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사이트

혁신 인사이트에서는 혁신의 트렌드, 전략 및 혁신사례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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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재 팀장/ 기자
동아일보 경영교육팀/DBR·HBR코리아


‘기업하기 힘들다’는 말이 실감 나게 들린다. 기업을 향한 사회로부터의 요구는 점점 늘고 있다.
 
법과 규정, 윤리적 기준을 잘 지켜야 한다는 당위는 물론, 자선활동과 같은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는 사실 기업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상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도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사회공헌 활동에 나서고 있다. 사회공헌 사업에 이익의 1% 이상을 쓰는 대기업들도 있다.

하지만 기업하기 힘든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성장의 정체’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제 한국 경제가 과거와 같이 고속으로 성장하는 시기를 다시 누리리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성장’이라는 말을 쓰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분석하는 경제인들은 이제 감언이설은 버리고 솔직해져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성장이 정체되다 보니 경쟁은 심화되기 마련이다. 이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기업, 끊임없이 혁신과 차별화를 위해 노력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사회적 문제 해결에서 찾는 성장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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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말 이제 기업에 성장의 기회는 없는 것일까? ‘전략 경영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이클 포터 교수는 CSV(공유가치 창출)이라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2014년 동아비즈니스포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창의성, 혁신, 차별화. 이 세 가지는 모든 나라, 모든 기업들이 추구하는 성배와도 같은 개념이다. 어떻게 차별화하고, 어떻게 혁신할 것이며, 어떻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뽑아내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도출해 낼 것인가는 늘 중요한 문제다. 그렇다면 창의성과 혁신, 차별화를 위한 가장 큰 기회는 어디에서 나올까? 전통적인 마케팅이나 상품 개발 아이디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비즈니스와 사회 문제 간의 융합을 통해서 가능하다.”

포터의 말을 요약하자면, 기업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새로운 성장의 기회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기업의 이윤을 함께 창출할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저개발국의 생산자들에게 합리적 가격과 인간적인 작업 환경을 보장해 주자는 취지로 나온 게 공정무역(Fair trade)이다.

스타벅스는 비싼 가격에 커피를 팔지만, 그 원두는 저개발국의 저임금 노동으로 싼값에 재배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스타벅스는 일정 비율의 원두를 공정무역 방식으로 구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정무역으로 원두를 사게 되면 원가상승은 피할 수 없다. 때문에 공정무역으로 구매하는 원료의 비중은 두 자릿수를 넘기 어려운데, 이는 대부분 산업의 이익률이 두 자릿수를 넘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정무역 방식으로 원자재를 조달하더라도, 그 혜택은 일부에게만 돌아갈 뿐 저개발국 현지 대부분 생산자들의 삶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문제에 다르게 접근한 기업도 있었다. 네슬레는 인도와 코트디부아르 등 원두 생산국의 영세 커피 농민들이 커피 재배법을 배우고, 생산설비를 갖추도록 도와주는 사회공헌 사업에 돈을 썼다.
 
그 효과는 놀라웠다. 현지 농부들의 원두 생산성은 두 배가량 올라갔다. 농가 수입이 크게 오르고 현지 일자리도 늘어났다.
 
네슬레는 기업 이미지도 좋아지면서 실제 경쟁력이 높아지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봤다. 원가 경쟁력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양질의 원두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CSR(사회공헌 활동)의 한계를 뛰어넘어, 실제 사회적 문제도 해결하면서 지역사회와 기업의 경제적 가치도 창출하는 CSV(공유가치 창출) 전략을 실현한 사례다.

타 기업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사회적 문제를 고민하고 이를 해결할 솔루션을 내놓을 때 기업도 가치를 할 수 있는 새 기회를 능동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소액대출 사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은행은 빈곤층 주민들에게 무담보로 돈을 빌려줬다.
 
이 돈은 그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생업에 나서게 도와주는 단비와도 같았다. 그라민 은행의 사업 규모는 계속 커졌다.

이 은행의 성공은 기존에는 생각지 못했던 영역에서도 리스크 관리를 잘하면 성장의 기회가 있음을 보여줬다.
 
