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술경영인인터뷰

윈엔윈(주) 박경래 대표

최고기술경영인 인터뷰에서는 기술경영인과의 대담을 통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고기술경영인의 역할과 리더십 등을 알아봅니다.

세계 양궁 역사의 ‘전설’에서 카본 소재 스포츠용품 업계 ‘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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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작성_ 조원일 교수(한양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이정선 전문작가(프리랜서)


한국 양궁은 세계 최강이다. 한국의 궁사들은 어려서부터 최강의 활로 과녁을 정조준한다.

한국산 활도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활 생산업체인 ‘윈엔윈(주)(이하 윈엔윈)’은 국산 활 개발 20년 만에 세계적 업체들을 제치고 글로벌 랭킹 1위에 올라 있다.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 더 잘 알려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윈엔윈의 박경래 대표는 국가대표 선수와 지도자 출신이라는 이력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경기도 안성 본사에서 만난 박경래 대표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한마디로 ‘구체적인 목표 설정’이라고 밝혔다.

인생의 매 순간마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하나하나 이뤄냈더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는 것이다.

국내 최초의 양궁 국가대표에서 세계 1위 양궁 업체 CEO로 성공한 데 이어 고급 자전거 시장에 도전하고 있는 그의 성공 스토리를 공개한다.


성공한 스포츠맨에서 창업을 결심하기까지

박경래 대표의 인생은 늘 도전의 연속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연일 한국 신기록을 작성하며 촉망받던 그는 1975년 첫 양궁 국가대표 선수로 이름을 알린 데 이어 1981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983년 남자 대표팀 코치를 맡아 1985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 1991년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선수들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았다.

1991년 미국 양궁협회의 초청으로 수백 명의 지도자들에게 강연을 하면서 세계적인 지도자의 꿈도 이루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30대 중반이었다.

하지만 마냥 행복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지금은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꽤나 높았던 목표였습니다. 그것을 너무 빠른 시간 안에 이루자 허탈감이 몰려왔습니다.”

한국토지공사의 양궁팀 감독과 국가대표 감독을 겸하며 연봉이 1억 원이 넘었다.

지도자협회, 실업연맹, 대학연맹 등 관련 단체에서 요직도 역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던 박 대표는 현재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인생 목표를 세우고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모든 직함을 버리고 1993년 경기용활의 국산화를 목표로 활 제조회사를 직접 설립하였다.

“그 좋은 자리를 다 버리고 갑자기 활을 만들겠다고 하니까 모두 미쳤다고 했어요. 하지만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반드시 이루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도전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활을 쏘는 실력은 우수했지만 만드는 기술은 턱없이 부족했다.

입문자들이 사용하는 저가용 활을 만드는 업체가 두세 곳이 있었지만 명품에 대한 도전은 시도조차 못하던 상태였다.

당시 세계에서 인정받는 활은 모두 외국산으로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시장을 휩쓰는 가운데 미국의 호이트와 일본의 야마하가 가장 유명했다.

명품 활이라고 하면 역사가 깊은 이 두 회사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는데 야마하가 60여 년, 호이트는 100년이 넘은 기업이었다.

세계 시장에서도 80~90%의 선수들이 이 두 회사의 제품을 썼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절반은 야마하를, 다른 절반은 호이트를 썼다.

“최고의 실력을 가진 우리 선수들이 외산 장비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우리 기술로 만든 최고의 활을 후배들에게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전량 반품으로 돌아온 첫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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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활이었으니 이걸로 세계적인 명품을 만들어보자는 목표를 가지고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성공 가능성은 미지수였다.

“현장 경험을 통해 어떤 활이 좋은 것인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좋은 활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는 전혀 모르는 데다 사업 경험도 없었으니 처음에는 어려움이 정말 많았어요.”

전 재산인 5억 원을 투자해서 제작 기계들을 구입하고 2년을 준비해 탄소(카본)로 만든 첫 활 생산에 성공하며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나 얼마 후 야심차게 내놓은 첫 제품에 금이 가는 현상이 발견되어 일본에 수출한 활 60대를 전량 회수하는 아픔을 겪었다.

가장 좋은 재료를 써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만들었지만 투자금을 모두 날리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 직전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호이트 제품을 사용하는 우리 선수들의 독주를 막기 위해 미국 호이트 사가 한국 선수단에게 최신 장비 판매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다행히 일본 야마하의 장비를 써온 여자 대표팀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호이트 제품을 사용하던 남자 대표팀은 직격탄을 맞았다.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 미국에 금메달을 내주고 말았다.


자체 기술력으로 세계 1위의 발판 마련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백지상태로 돌아가 1년간 실패의 원인을 분석했다.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글로벌 강자들을 압도할 기술력 확보에 있다는 판단 아래 자체 기술력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원재료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그는 활의 원료인 알루미늄과 카본을 직접 제작하기로 하고 다시 생산 라인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개발 과정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점차 경험이 축적되기 시작했다.

