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과학탐구는 일상생활 속 물리학, 첨단과학, 과학일반에 대해 살펴봅니다.
글_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화창한 가을날의 소풍. 얼음을 채운 플라스틱 컵들에 담긴 청량한 주스와 커피, 가볍게 꽂힌 빨대들.
각양각색 반찬이 칸칸이 들어 있어 보기도 좋은 일회용 도시락에 역시 일회용인 포크와 숟가락.
새지 말라고 겹겹이 싼 랩과 비닐 포장지.
소풍은 한 무더기의 플라스틱 쓰레기로 남는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병에 담긴 물을 사 먹는 일은 낯설었다.
그러나 불과 30년 만에 우리나라 생수 시장은 연간 7,400억 원 규모로 커졌고, 2020년이면 1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편의점에서 쉽게 물이며 음료수를 사 먹는 동안 플라스틱 병 수요가 그렇게 가파르게 커졌다.
한해 전 세계서 팔리는 플라스틱 음료수 병은 4,860억 개로 추정된다.
최초의 플라스틱은 19세기 말 ‘신사의 게임’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당구공을 만들기 위해 개발됐다.
최고급 당구공은 코끼리 상아로 만들던 때니 대체할 재료가 절실했다.
당구공 제조회사들은 1만 달러의 상금을 걸고 새 당구공 소재를 찾았다.
1869년 미국의 인쇄업자이자 발명가인 존 하이어트가 식물의 세포벽을 이루는 셀룰로오스 성분을 이용해 새로운 당구공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 뒤 석유 화합물로 플라스틱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지 고작 150년 만에 플라스틱은 식품, 의복은 물론 항공과 의료 등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까지 현대인의 삶 전체를 에워싸게 되었다.
1950년부터 2015년까지 만들어진 플라스틱의 총량은 83억 톤으로 추정된다.
그 중 49억 톤이 땅에 묻히거나 바다에 버려졌다.
그 결과 남태평양에는 거대한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떠다니고, 해마다 10만 마리 이상의 바다 생물이 죽어 간다.
수십 년 뒤엔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바다에 버려진 크기가 큰 플라스틱은 햇빛과 파도에 의해 잘게 쪼개진다.
플라스틱은 얼마나 더 작아질 수 있을까? 1㎜의 1/1,000인 1㎛ 크기의 미세 플라스틱도 발견된 바 있다.
작아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분해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작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해질 뿐이다.
피해는 바닷새와 물고기들에 그치지 않는다.
벨기에 겐트대 연구에 따르면 해산물을 자주 먹는 사람은 한 해 1만 1천 개의 플라스틱 조각을 먹고 있다고 한다.
식재료뿐 아니라 소금, 식수까지 미세플라스틱으로 오염될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플라스틱으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결코 소화할 수 없는 먹을거리로.
인간은 이제 플라스틱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는 한편, 플라스틱 쓰레기가 주는 위협은 점점 커지고 있다.
재활용을 하면 되지 않을까? 매주 분리 배출을 철저하고 하고 있으니 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10%에 미치지 못하고, 플라스틱 병의 경우 3.5%에 불과하다.
PET, PS, PVC 등 플라스틱의 소재별로 세세하게 분류되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방식으로는 어림없다.
각국 정부는 가장 큰 피해를 유발하는 미세 플라스틱 사용을 제한하는 법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한편으론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할 방법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플라스틱 해양 투기국으로 지목받는 인도네시아에서는 바다로 흘러드는 플라스틱 양을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을 아스팔트와 혼합해 도로를 포장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인도네시아 정부에 따르면 7m 폭 도로 1㎞ 포장에 플라스틱이 2.5~5톤 쓰인다고 한다.
플라스틱을 열분해해 원유를 추출하는 기술도 관심을 끈다.
에코크레이션사에 따르면 현재 기술로 폐플라스틱의 원유 전환율은 80%에 이른다.
플라스틱 110만 톤을 88만 톤의 원유로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제주에 하루 기름 10톤을 생산할 수 있는 플랜트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을까?