그라민 은행의 소액대출 사업은 세계 여러나라로 전파됐고, 이 은행과 그 설립자는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기회는 ‘BOP(피라미드 아래쪽)’에 있다

그라민 은행의 사례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경제적 성장도 도모한 CSV의 사례이기도 하지만, 기존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던 저소득층 시장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한 사례로도 볼 수 있다.

경영학계에서는 ‘BOP(Base of the Pyramid: 전세계 인구의 2/3에 해당하는 저소득 국가 또는 저소득층, 또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략)’라는 개념이 주목을 받고 있다.
 
BOP라는 용어를 만든 프라할라드 미시간대 교수는 "저소득층이 필요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익성도 담보할 수 있다(Serving the world’s poor, profitably)"는 주장을 폈다.

이는 사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경영 석학인 피터드러커도 일찍이 “개도국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활동은 저개발국가의 경제 발전을 이끄는 것은 물론, 기업이 이익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보텍스라는 기업은 인도 인구의 80%가 문맹 수준의 저소득층에 머물러 있음에 주목했다. 이들이 빈곤의 악순환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저축과 같은 기본적인 금융 서비스부터 접근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 살고 있었고, 기존 금융회사들은 그런 곳에 지점을 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런데 보텍스는 이런 지역에 현금 입출금기를 보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돈이 위에서 떨어지도록 해 전기 소모량을 최소화했고, 태양열 전지를 달아 필요한 최소한의 전력을 확보했다.

글을 잘모르는 저소득층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자판은 그림으로 대체했다. 보텍스의 현금입출금기는 인도 곳곳으로 보급됐다. 타임지는 보텍스를 10대 혁신 기업으로 선정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의 개발도상국에서 잘 팔리는 선불 휴대전화도 저소득층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다.

원래 선진국 통신 기업들은 개발도상국에 진출할 때 자녀들의 휴대폰 사용량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중상류층을 대상으로 선불 휴대전화를 출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시장의 반응은 저소득층에서 나왔다. 선불 휴대전화가 신용등급이 낮아 후불제 서비스에 가입할 수 없는 저소득층에게 통신의 욕구를 해결해 주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GE는 1990년대 의료기기 사업을 확대하면서 의욕적으로 중국과 인도의 초음파 기기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개발한 최첨단 기기는 10만 달러를 넘는 비싼 가격과 큰 부피 때문에 신흥국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았다.

GE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2002년에 3~4만 달러면 살 수 있는 휴대용 초음파 기기를 개발해 냈다. 꼭 필요한 기능만 쉽게 쓸 수 있도록 복잡한 기능은 뺐다.
 
몇 년 후에는 가격을 그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혁신의 효과는 중국과 인도 시장에서 초음파 기기 매출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았다.
 
GE가 신흥 시장에서 개발한 저렴한 초음파 기기는 선진국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냈다. 사고 현장에서 빠른 진단과 대처가 필요한 구급차에 이 기기가 구비되기 시작했다.
 
급한 수술을 필요로 하는 응급실에도 이 기기가 보급됐다. 소형 기기의 기능이 더욱 향상되자 일반 병원에서도 이 기기를 도입했다.

이렇게 저소득층 시장에서 이룬 혁신이 선진국 주요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현상 또는 그 전략을 ‘역혁신(Reverse Innovation)’이라고 부른다. 역혁신은 글로벌 기업 GE의 중요한 경영 전략 중 하나가 됐다.

선진국 시장이 포화되고 부유층 시장에서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제 많은 기업들이 저개발국 시장과 저소득층 시장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반드시 저개발국 시장이 아니더라도 가성비를 강조하는 합리적이고 현명한 소비를 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자라, 유니클로와 같은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기업들은 이런 기회를 파고들어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이들 기업들은 최신 트렌드에 맞는 저렴한 제품들을 빠르고 다양하게 내놓기 위해 생산은 집중화, 효율화했다.

또 최신유행 트렌드를 세계 각지에서 수집해 이를 반영한 제품들을 실시간에 가깝게 출시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같이 저소득층, 저개발국에서도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생산 등 가치사슬을 혁신해 성공하는 사례(BOP), 또 기업과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를 만들어 내면서 미래의 성장 기회를 찾는 사례(CSV)가 늘고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에 응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적 문제를 혁신을 통해 해결해 낼 수 있다면, 저성장 시대의 돌파구가 될 새로운 블루오션을 열어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