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연금술, 마법과 과학 사이

생활 속 과학탐구는 일상생활 속 물리학, 첨단과학, 과학일반에 대해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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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화학의 역사를 다룬 책들은 통상 연금술에서 현대 화학이 출발했다고 기술한다.

연금술을 뜻하는 단어 ‘Alchemy’와 화학을 뜻하는 ‘Chemistry’는 모두 금과 은을 제조한다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케메이아(Chemeia)’에서 나왔다.

연금술 Alchemy에서 아랍어 접두사 ‘Al’을 떼면 화학 Chemistry가 시작된다.

로버트 보일이나 아이작 뉴턴 같은 근대 과학 혁명의 주역들이 평생 심혈을 기울여 진지하게 연금술에 매진한 ‘연금술사’였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일이다.

하지만 연금술에 관한 책을 들춰보면 그런 말을 도저히 믿기 어려운 마음이 된다.

예를 들면 1595년 하인리히 쿤라드가 쓴 < 영원한 지혜의 암피테아트룸(원형극장) >이란 책에 나오는 이런 구절들 때문이다.

“어느 학자로부터 우주적인 신의 붉은 사자와 그 사자의 피, 즉 금을 얻었다. 이 금은 속세의 흔한 금이 아니라 바로 현자의 금이다.”

연금술사들이 쓴 책에는 ‘알루델’, ‘엘릭시스’, ‘루아흐 엘로힘’이니 하는 판타지 소설이나 온라인 게임에서 주문으로 쓰일 법한 알 수 없는 용어들이 난무하고, 돌을 철학적으로 승화시킨다거나 살기 가득한 불이 아니라 생기를 불어넣는 현자의 불을 지펴야 한다는 알쏭달쏭한 설명으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연금술사의 목표는 모든 금속을 ‘금’으로 바꿀 수 있는 현자의 돌을 만드는 것이며, 그 현자의 돌은 만병통치약으로 쓰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대체 연금술과 현대 화학이 어떻게 하나의 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연금술은 오늘날 많은 이들이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가정에서 출발했음에도, 오래전부터 광물 제련과 염색, 의약품과 화장품 제조 등 실생활에 꼭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따라서 연금술과 화학 사이의 끈끈한 관계를 알기 위해서는 연금술사들이 믿었던 관념이나 그들이 남긴 말이나 글이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행했던 일이 무엇인지를 봐야 한다.

연금술사의 작업장은 ‘래버러토리움(Laboratorium)’이라 불렸다.
 
이는 노동을 하는 장소를 뜻하는데 무엇보다 약제사들의 공간, 즉 연금술사들이 일하는 공간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늘 화로가 뜨겁게 달궈져 있고 각종 화학 물질이 즐비하였으므로 다른 일을 하는 작업장과는 분리되었으며, 종국에는 실험실, Laboratory로 발전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사용했던 도구도 닮은꼴이다.

1597년 독일의 의사이자 시인, 교사였던 안드레아스 리바비우스가 쓴 < 연금술사 >에 실린 삽화와 근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아지에의 저작 < 기초화학총설 >에 그의 연구 파트너이자 부인인 마리-앤 라부아지에가 그린 실험도구들을 나란히 두고 살펴보면 그 사이엔 큰 차이가 없다.

여기에 오늘날 고등학교 화학 실험에서 흔히 쓰일 법한 기자재를 겹쳐 보아도 마찬가지다.
 
연금술사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고, ‘금을 만든다’는 그들의 최종 목표에는 공감할 수 없지만 그들이 사용했던 도구들이 화학자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비커, 플라스크, 깔때기, 막자사발, 증류기와 같은 화학 실험의 기본 도구들은 500여년 전 연금술사의 작업장에서도 그 일을 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실험실 역시 전자 장비들을 제외하면 15세기 연금술 작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금술에서는 순수하고 영묘한 ‘현자의 돌’을 얻기 위해 거치는 7개의 과정을 강조한다.

