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플러스는 최근 이슈가 되는 과학 기술 및 연구, 과학발전사 등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글_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
지난 5월 31일 오전 5시부터 한국의 지상파 3사는 세계 최초로 UHD(Ultra High Definition) 본방송을 시작했다.
세계 최초의 상업 UHD 방송 개시 타이틀 역시 한국이 가지고 있다.
지난 2014년 4월 국내 케이블 TV에서 UMAX라는 UHD 채널을 상용방송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진 방송 선진국들보다 먼저 일궈낸 쾌거들이다.
UHD 방송의 가장 큰 장점은 화질이다.
UHD는 기존의 Full HD 방송(가로세로 픽셀 1920×1080)보다 화면을 구성하는 화소 수(3840×2160)가 4배나 많은 고화질 영상을 제공한다.
즉, Full HD는 화면에 찍는 점(픽셀)이 약 200만 개인 반면, 4K UHD는 약 830만 개나 된다.
또한 HD가 표현할 수 있는 색감은 약 1,700만 컬러인 데 비해 UHD는 약 10억 컬러까지 가능하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UHD 화질의 경우 사람의 시각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 같은 화질의 차이는 50인치 이상의 대형 TV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게 된다.
HD의 경우 대형 화면에서 화질의 한계가 그대로 나타나지만, UHD는 75인치 이상의 초대형 화면에서도 자연색에 가까운 색감과 선명한 화질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스마트폰 같은 작은 화면에서도 UHD는 위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UHD 방송으로 야구경기를 시청할 경우 특정 선수나 점수표를 당겨서 확대해도 또렷하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스마트폰에서 재생되는 영상을 대형 UHD TV에 연결해도 선명하게 재생할 수 있다.
UHD는 음향에서도 차이가 크다.
HD 방송은 5개 스피커에 1개의 저음용 스피커로 구성된 5.1채널을 지원하지만, UHD는 10.2채널까지 지원해 2배나 강화된 입체적인 음향을 감상할 수 있다.
지난 5월 개시된 UHD 방송 송출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역만 대상으로 한다.
올해 12월에는 부산, 광주, 대구, 대전, 울산 등의 광역시권 및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강원권에서도 방송이 시작되며, 2020년부터 2021년에는 전국 시·군까지 UHD 방송이 송출될 계획이다.
현재 UHD 화질로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소수이지만 이 역시 점차 확대될 예정이다.
지상파 3사의 UHD 방송편성 의무비율은 올해 5%에서 시작돼 2018년 10%, 2019년 15%, 2020년 25% 등 단계적으로 늘어나 2027년에는 100% UHD로 편성된다.
따라서 이때쯤이면 HD 방송이 종료됨으로써 HD TV로는 아예 방송을 볼 수 없게 된다.
정부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UHD로 중계해 한국의 기술력을 세계에 과시할 계획이다.
그동안 UHD를 가장 빠른 속도로 연구 및 진행해온 일본도 2020년 도쿄올림픽에 맞춰 UHD 방송을 준비 중인데, 그보다 무려 2년여나 앞선 셈이다.
이에 따라 평창 동계올림픽 중계방송을 보는 시청자는 원하는 종목의 경기를 정규 편성에 구애받지 않고 시청하거나 다른 경기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방송 정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주요 참석자들의 인터뷰 영상도 개인방송으로 중계되며, 개인의 스마트폰으로 경기 이외 현장소식을 촬영하고 공유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된다.
정부는 UHD 방송 외에도 5세대 이동통신, IoT, 가상현실(VR), 인공지능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임으로써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ICT 올림픽으로 구현할 계획이다.
하지만 유럽식 UHD 기술표준인 ‘DVB-T2’ 적용의 TV를 보유한 가구는 별도의 셋톱박스를 달아야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상파 UHD 방송의 기술표준으로 북미식인 ‘ATSC 3.0’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북미식의 경우 IP(인터넷통신규약)통신과 합쳐진 방송 서비스를 활성화하기 좋고 TV 외 다양한 단말기로 확장하기 쉬운 점 등 유럽식보다 더 최신이며 수신 성능이 좋다는 장점을 지닌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유럽식 기술표준을 적용한 TV가 판매됐으며, 북미식 기술을 적용한 TV는 지난 4월부터 판매되기 시작해 보유 가구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지상파 UHD 1호’라는 타이틀을 거머쥠에 따라 국내업체의 UHD 방송 장비 및 기술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UHD TV를 제조하는 대형 가전업체는 물론 촬영 및 편집 장비를 생산하는 중소기업까지 시장에서의 선점효과가 기대된다.
시장조사 업체 IHS에 의하면, 올해 UHD TV 판매 비중이 34.3%를 기록해 Full HD의 33.5%를 최초로 넘어서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금액 기준으로도 UHD TV가 세계 TV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64%를 기록할 전망이다.
IHS는 UHD TV 점유율이 2018년 41%, 2020년 46.8%로 상승하면서 앞으로 전 세계 TV 시장의 핵심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에서 개발된 UHD 관련 핵심 기술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영상압축 기술(HEVC)과 음향압축 기술(MPEG-H 3D Audio)이 좋은 사례다.
HEVC는 Full HD 방송보다 4배 더 선명한 4K-UHD 영상을 초당 60프레임 속도로 실시간 압축함으로써 기존보다 2배 이상의 데이터 압축이 가능한 기술이며, MPEG-H 3D Audio는 다채널·다객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음향압축 기술이다.
둘 다 향후 전 세계 UHD TV 시장에 적용돼 막대한 기술료 및 라이선싱 수입이 기대되는 기술이다.
또한 ETRI는 하나의 방송채널로 UHD 방송과 이동 고선명(HD) 방송을 동시에 송수신 할 수 있는 계층분할다중화(LDM) 기술도 개발했다.
국내 벤처기업 옵티시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디지털 광 링크’ 기술도 주목을 끌고 있다.
UHD 방송은 전송해야 하는 데이터 양이 많아 기존 전기선으로는 장거리 전송이 불가능하고 광통신을 이용한다.
이 기업이 개발한 UHD 방송 전송용 디지털 광 링크 모듈은 전송속도가 매우 빨라 전 세계 UHD 시장의 선점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최초로 UHD 본방송이 개시됨으로써 UHD 콘텐츠의 불법복제를 방지하는 보안 기술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기존의 Full HD 영상을 비디오 캡처 장비나 캠코더로 녹화할 경우 화질이 조악하지만, UHD는 다르기 때문이다.
UHD는 원본 영상이 매우 선명한 탓에 그 같은 범용 장비로 녹화한 다음 디지털로 변환해 불법 유통시킬 경우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사진 및 영상, 음원 등의 콘텐츠에 저작권 정보를 삽입하는 워터마킹에 대한 새로운 기술들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
UHD TV의 영상 저장 및 재생 관련 기술은 가상현실(VR) 기기의 개발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예를 들어 UHD 콘텐츠를 보호하는 워터마킹 기술은 VR 시장이 활성화될 경우 VR용 콘텐츠의 불법 복제를 방지하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다.
UHD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도 견인하게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