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문화는 과학과 인문, 사회, 문화, 예술 등을 접목, 세상을 변화시키는 과학기술 이야기를 다룹니다.
로봇과 드론으로 체험하는 유체이탈
글_ 임동욱 연구교수(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표현이 인터넷 검색어 상위권에 오른 적이 있다.
자신과 관련된 사안인데도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유체는 몸에 깃들어 있는 영혼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문학, 철학, 신학, 심리학을 통해 영혼의 존재를 상정해 왔고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몸을 떠난다는 상상을 했다.
반면에 실제로 목숨을 잃지 않았는데 정신이 빠져나간다는 현상도 있다.
몸 바깥을 돌아다니는 느낌이 든다 해서 ‘유체이탈’이라 불렀다.
유체이탈은 친구들끼리 으스스한 이야기를 할 때 종종 등장한다.
“자다가 눈을 떴는데 침대에 누워 있는 내 모습을 마주했다”거나 “가위에 눌리다가 갑자기 집 바깥으로 휙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다”는 식이다.
내 몸을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은 호기심을 자아낼 만하다.
과학으로 증명된 적 없이 그저 소문만 무성한 유체이탈의 기분을 실제로 느껴볼 수는 없을까.
공중으로 떠올라 자유롭게 여기저기를 날아다니고 내 눈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는 체험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할까.
최신 기술이 탄생시킨 초소형 무인기 ‘드론’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영어로 드론(Drone)은 웅웅거리며 날아다니는 꿀벌을 가리키는 단어다.
중세시대에는 드란(Dran)이라 쓰이다가 지금의 드론이 되었고 1940년대부터는 커다란 모선에서 떨어져 나와 벌떼처럼 날아다니는 소형 비행체를 지칭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사람이 탑승하지 않고 원격으로 조종하는 무인항공기를 지칭한다.
100년 전인 1918년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이 시작되었으니 드론의 역사는 짧지 않다.
처음에는 폭탄 투하, 적지 정찰, 사격용 표적 등 군사용으로 쓰이다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점점 소형화, 고성능화 되었다.
요즘은 4개 가량의 모터와 프로펠러를 장착해 수평, 수직으로 움직이고 급회전도 가능한 초소형 드론이 보편화 되었다.
비행금지구역이 밀집한 서울을 벗어나면 공원이나 관광지에서 드론을 날리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드론의 가장 큰 매력은 수백 미터에서 수 킬로미터의 먼 거리에서 컨트롤러를 통해 원격으로 조종한다는 점이다.
카메라 장치를 장착하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조감도 방식의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눈앞으로 불러들이면 조종하는 본인의 모습을 찍을 수도 있다.
영상을 실시간으로 스크린에 띄우면 내가 나 자신을 공중에 떠서 바라볼 수도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기기와 연결하기도 한다.
VR 시스템은 현실감을 부여하고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고글 형태로 머리에 쓰는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HMD, Head Mounted Display)를 주로 이용한다.
360도 전체 방향을 촬영하는 카메라와 연동될 뿐만 아니라 방향과 기울기를 인식하는 센서가 장착되어 있다.
고정된 화면을 바라봐야 하는 기존의 영상과는 달리 사용자가 고개를 돌리면 그 방향이 화면에 나타난다.
HMD를 머리에 쓰고 카메라가 장착된 드론을 띄워서 조종하면 공중을 직접 날아다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방 한쪽 구석으로 이동시켜서 카메라 방향을 돌리면 멀리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이른바 유체이탈 체험이 된다.
드론의 비행속도를 높이면 아찔한 체험도 가능하다.
건물 안에서 급회전을 하며 계단을 오르내리고 창문 바깥으로 들락날락 할 때는 오금이 저려오기도 한다.
고소공포증 증세가 있는 사람은 싫어하겠지만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빠를 때는 시속 200㎞를 넘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장애물을 피하고 통과하며 정해진 코스를 완주하는 ‘드론 레이싱’도 등장했다.
한국드론레이싱협회(KRDA)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단체들이 비행체를 날리는 ‘에어 스포츠’의 일종으로 레이싱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평창 알펜시아에서 ‘2016 국제 드론스포츠 대회’가 열렸다.
18개국 110여 명이 참가하며 열기가 고조되자 강원도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는 시범종목으로 채택할 것을 검토 중이다.
국내 동호인만 5천 명에 달하는 한국은 이번에도 우승자를 배출했다.
초등학생 김민찬 군은 2관왕에 올랐고 고등학생 손영록 군은 드론레이싱 리그챔피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드론이 아닌 로봇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제임스 카메론의 감독의 영화 ‘아바타’ 덕분에 아이디어가 널리 알려졌다.
머나먼 미래에 자원 채취를 위해 외계행성에 진출한 인류는 원주민인 나비 족의 우월한 신체조건을 이용하기 위해 DNA 합성기술로 아바타라는 로봇을 만들어낸다.
이 로봇은 사람의 정신과 연결되어 원격조종으로 자기 몸처럼 이용할 수 있다.
하반신이 마비된 제이크 설리 대원은 아바타 덕분에 마음대로 걷고 뛰며 신체의 자유를 만끽한다는 줄거리다.
아직 영화 속 수준의 기술은 현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 북서부의 작은 마을 우아롱(Oiron)은 17세기에 지어진 3층의 대저택을 개조해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 아바타 방식의 로봇이 투입되었다.
노리오(Norio)라 이름 붙여진 이 로봇은 키가 1.7미터로 성인이 일어섰을 때의 눈높이와 비슷하다.
저택 한 쪽에 위치한 마련된 특별실에서 장애인이 조종간을 움직이면 바퀴, 카메라, 마이크, 스피커가 달린 로봇이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작품을 감상하고 해설자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뇌파로 조종하는 로봇도 개발 중이다.
스위스공과대학교 연구진은 다리뿐만 아니라 팔과 손을 움직이기도 어려운 장애인을 위해 뇌파를 읽어내는 모자를 소형 로봇과 연결시켰다.
움직임을 상상하기만 해도 그쪽 방향으로 로봇이 이동해서 영상을 찍는다.
호주의 벤처기업 오봇(Aubot)은 일상생활에서 사용 가능한 수준의 뇌파 조종 로봇을 공개하기도 했다.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미래에는 병원 침대에 누워서도 세상 구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이 몸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는 유체이탈은 비과학적인 망상이라고 공격을 받아왔지만 드론과 로봇 개발자들에게는 독특하면서 유용한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앞으로 어떠한 아이디어가 실제 세계에서 모습을 드러낼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