다. 빨간 넥타이를 매기 시작한 것이 이때이다. 중국인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시장은 성장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앞으로 의료기기 산업의 성패는 중동, 북아프리카, 중국, 인도를 포함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신흥 시장에 달려있어요. 그 시장을 누가 선점하느냐에 성공이 달려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는 성장 잠재력이 큰 중동시장 중에는 이란을 주목했다. 경제 제재가 해제된 이후 이란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이란은 식수에 석회질 성분이 많아 사람들의 치아 상태가 매우 좋지않다.

따라서 치과용 충전재의 수요가 높다는 점에 착안해 시장에 진출한 것이다. 그는 많은 기업들이 세계경제 위기 등으로 긴축을 할 때에 오히려 해외출장과 전시회에 비용을 늘리는 공격적인 경영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해외 비중이 컸던 매출 구조로 인해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오히려 성장에 유리한 좋은 기회를 얻기도 했다.

“모두 위기라고 할 때 치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때가 성장하는 포인트입니다.”

사무실에는 ‘회사 안에 있는 직원은 일을 하지 않는 직원’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그만큼 밖에 나가 발로 뛰는 영업을 중요시 한다. 매출의 90% 이상을 해외에서 올린다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이 아니다.
 
그 자신도 아직까지 직접 판매처 관계자들을 만나 명함을 건네고 제품을 소개하며 영업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해외 매출처를 확보하기 위해 날아다닌 항공사 마일리지만 해도 350만 마일에 달한다. 지구 둘레가 2만 5,000마일이니 지구를 대략 120바퀴 이상 돈셈이다.

메타바이오메드의 생분해성 봉합원사는 현재 세계 100여 국에 수출하며 세계 시장점유율은 10%를 뛰어 넘었다. 미국, 중국, 일본, 캄보디아, 독일, 베트남에 6개의 현지 법인도 두고 있다.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영광의 얼굴

오 회장은 직원들에게 인류의 건강한 삶과 행복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명감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회사 로비와 구내식당 등에 해외 근무직원을 포함한 전 직원의 얼굴과 이름을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영광의 얼굴들’이라는 제목을 붙여 걸어 두었다.

그 자신도 세상을 위해 일하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가치관 경영’을 중시한다. 이를 위해 최고를 추구하는 창의와 혁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통찰력과 변화에 과감히 도전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업을 하다 보면 위기에 몰리고 어려움에 빠질 때가 있다.

신규 사업에 대한 성공 요인은 도전의식, 기회 추구에 대한 적극성과 결단력, 끈기, 집중력이다. 이 가운데 도전의식이 중요하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버티고 도전해야 합니다. 제가 가장 잘한 일은 제일 잘 아는 것에 다시 도전한 것입니다. 두 번이나 실패한 원인을 반면교사로 삼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 회장은 2008년 증권거래소에서 열린 코스닥 상장기념식에서 동요 ‘비행기’를 불렀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높이 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상장기념식은 보통 간단한 인사말과 소회를 밝히는 자리인데 동요를 2절까지 부르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는 본래 남 앞에 서는 것을 어려워하고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하는 소극적인 성격이었다. 그러다 사업이 부도나자 자살을 시도하고 극적으로 깨어나게 됐고 나머지 삶은 덤으로 주어졌다고 생각하니 성격이 바뀌었다고 한다.

코스닥 상장식에서 동요를 부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감 넘치고 당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담한 행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던 사건인 셈이다.

현실에 주눅이 들면 내 그릇의 크기는 그만큼 줄어든다. 반대로 힘들어도 기죽지 않고 자신 있게 살아나가면 그릇의 크기가 그만큼 커진다.
 
그는 코이의 법칙을 얘기했다. 일본인 가정에서 키우는 비단잉어 ‘코이’는 작은 어항에서 키우면 5~8㎝ 정도만 자라지만 수족관이나 연못에 키우면 15~25㎝까지 자란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냇가나 강에 방류하면 90~120㎝까지 성장한다는 점이다. 같은 물고기이더라도 어디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피라미가 되고 대어가 된다는 것이다.
 
코이의 특성은 개인은 물론 사업할 때의 비전과도 통하는 것 같다. 물고기도 노는 물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듯이 기업의 비전도 주변 환경과 생각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기왕 세울 비전이면 크게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넓고 크게 생각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헌신, 열정, 자기희생, 솔선수범하여 도전하는 인재가 되어야 하고 그런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기는 변화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고착된 사고방식에서 시작된다. ‘흐르는 물이 썩지 않듯이’ 성공하는 CEO는 자기가 바라는 환경을 찾아낸다.