분해, 순화, 승화, 증류의 이 과정은 여전히 화학에서 물질의 작용을 알기 위해 늘 거쳐야 하는 단계다.

연금술을 행한다는 것은 어떤 물질에서 불순물을 제거해 순수한 물질을 만든다는 뜻이다.

연금술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제5원소’를 만드는 일이다.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도 높은 액체를 만드는 이런 ‘증류’의 과정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다.

바로 ‘술’을 만드는 과정이다. 연금술사들은 포도주에서 순수한 알코올을 증류해 내고, 이를 ‘불타는 물’로 불렀다.

밖에서는 썩는 물체도 이 신비한 물에 넣어두면 부패하지 않고, 물이면서도 불이 붙는 놀라운 액체였다.

불은 물질을 정화해 현자의 돌로 바꾸어주므로, 연금술사에겐 높은 온도의 불을 다루는 능력이 요구되었고, 온도를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화로가 필요했다.

연금술사의 실험실에는 늘 ‘아타노르’라 불리는 화로가 있었는데, 이 화로는 작은 우주에 비유되었고, 알 모양으로 설계되었다.

만물이 태어나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알과 같은 생명으로 현자의 돌이 ‘잉태’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화로와 풀무, 증류기는 연금술사와 뗄 수 없는 도구들이었다.

연금술사들은 불을 이용하여 수많은 종류의 금속과 용액을 다루었고, 숱한 종류의 화학적 반응을 경험했다.

여러 가지 물질의 특성을 시험하고, 여러 물질을 결합할 때 어떤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지 밝히고 금속의 성분을 측정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들이 금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합금을 통해 중량을 늘리고, 부풀리는 방법, 그것이 순금인지 합금인지를 알아내는 방법은 찾았던 것이다.

산과 알칼리를 구분하고 질산, 황산, 염산 만드는 법을 알아낸 것도 이들이다.

이들은 저울과 추를 사용해 계량하고 변화를 기록했다.

이들은 어떤 종류의 물질도 가리지 않고 실험을 통해 검증했다.

‘현자의 돌’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들 자신이 무엇을 이루었는지 모른 채 엄청난 것을 발견해 내기도 했다.

1669년 독일의 연금술사 헤닝 브란트가 바로 그런 일을 해냈다.

그는 아마 황금과 우리 몸에서 나오는 황금빛 액체, 즉 오줌이 모종의 관계가 있으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브란트는 오줌을 썩힌 뒤 공기와 차단하고 가열, 정제하는 과정을 반복했고 이 과정에서 차갑지만 빛이 나는 신비한 물질을 얻는다.

바로 원자 번호 15, ‘인(P)’을 발견한 것이다.

브란트는 이 물질을 ‘현자의 돌’로 전환하기 위해 애썼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자신이 발견한 물질의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18세기 영국 화가 조셉 라이트 오브 더비는 브란트가 인을 발견한 순간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어두운 실내에서 흰 수염을 기른 마법사 같은 차림의 브란트가 무릎을 꿇고 감격에 겨워하고 있다.

그의 등 뒤로 벽과 탁자 위에는 갖가지 모양의 유리병과 서적들이 쌓여 있는데, 그간 반복되어 온 지루하고 고된 실험 과정을 보여 준다.

현자의 돌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말한 연금술사는 종종 있었지만 남아 있는 비법은 없다.

또 대규모로 금을 만드는 데 성공한 이는 아직까지 없다.

그러나 연금술을 실패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또한 연금술이 종교와 신화의 언어로 말한다고 해서 비이성, 미신의 영역으로 규정하는 것도 성급하다.

그들은 현대 과학에서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이야기했지만, 철두철미한 자연 관찰자이자 탐구자였고, 실험을 통해 입증하려 했다.

화학은 오늘날에도 ‘손’을 중요시하는 과학이다.

종이 위에 쓴 식과 답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이들이 여전히 실험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