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사이언스

생활 속 과학탐구 - 공룡이 다시 지구에 나타날 수 있을까?

생활 속 과학탐구는 일상생활 속 물리학, 첨단과학, 과학일반에 대해 살펴봅니다.
 

8.png

글_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한때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종이었던 공룡은 6천 5백만 년 전 홀연히 사라졌다. 발자국이나 뼈로 흔적만 남긴 이 거대한 생명체는 늘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1992년 미국자연사박물관의 롭 드살레, 와드 휠러, 데이비드 그리말디 등의 고생물학자들은 서인도제도의 섬 히스패니올라에서 나온 호박(Amber)으로부터 2천 5백만 년 전의 흰개미 DNA를 추출했다.

호박은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진이 굳어 만들어지는데, 곤충 사체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호박 속에 갇힌 곤충이 모기라면, 만일 그 모기가 공룡의 피를 빨아 먹은 직후에 나무 진액에 갇혔다면, 그 피에서 공룡의 DNA를 추출할 수 있다면…?

익숙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1993년 개봉해 전 세계에서 10억 달러에 이르는 수익을 올린 영화 < 쥬라기공원 >의 설정과 같다.
 
호박 속 모기의 피를 이용해 공룡의 DNA를 추출한 뒤 공룡을 복원해 테마파크를 만든다는 이 영화의 설정은 많은 이들에게 ‘실현 가능한가?’라는 호기심을 품게 했다. 공룡이 번성하던 백악기에 형성된 호박은 흔한 편이다.

미국 알래스카, 캐나다, 일본, 영국, 이스라엘, 요르단 등 세계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 영화 밖의 진짜 과학자들이 호박 속 곤충의 DNA를 추출하는 연구에 몰두했다.

캘리포니아 과학기술주립대학의 라울 카노 박사가 대표적인 연구자이다.

그는 1993년 레바논에서 출토된 호박에서 1억 2천 5백만 년 전의 바구미 DNA 추출에 성공했다. 또 뒤이어 1995년 호박 속에서 벌에 기생하던 박테리아를 찾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호박 속에서 DNA를 찾는 시도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호박 속에서 DNA 추출에 희망을 갖게 한 것은 1985년 개발된 중합연쇄반응 기술(PCR, Polymerase Chain Reaction)이었다.

작은 DNA 조각을 크게 확대하는 기술로 고인류 연구에 있어서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1985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 스반테 페보 박사 연구팀은 이집트 미라에서 DNA를 분석했고, 1997년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해 고고학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공룡 연구에 있어서는 이 탁월한 기술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PCR 기술은 DNA 증폭에는 탁월하지만 시대를 가리지는 않는다.

때문에 시료가 고대의 것인지 후세의 다른 세대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호박 속에서 DNA를 찾더라도 그것을 꼭 고대 혹은 한 시대의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설사 공룡의 피를 빤 모기가 있다 하더라도 그 피는 이미 모기에 의해 오염되었을 터였다. 무엇보다 DNA가 1백만 년 이상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난관이었다.

영화 < 쥬라기공원 > 2편이 나오고 흥행질주를 하던 1997년 과학계는 이미 호박을 이용한 DNA 추출과 복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린 듯 했다. 이후 2001년 3편이 제작되었지만 흥행 성적은 신통치 못했다. 그리고 이후 10여 년 < 쥬라기공원 >은 속편을 내지 않았다.

< 쥬라기공원 > 같은 공룡 복제는 영화 속 얘기일 뿐일까? 아직까지는 그렇다.

