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혁신 벤처기업과 대기업이 협력하는 생태계 조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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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건준 회장/대표이사
벤처기업협회/크루셜텍(주)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 심각한 경제 침체를 겪은 세계 각국은 자국 경제의 부활과 다가오는 패러다임 변화를 선도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전략을 수립하고 관련 정책을 재정비하여 자신들만의 대응 방법을 찾고 있다.

지난해 1월 다보스포럼에서 세계적인 이슈로 등장한 ‘4차 산업혁명’의 개념도 국내에서는 대변혁의 위기 또는 새로운 기회의 상징으로 부상하여 전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으며 연일 관련 서적들이 스테디셀러가 되는 등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IoT 센서, 딥러닝 기반 인공지능 알고리즘, 빅데이터 등의 4차 산업혁명의 핵심적 기술 영역을 근간으로 하여 현장에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기업의 대표이자 벤처 업계를 대변하는 협회장으로서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으로 정의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일반적으로 정보통신기술이 제조업 등과 결합하여 새로운 사업과 산업을 만들어 개인의 생활방식까지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알파고 쇼크’를 겪으며 정부, 학계, 민간영역 모두 입을 모아 4차 산업혁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IT와 반도체, 스마트폰 분야의 경쟁력을 기반으로 국가주도의 ‘제조혁신 3.0 전략’을 비롯해 ‘19대 미래 성장부문 육성’, ‘8대 제조기술 개발’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의 다양한 정책적 지원과 업계의 노력으로 ICT강국으로 부상한 경험을 살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한국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는 예견도 있다.

그러나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세계 경쟁력 순위는 25위로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어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스타트업 아메리카’ 정책을 통해 거대 기업들이 내부 자원에만 의존하던 기존방식을 벗어나 외부의 혁신 벤처창업기업과 협력하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을 유도하였다.

이를통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함과 동시에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 방안을 찾도록 환경을 조성하였고 그 결과 10%대의 실업률을 4%대로 내리고 동시에 4차 산업혁명의 주도국으로 부상하였다.

이처럼 개방형 혁신으로 기존의 거대 기업과 벤처기업이 시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벤처기업의 아이디어와 기술의 가치가 정당하게 인정받는 공정한 시장이 전제되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각자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수평적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시장 지배력을 가진 대기업은 벤처기업을 혁신과 신성장 동력의 공급원이자 동반자로 인식하고 벤처기업은 혁신의 주역으로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도전하고 성장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과거 산업화 단계에서 정부의 치밀한 계획경제에 기반을 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단기간에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어낸 바 있다.

또한 20년전 코스닥 시장의 개설, 인터넷 보급, 벤처기업 육성 등 집중적인 정부지원정책을 통해 IMF를 조기에 극복하고 ICT 강국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국가이다.

그러나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미래 산업이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변화할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앞으로 정부의 역할은 수많은 개별 사업을 직접 기획하여 선택된 일부 기업을 지원하는 기존 프레임에서 벗어나, 공정한 룰을 제시하고 우리 산업계 전체를 자율적 혁신 생태계로 조성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산업 간 융·복합을 가로막고 신산업의 생성을 저해하는 거미줄 규제의 정비와 각 기업군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협업할 수 있는 ‘공정 시장’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의 원천인 ‘공공데이터’의 양적·질적 개방 수준 확대와 초연결로 인해 얻어지는 과실인 빅데이터의 활용을 수월하게 하는 개인정보보호법개선 등이 필요하다.

또한 쉬운 창업의 확산을 위해 서비스 분야와 앱 수준의 소프트웨어에만 편중된 창업정책에서 벗어나 하드웨어·제조 벤처를 함께 육성하여 밸런스를 맞추는 것도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업을 근간으로 ICT가 함께 융합되는 게 특징인데, 아무리 뛰어난 ICT인프라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제조 분야가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위를 가지기는 요원하다.
 
미국, 독일, 일본, 대만 등은 이미 국가 중점사업으로 첨단 제조 분야를 육성하기 위한 제조업 르네상스 정책을 추진 중이며, 제조업의 경우 창업과 성과를 내기까지 긴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므로 특히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아울러 기초과학의 연구와 교육 투자 강화에도 힘써야 한다. 국가의 경쟁력은 기초과학 연구개발과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적자원에서 나온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R&D 투자개발 규모가 66조 원으로 GDP 대비 4%대로 세계 최고 수준이나 실용화 비율은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부담하기 어려운 기초연구 개발 투자를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하고 이를 실용화 할 인재를 길러낼 방안으로 유년기부터 문제 해결능력과 창업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고양하는 기업가정신 교육의 교과과정 도입이 필요하다.

정책의 일관적이고 지속적인 추진도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도 조급함을 버리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정책 성과에 대한 조급증을 버리고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야 중장기적인 성과 달성을 도모할 수 있다.

수천 만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융·복합으로 순식간에 연결되어 새로운 산업이 생성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민간영역에서 주도하고 정부는 생태계 조성과 정직한 실패에 대한 지원, 그리고 규칙 위반자에 대해 엄벌하는 심판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