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 딱딱한 제조업, 부드러움을 더하라 ‘소프트 파워’
▲ Editor 김상윤 수석연구원, 포스코경영연구원
중앙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기술경영학 석·박사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기술경영, 제조업 혁신, R&D 성과평가/산학연 부문이며, 국가산업융합지원센터 산업융합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4차 산업혁명으로의 패러다임 변화는 국가, 사회, 기업, 개인 모두에게 새로운 경쟁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중 소프트 파워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서 소프트 파워란,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유연한 사고와 개방적인 협력을 통해 지식과 기술의 융복합을 창출하는 산업·문화적 역량’이다.
사실 지난 40년간의 산업 도약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으로 지적되던 것이 바로 소프트 파워이다.
앞으로 우리 산업에서 소프트 파워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제조업,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다
최근 우리 산업계에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가 뜨겁다.
이미 독일에서는 2011년부터 미국에서는 2012년부터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4차 산업혁명’을 가지고 이제 와서 호들갑스러운 모습이 마치 뒷북을 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최근 글로벌 저성장기와 더불어 국내 제조업의 동시 다발적 침체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이 구세주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 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국내 제조업의 위기가 증폭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경기장이 열리고 경쟁의 룰도 바뀔 것이라는 4차 산업혁명의 변화를 반기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과연 최근 제기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이슈들에서 우리 제조업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발견할 수 있는가?
구글의 기술고문이자 괴짜 발명가로 유명한 레이커즈와일(Ray Kurzweil) 박사는 2015년 미국 허핑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인류의 미래 모습에 대해 위와 같이 예측했다.
당시만 해도 다소 과격한 예측이라는 반응이 다수였지만, 불과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현시점에서 커즈와일 박사의 예상은 하나둘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우리 제조업의 변화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다.
먼저 기술환경 측면에서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소비자의 요구를 바탕으로 기술 간 융복합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AI, 로봇 등과 같은 인류를 뒤흔들 수 있는 파괴적 혁신 기술이 생산, 유통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 적용될 것이다.
알파고는 더 이상 바둑만의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제조업의 영역 중, 사람의 판단과 제어가 필요한 고부가 가치사슬 영역에서, 알파고는 다양한 직업(?)을 얻게 될 것이다.
산업 간, 비즈니스 간, 기업 간 기존 영역과 경계의 파괴가 일어나며, 새롭게 각광받는 비즈니스 및 산업이 생겨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산업 중 일부는 타 산업에 의해 주도권을 뺏기고 대체 될 수 있다.
새로운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기업은 경쟁력을 잃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현재 자동차 시장에서 기존 업체와 IT 업체 간의 총성 없는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산업 간 경계 파괴로 인한 주도권 싸움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제 제조업은 더 이상 일률적이고 일방적으로 재화를 생산하는 딱딱한 산업이 아니다.
3D 프린팅의 적층식 제조(Additive Manufacturing), 스마트 공장과 같은 생산 방식의 변혁뿐만 아니라, 제조와 서비스의 결합은 부가가치 창출 영역을 변혁시키고 있다.
또한, 제조업 간에도 경쟁의 대상과 협력의 대상이 순식간에 뒤바뀔 수 있으며, 소비자의 상상이 제품에 즉각 반영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와 같은 제조업 대변혁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 기획력, 유연한 사고, 개방적 협력과 융복합, 즉 소프트파워이다.
우리에게 소프트 파워가 부족한 이유
사실 지난 40년간의 산업 도약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으로 지적되던 영역이 바로 소프트 파워이다.
작게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취약성에서부터 크게는 국가 전체의 창의적 인재 부족과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국가 교육 구조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소프트 파워 부재에 대한 지적과 해결방안의 모색이 있어 왔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해결이 안되는 이유는 국가 산업 전반의 경쟁 방식, 기업의 조직 관리 방식이 소프트 파워를 배양하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효율과 속도 중심의 성공 방정식은 기업이 원하는 기능적 인재만을 양성하였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주류 아이디어는 가능성을 평가받기도 전에 배제되기 일쑤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밑바탕의 기업 문화, 거래 문화 등은 효율과 속도를 뒷받침하기 위한 형태로 최적화되었다.
사실, 효율과 속도 측면에서는 오히려 글로벌 유수의 기업들이 우리나라의 방식을 극찬하며, 벤치마킹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효율과 속도 경쟁의 시대가 아니다.
우리의 방식과 문화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적합하지 않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기업 문화를 비교하면 그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의 기업 문화가 보수적, 관료적, 안정지향적인데 비해, 미국의 기업들은 개방적이고 혁신지향적이며 수평적이다.
말단 사원과 CEO가 열띤 토론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며, 기업의 규모나 담당자의 직급에 관계없이 협력의 니즈가 있다면 대등하게 소통한다.