지난 2009년 북캐롤라이나대학 메리 슈바이처(Mary Schweitzer) 연구팀은 8천만 년 전에 살았던 공룡 화석으로부터 단백질을 추출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고생물학자와 생화학자들은 채취한 단백질이 오염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신뢰성에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올해 초 발표된 후속 연구에 대한 반응은 사뭇 다르다. 올 1월 슈바이처 박사 연구팀은 8천만 년 전 ‘브라키로포사우르스 카나덴시스(Brachylophosaurus Canadensis)’란 공룡의 대퇴골에서 콜라겐을 발견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콜라겐은 우리 몸의 대표적인 단백질로 뼈와 골수 조직에 풍부하다. 연구진은 8개의 콜라겐 단편(Collagen Fragments)을 분리했는데 이 중 2개에 20개의 아미노산 서열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 공룡의 아미노산 서열은 현재 살아있는 파충류나 조류의 아미노산 서열과 흡사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단백질 오염을 막기 위해 계측에 쓰인 분광기를 분해해 소독하는 등 만전을 기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미노산 서열이 거의 완벽한 형태로 수천만 년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슈바이처 박사는 “동물이 죽으면 적혈구 세포는 소멸하지만 적혈구 속에 있던 헤모글로빈에서 분리된 철분은 보존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공룡 단백질을 발견했다는 또 다른 연구도 발표되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로버트 라이스(Robert Reisz)교수 연구팀은 1억 9천 5백만 년 전에 살았던 공룡 루펜고사우르스(Lufengosaurus)화석에서 단백질을 발견했다는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루펜고사우르스는 쥐라기가 초기에 현재 중국 남서부에 살았던 공룡이다.

연구팀은 중국 원난성 루펑현 지역에서 발굴한 화석의 갈빗대 뼈에서 철이 풍부한 단백질 조각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남아 있는 공룡의 피가 콜라겐을 보존해주었으리라 추정한다.

한편 이제까지 공룡 단백질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던 영국 요크대 매튜 콜린스(Matthew Collins) 등의 연구팀은 2016년, 380만년 전 타조 알에서 단백질을 분리하는 데 성공한다. 연대 차이는 있지만 이제까지 단백질이 보존되리라 생각했던 연대를 훌쩍 뛰어넘는 결과들이다.

공룡 단백질과 관련된 이 주목할 만한 연구들은 첨단 분석기기의 성능에 힘입은 것이다. 단백질 추출에 사용되는 첨단 기기는 ‘라만분광기(Raman Spectroscopy)’와 ‘싱크로트론 방사선 기반 프리에 변환 적외선 분광기(SR-FTIR, Synchrotron Radiation Fourier Transform Infrared Microspectroscopy)'이다. 분광기는 물질이 방출 또는 흡수하는 빛의 스펙트럼을 측정해 포함된 원소를 분석하는 기기다.

공룡 화석에서 단백질을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제까지의 공룡 연구는 뼈와 깃털 등을 대상으로 했다.

DNA와 단백질 같은 생분자 데이터는 연구 범위 밖이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공룡 DNA 추출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단백질 발견만으로도 학계는 고무되어 있다.

아미노산 20개로 이루어진 단백질 서열은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다. 연구자들은 DNA 연구가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새로운 학설을 만들었듯이 단백질 서열 연구가 공룡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01년 3편을 끝으로 10년 넘게 소식이 없던 < 쥬라기공원 >의 속편이 지난 2015년 개봉했다. 그 사이 과학자들은 깃털을 가진 공룡 화석을 발굴했고, 임신한 공룡의 화석에서 골수골을 찾아냈다.

골수골은 조류 암컷의 번식기에만 생기는 골 조직인데, 공룡이 파충류보다는 조류에 가까웠음을 입증하는 증거들이었다.

보송보송한 깃털로 뒤덮인 새 같은 티라노사우르스라니! 영화는 개봉 전부터 최신의 공룡 연구 성과가 반영될 것인지를 두고 화제를 모았다.

할리우드는 거대한 닭이 뛰어다니는 장면을 선택하지 않았다. 포악한 거대 육식 공룡에 대한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는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공룡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 쥬라기 공원 > 5편이 극장에 걸릴 때쯤이면 할리우드도 깃털 달린 공룡을 외면하기 힘들지 모른다. 그때쯤 과학자들은 공룡의 DNA를 찾아내 분석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9.PNG