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Ⅰ 05 - 파괴적 혁신! 예술에게 길을 묻다
▲ 홍대순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혁신활동 성과의 미흡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파괴적 혁신을 위해 기업은 경영과학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경영예술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연구개발에 더욱더 많은 투자를 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며, 더 좋은 제품/기술의 성공 방정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적 DNA와 예술 자본을 누가 더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가 파괴적 혁신의 본질이며, 그 답을 예술에게 물어야 하는 이유이다.
경영과학 vs 경영예술
기업 경영에 있어서 ‘혁신’은 기업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 만큼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하기에 많은 기업과 경영진들은 혁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다양한 혁신활동을 도입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수많은 혁신활동을 위한 시간, 노력, 자원을 투입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혁신의 결과는 기대하는 것에 훨씬 못 미치는 초라한 결과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기업은 또다시 혁신을 주창하며 혁신활동을 전개하지만, 가히 파괴적인 혁신의 결과를 창출해 내지 못하는 악순환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매우 심각하고 진지하게 그 구조적인 원인에 대해서 인지하고,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파괴적 혁신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해답을 한마디로 압축해 보면 경영과학 시대의 종말과 경영예술 시대의 도래로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경영과학과 경영예술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경영과학이 꽃을 피우고 지대한 역할을 수행하던 시대의 투입자원(Input)은 노동(Labor), 자본(Capital), 그리고 토지(Land) 등의 물리적 자원이자 유한자원이다. 이는 사용하면 소진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투입자원을 늘리면 늘릴수록 규모의 경제와 진입장벽으로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시대였으며, 시장을 주로 공급자가 주도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소위 만들면 팔리는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산출물(Output)의 지향점은 더 좋게(Better), 더 싸게(Cheaper), 더 빠르게(Faster)이다 보니 ‘효율성’, ‘생산성’이 매우 핵심적인 사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대량생산, 표준화, 공용화, 프로세스 개선, 6시그마 등 다양한 논리와 분석에 기반한 과학적 경영관리 기법이 매우 유효했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경영과학의 전성 시대는 이제 서서히 저물고 있으며(물론 여전히 유효한 측면이 있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인 경영예술이 한 걸음 한 걸음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경영예술은 경영과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는데, 우선 외부적 환경을 보면 지금 우리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변동적이고, 복잡하며, 불확실하고, 모호한 사회환경인 VUCA(Volatility, Uncertainty, Complexity, Ambiguity)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경영 환경은 공급자 주도의 시장이 아니라 수요자, 고객 주도의 시장으로 주어진 환경부터 다르다. 잠재적인 경쟁자가 누가 되는지도 과거와 달리 예측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독감 예측에 있어서 구글과 미국 보건당국이 경쟁자가 되는 특이한 세상에 우리는 직면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수많은 호텔 체인을 소유하고 있는 힐튼호텔의 시가총액은 숙박시설이라는 자산을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은 에어비앤비보다도 크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의 강자인 GE는 “우리는 제조 업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업체”라고 천명하는 등 기존의 산업, 경쟁, 비즈니스 모델의 전통적인 개념이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경영예술에서의 투입자원(Input)은 경영과학 시대의 물리적 자원과는 차원이 다른 상상(Imagination), 감성(Emotion) 등의 매우 소프트한 자원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자원들이자, 사용하고 사용해도 소진되지 않는 무한자원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상상과 감성 자원을 통해 구현하는 산출물(Output)은 의미(Meaning), 심미(Aesthetic) 그리고 감동/재미(Excitement)로 구성된다.
즉 개발된 제품이 경영과학에서는 기능적인 측면에 머물렀다면 경영예술에 있어서는 심미적, 경험적 차원을 넘어서는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다.
단순히 값이 싸다고 해서, 기능이 더 좋다고 해서 고객이 지갑을 여는 것이 아니다.
이제 고객은 어떤 기업 제품에 대해 열광하고 환호하는 팬이 되는 시대로 변화되고 있다.
마치 예술작품을 보고 감동하고 열광하듯이.
이제는 제품에 대해서도 “와우! 예술인데”라는 말을 쓰는 시대로 변화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해답이 바로 경영예술인 것이다.
예술적 DNA와 파괴적 혁신 경영
경영, 그리고 예술! 이 두 단어는 언뜻 보기에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경영자와 예술가는 매우 다른 범주의 사람으로 인지되기도 하고, 기업에 있는 경영진 및 조직 구성원들도 예술은 왠지 나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일쑤이다.
연구개발자들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경영과 예술이라는 두 단어 사이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교집합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3가지 차원에서 예술적 DNA와 기업 경영의 창의와 혁신 연관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우선 첫 번째 DNA는 예술의 상상과 창의(Imagina-tion & Creativity)이다.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는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악보가 없는데, 일상의 소리가 음악이라는 매우 독창적이 발상에 기초하여 탄생된 작품이다.
그림 1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 샘 >이라는 작품의 변기는 가히 기존의 통념을 뒤엎은 창발적이고, 파괴적인 발상에서 기인된 작품으로 새로운 미술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예술가들은 이러한 상상과 창의를 통해 세상에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기에 예술작품으로서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의 이러한 상상력과 창의성의 원천은 바로 ‘관찰’에 있다.