이는 최근의 생태계 중심 경쟁 환경에서 우위를 달성하는 데 효과적이다.
미국 기업들의 개방형 협업(Open Collaboration) 문화는 기업 내·외부 가릴 것 없이, 최적 소싱(Sourcing)에 집중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대부분의 리소스(Resource)를 내부에 소유하려는 경향이 많다.
소유하여 내재화해야만 제대로 관리할 수 있고, 효율과 속도면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효율과 속도는 4차 산업혁명의 개방형 생태계, 지식과 기술 주도의 산업 환경 하에서 더 이상 중요한 가치가 아님에도 말이다.
또한 최근 부정적 거래 문화의 대명사가 된 ‘갑을 문화’ 또한 내부와 외부, 위와 아래를 구분 짓는 非 수평적 협업 문화의 만연에 기인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동력인 소프트 파워는 내외부, 위아래의 창의성을 어떻게 연결하고, 혁신적으로 융합시킬지에 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보이지 않는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서 소프트 파워란?
‘소프트 파워’는 원래 국제 정치학에서 최초 사용된 용어로서,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Joseph. Nye) 교수는 2005년 < Soft Power >라는 책에서 군사적 위협, 경제적 제재 등과 같은 강성 역량인 ‘하드 파워’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한 국가의 문화, 가치관, 제반 정책 등 부드러운 역량을 가리키는 말로 정의하였다.
4차 산업혁명의 관점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프트 파워의 개념을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유연한 사고와 개방적인 협력을 통해 지식과 기술의 융복합을 창출하는 산업·문화적 역량”사실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있어서, 소프트 파워가 핵심 역량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인간의 역할 변화에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전부 뺏어갈 것이라는 우려와 같은 맥락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2030년까지 기계가 모든 직업의 50% 정도를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산업혁명의 역사를 살펴보면 큰 변화의 과정에서 항상 유사한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19세기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획기적인 자동 생산체계를 구축했다고 환호한 반면, 일부 미래학자들은 저숙련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인간의 일자리가 기계나 로봇에 의해 대체될 것을 우려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인류는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였다. 현시점에서 과거를 돌이켜보면, 인류는 기계와 인간의 공존 속에 인간의 재능과 역량을 새로운 차원으로 개발하고 다양화시켜 결국, 기술의 진보를 유익하게 받아들였다.
4차 산업혁명으로의 변화도 그러하다.
현재 우리의 우려는 인간의 새로운 역량과 재능, 그리고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창출을 더욱 강제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새로운 역량과 재능, 그리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찾아내야 할까?
최근 IT 산업을 중심으로 한 3차 산업혁명의 과정에서, 제어를 담당하는 컴퓨터와 단일 작업을 하는 기계를 연결하기 위한 프로그래밍(SW)은 인간의 몫이었다.
이를 통해 최근 기업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고차원의 생산 자동화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에서의 인간은 컴퓨터와 기계 간 연결의 바깥에 위치한다.
컴퓨터와 기계가 인공지능에 의해 독자적으로 상호 소통하는 스마트 생태계를 구성하고, 인간은 이 생태계를 활용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 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인간의 새로운 역량과 재능 그리고 혁신적인 아이디어, 즉, 소프트 파워 경쟁력이 좌우할 부분이다.
컴퓨터와 기계가 상호 소통하는 스마트 생태계를 어떻게 활용하고 의미 있는 가치를 찾을지는 바로 인간의 새로운 상상력과 아이디어, 즉 소프트 파워에서 비롯된다.
소프트 파워 강국이 되는 길
향후 국가 산업의 경쟁우위는 기술과 지식수준뿐만 아니라, 소프트 파워의 보유 여부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소프트 파워를 보유한 국가나 기업은 자원과 역량을 의미 있게 엮고 ‘창의적인 스토리’를 부여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노력’과 ‘기존 사고의 틀을 깬 생각’은 소프트 파워를 보유한 자만이 가능한 혁신활동이다.
‘개방형 협력’, ‘수평적 리더십’, ‘기업가 정신’, ‘연결성’, ‘창의성’ 등 소프트파워 지향의 문화를 확산하고 이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향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제조환경의 변화로부터 시작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전체 국가 산업 및 사회문화 전반의 변화를 야기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의 변화와 대응은 이제 한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환경 변화임을 인식해야 한다.
딱딱한 제조업에 부드러움을 더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퍼즐이다.
< 참고자료 >
김상윤, 4차 산업혁명의 핵심동력, 소프트파워, POSRI 이슈리포트, 2016
김상윤, 4차 산업혁명 속으로, 포스코 블로그(blog.posco.com), 2017
Huffington Post, “7 Top Futurists Make Some Pretty Surprising Predictions
About What The Next Decade Will Bring”,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