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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균 연구원 조지아 공과대학교 Research Associate
제조기업의 경쟁력은 제품의 품질과 가격에 의해서 결정된다.
실제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는 제품의 가격 대비 충분한 기술적 가치, 즉 품질을 주는 제품을 선택하거나 품질 대비 가격이 가장 낮은 상품을 선택, 즉 “가성비”를 고려한다.
따라서 제조기업이 신제품을 개발하는 경우 핵심 사안은 제품의 품질 경쟁력을 향상 시킴과 동시에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중 후자, 즉 가격 경쟁력은 어떻게 확보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제품의 품질과 원자재의 가격이 동일한 경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제품 한 단위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감소하게 된다.
이를 경영학 및 산업공학에서는 생산자가 경험을 누적할수록 생산원가가 감소함을 나타내는 학습 곡선(Learning Curve)으로 설명한다.
학습 곡선의 시작은 항공기 생산을 거듭할수록 생산원가가 감소함을 발견한 라이트(Wright, 1936)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이후 항공기 부문 이외의 분야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관찰되어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하지만 현장 실무자들은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단순한 생산경험 축적은 곧바로 원가감소로 이어지기 힘들다.
따라서 다수의 이론가들은 원가감소를 구체적으로 이끌어 내는 학습 과정에 주목하고 이에 대한 실증연구를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아르코테(Argote, 1990)를 필두로 다수의 학자들은 미국의 Liberty Ship 프로젝트 데이터를 이용하여 이러한 체계를 실증 규명하고자 하였다.
Liberty Ship 프로젝트는 2차대전시 독일의 유보트로 인해 상당수의 수송선을 잃은 미국이 다수의 수송선을 효율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미국 정부는 Liberty Ship 프로젝트를 통해 동일한 디자인을 가진 수백 척의 수송선을 발주했다.
그림 1과 같이 미국 내 여러 조선소에서 지속적으로 생산된 선박들은 시장경쟁과 제품의 분화없이 전쟁에 활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시간에 따른 상품의 특성 변화로 생산성 향상을 측정하기 어려운 것과는 달리, Liberty Ship 프로젝트에서는 동일한 디자인의 상품이 공개적으로 생산되었기 때문에 좋은 연구자료로 활용될 수 있었고, 연구자들은 이 프로젝트의 데이터를 통해 생산시간, 결함 정도, 생산비용과의 관계를 확인하였다.
그림 1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Jones, Brunswick, Jones, Panama City 그리고 Delta 조선소의 선박당 필요 노동량(근로자 수 × 근로자별 노동시간)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학자들은 이러한 패턴을 인식하고 그림 2와 같이 단위 원가(y)가 경험(x)의 지수 함수(y=αe-βx) 형태로 존재한다고 추정하였다.
이러한 학습 곡선의 수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학습 곡선은 이후 기술 성능, 발전 효율, 소비자 만족도, 프로젝트 성공률 등의 다양한 지표 예측에 응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학습 곡선에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만일 학습 곡선에 대한 수학적인 이해가 맞는다면 과연 어디까지 원가가 감소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는 다.
예컨대 학습 곡선의 이론을 따른다면 기업이 무한의 경험을 지닐 경우 생산원가가 0으로 수렴해야 하나, 일반적인 생산비용의 통념상 생산원가가 0으로 수렴할 수 없다.
한편 < 괴짜경제학 >으로 유명한 미국 시카고대학의 스티븐 레빗(Steven D. Levit) 교수는 한 자동차 공장의 생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기존의 이론을 지지하지 않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학습 곡선은 매우 단기간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 시작할 때 눈에 띌 만한 생산성 증가는 겨우 몇 주 동안에만 일어나며, 그 이후의 생산성 증가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 3에서 확인할 수 있듯 첫째 연도의 34번째 주에 자동차 생산이 시작되었으며, 이후 약 10주만에 자동차의 평균 생산시간이 약 400시간에서 50시간 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이후 평균 자동차 생산시간은 50시간 내외에서 유지되었고, 더 이상의 하락은 측정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만일 학습 곡선이 단기간이라도 존재한다면 누가 학습을 하여 학습 곡선이 발현된 것일까?
쉽게 예측하여 본다면 작업자 개인이 작업을 하면서 더 능숙해진 결과가 학습 곡선이라고 믿어봄직하다.