여기서 관찰의 의미는 수동적 보기가 아닌 “적극적 관찰”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내 작업은 눈에 익숙한 것들을 내가 어떻게 보는지를 보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 화가 재스퍼 존스(Jasper Johns)
• “당신이 보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 자신이 가장 생각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라.”
– 화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 “당신들은 보고 있어도 보고 있지 않다. 그저 보지만 말고 생각하라. 표면적인 것 배후에 숨어 있는 놀라운 속성을 찾으리.”
–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이러한 예술적 DNA를 기업 경영에 접목하면 “우리 기업/제품은 어떤 세상을 꿈꾸고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바꾸어 볼 수 있다.
이 질문은 기업 존재의 이유와도 직결될 만큼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즉 “우리 회사는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색하고 상상하는 과정에서 파괴적 혁신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다.
사회와 인류에 어떠한 가치를 제공하고 싶기에 지금 개발하고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인가에 대해 조직 구성원이 공유하고 그 가치를 지향해 가는 모습이 경영예술이다.
두 번째 DNA는 예술의 공감과 감동(Empathy & Touch)이다.
우리는 예술작품을 보면서 놀라운 감동을 하고 때로는 흐느끼기까지 한다.
이러한 공감과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예술가는 철저히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온몸과 오감으로 느끼고자 노력을 하는데 세잔(Paul Cézanne)은 사과를 100번을 그리고 100번을 고치고 1,000번을 보고 또 본 화가이다.
세잔은 순간의 사과가 아닌 진짜 사과를 그리고 싶은 열정으로 사과 그림을 완성해 갔다.
세잔은 사과 하나를 그리기 위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여러 생각, 형태, 색채 등을 버리면서 그 누구의 사과가 아닌 오롯하게 세잔 자신만의 사과를 그려낸다.
“사과를 그리려거든 네 자신이 사과가 되어라”라고 이야기 한 세잔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림 2의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생각하는 사람’은 찌푸린 이마, 굳게 다문 입술뿐만이 아니라 팔과 등과 다리의 모든 근육, 꽉 움켜진 주먹과 오므리고 있는 발가락까지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에 감동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 “형을 뜨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인체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 필요함은 물론 인체의 모든 부분에 대한 심원한 느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 “어떤 동물을 연구할 때마다 나는 그 동물이 되었다. 나는 그들처럼 생각하고 느끼고자 했다.”
- 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Desmond Morris)
이를 기업 경영에 접목하면 “우리 기업의 제품에는 감동과 설렘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냥 좋은 제품의 출시, 만들 수 있기에 개발해서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과 설렘이 있는 제품을 현재 개발하고, 출시하고 있느냐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하는 것이 바로 경영예술인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DNA는 예술작품의 정체성(Identi-ty)이다.
예술가들은 자기만의 색깔, 정체성을 지닌다.
어떤 작품을 내놓았을 때 그 작품이 가지는 특성으로 인해 그 예술가만의 색깔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유명한 음악가 A의 제자 B가 야심 차게 만든 교향곡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사람들은 이 교향곡을 A 음악가의 교향곡으로 착각을 하자, 제자 B는 그만의 색깔이 깃든 교향곡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후에 그만의 향기가 나는 불후의 교향곡을 남기게 되었다.
이 사례는 한 예술가에 있어서 정체성이 얼마만큼 중요한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예술작품의 정체성 DNA를 기업 경영에 접목하면 “우리 기업/제품의 정체성/고유성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기업이 인위적으로 “우리 기업/제품의 정체성은 이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회사의 로고를 가리고도 제품을 관찰하고 체험하면서 ‘아! 이 제품은 C사 것’이라고 인지할 수 있을 정도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확보하는 것이 경영예술이다.
창의와 혁신, 그리고 인간본성의 원천! 경영예술로 승부하라
잠시 업무 수행을 접어두고 우리 회사와 제품에는 예술적 DNA가 얼마만큼 녹아 있는지, 그리고 아직까지도 익숙한 경영과학적 사고의 틀과 질문(경쟁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 기반한 사업 전개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파괴적 혁신을 위해 이제는 경영예술의 옷을 입어야 한다.
경쟁보다는 고객에 집중하며 “우리 회사는 왜 존재하며 고객에게 무슨 가치를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에 기반한 전략과 제품 출시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사람을 연구개발자라고 흔히 부르는데, 경영예술에서는 연구개발자가 아닌 “연구개발 아티스트”라고 스스로를 재규정하며 사고의 방식과 행동의 틀을 바꿀 필요가 있다.
내가 지금 개발하고 있는 이 제품은 예술작품일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업무활동은 예술창작의 능동적 과정으로 변화되고,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조직 구성원들에게 일의 의미와 행복이 새롭게 다가오게 될 것이다.
진정한 예술가적 DNA로 가득한 기업,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설렘과 감동을 주는 혁신적인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이러한 “예술적 자본”을 축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