찾지않으면 자기가 바라는 환경을 만든다. 선구자가 될 것인가 추종자가 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맡은 직무에 대한 자긍심’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직원들에게 ‘객차가 될 것인가, 기관차가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어떤 인재가 될 것인지 물으면서 스스로 해답을 찾도록 하고 있습니다. 객차는 절대 스스로 움직일 수 없고 남이 끌어줘야 합니다. 상대방의 힘을 200% 쓰게 만드는 것이 객차형 인재입니다. 반면 기관차는 스스로 움직이고 다른 객차를 움직이게 만듭니다.”

오 회장은 이에 더해 벤처기업이 기술로 성공하려면 자신의 제품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업이나 기술개발을 할 때 실패하는 결정의 대부분은 판단 잘못이라기보다는 ‘제때’ 결정을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합리적이고 정확한 결정보다는 실패를 무릅쓰더라도 과감한 결정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실패했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했을 때 끝나는 것이다.


바다도 메울 수 있는 긍정의 CEO

그는 힘든 경험 속에서 의식적으로라도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궁지에 몰리다 보니 뻔뻔해졌습니다. 타인과 비교하여 꿀리지 않고 ‘내가 최고’, ‘나는 나’라고 뻔뻔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밀고 나가려면 가장 큰 무기는 자신감입니다.”

그는 기회가 찾아오면 의식적으로 어려움은 생각하지 않고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부정적인 신념은 부정적인 면을 크게 보게 하고, 좌절과 슬픔을 느끼면 추진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Yes'라고 대답하고 'Yes'를 만들기 위해 추진하는 긍정적인 시각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가 있다.

경영은 직원과 고객 그리고 투자자를 배부르게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진 그는 영원한 경영인으로 남아 모두를 배부르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회사를 창업할 때부터 어김없이 매일 4시에 일어나고 있다. 본래는 아니었는데 강한 정신력으로 아침 형 인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좋은 습관이 인생 바꾼다는 말을 믿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좋은 습관은 인생을 바꾼다고 믿고 있습니다.”

해외 매출 확대를 위해 대부분을 해외에서 지내면서 직접 현장을 이끌어 가는 오 회장은 시간을 쪼개 사업의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자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포럼, 조찬 모임, 기관 모임 등에서 좋은 정보와 인적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헬스케어 산업은 안전하고 편리하게 환자의 고통을 치유하는 기술개발을 가치로 여긴다. 세계적으로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며 병을 진단하고 예방하는데 사용되는 의료기기 또한 전망이 밝을 것으로 예측된다.

고령화가 진행되면 진단기기 산업 분야가 성장할 수밖에 없다. 치과 산업은 고령화 사회로 가면서 성장가능성이 크고 선진국에서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 임박한 지금 오 회장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불가능이 가능하다는 것을 모두에게 이해시켜 앞으로 보다 다양한 의료기기 개발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메타바이오메드는 아직 치과용 충전재와 봉합사로만 유명합니다. 향후 종합 의료기기로 성장하기 위해 내시경 카테터와 초음파 진단기에 비전을 두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보다 내일을 위해 꾸준히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에게는 성형을 위한 부직포, 성형사 원천 기술, 초음파 탐지장치 개발을 통한 신시장 창출 등 아직도 보여줄 것이 많다. 연구개발 중인 정형외과, 치과용 의료기기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 또 다른 고민도 하고 있다. 제품의 연구개발, 생산운영, 마케팅 등 경영시스템의 안정화이다.

사업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방지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위해 의사결정 과정의 시스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전문가 집단의 컨설팅과 객관적인 자료를 활용하여 문제해결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현장과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트렌드 분석을 통해 경영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횡령 등 회사 돈을 유용하는 도덕적 해이가 없는 투명경영 시스템도 도입하려고 합니다.”

메타바이오메드 본사에 들어서면 보이는 문구가 있다. ‘기둥이 있으면 자르고, 산이 있으면 구멍을 뚫고, 바다가 있으면 메우겠다.’

절망의 순간에 희망을 붙잡은 오석송 회장의 의지가 담겨 있는 문구이다. 이 문구대로 메타바이오메드가 의료용 소재에서 세계 최고의 첨단 보건의료 전문기업으로 성장해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기업이 될 날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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