그러나 개인 단위의 학습이 조직 단위의 학습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이 산업용 자석을 생산하는 프랑스 기업 Jeumont의 사례연구를 통하여 최근 확인되었다.
Jeumont은 제품의 디자인 변화 및 투자없이 동일한 산업용 자석을 생산하여 왔기 때문에 과거의 Liberty Ship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생산성 측정이 용이한 대상이었다.
그림 4는 Jeumont의 학습 곡선 사례를 나타낸 것으로 3개의 특징적인 피크들을 보여준다.
각 피크들은 일시적으로 단위 제조시간이 상승(즉 생산성은 크게 떨어짐)하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해당 시점들에서 Jeumont은 대규모로 신규 직원을 충원하였다.
하지만 신규 직원충원에 의해서 급격히 증가하였던 단위 제조시간은 급속도로 하락, 원래의 학습 곡선지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는 작업자 단위의 경험이 학습 곡선의 형태를 결정하는 유력한 요인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일 작업자 단위의 경험이 학습 곡선의 형태를 결정한다면, 신규 직원자들 고용이 이루어졌을 때 단기간에 기존의 학습 곡선 수준으로 회복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즉, 해당기업이 기존 학습 곡선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에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위의 사례들을 정리해 보면 20세기 중반의 이론적인 믿음과는 달리 학습 곡선은 매우 짧게 존재하며 그 근원도 단순한 작업능숙도 향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최신 경영학에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경험과 생산성 간의 상관관계가 반드시 인과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실증하고 있다.
Sinclair 외(2000)에 따르면, 미국 Fortune 500대 기업 중 다양한 화학공정을 다루는 한 회사의 단위 생산비용 변화 추이를 분석해 본 결과, R&D를 수행한 몇몇 공정에서만 단위 생산비용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게다가 설문의 결과, R&D의 수행여부가 생산 결정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나타나, 경험이 생산성 향상을 이끈다는 주장은 더욱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또한 Thompson(2013)의 실증연구에 따르면, 앞선 Liberty Ship 프로젝트 참가기업들의 생산성 향상은 순수한 경험이 아닌 설비투자 활동으로 인한 작업자 능률향상에 기인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의 연구에서는 설비투자를 통제 요인으로 추가할 경우, 과거에 학습으로 인해 나타났다고 믿어온 생산비용 하락효과는 상당수가 설비투자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결론적으로 최근 학자들은 생산성 향상의 근원은 경험의 축적이 아닌 R&D 그리고 새로운 설비의 등장으로 인한 능률향상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최신 연구결과들은 모두 기술경영의 중요성을 함의한다. 기업은 혁신활동 없이 작업자의 경험만으로 충분한 생산성을 확보할 수 없다.
즉, 기업은 공정 혁신에 지속적으로 투자함으로써 생산성 향상을 도모해야 하며, 경영자는 기존 작업자의 경험을 조직 내에 전파하고 재구성할 수 있도록 기술경영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추어야 한다.
특히 이러한 이론의 이해 과정에서 경영자는 비판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기존 이론을 이해하고 적용해야 할 것이다.
학습 곡선의 이론 검증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경영학의 중흥기인 20세기에 수립되었던 많은 이론과 모형들은 과학적인 검증없이 직관과 경험속에서 다져져 왔고, 많은 경영서적과 미디어를 통해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왔다.
따라서 오늘날의 이론 홍수 속에서는 무비판적으로 이론을 참고하기보다는 명확한 인과관계를 살피고 어떠한 요소들이 흔히 믿는 관념을 설명하는지 고민해 보는 경영자의 지혜가 더욱 필요할 것이다.
< 참고 >
Levitt, S. D., List, J. A., &Syverson, C. (2013). Toward an Understanding of Learning by Doing: Evidence from an Automobile Assembly Plant.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121(4), 643–681.
Sinclair, G., Klepper, S., & Cohen, W. (2000). What’s Experience Got to Do with It? Sources of Cost Reduction in a Large Specialty Chemicals Producer. Management Science, 46(1), 28–45.
Thompson, P. (2001). How much did the Liberty shipbuilders learn? New evidence for an old case study.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109(1), 103–137.
Thompson, P. (2012). The relationship between unit cost and cumulative quantity and the evidence for organizational learning-by-doing.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26(3), 203–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