1996년 마침내 앞서 실패한 활의 단점을 극복한 두번째 제품 ‘윈액트’가 완성되었다.

안정성과 내구성에서 당시 세계 최고의 경기용 제품 제조사인 호이트와 야마하보다 월등했다.

때마침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경쟁사에서 출시한 제품들에서 이상이 발견된 것이다.

1997년 출시된 호이트 제품은 강도가 낮아 부러지는 현상이 발생했고, 1998년 선보인 야마하의 활은 중심 비틀림이 너무 심해 활을 제대로 쏠 수가 없었다.

박 대표는 이 틈을 노려 재빨리 선진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일본 시장은 클럽 스포츠가 발달한 점에 착안하여 고교 클럽팀을 집중 공략했다.

“일단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저희 활을 쓰면서 점수가 오르는 선수들이 늘어난 거예요. 단 1점에 울고 웃는 선수들로서는 윈엔윈의 제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거죠.”

1997년에는 유럽 시장에 본격적으로 수출하기 시작했고 1999년 즈음엔 안성에 공장을 지으면서 본격적인 성장기에 들어갔다. 윈엔윈의 터닝 포인트는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었다.

당시 여자 개인전에 출전한 윤미진 선수가 윈엔윈이 개발한 장비인 ‘윈액트’를 들고 2관왕을 기록하자 윈엔윈은 양궁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무엇보다 ‘세계 최고의 양궁 지도자가 만든 장비’라는 점은 전 세계 양궁인들에게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윈엔윈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일까?

“좋은 활의 기준은 속도와 정확성입니다. 선수가 쏜 화살이 빠르게 날아가 원하는 곳에 탄착군이 형성되면 좋은 활이죠. 선수들은 활을 쏘는 순간 손에 전해지는 반동과 충격을 통해 도착 지점을 예상합니다. 경기를 보다 보면 간혹 선수들이 시위를 놓는 순간 몸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실 수 있어요. 이는 흔들린 탄착군을 보완하기 위한 행동이죠. 이 같은 움직임을 최소화하려면 보다 더 탄성이 좋고 강도가 센 재질을 사용해 활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희는 철강보다 강도가 세고 탄소섬유보다 유연한 재질인 ‘나노 카본’을 활용해 장비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를 이용해 활을 만든 것은 저희 윈엔윈이 최초입니다.”

여기서 잠깐 윈엔윈의 기술력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윈엔윈 제품이 입소문을 타면서 한 해외 업체 관계자가 ‘윈엔윈의 장비 제조 설비를 견학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놀라운 사실은 그 업체가 바로 최대 경쟁업체인 호이트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같은 호이트의 제안을 박 대표가 수락했다는 것이다.

자사 제품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한 결정이었다.

“양궁은 유럽에서 시작된 스포츠로, 두 회사 모두 오랜 세월 이어 온 전통 제조법으로 만들다 보니 활이 부러지거나 정확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호이트는 두번, 야마하도 한 번 견학을 왔었는데 제가 기꺼이 공장을 공개한 이유는 단순했어요. 우리의 공정을 보고지적을 해주면 그걸 개선해서 제품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세계 양궁 시장의 중심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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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윈엔윈은 승승장구했다.
 
2001년 일본 시장에 들어간 윈엔윈의 공세에 밀린 야마하는 활시장에서 철수했다.

절호의 기회라 생각한 박 대표는 2002년 활 생산을 중단한 야마하 공장을 인수하고 윈엔윈 재팬을 설립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현재 윈엔윈이 수출하는 나라 가운데 활을 가장 많이 팔고 있는 나라는 일본으로 윈엔윈의 일본 시장 점유율은 60~70% 정도입니다. 일본 시장의 특징은 명품에 대한 선호도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국 제품에 대한 자부심 또한 강해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 진출하기 상당히 어려운, 시장 장벽이 높은 곳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윈엔윈 제품은 써보니 다르다’는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 국가대표 선수의 100%가 윈엔윈 활을 사용하면서 다른 외국 양궁인들도 윈엔윈의 활을 사용하게 되었다.

2008년 남자 개인전 금메달을 받은 러시아 선수가 사용한 활이 윈엔윈의 제품으로 알려지면서 점점 점유율이 높아졌다.

그리고 2011년 세계선수권 대회 참가 선수의 53%가 윈엔윈 제품을 사용하면서 마침내 양궁 장비 세계 1위의 목표를 달성했다.

결코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 보이던 호이트를 넘어선 것이다.

이 같은 성과는 경쟁사인 호이트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는 선수 325명 중 절반가량인 169명이 윈엔윈의 활을 사용했다.

현재 리커브(Recurve) 시장의 60% 정도를 장악하고 있는 윈엔윈은 2012년을 기점으로 호이트를 완벽하게 따돌리고 글로벌 넘버원에 등극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전 종목 석권의 쾌거를 달성한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의 손에는 전 세계 양궁 장비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는 우리 기업 윈엔윈의 활이 들려 있었다.