플라스틱은 분해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쉽게 쓰고 버리는 비닐봉지도 최소 수백 년에서 1만 년까지 썩지 않는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플라스틱이 암석화 되고 있으며, 이것이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구분하는 기표석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
플라스틱을 분해하거나, 저절로 분해되는 플라스틱을 만들어야 해결될 문제다.
지난 2015년에는 갈색거저리의 애벌레인 밀웜(Mealworm)이 폴리스틸렌 계열인 스티로폼을 먹고 소화해 안전한 물질로 배설한다는 연구 발표가 있었고, 올해 4월에는 폴리에틸렌을 먹고 분해하는 벌레에 관한 논문이 발표됐다.
밀납을 먹고 사는 왁스모스(Wax Moth)라 불리는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가 폴리에틸렌을 먹고 심지어 소화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벌레들이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일부 벌레가 플라스틱을 먹는 것은 사실이나 확실히 소화, 분해시키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다. 아직까지는 희망 사항이다.
바이오 플라스틱에 대한 관심도 높다.
당분, 전분, 단백질, 셀룰로오스, 리그닌, 오일 등 다양한 탄화수소를 기반으로 바이오 플라스틱이 제작되고 있다.
옥수수, 사탕수수, 콩 등이 가장 일반적인 원료다.
바이오 플라스틱은 식물 속 녹말을 물에 용해시킨 뒤 압축해 플라스틱처럼 다양한 형태로 만든다.
성질은 플라스틱과 비슷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미생물에 의해 분해돼 물과 이산화탄소가 된다.
유럽연합은 2025년까지 바이오 플라스틱이 유럽 전체 플라스틱 시장의 1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코카콜라, 이케아, 도요타, 삼성, 레고 등 대기업들은 바이오 플라스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유의 주요 단백질인 카제인을 이용해 식품 포장용 투명 필름 제작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미국 농무부 동부지역 연구센터 연구진은 우유에서 추출한 카제인과 레몬 · 라임 껍질에서 추출한 펙틴을 섞어 만든 필름 개발에 성공했으며, 3년 내에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 연구진들도 여러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상엽 교수는 대장균의 유전자를 조절해 다양한 기능성 플라스틱을 만드는 방법을, 포스텍 차형준 교수는 이산화탄소를 물과 반응시켜 플라스틱 원료인 탄소화합물을 만들었다.
그런데 천연 원료로 만들었다는 게 꼭 생분해(환경 중에 방출된 유기물질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현상)된다는 뜻은 아니다.
통칭 ‘바이오’ 플라스틱이라 불리는 것에는 생분해가 된다는 의미와 천연 재료를 사용했다는 의미가 뒤섞여있다.
생분해 여부는 원료가 아니라 화학적 구조가 결정한다.
현재 생산되는 바이오 플라스틱 중 생분해 되는 것은 7분의 1 정도라고 한다.
한편 플라스틱 대용품으로 버섯도 주목받고 있다.
이미 델 컴퓨터, 이케아 등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투어 컴퓨터와 가구 등의 대형 제품의 포장 완충제로 스티로폼 대신 버섯을 사용하고 있다.
균류는 자기를 둘러싼 환경에 맞게 자라는 성질이 있고, 또 매우 빨리 자란다.
이 특성을 이용해 버섯 포자를 틀에 부어 번식하도록 한 뒤 건조시켜 제품을 만든다.
완제품은 변질이 거의 없으며 견고하다.
원재료는 버섯 포자와 유기물질, 물이 전부고 사용을 마치면 완전히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현재는 스티로폼 대용의 포장재로 쓰이지만 앞으로 각종 용기나 가구 제작 등 활용범위가 넓어지리라 기대를 모은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은 우리 삶을 바꾼 기적으로 남을지, 재앙으로 기록될지 아직 결론을 알 수 없다.
매주 정해진 요일에 간편하게 쓴 플라스틱, 비닐, 스티로폼을 한 자루씩 내다 버리는 동안 소리 없이 불안이 쌓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