한국 선수뿐만이 아니다.

올림픽에 참가한 전 세계 양궁 선수단의 약 40%가 윈엔윈의 제품을 들고 경기에 나섰다.

여자 양궁 개인전 8강전에서 만난 대한민국 장혜진 선수와 북한 강은주 선수가 사용한 활에 ‘Win&Win’이라는 글자가 인쇄돼 있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윈엔윈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세계 최고의 활을 만들겠다’는 박 대표의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자신만의 제조방식을 개발해 냈고 결국 그 노력 덕분에 세계 시장에서 최고 품질의 활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두 번째 성공 비결은 윈엔윈이 세계 초일류 양궁 전문가 집단이라는 사실이다.

윈엔윈에서 일하는 기술자들은 모두 양궁 선수 출신으로서, 활을 당겨서 화살이 나아가는 메커니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더 좋은 활, 더 잘 맞는 활을 만들기 위한 욕심에 모두들 빠져 있었고 이것은 윈엔윈 발전의 힘이 됐다.

“글로벌 넘버원 스포츠 업체인 나이키나 아디다스의 개발자들은 대부분 선수 출신의 전문가입니다. 우리 기술의 바탕 역시 세계 최고의 현역 선수들에 있습니다. 양궁을 잘 아는 선수들의 감각은 과학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선수들이 감각적으로 좋지 않다고 하면 꼭 그 장비에서는 문제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박 대표는 일본과 미국 기술을 차용해 공장 설비를 갖추지 않고 많은 시행착오 끝에 자신만의 제조 방식을 개발해 냈고, 결국 그 노력 덕분에 세계 시장에서 최고 품질의 활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매년 연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사용하고 시기적절한 투자를 이어가는 것도 성공 비결 중 하나다.

수많은 실패와 도전의 과정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 ‘반드시 해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 의식과 꾸준한 투자만이 성공을 이뤄 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거대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한 마케팅 싸움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에 기술력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궁 기반 다잡고 명품 자전거 시장에 도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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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엔윈 활의 핵심 기술 중 하나는 ‘나노카본’ 기술이다.

카본이란 탄소섬유 카본 그래파이트(Graphite)로 골프채의 샤프트와 헤드 등에 사용되는 고강도 복합 재료다.

나노카본은 기존 카본 대비 50~100% 이상 성능이 향상돼 이것을 실제 활에 적용했을 때 순간 충격을 40%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박 대표는 자전거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건강과 웰빙에 관심이 높은 추세로 수많은 레포츠 문화가 태동하고 있으며, 자전거가 그 중심에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국내 자전거 보유 대수는 선진국 대비 5분의 1 수준이지만 향후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스포츠 자전거 활동에 참여하는 비중이 커질것이라고 자신했다.

2014년 윈엔윈은 자전거 브랜드 ‘위아위스’를 만들며 명품 활에 이은 명품 자전거를 생산했다.

초경량 고강성 프레임을 경쟁력으로 내세우며 시장 선점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 우수한 내구성과 탁월한 진동 흡수 능력으로 고가 외국산 자전거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세계 최초로 프레임 무게가 630g인 초경량 자전거를 생산해 내기도 했다.

해외 고가 제품(670~690g)에 비해 훨씬 가볍다는 설명이다.

윈엔윈이 만든 자전거의 성능은 실전에서 증명되고 있다.

2016년 1월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 사이클 선수권 대회에서 주니어부 금메달 16개 중 11개가 이 자전거를 탄 선수들에게 돌아갔다.

리우올림픽에서도 독일 국가대표가 윈엔윈의 MTB 자전거를 가지고 출전했다.

BMX 자전거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BMX 자전거란 오토바이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자전거다.

거친 환경에서 타기 때문에 힘 전달력이 좋아야하며 높은 강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BMX, 트랙용 자전거 등 고급 자전거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우리의 기술력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까다로운 시장에서 인정을 받으면 명품 브랜드로 한 발짝 더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윈엔윈의 최근 연간 매출은 330억 원 가량이다.

이 가운데 국내 매출은 2억 원 수준으로 해외에서 매출의 대부분을 거둔다.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서 박대표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세계 정상 수준인 우리나라 스포츠의 위상에 맞는 100년 전통의 스포츠용품 제조사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그의 최종 목표는 활, 자전거, BMX, 트랙용 자전거, 스키를 생산, 마케팅 하는 대한민국 대표 스포츠 포털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박 대표는 스포츠 전문인으로 갖고 있는 노하우와 카본 기술을 바탕으로 뛰어난 품질의 스포츠용품을 만들고 싶다.

그는 그 어떤 외국산에도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국제적 브랜드 제품을 개발하여 수출을 하리라 다짐한다.

그 꿈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박경래 대표와의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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